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화의 강 2  >

“ 엄마가 이상해요”

참혹하게 죽은 조카딸의 황망한 사건으로 멍하고 침통한 아버지에게 아들 길버트가 한 말이다.

아버지는 아직 진의를 이해 못한 듯 건성으로 묻는다.

‘ 왜 어디 아픈것 같더냐?”

길버트는 아차! 속으로 혀를 차며 얼른 화제를 바꾼다.

‘수아누나의 집에 도둑이 들었던 걸까요? 누나가 너무 반항하는 바람에 그 모양이—‘

길버트는 그 끔찍한 살인현장이 다시 생각나자 공포와 분노, 그리고 의혹으로 치를 떤다. 

 ‘경찰에선 뭐래요? “

  ‘ 글쎄다. 문을 순순히 열어준건 아마도 아는 사람의 범행같다더라.

이 밤중에 웬 아는 사람이 그 집을 찾아갔겠니? “

길버트는 다시 가슴이 서늘해지며 설마하는 마음에 갈피를 못 찾고  있다.



사람을 미워한다는게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일인지, 아마 선량한 사람들은 알 수가 없지.

마음 속에 미움이나 갈등이 없이 평화로운 사람들은 그만큼 행복하게 산다는 걸, 그들은 알고나 있을까 나 자신을 태우는 이 지옥의 불길, 미움과 증오로 나를 갉아 먹는

이 흉칙한 구렁이가 똬리를 튼 것이 언제부터였더라.


시누이가 미국이민을 권하며 초청해 주었을 때 정말 기뻤다. 특히 아이들이 더 좋은 교육환경에서 질좋은 교육을 받게 됐다는 것이 제일 좋았다. 그래서 기꺼이 짐을 싸고

새로운 땅 미국에 가면 거기서 말뚝박고 삶의 터전 잡기 위해 힘껒 일하고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며

이 곳에 온 것이다.새로운 희망과 의욕과 무지개 꿈을 한가득 가슴에 품은 한 가족이 태평양을

건너 이 곳으로 날아온 것이다.

미국은 정말 멋진 나라였다. 넓직한 땅과  탁 트인 시야, 우거진 숲, 신선한 대기, 그리고 넓은 땅만큼이나 너그럽고 적당히 타인을 존중할 줄 아는 교양있고 절제있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분위기.

처음 보는 미국은 생각보다 훨씬 맘에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가장 가까운 식구, 가족 갈등으로부터 시작됐다.

미국에 와서 이삿짐을 풀은 곳은 우선 시누이 집이다.

규모가 상당히 커서 뜰에는 나무도 울창하고 풀장도 갖춘 호사스런 주택이었다 그리고  다운타운 중심가에 위치한 큰 상가 빌당이 있고  리쿼스토어를 운영하고 있어  사는게 무척 바빴다.

오자마자 남편은 매형의 비즈니스를 돕기위해 여러가지를 학습해야 했고 나는 시뉘집 안에 널린 일들을 하느라 쉴틈도 없이 일에 매달렸다. 집이 큰 것이 별로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도 실제 생활에서 알게 됐다.청소,빨래 끼니 때마다  음식 만들고, 가족들의 식성이 다 틀리므로 각 식구에 맞춤형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시누이 남편은 처남댁의 음식 솜씨가 최고라는 칭찬과 자랑도 함께  해가며 친구들을 저녁마다 초대했다. 시누는 평소처럼 예쁘게 잘 차려 입고  손님들과 한자리에 앉아 웃고 떠들며 부엌 일에는 얼씬도 안하고 모두 올케에게 맡긴다.


늦어서야 일이 끝나 집에 돌아가면 파김치가 된 몸이 수면부족으로 피곤이 겹친다.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없는 빠듯한 생활 속에 스트레스가 쌓여가며 삶의 활력과 희망이 사라지고 힘없이 찌들어 가기만 하는 나날이었다.

