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요. “
쌍둥이 중 봄이가 억눌러 왔던 분한 마음을 조그만 소리로 투덜댄다.
“ 맞아요, 아빠가 엄마를 큰 총으로 쏘았어요. “ 다른 쌍둥이 자매 가을이가 역시 주위를 살피며 일르듯이 내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종알댄다. 다섯 살 나이,아직 죽음이 어떤건지 모르는 아이들 눈에 눈물은 안 보이고 오직 놀라움과 공포, 그리고 노골적으로 아빠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가득하다.
“ 엄마는 피를 흘리고 너무 많이 아파 꼼짝도 못하고 병원차로 실려 갔어요.”
쌍둥이 봄이와 가을이는 내가 주일학교 유치부를 맡아 가르치는 우리 반 여자 이이들이다. 아빠와 엄마가 야채 그로서리 가게를 하느라 항상 바쁘니 얘기할 상대가 없는지 교회에 나오면 일주일 지낸 얘기를 하느라 언제나 수다스럽다.
쌍둥이 자매는 매일 엄마 아빠와 새벽에 일어나 같이 차를 타고 가다, 중간에 한국 할머니 집에 내려주면 그 곳서 할머니 보살핌 아래 밥도 먹고 놀다가, 자다가 하루가 지나면 한참 늦은 저녁에사 엄마가 찾아와 집으로 데리고 가는 식이다.
바쁜 엄마아빠 보다 한국 할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 한국말 중에도 경상도 사투리의 어른스런 말을 하는게 엉뚱하고 귀여워 나는 그 애들과 이야기 하기를 즐긴다.
‘ 선생님, 선생님 있잖아요—하고 말문을 열면 마치 참새처럼 쉬지 않고 재잘대다 , 숨이 차서 좀 쉬노라면 다른 꼬마가 바톤을 이어받아 또 떠들고, 그러면 또 교대로 부연 설명을 반복하고 그러다 보니 그 집 안의 비밀이 모두 홀딱 드러나고 만다.
그런데 이번 사안은 무척이나 심각하고 참혹하다.
우리 좁은 교포 사회에서 벌써 소식이 쫙 돌은 큰 사건이라 나도 벌써 알고 있는 일이다.
지난 목요일 저녁, 봄이네 집에 봄이아빠 동생,삼촌이 방문하여 술자리가 있었고 삼촌이 자기네 가게와 합쳐서 더 큰 가게를 하자는 의견에서 부부간의 이견이 생겼다는 것이다. 지금 운영하는 가게를 팔아서 몽땅 삼촌네, 매상이 부진한 리커스토어에 투자하고 함께 동업하자는 형제들의 의논에 봄이 엄마는 강경하게 반대했다.
지금 근근히 하고 있는 야채가게는 그야말로 봄이 엄마의 굳어지고 갈라터진 손바닥에서 이루어진 결과물 이다.
먼저 이민 와 살고 있는 언니의 중매로 미국 노총각인 남편이, 그래도 먹고 살만한 재력가라는 감언에 솔깃하여 아메리카의 또 다른 꿈을 안고 미국으로 시집왔던 봄이 엄마.
그런데 남편은 그 때까지 일다운 직업 없이 부모에게 얹혀 사는 건달이었다. 시가에서 이젠 철 좀 나서 어엿한 가장이 되어 보라며, 외지고 헐한 야채가게를 하나 내주어 봄이 엄마는 이것만이 미국 생활에서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이다 생각하며 죽을 힘을 다하여 열심히 일했다. 쌍둥이를 임신하여 남다르게 부른 배를 가누기 힘들어 밑이 빠질 정도가 되어도 쉬지 않고 일한 억척스럽고 부지런하던 그녀.
싱싱하고 질 좋은 야채와 과일을 받아 씻고 털고 가지런히 진렬해 놓으면 유난히도 후렛쉬 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끌려 손님들이 점점 늘고 제법 밑천이 불어나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것이 형제간의 경쟁이나 시새움을 산 것일까. 자금난에 시달리던 동생이, 그 야채가게를 팔아 그 돈으로 함께 장사를 하자는 것이다.절대 동업을 반대하는 형수와 술기운으로 이성을 잃고 길길이 날뛰는 형네의 부부싸움에 노골적인 불쾌감을 보이며 삼촌이 떠나고 난 다음,
사건이 일어났다.
평소에도 과격한 성격에 동생 앞에 체면을 꾸기고, 주사까지 겹치니 불같이 화가 난 봄이 아빠는 앞 뒤 가릴 새 없이 평소 가게에서 안전을 위한다고 비치해 두었던 엽총을 꺼내와 겨눈 것이다.
