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니의 비탄 >

엄마한테는  미안해요. 그런데 나 이 세상 살기 싫어졌어. 사는게 무서워. 사람들이 무서워. 무서운 이 세상에서, 이 삶에서 도망가고 싶었어.

알아요 엄마, 엄마가 나를 얼마나 극진한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고 언제나 부족한 것 없이  챙겨 주시는 것 알아요. 그렇지만 엄마, 엄마가 내 인생 대신 살아 줄  수  없어요.

나한테는 나름대로   살아가는데 부딪치는 여러 어려움이 있어요. 그건 누구에게 미룰 수 없는 나만이 겪고 내가 그 결말에 책임져야 하는 그런 일 들 말얘요. 난 여지껒 그런 어려운 일들이 있어도  별 망설임이나 두려움 없이 잘 헤쳐왔어요.  그 결과도 괜찮았구요. 그런데 살아가며 사람으로 인해 부딪치는 일이 제일 어렵고 두려운 걸 알았어요. 앞으로도 나는 인간이기에 사람 속에 섞여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건대,나  자신이 없어졌어요.

케빈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요. 대학 들어가자, 처음 만나면서 부터  늘 내게 친절하게 잘 해 주고 늘 곁에 있으니  나도 모르는 새 그를 믿고 많이 기댔나 봐요.

그가 나를 떠났다고 생각하니 내 존재가 갑자기 텅 비어 허무한 비누방울 같더라구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워져 공중으로 올라가다 탁 터질 일만 남은 비누방울 말이얘요.

나 여지껒 살며 물론 엄마의 도움도 컷지만 누구한테도 지면서 산 적 없잖아요?  내 라이벌이며 반드시 이겨야 할 적수, 수아는 그래도 대결해 볼만한 대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애는 예쁘고 발랄하고  부러울게  없이 다 갖추었다지만 공부는 나만 못 하잖아요?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을 다니고 또 더하여 멋진 남자애를 사귄다면 수아 부러울 거 없다고 자부했어요. 잘 생기고 가문 잘 나가는 사람 거기다 나만을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한다면 난 단숨에 상류 사회로 수직 상승하여 수아 따윈 얼마든지 무시하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엄마, 왜 하필이면 수아냐구요? 캐빈이 맘 변하게 된 건 수아 때문이라구요. 수아가 캐빈을 빼앗아 간거얘요.  난 수아와 친척이잖아요? 그들에게  즐겁게, 행복하게 살라고 축복해 줄 수 없잖아요? 그들이 행복하게 즐겁게 사는 것 난 곁에서 지켜 볼 자신이 없어요. 엄마 미안해요. 이런 내가 무척 경박하고 경솔하고 유치하여 실망스러우신가요?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나를 어리석다고 비웃어도 이게 나의 진심이얘요. 나는 공부도 잘하고  친구도 많고 활발하게 사는 것 같지만 사실 난 이렇게 단 한 사람 때문에 어이없이 무너지는  단순 경박 유치한 애얘요. 난 앞으로 살 자신이 없어요. 차라리 죽게 내버려 두시지 그랬어요 ? 다시 살아났다 해도  그냥 암담하기만 한 걸요. 난 앞으로 어떻게 살라구요?

딸에게서 살고 싶지 않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떤가? 차라리 나를 낳지 말지,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하는 원망을 듣는 부모의 마음은 어떤가. 인생 초보 애니가  하고 하필이면 그 애인을 사촌에게 뺏겨 생전 곁에서 그 꼴 보고 살 수 없다는 딸 애니의 통곡을 들으며 나는 그냥 심장이 얼음 속에 담궈진 것처럼 저릴 뿐이었다.

사실 나는 수아를 없애겠다는 생각은 애초 전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다만 의논을 하고 싶었다. 사촌끼리 그러면 안 되지. 남자 친구도 중요하지만 친척이기도 한 애니에게 그토록 상처를 주면 안 되지. 그런 의논 아닌 하소연을 해 볼 생각이었다.

애니를 생각해서 너도 캐빈에게서 멀어지라고, 그 따위 이리 저리 마음 옮겨 다니는 가벼운 놈이라면 너도 언젠가 애니처럼 당할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나왔을 때, 수아는 차갑게 웃었다

“’외숙모 저를 애니와 비교하지 마세요. 애니와 나는 차원이 달라요. 애니는 그 수준에서 어울리는 사람과 사귀라고 하세요. “

수아는 내친 김에 할 말은 다 하겠다는 듯, 새촘하게 눈을 흘기며

“한꺼 번에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 욕심으로 똘똘 뭉친 외숙모 식구들, 질리고 역겨워요.”


아, 그 말을 듣자 내 이성은 사고를 멈추고 작동이 멈춘 내 브레인 속에는 낯선 한 마리 악마가 들어섰다. 나는 그 곳에 없었다. 악마가 내 육신을 빌려 모든 걸 휘두른 것이다. 나는 악마에 의해 땅 끝까지, 지옥 밑바닥까지 추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자 시원하고 부드러운 밤  바람을 온 몸으로 느끼며  담담하고 침착하게 그 집을 나왔다. 악마는 떠나고 나의 행위만 처절하게 남은 그 집을.

수아를 화장하여 그 유골을 납골당에 안치하고 온 날 저녁

남편과 길버트, 딸 애니까지 온 식구가 한 자리에 모였다.