아마도 시누네가 우리가족을 친절하게 초청해 준 것은 모자라는 일손을 보충하기 위함일거라는 생각이 깊어지자 .  무척 억울하고 분하고, 또 오란다고 낼름 따라 온 자신이 밉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렇게 바쁘고 고달픈 미국 생활에서 위안과 희망을 찿을 수 있었던 것은 딸 애니와 아들 길버트가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 차츰 두각을 나타내며  좋은 성적을 내고 특히 미국생활을 매우 즐거워 한다는 거였다. 친구들과 잘 사귀어 제법 리더 역할도 맡아 또래들의 인기도 좋았고 나름대로의 특기나 리크레이션, 또 교회를 통한 사회봉사활동도 활발하여 충만하고 행복해했고 그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아이들의 밝은 장래를 위한다면 나 하나 쯤의 희생은 견딜수 있다고 자위했었다.

< 수아 친구 로지의  진술 >

정말 이런 일이 생겼다는게 믿어지지 않아요. 수아는 어제부터 오늘 오전까지 나와 함께 있었어요. 어제 학교에서 만나 자기 부모님들이 골프 여행을 가셔서 혼자 집을 지키게 됐으니 자기 집서 같이 자자는 거였어요. 우린  시험 기간 중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할 말도 많았고  또 나야 어짜피 혼자  기숙사에 있으니까 기꺼이 수아와 함께 수아 집에갔어요. 

아! 어제 저녁 수아와 곧 약혼할 케빈도 잠깐 왔었어요.  왔다가 – 로지는 여기서 약간 망서리며- 수아가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 눈치를 채고는 곧  가 버렸어요. 아, 왜 수아가 그에게 쌀쌀했냐구요? 저도 잘 모르지만 – 또 망서리고 주저하며- 제 사촌 애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게 몹시 마음에 걸렸겠지요. 캐빈과 저, 커즌 ( 사촌 )이 얽혀 애니가 그렇게 괴로워했는데 수아인들 마음이 편했겠어요? 어쨋던 캐빈이 시무룩 해서 간 후 우린  맘껒 수다를 떨고 먹고 마시며 늦도록 놀다 잠이  들었어요. 

그리고 – 그녀는 기억을 캐내오느라 잠시 미간을 오므려 생각에 잠겼다.- 이른 아침 아니 새벽이라고 해야 할까요? 누가 세차게 문을 두드렸어요. 나는 설핏 잠에서 깨어나 수아를 보니 아직 곤하게 자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일어나 우선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조금 열고 바깥은 내다 보았어요. 근데 문을 두드리던 사람은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자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뒤돌아서 가고 있더라구요.  네, 뒷 태를 보아서 몸집이 자그마하고 여자인거 같았어요, 네, 머리는 후드를 푹 쓰고 있어서 못 봤구요, 그리고 아직 완전히 날이 밝지않아 옷 차림 색갈은 모르겠네요. 나중 수아가 깬 다음 그런 사람이 와서 문을 두드리다 갔다고 하니 피식 웃으며’ 우리 외숙모야. 외숙모는 아무 때나 우리집 드나들어도 되는 친척이야. 하더군요.   

그리고 저는 주일이라 교회가느라 오전 10 시 쯤 내 아파트로 갔지요. 그 때까지도 멀쩡하고 활기차던 수아가 이렇게 돼다니.하며 그녀는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특히  내게 큰 위안은 착한 딸 애니였다.  시누네는 단 하나 공주같이 키우는 딸 수아가 있었다. 애니와 수아는 동갑내기였고,비슷하게 성장하며 모든 면에서 서로 비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서로 은근한 경쟁의식이 있었는지 모른다. 내 딸  애니는 자기 부모가 고모인 수아네 집일을 일꾼들처럼 안팎으로 해 주는 것을 매우 자존심 상하고 못마땅해 했다. 자연히 생활적인 차이도 생겨 수아는 커다란 저택에서 부족함 없이 호사스럽게 사는데 지는 좁은 아파트에서 옹색하게 지내는 모양이 스스로에게 자격지심이 아닐 수 없었겠지. 그럴수록 애니는 믿을게 공부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더욱 분발하고 열심히 학업에 매진했다.하이스쿨 시절 , 다른 또래 아이들은 멋을 내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다니느라 바쁜데도 애니는 늘 학교에서 곧장 집으로 돌아 와


