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삼촌, 저는 그냥  여기 근처에 있는  근명 종합 기술 학교에 진학하고 싶어요.

졸업하면 외삼촌과 농사지으며 잘 모시고 살께요 “

요석이 서울 K중학교에 합격 통지를 받은 날,  요석은 외삼촌  부부 앞에 어려운 청을 한다.

그러나 외삼촌  부부의 대답은 단호하다.

“ 네 아버지와 어머니는 괴뢰군 앞에 예수 신앙을 지키려다 순교한 분들이다. 어린  너를 우리에게 밑기시며 너를  굳센 믿음의 자식으로 키워달라  부탁하셨어. 부모님의 소망을 잊으면 안 된다. 우리에게도 이런 특별한 임무가 있어 너를 평범하게 키울 수가 없구나.”

외삼촌의 엄격하고도 결단에  찬 음성, 그리고 외숙모님의 눈물 가득한 슬프고 간절한 시선,

요석은 더 이상 고집을 피울 수 없다.

요석의 아버지는 시골 자그마한 개척 교회의 목사였다.

육이오 변란 때, 괴뢰군들은 이 작은 시골 마을까지 들어와 교회와 신자들을 박해했다. 그리고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오히려  그들을 회개시키려는 요석의 부모는 최고 악질 반동으로 몰려 깊은 산 속으로 끌려가 총살당했다.미리 피신시켜 달아났던  외삼촌 부부의 덕분으로  생명을 지킨  요석의 나이 , 그 때, 겨우 다섯 살,

신앙 깊은 외삼촌  부부는 요석을 순교당한 부모의 아들로서 그 부모의 대를 잇는 신실한 교역자로 키우기로 굳게 결심하신 것이다.



요석이 서울 k 중학교와 K고등학교 6 년의 교육과정을  졸업하고  Y 대 신학대학에 무난히 합격된 뒤 요석은 다시 한 번  외삼촌 부부 앞에 무릎을 꿇었다.

“ 외삼촌, 저는 그냥 보통의  남자가  되어 외삼촌을 어버이로  섬기며  아내랑 아이들이랑 한 가정을 이루고 평범하게 살고 싶습니다. 저는 특출난 인간이 아닙니다. 신학교 포기하겠습니다.”

그 동안 요석을 뒷바라지하느라 힘들게 농사지으며 살아 온  세월 속에 한결 늙고 초췌한 모습의  외삼촌  부부는 여전히 고개를 가로 흔들며 단호하게 답한다.

“ 요석아, 너는 한 두  인간, 가족만이 아니라, 세상에 많은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위해 네 힘을 쏟아야 할 사명이 있다. 그걸 명심하고    거역하지 말아라. 그리고 네 모든 고민이나 걱정은 주 님께 맡겨라.하나님은 반드시 너와 함께 계시니 너를 잘 인도해 주실게다.”


요석은 언젠가 부터 기도가 낮설지 않다. 고요한 가운데 눈을 감고 높은 그  곳으로 정신을 집중하면 한없이 부드러운  기체가 자신을 감싸는듯  누군가의 따뜻한 숨결이 느껴진다. 신의 숨결일까? 하늘에서도 아들을 위해 신께 중보소망을 올리는 부모님의 숨결일까. 잘 모르지만 요석은 편안하다. 그래서 청춘의 회오리치는 욕망도 외로움도 느끼지 않고 십대를 공부와 독서와 사색으로 십대를 보냈다.

그런데 오늘의 기도는 특별히  간절하다.

‘ 하나님 , 저는 못나고 부족한 인간입니다. 주님의 사명이란게 저로선 두렵고 겁이 날 뿐입니다.

무엇보다 저는 착한 여자를 아내로 맞아 아이들을 낳고 외삼촌 , 외숙모를 부모삼아 평범하고

건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소서. 응답해 주소서.’

젊은 요석의 기도는 마음 깊은 염원을 담고 있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다. 그러나 요석은 자신을 응시하는 슬프고 근심에 찬 깊은 시선을 온 감각 으로 느낀다. 따뜻한 에너지가 전해져

심장이 쩡하니 울린다. 요석은 가만히 한숨을 내어쉰다. 


며칠 후 요석은 뒷산 얕으막한 빈터에서 연신을 기다린다 .