두 밤 세 날이 마치 긴 세월이었던 듯, 오래만에 만난 낮선 가족인듯,  피곤하고 시무룩한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남편도 눈길을 피해 세운 무릎 위에 팔꿈치를 올려놓고 바닥만을 응시하고 있다. 사람이 너무 순하니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자기 목소리 한 번 딱 부러지게  내지 못하고 언제나 양보만 해 오며 살아 온  착한 남편, 뭔가  불안감을 느끼나 차마 물어보지 못하고 속만 끓이는 그의 속이 훤히 보인다.감싸고 있는 침묵이 너무 버거운 양 길버트가 말문을 열었다.


“ 엄마 도대체 왜 그런  큰 일을 저지르셨어요 ? “

“ 길벗 너 도대체 뭘 보고 그렇게 단정 짓는거야? 왜 까발리지 못해 안달이야?”

애니가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며 소리쳤다. 그리고 엄마를 향해

“ 엄마가 아니지요? 길버트가 잘 못 안거죠 ? 엄마가 그랬을 리 없어. 엄마 아니라고 해요. 설마 엄마는 아니얘요.”

 남편도 그제사 얼굴을 들고 반평생 살아오며 유일했던 조력자 의지했던 사람, 사랑하는 아내를 바라 보았다.

“ 사실이요 ? 어떻게 그런 끔찍한 짓을 설마 당신이 할 수 있단 말이요 ? “

또 다시 한 참 동안의 긴장된 침묵이 지난 후 길버트가 단언하듯  말했다. “ 엄마 낼 변호사를 찾아 의논하고 함께 자수하러 가시지요. 그래야 엄마가 편해지세요. 엄마 그렇게 하세요.” 나는 한숨을 쉬며 매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러자꾸나. 나도 할 말이 많을 듯 하구나. “

아직 낮게 훌쩍이던 애니는 다시 사나운 울음을 터트리고 남편은 창백한 얼굴을 천정으로 향한다.

무겁고 괴로운 방 안 분위기를 뒤로 한 채 나는 조용히  방을 나왔다

찬물로 바짝 마른 입을 추기고 창가에 서서 하늘을 본다.

이제 와서 수아가 뱉어낸 독한 말을 원망해야 무슨 소용인가. 그 애는 가고 ,그 결과 업보를 등에 걸머진 나만 남지 않았나. 아 내가 지키려던 나의 가정 나의 아들,딸, 함께 사이좋게 늙어갈 남편까지 모두 이렇게 멀어지는 게 아닌가. 다시 한 번 더 올라오는 한숨을 가만이 눌러 삼키며 맑은 밤하늘에 천진하게 반짝이는 몇 개의 먼 별을 바라 본다.


< 우화의 강 끝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애니의 비탄 >

엄마한테는  미안해요. 그런데 나 이 세상 살기 싫어졌어. 사는게 무서워. 사람들이 무서워. 무서운 이 세상에서, 이 삶에서 도망가고 싶었어.

알아요 엄마, 엄마가 나를 얼마나 극진한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고 언제나 부족한 것 없이  챙겨 주시는 것 알아요. 그렇지만 엄마, 엄마가 내 인생 대신 살아 줄  수  없어요.

나한테는 나름대로   살아가는데 부딪치는 여러 어려움이 있어요. 그건 누구에게 미룰 수 없는 나만이 겪고 내가 그 결말에 책임져야 하는 그런 일 들 말얘요. 난 여지껒 그런 어려운 일들이 있어도  별 망설임이나 두려움 없이 잘 헤쳐왔어요.  그 결과도 괜찮았구요. 그런데 살아가며 사람으로 인해 부딪치는 일이 제일 어렵고 두려운 걸 알았어요. 앞으로도 나는 인간이기에 사람 속에 섞여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건대,나  자신이 없어졌어요.

케빈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요. 대학 들어가자, 처음 만나면서 부터  늘 내게 친절하게 잘 해 주고 늘 곁에 있으니  나도 모르는 새 그를 믿고 많이 기댔나 봐요.

그가 나를 떠났다고 생각하니 내 존재가 갑자기 텅 비어 허무한 비누방울 같더라구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워져 공중으로 올라가다 탁 터질 일만 남은 비누방울 말이얘요.

나 여지껒 살며 물론 엄마의 도움도 컷지만 누구한테도 지면서 산 적 없잖아요?  내 라이벌이며 반드시 이겨야 할 적수, 수아는 그래도 대결해 볼만한 대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애는 예쁘고 발랄하고  부러울게  없이 다 갖추었다지만 공부는 나만 못 하잖아요?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을 다니고 또 더하여 멋진 남자애를 사귄다면 수아 부러울 거 없다고 자부했어요. 잘 생기고 가문 잘 나가는 사람 거기다 나만을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한다면 난 단숨에 상류 사회로 수직 상승하여 수아 따윈 얼마든지 무시하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엄마, 왜 하필이면 수아냐구요? 캐빈이 맘 변하게 된 건 수아 때문이라구요. 수아가 캐빈을 빼앗아 간거얘요.  난 수아와 친척이잖아요? 그들에게  즐겁게, 행복하게 살라고 축복해 줄 수 없잖아요? 그들이 행복하게 즐겁게 사는 것 난 곁에서 지켜 볼 자신이 없어요. 엄마 미안해요. 이런 내가 무척 경박하고 경솔하고 유치하여 실망스러우신가요?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나를 어리석다고 비웃어도 이게 나의 진심이얘요. 나는 공부도 잘하고  친구도 많고 활발하게 사는 것 같지만 사실 난 이렇게 단 한 사람 때문에 어이없이 무너지는  단순 경박 유치한 애얘요. 난 앞으로 살 자신이 없어요. 차라리 죽게 내버려 두시지 그랬어요 ? 다시 살아났다 해도  그냥 암담하기만 한 걸요. 난 앞으로 어떻게 살라구요?