집안에서 부모가 미쳐 챙기지 못하는 자질구레한 가사 일을 모조리 해 냈 다. 넘브러진 빨래들을 모아 세탁해 내고 말끔하게 청소하고 ,늦게 들어오는 엄마, 아빠를 위해 따뜻한 국과 밥을 만들고 동생 길벗의 학교일정을 챙겨서 공부를 도와주고,  너무도 내게 완벽한 축복같은 딸로 때로는 내가 무슨 복으로 이런 착하고 지혜로운 딸을 갖게 되었는 지 행복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착실히 스스로 입시 준비를 한 덕분에 대학은 아주 유수한 유펜 대학에 좋은 장학 혜택을 받고 입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같은 대학  중국계 남자 친구 케빈도 사귀게 되었다.

애니가 대학에 들어가 집과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하며 첫 번 째로 사귀게 된 케빈은 애니에겐 정말 특별한 의미였다. 케빈의 집안은 그 할아버지 때에 이민 와, 할아버지 때는 장사로 많은 돈을 벌어 은행을 세웠고 공고한 부의 기반으로 잘  가르친 자녀들은  대학 교수로 은행가로 또는 변호사로 번창한 ,상당한 명문가였다.

그 집에서도 똘똘한  애니를 인정하고 따뚯하게 맞아주어 두 젊은이의 앞 날은 누가 봐도 행복 그 자체였다. 그런데 돌발상황. 그 사이를 비집고 사촌 수아가 들어서 이들의 갈등이 시작되었다.수아가 소개시켜 달라고 조르니 한 번 합석을 하였던 모양이다.그 자리서 수아는 케빈이 탐이 났고 케빈은 수아의 집요한 작전에 말려들며 애니와 사이가 멀어지고 결국에는 사이가 깨지고,


아직 방학도 아니고 휴일도 아닌 어느 날 애니가 집으로 왔다. 문을 열어주러 나갔다가 애니의 너무 수척하고 기운 없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아니, 너 무슨 일 있니? 어디 아퍼 ? 갑자기 웬일로 온거야?  하며 여러가지 질문이 한꺼번에 나왔다.애니는 궁금한 엄마의 질문에는 답이 없이 희미하게 웃으며 손사레를 치고 ‘ 엄마 나 좀 쉬고 싶어. 말은 나중에 해. 하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끼니도 거르고 잠도 안 자는 듯, 걱정스레 들여다 보면 똑바로 누운 채 천정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난 날  밤이 되어도 애니 걱정에 잠 못 이루고 있는데 애니 방에서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무슨 맘 상하는 일 있어 한 밤 중저리 서럽게 울고 있는 것일까. 나는 딸 애니의 애처러운 울음 소리에 가슴이 에이듯 아파왔다. 새벽 일찍 남편이 가게로 일 보러 나간 후 애니 방에 들어가 보았다. 그렇게 울고 뒤척대다 늦게사 잠 들었는 지 고요하다. 그런데 침대가 텅 비었다. 얘가 일찍 나갔나. 미심쩍어 하며 딸려있는 화장실 문을 여는 순간, 나는 너무 놀래 머릿 속이 하얗게 비어져 갔다. 샤워 꼭지에 가운 허리띠를 걸어 목을 맨 것이다.

기겁을 하며 끈을 풀고 내려놓으니 다행히 곧 발견되어 아직 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휴! 얼마나 다행인가.


도대체 아가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엄마한테 말 좀 하렴. 왜 너 혼자 힘들어하는 건대??이 엄마 너를 위한다면 무슨 일을 못 하겠니? 엄마가 너를 지켜주는데 왜 나한테 도와달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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