그 빈터는 웬만한  야구장 넓이로 한 편에는 나무로 만든 철봉틀,  그리고 역시 다듬지 않은 거친 나무로 만들어진 긴 의자 ,  이곳은 이 마을에 아이들의 놀이터이고 어르신의 마실 터, 한여름 개를 잡아 보신탕을  추렴하기도 하는 마을 모두의 쉼터이다.  

한 밤 어두울 땐 , 때로  젊은 청춘, 그들의 은밀한 밀회장소가 되기도 하는 곳.

아직 해는 지지 않았지만 석양이 멀지 않아 하늘은 연한 살구빛이다.


별로 변할 것 없는, 어렵고 궁색한 삶이였을 터이나 연신은 그럼에도 훌쩍 자라 호리호리한 몸매, 가느다란 종아리가 회초리처럼 날렵하고 탄탄하다.

이제 조금 더 석양이 짙어져  발그스레한 복숭아 빛 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는  연신을 요석은 찬찬히 바라 본다.

까무잡잡한 얼굴이 매끄럽고 요석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가을 포도알처럼 깊게 빛을 빨아 들인다. 그리고 야무진 입술.

“ 연신아, 네가 많이 생각나더라,언제나  궁금하고 걱정되고 .”

“ 피이, 그짓말 마라. 그란데 편지 한 장 없었노? “연신은 옛날 도시락 같이 먹던 때 모양 허물없이 입을 비쭉한다.  

“ 그러치만  네게 잡념이나 욕심을 품은 적은 없어, 다만 너를 언제나 항상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거기에 내 인생을 몽땅 바친다 해도,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을 때때로 했어. “

“ 오빠야 그기 뭔 소린고? 내도 오빠에게 아무 것도 바란게 읎다. “

“ 근데 내 외삼촌은   내게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내 인생을 살라고 하신다. 그게 하나님이 내게 주 신 사명이라고. “



요석은  이제 해가 떨어져 서서히 부드러운 비둘기 빛으로 변해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하얗고 뾰죽한 옆 얼굴, 검은 눈은 한없는 걱정스러움과 우수를 담고 있어 연신과의 만남은 차라리 그의 또 다른 하나의 십자가이다.


연신은 애초  감히 요석 오빠를 마음에 두지 않았다.

으젓하고 수재이고, 서울서도 최고의 학교를 다니며 마을 소문으로 그가 제일 훌륭한  신학대학에 진학한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러나 국민학교 때부터 각별한 친절과 이해로 더없이 다정하고 친했던 오빠. 너무 좋기만한 하늘에 별 같이 빛나는 요석 오빠.

“ 오빠야, 나는 누구의 보살핌을 받을 사람은 이니제. 오히려 내가 보살펴야 하는 내 가족이 있데이, 아버지도 이제 힘이 빠져 처량하게 누워 지낸데이. 어매와 난 우리 가족 사는 일에 보탬 이 된다면 무슨 일이고 열심히 한데이, 난 바쁘고 책임이 크니 난 내삐리 둬라.

그리고 오빠야, 난 잘 모르지만 오빠의 받은 바 사명을 잘 이루거라. “

연신은 비록 국민학교만을 졸업했으나,지난  6 년의 험하고 고달픈 세월이 스승이 되어  더더욱 어른스럽고 야무져  있다. 요석은 오히려 자신의 여리고 허약함을 느끼며 할 말을 잊는다.

요석은 연신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보듬어 안으며

“ 정말 굳건하게 살아라, 정 어려울 땐 날 찾아 오너라.”

하고 등을 토닥인다.

그리고 속으로 다시 한 번 되뇌인다.

‘ 내가 사랑하여 지켜주고 싶은 한  가족, 나의 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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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뽀오얀 안개가 사방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다. 우유빛 기체는 자잘한 물기 머금어 무겁게 아래로 쳐지고 나뭇잎 풀잎에 이슬로 맺히며 또르르 또르르 굴러 내린다.

온 세상 소음은  안개가 모두 먹어치운 듯 적막하다. 풀벌레들의 기척도 찾을  수 없다.

발 밑 삼 사미터만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가시거리에, 새로 밀어낸 신작로의 하얀 흙과 자갈이 습기로 차분하여  한낮 땡볕 아래 그 뽀얀 흙먼지는 비현실적인 기억이다.


언뜻 멀리에서 부터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려 온다. 자박자박 가벼운 발자국 소리도 들린다.