딸에게서 살고 싶지 않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떤가? 차라리 나를 낳지 말지,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하는 원망을 듣는 부모의 마음은 어떤가. 인생 초보 애니가  하고 하필이면 그 애인을 사촌에게 뺏겨 생전 곁에서 그 꼴 보고 살 수 없다는 딸 애니의 통곡을 들으며 나는 그냥 심장이 얼음 속에 담궈진 것처럼 저릴 뿐이었다.

사실 나는 수아를 없애겠다는 생각은 애초 전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다만 의논을 하고 싶었다. 사촌끼리 그러면 안 되지. 남자 친구도 중요하지만 친척이기도 한 애니에게 그토록 상처를 주면 안 되지. 그런 의논 아닌 하소연을 해 볼 생각이었다.

애니를 생각해서 너도 캐빈에게서 멀어지라고, 그 따위 이리 저리 마음 옮겨 다니는 가벼운 놈이라면 너도 언젠가 애니처럼 당할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나왔을 때, 수아는 차갑게 웃었다

“’외숙모 저를 애니와 비교하지 마세요. 애니와 나는 차원이 달라요. 애니는 그 수준에서 어울리는 사람과 사귀라고 하세요. “

수아는 내친 김에 할 말은 다 하겠다는 듯, 새촘하게 눈을 흘기며

“한꺼 번에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 욕심으로 똘똘 뭉친 외숙모 식구들, 질리고 역겨워요.”


아, 그 말을 듣자 내 이성은 사고를 멈추고 작동이 멈춘 내 브레인 속에는 낯선 한 마리 악마가 들어섰다. 나는 분명코 그 곳에 없었다. 악마가 내 육신을 빌려 모든 걸 휘두른 것이다. 나는 악마에 의해 땅 끝까지, 지옥 밑바닥까지 추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자 시원하고 부드러운 밤  바람을 온 몸으로 느끼며  담담하고 침착하게 그 집을 나왔다. 악마는 떠나고 나의 행위만 처절하게 남은 그 집을.

수아를 화장하여 그 유골을 납골당에 안치하고 온 날 저녁

남편과 길버트, 딸 애니까지 온 식구가 한 자리에 모였다.

두 밤 세 날이 마치 긴 세월이었던 듯, 오래만에 만난 낮선 가족인듯,  피곤하고 시무룩한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남편도 눈길을 피해 세운 무릎 위에 팔꿈치를 올려놓고 바닥만을 응시하고 있다. 사람이 너무 순하니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자기 목소리 한 번 딱 부러지게  내지 못하고 언제나 양보만 해 오며 살아 온  착한 남편, 뭔가  불안감을 느끼나 차마 물어보지 못하고 속만 끓이는 그의 속이 훤히 보인다.감싸고 있는 침묵이 너무 버거운 양 길버트가 말문을 열었다.


“ 엄마 도대체 왜 그런  큰 일을 저지르셨어요 ? “

“ 길벗 너 도대체 뭘 보고 그렇게 단정 짓는거야? 왜 까발리지 못해 안달이야?”

애니가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며 소리쳤다. 그리고 엄마를 향해

“ 엄마가 아니지요? 길버트가 잘 못 안거죠 ? 엄마가 그랬을 리 없어. 엄마 아니라고 해요. 설마 엄마는 아니얘요.”

 남편도 그제사 얼굴을 들고 반평생 살아오며 유일했던 조력자 의지했던 사람, 사랑하는 아내를 바라 보았다.

“ 사실이요 ? 어떻게 그런 끔찍한 짓을 설마 당신이 할 수 있단 말이요 ? “

또 다시 한 참 동안의 긴장된 침묵이 지난 후 길버트가 단언하듯  말했다. “ 엄마 낼 변호사를 찾아 의논하고 함께 자수하러 가시지요. 그래야 엄마가 편해지세요. 엄마 그렇게 하세요.” 나는 한숨을 쉬며 매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러자꾸나. 나도 할 말이 많을 듯 하구나. “

아직 낮게 훌쩍이던 애니는 다시 사나운 울음을 터트리고 남편은 창백한 얼굴을 천정으로 향한다.

무겁고 괴로운 방 안 분위기를 뒤로 한 채 나는 조용히  방을 나왔다

찬물 한 잔으로 바짝 마른 입을 추기고 창가에 서서 하늘을 본다.

이제 와서 수아가 뱉어낸 독한 말을 원망해야 무슨 소용인가. 그 애는 가고 ,그 결과 업보를 등에 걸머진 나만 남지 않았나. 아 내가 지키려던 나의 가정 나의 아들,딸, 함께 사이좋게 늙어갈 남편까지 모두 이렇게 멀어지는 게 아닌가. 다시 한 번 더 올라오는 한숨을 가만이 눌러 삼키며 맑은 밤하늘에 천진하게 반짝이는 몇 개의 먼 별을 바라 본다.

우화의 강 -- 끝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우화의 강 2  >

“ 엄마가 이상해요”

참혹하게 죽은 조카딸의 황망한 사건으로 멍하고 침통한 아버지에게 아들 길버트가 한 말이다.

아버지는 아직 진의를 이해 못한 듯 건성으로 묻는다.

‘ 왜 어디 아픈것 같더냐?”

길버트는 아차! 속으로 혀를 차며 얼른 화제를 바꾼다.

