무엇이 되어 만나리   8


금요일 저녁, 하루 일과가 끝나, 사람들이 모두 퇴근하고 보일러나 콤프레셔, 온갖 프레스 기계들도 잠잠하니, 사방은 무섭도록 조용하다.

은주씨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아직 일을하고 있다.

일주일의 입출금을 정리하고 내일, 토요일 고용인들에게 지급할 주급을 계산한다.

크리너에서 주로  일하는 멕시칸들은 다수 불법체류가 많고 또는 생활상태가 미국에 적응이 덜 되어 아직 은행 계좌도 없는 초기 이민자들이 많다. 그들은 언제나 현금( cash )지급을 원한다. 손에 현금이 만져질 때 비로소 돈벌이의 의미와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본래 중국인들의 상권이던 크리너 업중이 1970 년 대 부터 한국인으로 넘어오자 한국인들의 근면성과 깔끔 하고 재빠른 솜씨가 환영을 받아 한 때 한인 세탁소가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1990 년대에서 정점을 찍으며 2000 년 대 들어서 9.11 참사, 이락, 아프카니스탄 전쟁으로 인해 미국 경제가 곤두박질을 치고,

또한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첨단 대기업들이 더 이상 정장 수트 차림보다는 캐주얼 복장을 선호하여 드라이 클리닝 옷이 대폭 줄고, 또 더하여 각 의류제품 회사는 경쟁적으로 물세탁 바지, 다림질이 필요 없는 논 프레스 셔츠들을 인기 상품으로 내세우는 등 등, 하는 이유로 세탁업은 사양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세탁계 내에도 이미 포화상태의 과밀 한 동업종 가게들의 출혈  경쟁이 치열했고,

설상가상   비에남인( 월남인 )들이  게릴라 전법으로  엄청 빠르고 손쉬우며, 무지하게  저렴한 가격으로 세탁업을  밀고 들어홨다.

이런 여러 이유들로 경영난에 허덕이며 고용인을 줄이고 주인이 그 노동을 모두 커버하려니 너무 힘들고, 또 펄크가 해롭다는 공해문제로 정부 규제는 더욱 심해지고, 열악해지는 분위기에서  세탁업은 나날이  내리막을 걷고 있다.

따라서 은주씨도 열 몆 개의 드랍샵을 거느리고 있었으나 차츰 축소하여 지금은 여섯 개 가게와 독립된 건물, 큰 세탁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에서의 기업은 주인 혼자 독식이 근본적으로 안 된다. 종업원의 최저 급료가 법적으로 제한되 있으며 기계가 돌아가게끔 하는 유틸리티,( 전기세, 가스비, 서풀라이 비용, 인권비, ) 등의 비율이 만만치 않고, 그리고 정부에 내는 세금, 그건 총수입의 33% 대의 커다란  지출이다. 그러니 긍극적으로 하나의 비지니스를 열어서 경영한다는 건  여럿이 다같이 먹고 살자는 민주적 기본 이념이다. 은주씨가 이런 모든 규제에도 오늘 날까지 번영을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외형적 수입도 중요하지만 내면적인 은주씨의 근검절약과 규모있는 재테크가   크게 도움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은주씨 개인적으로는 거의 낭비하는 일 없이 남는 금액을 착실히 모으고 십만불 단위로 저축을 하며 가게나 부동산을 매입하여 수익증대를 확대해 나가는 방법으로 기업을 키워 왔다.

오늘의 수입 계산도 썩 만족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은주씨는 지출을 점검하고 그 나머지 자신의 인건비나 투자 금액의 일정 수준이 겨우 채워진 것 에 감사한 마음이다.

그리고 자신의 영토에 깃들어 먹고 사는 여러 가족들, 이제까지 여기를 스쳐가며 아이들을 키워내고 생활 기반을 다져 독립해간 수많은 초기 이민 가족들을 생각하면 나름 보람을 느낀다.


사무적인 일을 끝내  한숨 돌리고 있는데 전화 벨이 울린다.

남편 명수씨 “ 나 오늘 일이 아직 안 끝나 좀 늦겠소, 걱정 말고 먼저 들어가 쉬어 요”

은주씨는 막연한 불안감에 머리를 갸웃한다. 남편 명수씨의

전에 없이 빈번하게 늦는 귀가. 시도 때도 없이 막연하게 흔들리는 눈빛, 그리고 느닷없이 베푸는 과도한 친절,

‘ 아, 뭔가 그에게 일이 생기고 있어. 무얼까.’

“ 아, 참 여보” 은주씨는 다급하게 남편을 부른다.

“ 카니가 당신과 나, 자기 집에 초대했어요. 이번 주말에요. 난 그러마고 했어요, 당신도 주말 비워 두세요.”

전화선 너머 명수씨 후드득 숨을 몰아 쉰다.  그러나 곧 평정한 목소리를 가다듬어

“ 알았소, 집에 들어가 다시 얘기 합시다 ” 하며 전화를 끊는다.


은주씨는 잠시 하루의 피곤을 잊은채 생각에 잠긴다.

카니는 자기가 결혼은 하지 않았고  미혼모로 아들 하나를 키워 왔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사정이 있어 이 곳 일을 그만 두겠다는 말도 했다. ‘ 이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우리 가게에 필요한 존재가 됐는데 대체 무슨 일일까 ‘ 카니는 매우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 집에 초대하여 한 번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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