계속 재잘대는 쪽은 어린 여자아이, 그리고 가끔 짤막한 댓구로 응수하는 사내아이. 차츰 목소리가 가까워지며  등교하는 초등학생 두 아이의 모습이 안개 속에 윤곽부터 서서히  드러난다.

“오빠야  니 오늘 점심밥 건건이는 뭐꼬 ? “ 묻는 여자아이.

“ 응 외숙모님이 싸주시는 대로 들고 나와서  나도 모 르겠는데.” 남자 아이는 싱겁게 대꾸하고

“ 너 오늘 밥만 싸왔구나, 점심시간에 느티나무 아래로 나와. 같이 밥 먹자” 부드럽게 말한다.

남자아이는 까까중 머리에 책보자기를 왼쪽 어깨부터 오른 쪽 허리께에 비스듬이 둘러 묶고 여자아이는 책보자기를 허리에 감았다. 그리고 손에 들린  작은 베보자기 보퉁이에는 소중한 점심 밥이 들어있다.

요석은 어젯 밤에도  바로 뒷집 사는 연신이 집에서 일어난 소동을 알고 있다. 번번히 일어나는 소동이라 놀랄 것도 없다 .  그건 연심의 아버지가 술이 잔뜩 취해  들어와서는   늦은 저녁상에 둘러 앉아 먹는 자기 식구들의 밥상을 뒤엎고  잡아 족치는 것이다.

그 바람에 연신이와 엄마, 어린 두 남동생들은 밥도 다 먹지 못한채  구석에 오그려 공포에 떨다 그대로  잠 들어버린다는 것도 요석은  사진을 보듯 훤히 안다.

연신이는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어제 저녁 내동댕이 쳐져 흐트러진 밥알을 대충 모아서  밥그릇에 담아 왔다는 말을 장황하게 하지만 듣는 요석은 가슴 속에 뜨겁게 차오르는 연민을 차마 말하지 않는다.

외삼촌과  외숙모도 그 소동을 들으며 탄식 하시지 않던가

‘ 저 한서방이  어서 회개하고 교회에 나와야 저 집 식구들이 살아날텐데, ‘

“ 그러니 여보 저 가족들  구원을 위해 우리 더 열심히 기도 합시다”

요석은 외삼촌 부부의 두런거림을 들으며 연신을 걱정하며 힘들게 잠을 청했다.


학교 뒷편의 그늘진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아이들은 운동장에 모여 노느라,  여긴 조용하고 웅숭깊다.

요석이 기다린지 얼마 안되 연신이 통통 뛰어 온다. 두 손으로는 점심 밥 그릇을 감싸듯 들고서.

요석은 자기 점심 보자기를 끌러낸다. 밥주발과 따로이 싼 벤또에는 계란말이 , 멸치볶음, 그리고 무장아찌도 들어 있다. 연심이는 얼른 무짱아찌를 집어들어 이 세상 더 없이 맛있는 음식처럼 아삭아삭 먹성 좋게  씹는다.

“요석이 오빠야, 난 오빠가 있어 참 좋아 “

“ 연신아 이 계란말이와 멸치 볶음도 먹어,  많이 먹어.”

둘이는 각자 싸온 점심밥을 맛있게 먹는다. 물론 연신은 오빠의 반찬을 실례하고 있지만 망설임이나 거리낌은 별로 없다.

요석은 잠시 먹는 일에 열중한 연신을 본다. 볼살이 통통한 연신은 이제 사학년이고 집에 가면 일 나간 엄마를 대신하여 동생들을 돌봐주고 저녁밥도 해내느라 손은 어린애답지 않게  거칠고 뻣뻣하다.

요석은 문득 가여음과 귀엽고  사랑스런 느낌이 벅차게  목으로 차오른다. 언제까지나 자신이 연신에 곁에 있어 연신이 배곯지 않고  편하게 살도록 지켜주고  싶다는 성숙한 생각을 해 본다..

“ 요석이 오빠야, 내년이면 니 졸업이네. 상급핵교 진학은 준비하고 있나?”

열심히 밥을 퍼 먹던 영신이 문득 생각난 듯  묻는다.

“ 물론 그러제, 외삼촌과 외숙모님은  내를 서울 핵교로 보낼려고 하신다.”