‘수아누나의 집에 도둑이 들었던 걸까요? 누나가 너무 반항하는 바람에 그 모양이—‘

길버트는 그 끔찍한 살인현장이 다시 생각나자 공포와 분노, 그리고 의혹으로 치를 떤다. 

 ‘경찰에선 뭐래요? “

  ‘ 글쎄다. 문을 순순히 열어준건 아마도 아는 사람의 범행같다더라.

이 밤중에 웬 아는 사람이 그 집을 찾아갔겠니? “

길버트는 다시 가슴이 서늘해지며 설마하는 마음에 갈피를 못 찾고  있다.



사람을 미워한다는게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일인지, 아마 선량한 사람들은 알 수가 없지.

마음 속에 미움이나 갈등이 없이 평화로운 사람들은 그만큼 행복하게 산다는 걸, 그들은 알고나 있을까 나 자신을 태우는 이 지옥의 불길, 미움과 증오로 나를 갉아 먹는

이 흉칙한 구렁이가 똬리를 튼 것이 언제부터였더라.


시누이가 미국이민을 권하며 초청해 주었을 때 정말 기뻤다. 특히 아이들이 더 좋은 교육환경에서 질좋은 교육을 받게 됐다는 것이 제일 좋았다. 그래서 기꺼이 짐을 싸고

새로운 땅 미국에 가면 거기서 말뚝박고 삶의 터전 잡기 위해 힘껒 일하고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며

이 곳에 온 것이다.새로운 희망과 의욕과 무지개 꿈을 한가득 가슴에 품은 한 가족이 태평양을

건너 이 곳으로 날아온 것이다.

미국은 정말 멋진 나라였다. 넓직한 땅과  탁 트인 시야, 우거진 숲, 신선한 대기, 그리고 넓은 땅만큼이나 너그럽고 적당히 타인을 존중할 줄 아는 교양있고 절제있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분위기.

처음 보는 미국은 생각보다 훨씬 맘에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가장 가까운 식구, 가족 갈등으로부터 시작됐다.

미국에 와서 이삿짐을 풀은 곳은 우선 시누이 집이다.

규모가 상당히 커서 뜰에는 나무도 울창하고 풀장도 갖춘 호사스런 주택이었다 그리고  다운타운 중심가에 위치한 큰 상가 빌당이 있고  리쿼스토어를 운영하고 있어  사는게 무척 바빴다.

오자마자 남편은 매형의 비즈니스를 돕기위해 여러가지를 학습해야 했고 나는 시뉘집 안에 널린 일들을 하느라 쉴틈도 없이 일에 매달렸다. 집이 큰 것이 별로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도 실제 생활에서 알게 됐다.청소,빨래 끼니 때마다  음식 만들고, 가족들의 식성이 다 틀리므로 각 식구에 맞춤형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시누이 남편은 처남댁의 음식 솜씨가 최고라는 칭찬과 자랑도 함께  해가며 친구들을 저녁마다 초대했다. 시누는 평소처럼 예쁘게 잘 차려 입고  손님들과 한자리에 앉아 웃고 떠들며 부엌 일에는 얼씬도 안하고 모두 올케에게 맡긴다.


늦어서야 일이 끝나 집에 돌아가면 파김치가 된 몸이 수면부족으로 피곤이 겹친다.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없는 빠듯한 생활 속에 스트레스가 쌓여가며 삶의 활력과 희망이 사라지고 힘없이 찌들어 가기만 하는 나날이었다.

아마도 시누네가 우리가족을 친절하게 초청해 준 것은 모자라는 일손을 보충하기 위함일거라는 생각이 깊어지자 .  무척 억울하고 분하고, 또 오란다고 낼름 따라 온 자신이 밉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렇게 바쁘고 고달픈 미국 생활에서 위안과 희망을 찿을 수 있었던 것은 딸 애니와 아들 길버트가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 차츰 두각을 나타내며  좋은 성적을 내고 특히 미국생활을 매우 즐거워 한다는 거였다. 친구들과 잘 사귀어 제법 리더 역할도 맡아 또래들의 인기도 좋았고 나름대로의 특기나 리크레이션, 또 교회를 통한 사회봉사활동도 활발하여 충만하고 행복해했고 그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아이들의 밝은 장래를 위한다면 나 하나 쯤의 희생은 견딜수 있다고 자위했었다.

< 수아 친구 로지의  진술 >

정말 이런 일이 생겼다는게 믿어지지 않아요. 수아는 어제부터 오늘 오전까지 나와 함께 있었어요. 어제 학교에서 만나 자기 부모님들이 골프 여행을 가셔서 혼자 집을 지키게 됐으니 자기 집서 같이 자자는 거였어요. 우린  시험 기간 중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할 말도 많았고  또 나야 어짜피 혼자  기숙사에 있으니까 기꺼이 수아와 함께 수아 집에갔어요. 

아! 어제 저녁 수아와 곧 약혼할 케빈도 잠깐 왔었어요.  왔다가 – 로지는 여기서 약간 망서리며- 수아가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 눈치를 채고는 곧  가 버렸어요. 아, 왜 수아가 그에게 쌀쌀했냐구요? 저도 잘 모르지만 – 또 망서리고 주저하며- 제 사촌 애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게 몹시 마음에 걸렸겠지요. 캐빈과 저, 커즌 ( 사촌 )이 얽혀 애니가 그렇게 괴로워했는데 수아인들 마음이 편했겠어요? 어쨋던 캐빈이 시무룩 해서 간 후 우린  맘껒 수다를 떨고 먹고 마시며 늦도록 놀다 잠이  들었어요. 