봄이 엄마는 너무나 공포스러워 빌고 사죄하며 화장실로 피신했으나 그 곳까지 쫒아가 봄이 엄마 몸에 근접 사격을 하였다는 것이다.
공포와 눈믈로 얼룩져 창백하게 굳은 쌍둥이 딸앞에서 그렇게 아빠는 못 보일 꼴을 보이고 만 것이다. " 화장실 벽에 새빨갛게 묻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어요 "
봄이가 진저리를 치며 말한다.
그런데 사건은 어떻게 처리되는 것인가. 지역 신문에는 한 귀퉁이에 간략한 내용으로 조그맣게 당일에만 비쳤고 , 사건이 있은 지 며칠 지난 주일 , 교회 나와서야 수근수근 대충 전해 들은 얘기로, 이미 봄이 엄마는 화장을 해서 장례식도 끝냈 다는 것이다.
자세한 상황을 어린 쌍둥이 딸들을 통해 들으며 ,어쩜 이 가공하고 끔찍스런 사건에 모두 입을 다물고 있는걸까.나는 놀라움과 분노를 참을 수 없어 목사님을 찾았다.
그는 우유부단하고 난처한 표정으로
“ 죽은 사람은 이미 갔고 산 사람이나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어린 아이들도 있는데 애들 아빠 형량이 길어지면 애들한테 더 큰 불행이 아니겠어요? “
그래서 봄이 할머니가 내미는 감형 탄원서에 서명했다는 것이다.
‘ 이건 아냐, 봄이 엄마 너무 억울하게 갔는데 그 나쁜 놈을 위해서 감형이라니,’
나는 다시 김장로를 찾아 갔다. 그는 장의원을 운영하고 있고 봄이 엄마 장례를 집전한 사람이다.
“ 불쌍하지도 않아요? 어쩌면 서둘러 장례까지 치루고 , 혹시 고향 보모님께 연락이라도 했나요?” 나는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 김선생, 나도 사정은 다 압니다. 그런데 봄이 아빠 그 늙은 노모의 부탁이 너무 절절합디다.
어쩌겠어요? 그리고 그들 가정 안에서 일어난 사건에 증인이 없어요. 봄이아빠의 진술로 봄이엄마가 먼저 총으로 위협했다고 합니다. “
" 저는 봄이와 가을이의 말을 듣고 봄이아빠의 정당방위설이 어처구니 없는 변명이라는 걸 알아요.
이 애들을 증인으로 내세워 봄이엄마의 무죄함과 억울함을 풀어드리고 싶어요."
내 말은 끝내 울음소리로 변하여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 김선생님 진정하세요, 봄이 가을이는 아직 너무 어려 법정 증언의 효력이 없어요. 그리고 아이들
에게 그런 아픈 기억을 들추어내는게 더 잔인한 일이지 않을까요? 나도 다방면으로 생각해 봤으나
이 번 일은 그냥 덮어두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는 알았다. 뉴욕에서 제법 돈을 굴린다는 그 노모, 엄청난 돈을 풀어 탄원서 서명을 돈으로 사 들였다는 것을.
그 일이 있은 후 이듬해 봄, 봄이 아빠는 가볍게 풀려났다.
봄이 엄마가 먼저 총으로 위협하고 그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한 < 정당방위 >로 총기를 사용했다는 검찰 조사와 남겨진 어린 딸 아이들의 양육을 위한 배려, 또 많은 사람들의 탄원서의 내용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그 탄원서의 내용은 대충 이랬다고 한다.
‘ 평소 매우 착실하고 성실한 성재문씨는 아내, 이나래씨가 정신 이상적인 돌발 행위 외 알코홀릭으로 총기로 위협해 와서 아이들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총기를 빼앗고 그 사이 총기의 오발로 뜻 아닌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성재문씨의 무고함과 그에게 남겨진 어린 딸 쌍둥이의 양육을 위하여 피고인 성재문의 정상을 참작해 가벼운 형으로 삼가 재고해 주십시요.’
봄이와 가을이, 쌍둥이 아이들은 이미 뉴욕 사는 할머니가 데려가서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그 애들의 가슴 속에 깊이 새겨져 있는 그 끔찍한 장면을 잊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졸아든다. 나는 맘 속으로 외친다.
‘ 아이들아, 너희들의 엄마는 별이 되어 언제나 너희를 지켜보고 계실거다.지상에서의 비극은 어서 잊어라. 너희들의 기억을 지워 버려라. 반짝이는 엄마의 별만 보거라.그 것만이 너희들 삶의 나침판이 될거다.'
외치는 마음에 연민과 회한, 그리고 비겁자의 쓰라린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흐른다.
그리고 그 후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