“ 니 공부 잘 하나, 서울은 되기힘들다든디”

“ 그러나 마나, 그건 걱정 없데이 . 그란디 -- “

“ 그란디, 뭐?”

요석이 마냥 머믓댄다. 요석은 연신을 두고 떠난다는게 너무 믿업지가 않다. 술주정꾼인 아버지 밑에 가난한 살림, 그리고 두 어린 동생의 큰 언니, 연신의 짐이 너무 애처러워 요석은 차마 떠난다는 말이 쉽지 않다.

‘ 연신아, 너 마음 굳게 먹고 살아야 한다. ‘

눈을 호둥그레 뜨는 연신을 바라보며 요석 혼자 입 안으로 중얼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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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뽀오얀 안개가 사방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다. 우유빛 기체는 자잘한 물기 머금어 무겁게 아래로 쳐지고 나뭇잎 풀잎에 이슬로 맺히며 또르르 또르르 굴러 내린다.

온 세상 소음은  안개가 모두 먹어치운 듯 적막하다. 풀벌레들의 기척도 찾을  수 없다.

발 밑 삼 사미터만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가시거리에, 새로 밀어낸 신작로의 하얀 흙과 자갈이 습기로 차분하여  한낮 땡볕 아래 그 뽀얀 흙먼지는 비현실적인 기억이다.


언뜻 멀리에서 부터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려 온다. 자박자박 가벼운 발자국 소리도 들린다.

계속 재잘대는 쪽은 어린 여자아이, 그리고 가끔 짤막한 댓구로 응수하는 사내아이. 차츰 목소리가 가까워지며  등교하는 초등학생 두 아이의 모습이 안개 속에 윤곽부터 서서히  드러난다.

“오빠야  니 오늘 점심밥 건건이는 뭐꼬 ? “ 묻는 여자아이.

“ 응 외숙모님이 싸주시는 대로 들고 나와서  나도 모 르겠는데.” 남자 아이는 싱겁게 대꾸하고

“ 너 오늘 밥만 싸왔구나, 점심시간에 느티나무 아래로 나와. 같이 밥 먹자” 부드럽게 말한다.

남자아이는 까까중 머리에 책보자기를 왼쪽 어깨부터 오른 쪽 허리께에 비스듬이 둘러 묶고 여자아이는 책보자기를 허리에 감았다. 그리고 손에 들린  작은 베보자기 보퉁이에는 소중한 점심 밥이 들어있다.

요석은 어젯 밤에도  바로 뒷집 사는 연신이 집에서 일어난 소동을 알고 있다. 번번히 일어나는 소동이라 놀랄 것도 없다 .  그건 연심의 아버지가 술이 잔뜩 취해  들어와서는   늦은 저녁상에 둘러 앉아 먹는 자기 식구들의 밥상을 뒤엎고  잡아 족치는 것이다.

그 바람에 연신이와 엄마, 어린 두 남동생들은 밥도 다 먹지 못한채  구석에 오그려 공포에 떨다 그대로  잠 들어버린다는 것도 요석은  사진을 보듯 훤히 안다.

연신이는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어제 저녁 내동댕이 쳐져 흐트러진 밥알을 대충 모아서  밥그릇에 담아 왔다는 말을 장황하게 하지만 듣는 요석은 가슴 속에 뜨겁게 차오르는 연민을 차마 말하지 않는다.

외삼촌과  외숙모도 그 소동을 들으며 탄식 하시지 않던가

‘ 저 한서방이  어서 회개하고 교회에 나와야 저 집 식구들이 살아날텐데, ‘

“ 그러니 여보 저 가족들  구원을 위해 우리 더 열심히 기도 합시다”

요석은 외삼촌 부부의 두런거림을 들으며 연신을 걱정하며 힘들게 잠을 청했다.


학교 뒷편의 그늘진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아이들은 운동장에 모여 노느라,  여긴 조용하고 웅숭깊다.

요석이 기다린지 얼마 안되 연신이 통통 뛰어 온다. 두 손으로는 점심 밥 그릇을 감싸듯 들고서.

요석은 자기 점심 보자기를 끌러낸다. 밥주발과 따로이 싼 벤또에는 계란말이 , 멸치볶음, 그리고 무장아찌도 들어 있다. 연심이는 얼른 무짱아찌를 집어들어 이 세상 더 없이 맛있는 음식처럼 아삭아삭 먹성 좋게  씹는다.