그리고 – 그녀는 기억을 캐내오느라 잠시 미간을 오므려 생각에 잠겼다.- 이른 아침 아니 새벽이라고 해야 할까요? 누가 세차게 문을 두드렸어요. 나는 설핏 잠에서 깨어나 수아를 보니 아직 곤하게 자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일어나 우선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조금 열고 바깥은 내다 보았어요. 근데 문을 두드리던 사람은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자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뒤돌아서 가고 있더라구요.  네, 뒷 태를 보아서 몸집이 자그마하고 여자인거 같았어요, 네, 머리는 후드를 푹 쓰고 있어서 못 봤구요, 그리고 아직 완전히 날이 밝지않아 옷 차림 색갈은 모르겠네요. 나중 수아가 깬 다음 그런 사람이 와서 문을 두드리다 갔다고 하니 피식 웃으며’ 우리 외숙모야. 외숙모는 아무 때나 우리집 드나들어도 되는 친척이야. 하더군요.   

그리고 저는 주일이라 교회가느라 오전 10 시 쯤 내 아파트로 갔지요. 그 때까지도 멀쩡하고 활기차던 수아가 이렇게 돼다니.하며 그녀는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특히  내게 큰 위안은 착한 딸 애니였다.  시누네는 단 하나 공주같이 키우는 딸 수아가 있었다. 애니와 수아는 동갑내기였고,비슷하게 성장하며 모든 면에서 서로 비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서로 은근한 경쟁의식이 있었는지 모른다. 내 딸  애니는 자기 부모가 고모인 수아네 집일을 일꾼들처럼 안팎으로 해 주는 것을 매우 자존심 상하고 못마땅해 했다. 자연히 생활적인 차이도 생겨 수아는 커다란 저택에서 부족함 없이 호사스럽게 사는데 지는 좁은 아파트에서 옹색하게 지내는 모양이 스스로에게 자격지심이 아닐 수 없었겠지. 그럴수록 애니는 믿을게 공부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더욱 분발하고 열심히 학업에 매진했다.하이스쿨 시절 , 다른 또래 아이들은 멋을 내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다니느라 바쁜데도 애니는 늘 학교에서 곧장 집으로 돌아 와


집안에서 부모가 미쳐 챙기지 못하는 자질구레한 가사 일을 모조리 해 냈 다. 넘브러진 빨래들을 모아 세탁해 내고 말끔하게 청소하고 ,늦게 들어오는 엄마, 아빠를 위해 따뜻한 국과 밥을 만들고 동생 길벗의 학교일정을 챙겨서 공부를 도와주고,  너무도 내게 완벽한 축복같은 딸로 때로는 내가 무슨 복으로 이런 착하고 지혜로운 딸을 갖게 되었는 지 행복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착실히 스스로 입시 준비를 한 덕분에 대학은 아주 유수한 유펜 대학에 좋은 장학 혜택을 받고 입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같은 대학  중국계 남자 친구 케빈도 사귀게 되었다.

애니가 대학에 들어가 집과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하며 첫 번 째로 사귀게 된 케빈은 애니에겐 정말 특별한 의미였다. 케빈의 집안은 그 할아버지 때에 이민 와, 할아버지 때는 장사로 많은 돈을 벌어 은행을 세웠고 공고한 부의 기반으로 잘  가르친 자녀들은  대학 교수로 은행가로 또는 변호사로 번창한 ,상당한 명문가였다.

그 집에서도 똘똘한  애니를 인정하고 따뚯하게 맞아주어 두 젊은이의 앞 날은 누가 봐도 행복 그 자체였다. 그런데 돌발상황. 그 사이를 비집고 사촌 수아가 들어서 이들의 갈등이 시작되었다.수아가 소개시켜 달라고 조르니 한 번 합석을 하였던 모양이다.그 자리서 수아는 케빈이 탐이 났고 케빈은 수아의 집요한 작전에 말려들며 애니와 사이가 멀어지고 결국에는 사이가 깨지고,


아직 방학도 아니고 휴일도 아닌 어느 날 애니가 집으로 왔다. 문을 열어주러 나갔다가 애니의 너무 수척하고 기운 없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아니, 너 무슨 일 있니? 어디 아퍼 ? 갑자기 웬일로 온거야?  하며 여러가지 질문이 한꺼번에 나왔다.애니는 궁금한 엄마의 질문에는 답이 없이 희미하게 웃으며 손사레를 치고 ‘ 엄마 나 좀 쉬고 싶어. 말은 나중에 해. 하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끼니도 거르고 잠도 안 자는 듯, 걱정스레 들여다 보면 똑바로 누운 채 천정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난 날  밤이 되어도 애니 걱정에 잠 못 이루고 있는데 애니 방에서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무슨 맘 상하는 일 있어 한 밤 중저리 서럽게 울고 있는 것일까. 나는 딸 애니의 애처러운 울음 소리에 가슴이 에이듯 아파왔다. 새벽 일찍 남편이 가게로 일 보러 나간 후 애니 방에 들어가 보았다. 그렇게 울고 뒤척대다 늦게사 잠 들었는 지 고요하다. 그런데 침대가 텅 비었다. 얘가 일찍 나갔나. 미심쩍어 하며 딸려있는 화장실 문을 여는 순간, 나는 너무 놀래 머릿 속이 하얗게 비어져 갔다. 샤워 꼭지에 가운 허리띠를 걸어 목을 맨 것이다.

기겁을 하며 끈을 풀고 내려놓으니 다행히 곧 발견되어 아직 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휴! 얼마나 다행인가.