“요석이 오빠야, 난 오빠가 있어 참 좋아 “

“ 연신아 이 계란말이와 멸치 볶음도 먹어,  많이 먹어.”

둘이는 각자 싸온 점심밥을 맛있게 먹는다. 물론 연신은 오빠의 반찬을 실례하고 있지만 망설임이나 거리낌은 별로 없다.

요석은 잠시 먹는 일에 열중한 연신을 본다. 볼살이 통통한 연신은 이제 사학년이고 집에 가면 일 나간 엄마를 대신하여 동생들을 돌봐주고 저녁밥도 해내느라 손은 어린애답지 않게  거칠고 뻣뻣하다.

요석은 문득 가여음과 귀엽고  사랑스런 느낌이 벅차게  목으로 차오른다. 언제까지나 자신이 연신에 곁에 있어 연신이 배곯지 않고  편하게 살도록 지켜주고  싶다는 성숙한 생각을 해 본다..

“ 요석이 오빠야, 내년이면 니 졸업이네. 상급핵교 진학은 준비하고 있나?”

열심히 밥을 퍼 먹던 영신이 문득 생각난 듯  묻는다.

“ 물론 그러제, 외삼촌과 외숙모님은  내를 서울 핵교로 보낼려고 하신다.”



“ 니 공부 잘 하나, 서울은 되기힘들다든디”

“ 그러나 마나, 그건 걱정 없데이 . 그란디 -- “

“ 그란디, 뭐?”

요석이 마냥 머믓댄다. 요석은 연신을 두고 떠난다는게 너무 믿업지가 않다. 술주정꾼인 아버지 밑에 가난한 살림, 그리고 두 어린 동생의 큰 언니, 연신의 짐이 너무 애처러워 요석은 차마 떠난다는 말이 쉽지 않다.

‘ 연신아, 너 마음 굳게 먹고 살아야 한다. ‘

눈을 호둥그레 뜨는 연신을 바라보며 요석 혼자 입 안으로 중얼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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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요일,

화창한 날씨,  맑고 싱그러운  공기.

어디선가 복숭아  익어가는 냄새가 공기 속에 섞여 있다.

나 석은 케주얼 면바지, 반소매 버튼다운 셔츠로 단정하게 차려입고  교회로 간다.

아직 예배시간에 참석은 안 하고 예배가 끝나면 볼 수 있는 설란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납작한 일층 짜리 교회 건물 뒤는 널다란 청소년들의 체육장이 있고 그 주변은 키 큰 나무들,

사이사이 바베큐를 굽고 식사를 할 수있는 야외  식탁테이불이 여러 개 있다.

그는 그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설란을 기다린다. 매미가 한가하게 목청을 돋구며 여름의 절정을 노래한다.


낮예배가 끝나고 좀 시간이 지난 뒤 설란이 뛰어 온다. 앞자락을 덮는 에프론을 걸치고 있다.

들고 온 커피를 내려 놓으며 ,

“저  오늘, 주방 봉사하는 날이얘요, 교인들의 식사 자리가 끝나려면 한 삼십 분 더 기다려야 하는데 지루하지 않으시겠어요?”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 기다려야지, 먼 이 곳 까지 왔는데 그냥 가라구 ?

“ 아니, 제가 미안해서요, 그럼 좀 기다려 주세요” 말을 마치자 팔랑팔랑 뛰어간다.

나석은 빙그시 웃으며 커피를 한 모금 먹는다.쓴 불랙의 맛 다음에 길게 혀 끝을 감아도는 깊고 구수한 여운 , 이 맛에 세상 사람들이 커피에 열광하는걸까.

그는 가방에서 작은 스케치북과 연필을 꺼내 스케치를 시작한다. 오늘은 세밀화를 그려볼까

발 밑에 작은 크로바, 굵은 나무 밑둥을 타고 올라가는 포이즌아이비, 그러다 그는 풀숲에 핀 작은 보라색 꽃을 발견한다. 아기 손톱만한 작은 꽃이지만 다섯 개  또렷한 꽃잎, 노란 꽃술, 쭉 뻗은 조그만 잎새, 난을 축소해 놓은듯 , 앙증맞고 귀티난다. 나석은 그 작은 꽃을 그리느라 골몰하다.

얼마 후 설란이 뛰어 온다.  