도대체 아가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엄마한테 말 좀 하렴. 왜 너 혼자 힘들어하는 건대??이 엄마 너를 위한다면 무슨 일을 못 하겠니? 엄마가 너를 지켜주는데 왜 나한테 도와달라 하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코메리칸 별곡 0
h  
페이스북으로 글 내보내기


[ 우화의 강 1 ]



우화의 강.jpg

유쾌한 골프 여행이었다.

쾌적한 날씨가 이어졌고  탁트인 아름다운 골프 코스를  가깝고 뜻맞는 친지들과 웃고 떠들며

한 바퀴 라운딩하고 스파에서 느긋하게 피곤한 몸을 풀고, 그리고 품위있는 레스토랑에서의

향 좋은 포도주와 함께 즐기는 디너, 모든게 상상했던 이상으로 완벽하게 즐거운 여행이었다.

“ 여보, 참 기분 좋은 여행이었죠? “

 “ 응, 근데 집엔 별 일 없겠지?”

“ 별 일은 무슨, 다 큰 애가 집을 보는데. 그치만 수아한테 전화 해 줘야지”

시계를 보니 밤 9 시 20 분.

전화에  연결된 딸 수아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같이 높고 밝은 목소리.

‘ 엄마 잘 다녀 오셨어요?  ‘

    ‘응, 지금 금방 비행기서 내렸어. 필라 공항이야. 집은 별일 없고? 너두 잘 있었지?’

‘ 그럼요 엄마, 거긴 날씨 좋았어요? 여긴 비가 많이 왔는데’

‘ 아니 날씨 끝내주게 좋았어. 덕분에 골프도 잘 치고—‘

모녀의 수다가 길어질까봐 남편이 슬쩍 인상을 쓴다.

‘ 그래 가서 얘기하기로 하고,  음, 지금 출발하면  열한 시 되기 전에 도착할거다.

집에가서 얘기하자’   

집에 도착했을 땐, 10 시 50 분이 좀 넘어 있었다

집 앞 정원에는 안에서 비쳐나오는 불빛이 환하고 현관문이 반 쯤 열려 있다.

‘ 얘가 우리 오는거 기다리느라고 문 열어 놓은건가?’

‘ 이 밤 중에 왜 문은 열어 놨어?’

남편도 열린 문이 불안한 듯 투덜대며 문 안으로 들어선다.


그런데 이게 왠 일?----   이게 뭐야.

아악!! 수아야 수아야, 수아야, 대답해 봐.

수아는 최후까지 있는 힘을 다해 저항한 듯 거실의  탁자와 꽃병이 넘어지고, 깨지고

등이나 화분들이 던져져 흩어져 있고 수아는 입술을 꼭 깨물고 눈은 크게

열려져 있는채 멈춰 있다.

범인은 매우 잔인하게 여린 처녀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끌고 다닌 듯 여기저기

핏자국이 엉키고 벽에까지도 튀고 머리는 둔기로 내리쳐 골수가 흘러나와

바닥에 피와 함께 고여 있다.

길버트는 방문을 조금 열어둔 채, 컴퓨터 게임에 열중해 있다.

누나는 병원에 입원해 있고 아버지는 아직 그로서리 가게서 일을 하고 있고,

그리고 엄마는—하고 생각이 멎자 조금 머리를 갸웃한다. 아까 누나가 입원한 병원서

출발했다고 하니, 오실 시간이 되고도 남았는데—교통이 막히나 하며 그래도 손가락은

부지런히 표적물을 터뜨린다. 

그 때 차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얼마 후 차고로 통한 옆문이

열린다. 

" 엄마 이제 오세요? "

" 응, 나 올라가서 샤워 좀 할께"

하고 엄마는 문가를 그림자처럼

소리없이 지나가 윗 층으로 올라간다.  길버트는 이제 엄마도 들어오셨으니 좀 더 느긋하게

게임을 즐긴다.

윗 층에서 물소리가 그친 얼마 후, 엄마는 말갛게 씻은 얼굴로 길버트 방문을 열며

" 저녁은 뭘로 했니" 묻는다. 

낮은 목소리와 미소진 엄마의 얼굴, 그런 엄마가 언제나 좋다.

" 응 냉장고에서 먹다 남겼던 피자 꺼내 먹었어요."

"그거 갖고 돼? 라면이라도 하나 끓여 주까? 뜨거운 국물을 먹어야 먹은거 같지 "

" 아니 됐어요, 근데 누나는 어때요? "

‘ 응 누나도 이제 한결 기운을 차리고 있어. 차츰 나아지겠지."

엄마는 잠시 생각하는듯, 망서리는듯 , 그러나 마음을 다잡고 말한다.

‘ 길벗 나 어디 좀 빨리 갔다올께.

 ‘ 왜요? 엄마 밤이 깊었는데요.’하며 시간을 본다

열한 시 이십 분이 넘어 있다.

" 아빠도 곧 오실텐데요."

 " 그러니 빨리 다녀 올께."

‘ 엄마 내가 라이드해 드릴께요. 어딘지만 말하세요. 길버트는 황급히 후드쟈켓을 걸치고 엄마를

따라 나선다. 

그들의 토요타 켐리가 한 불록 떨어진 고모네 집 앞을 지날 때, 고모네 집 앞엔 경찰차가 여러 대 서 있고 경찰들이 막 노란 테프 폴리스라인을 치고 있다.


" 엄마, 고모네 집에 무슨 일이 있나 봐요, 잠간 들어가 봐야겠어요."

‘ 글쎄, 무슨 일일까?  웬만하면 갔다 오는 길에 들러보자.’

그러나 곧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달려온 엠브란스까지 보자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모자는 함께 고모네 드라이브 웨이로 들어간다.

앞을 가로막는 경찰에게 길버트는

이웃 사는 친척이란 소개를 하고 현관으로 들어섰다.

‘ 고모 이게 어쩐 일이얘요?’   길벗은

너무 처참하고 황당하게 눈 앞에서 벌어진 일들에 경악하며 믿기지 않아 할 말을 잊는다.

이럴 때 엄만 침착 일번지다. 거의 넋이 나간 고모부에게 차가운 냉수 한잔을 권한후

고모를 부축하여 카우치에 앉치고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 고모 이럴 때일수록 정신차려야 해요’차리고 경찰에게 보신대로 얘기하세요. 범인을 찾아야지요. 뭐 의심가는 데 있으세요?

고모는 충격과 공포로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망울을 황망히 굴리

다가 뒤늦게 엄마를 알아보고 목을 끌어 안으며 대성통곡 울음을 터뜨린다.

길버트는 엄마가 지시하는대로 델라웨어 강가로 가서 차를 세웠다.

수풀이 층층 어둡게 우거지고 사방이 적막하다.


" 여기 좀 있어라 엄마 혼자 잠깐 내려갔다올테니,"

" 엄마 어두운데 어디로 가시려구요? 같이 가요."

하며 황급히 따라 나서려는 길버트에게

' 아, 너는 여기 꼼짝 말고 있으래니께.' 엄마는 귀찮다는듯 쌀쌀맞게 대꾸하며 벌써

강물이 흐르는 내리막 길로 접어들고 있다

엄마의 손에는 검은 쓰레기 봉지가 들려 있고 좀 묵직해 보이기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별이 된 엄마 ]

“ 우리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요. “

쌍둥이 중 봄이가 억눌러 왔던 분한 마음을  조그만 소리로  투덜댄다.

“ 맞아요, 아빠가 엄마를 큰 총으로 쏘았어요. “ 다른 쌍둥이 자매 가을이가 역시 주위를 살피며 일르듯이 내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종알댄다. 다섯 살 나이,아직 죽음이 어떤건지 모르는 아이들 눈에 눈물은 안 보이고 오직 놀라움과 공포, 그리고 노골적으로 아빠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가득하다.

“ 엄마는 피를 흘리고 너무 많이 아파 꼼짝도 못하고 병원차로 실려 갔어요.”  

쌍둥이  봄이와 가을이는  내가 주일학교 유치부를 맡아 가르치는 우리 반 여자 이이들이다. 아빠와 엄마가 야채 그로서리 가게를 하느라 항상  바쁘니 얘기할 상대가 없는지 교회에 나오면 일주일 지낸 얘기를 하느라 언제나 수다스럽다.

쌍둥이 자매는 매일 엄마 아빠와  새벽에 일어나 같이 차를 타고 가다, 중간에 한국 할머니 집에 내려주면 그 곳서 할머니 보살핌 아래 밥도 먹고 놀다가, 자다가  하루가 지나면 한참 늦은 저녁에사 엄마가 찾아와 집으로 데리고 가는 식이다.

바쁜 엄마아빠 보다 한국 할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  한국말 중에도 경상도 사투리의  어른스런 말을 하는게 엉뚱하고 귀여워 나는 그 애들과 이야기 하기를 즐긴다.

‘ 선생님, 선생님 있잖아요—하고 말문을 열면 마치 참새처럼 쉬지 않고  재잘대다 , 숨이 차서 좀 쉬노라면 다른 꼬마가 바톤을 이어받아 또 떠들고, 그러면 또 교대로 부연 설명을 반복하고 그러다 보니 그 집 안의 비밀이 모두 홀딱 드러나고 만다. 

그런데 이번 사안은 무척이나 심각하고 참혹하다.

우리 좁은 교포 사회에서 벌써 소식이 쫙 돌은 큰  사건이라 나도 벌써 알고 있는 일이다.

지난 목요일 저녁, 봄이네 집에 봄이아빠 동생,삼촌이 방문하여 술자리가 있었고 삼촌이 자기네 가게와 합쳐서 더 큰 가게를 하자는 의견에서 부부간의 이견이 생겼다는 것이다. 지금 운영하는 가게를 팔아서 몽땅 삼촌네, 매상이 부진한 리커스토어에 투자하고 함께 동업하자는 형제들의 의논에 봄이 엄마는 강경하게 반대했다.

지금 근근히 하고 있는 야채가게는 그야말로 봄이 엄마의 굳어지고 갈라터진 손바닥에서 이루어진 결과물 이다.

먼저 이민 와 살고 있는 언니의 중매로 미국 노총각인 남편이, 그래도 먹고 살만한 재력가라는 감언에 솔깃하여 아메리카의 또 다른 꿈을 안고 미국으로 시집왔던  봄이 엄마.

그런데  남편은 그 때까지 일다운 직업 없이 부모에게 얹혀 사는 건달이었다. 시가에서 이젠 철 좀 나서 어엿한 가장이 되어 보라며,  외지고 헐한  야채가게를 하나 내주어 봄이 엄마는 이것만이 미국 생활에서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이다 생각하며 죽을 힘을 다하여 열심히 일했다. 쌍둥이를 임신하여 남다르게 부른 배를 가누기 힘들어 밑이 빠질 정도가 되어도  쉬지 않고 일한 억척스럽고 부지런하던 그녀.

싱싱하고 질 좋은 야채와 과일을 받아 씻고 털고 가지런히 진렬해 놓으면 유난히도 후렛쉬 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끌려  손님들이 점점 늘고 제법 밑천이 불어나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것이 형제간의 경쟁이나 시새움을 산 것일까. 자금난에 시달리던 동생이, 그 야채가게를 팔아 그 돈으로 함께  장사를 하자는 것이다.절대 동업을  반대하는 형수와 술기운으로 이성을 잃고 길길이 날뛰는 형네의 부부싸움에 노골적인 불쾌감을 보이며 삼촌이 떠나고 난 다음, 

사건이 일어났다.

평소에도 과격한 성격에  동생 앞에 체면을 꾸기고, 주사까지 겹치니 불같이 화가 난 봄이 아빠는 앞 뒤 가릴 새 없이 평소 가게에서 안전을 위한다고  비치해 두었던 엽총을 꺼내와  겨눈 것이다.

봄이 엄마는 너무나 공포스러워 빌고 사죄하며 화장실로 피신했으나 그 곳까지 쫒아가 봄이 엄마 몸에 근접 사격을 하였다는 것이다. 

 공포와 눈믈로 얼룩져 창백하게 굳은 쌍둥이 딸앞에서 그렇게 아빠는 못 보일 꼴을 보이고 만 것이다. " 화장실 벽에 새빨갛게 묻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어요 "

봄이가 진저리를 치며 말한다.


그런데 사건은 어떻게 처리되는 것인가. 지역 신문에는 한 귀퉁이에 간략한 내용으로 조그맣게 당일에만 비쳤고 , 사건이 있은 지  며칠  지난 주일 , 교회 나와서야 수근수근 대충 전해 들은 얘기로, 이미 봄이 엄마는 화장을 해서 장례식도 끝냈 다는 것이다.

자세한 상황을 어린 쌍둥이 딸들을 통해 들으며 ,어쩜 이 가공하고 끔찍스런 사건에 모두 입을 다물고 있는걸까.나는 놀라움과 분노를 참을 수 없어 목사님을 찾았다. 

그는 우유부단하고 난처한 표정으로

“ 죽은 사람은 이미 갔고 산 사람이나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어린 아이들도 있는데 애들 아빠 형량이 길어지면 애들한테 더 큰 불행이 아니겠어요? “

그래서 봄이 할머니가 내미는 감형 탄원서에 서명했다는 것이다.

‘ 이건 아냐, 봄이 엄마 너무 억울하게 갔는데 그 나쁜 놈을 위해서 감형이라니,’

나는 다시 김장로를 찾아 갔다. 그는 장의원을 운영하고 있고 봄이 엄마 장례를 집전한 사람이다.

“ 불쌍하지도 않아요? 어쩌면 서둘러 장례까지 치루고 , 혹시 고향 보모님께 연락이라도 했나요?” 나는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 김선생, 나도 사정은 다 압니다. 그런데 봄이 아빠 그 늙은 노모의 부탁이 너무 절절합디다.

어쩌겠어요? 그리고 그들 가정 안에서 일어난 사건에 증인이 없어요. 봄이아빠의 진술로 봄이엄마가 먼저 총으로 위협했다고 합니다. “

" 저는 봄이와 가을이의 말을 듣고 봄이아빠의 정당방위설이 어처구니 없는 변명이라는 걸 알아요.

이 애들을 증인으로 내세워 봄이엄마의 무죄함과 억울함을 풀어드리고 싶어요."

내 말은 끝내 울음소리로 변하여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 김선생님 진정하세요, 봄이 가을이는 아직 너무 어려 법정 증언의 효력이 없어요. 그리고 아이들


에게 그런 아픈 기억을 들추어내는게 더 잔인한 일이지 않을까요? 나도 다방면으로 생각해 봤으나


이 번 일은 그냥 덮어두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는 알았다. 뉴욕에서 제법 돈을 굴린다는 그 노모, 엄청난 돈을 풀어 탄원서 서명을 돈으로 사 들였다는 것을.

그 일이 있은 후 이듬해 봄, 봄이 아빠는 가볍게 풀려났다.

봄이 엄마가 먼저 총으로 위협하고 그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한 < 정당방위 >로 총기를 사용했다는 검찰 조사와 남겨진 어린 딸 아이들의 양육을 위한 배려, 또 많은 사람들의 탄원서의 내용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그 탄원서의 내용은 대충 이랬다고 한다.


‘ 평소 매우 착실하고 성실한 성재문씨는 아내, 이나래씨가 정신 이상적인 돌발 행위 외 알코홀릭으로  총기로 위협해 와서 아이들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총기를 빼앗고 그 사이 총기의 오발로 뜻 아닌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성재문씨의 무고함과 그에게 남겨진 어린 딸 쌍둥이의 양육을 위하여  피고인 성재문의 정상을 참작해 가벼운 형으로  삼가  재고해 주십시요.’


봄이와 가을이, 쌍둥이 아이들은 이미 뉴욕 사는 할머니가 데려가서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그 애들의 가슴 속에 깊이 새겨져 있는 그 끔찍한 장면을 잊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졸아든다. 나는 맘 속으로 외친다.

‘ 아이들아, 너희들의 엄마는 별이 되어 언제나 너희를 지켜보고 계실거다.지상에서의 비극은 어서 잊어라. 너희들의 기억을 지워 버려라. 반짝이는 엄마의 별만 보거라.그 것만이 너희들 삶의 나침판이 될거다.'

외치는 마음에 연민과 회한, 그리고 비겁자의 쓰라린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흐른다.


그리고 그 후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