그림을 보며 “ 아,예뻐요.   내고향에 < 애기방울 난초 > 비슷한데  더 작으네요. 참, 귀엽고 신기해”

하며 반색을 한다.

“ 시장하지 않으세요? 오늘 교회 메뉴는 콩나물국밥이랍니다 “ 하며 스트로폴 국 그릇을 두 개를  내려 놓는다.  

“ 밥을 아주 말아 넣었으니 그냥 후르륵 드시면 돼요 “

설란은 시범삼아 한 숟깔 크게 떠서 입에 넣고 오물댄다. 오늘 설란은 세탁소서 일하던 때와 달리 하얀색 바탕에 꽃무늬 드레스, 머리는 가지런히 빗어내려 이마 위에 반짝이 작은 핀 을 꼽았다. 좀 촌스럽지만 그런대로 사랑스런 모습, 나석은 흐믓하게 바라 본다. 그 때

“ 하항 ! 여기 계셨구만, 웬 교회에 출석이신가 했더니 여기서 연애질을 ."

고음에 쇳소리, 거기 마리가 서 있다.

“ 아니 당신이 여기 왜 왔지 ?” 낭패한 나석의 목소리,

“ 당신의 가는 곳마다 바로  내 손 안에 있지요 “ 하며 손바닥 펼쳐 보이는 마리의 손 안에 스마트 폰이 있다.  이제 위치추적 장치까지 이용하다니 나석은 머리를 흔든다.

“ 마리 바쁜 당신이 왜 여기까지--, 쓸데없는 짓을 하는구려 “ 나석의 말에

마리 도전적으로 눈섭을 꼿꼿이 세워 설란을 꼬나 보며

“ 저 숙녀분를 먼저 소개해 주시는게 순서 아닌가요 ?”

설란이 말한다.

“ 내 이름은 설란, 나화백님을 교회로 인도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구요.”

뒤이어 낭자한 마리의 웃음이 쏟아진다.


“ 화백님은 무신론자얘요, 아마 이 세상 현실의 구원자를 찾아 나섰겠지요.” 

하며 매우 고자세로 나석을 째려 본다. 

설란은 침착하게 자리를 가리키며

“ 좀 앉으세요, 혹시 식사를 안 하셨다면 갖다 드릴께요 “

“ 아니, 식사는 됐어요. 그렇지만 좀 앉을께요.’

하얀 바지를 입은 마리는 걸상 바닥을 살피며  손수건을  꺼내 펼쳐서 깔고 앉는다.

“ 마리, 당신 넘겨잡지 마시요, 설란은 내게 그림 주문을 한 의뢰인이고, 나는 그림에 대하여 의논하고자 만난 것이요 “

궁색한 변명은 말에 힘이 서지 못하고 목넘어로 흐지부지 사라진다.

“ 둘 다 틀린 말은 아닐텐데 어쩐지 내겐  완벽하게 납득이 안 되네요 . 좀 더 이해가 되도록 진심으로  얘기해 주실까요 “

마리는 다리를 꼬고 팔짱을 끼며 피고인을 닥달하는 검사처럼 위압적이다.


설란은 나석과 그의 아내라는 여인의 서슬퍼런 모습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다.

저 불상한 남자는 왜 저 여자 앞에서 한없이 기가 죽고 초라해질까. 그래서 그는 늘 꺼칠하고 영혼이 외출한듯 텅빈 얼굴로 힘든 일에 스스로를 던져 넣었다는 것인가.

얼마의 시간이 지난다. 그 침묵의 시간을 매미의 유장한 울음 소리가 덮는다.

설란이 깊고 곧바른 눈으로 마리를 향하여 말한다.

“ 난 당신을 잘 알지 못해요. 그러나 여기서 처음 보는 당신은 행복하기도 하고 어리석기도 한 사람으로 보이네요.”

“ 그게 무슨 뜻이지요 ? “ 면도날처럼 들이대는 마리의 반문.

“ 스스로는 완벽하다고 자부하겠지요, 그 거만이 하늘을 찌르는군요. 하지만 그 이면에는 깊은 갈등과 번민이 있어요. 그래서 당신의 위장된 허세는 내 눈을 속이지 못해요 “

마리는 눈을 내리깐다. 꼿꼿한 속눈섭이 뺨 위로 어두운 그늘을 드리운다. 잠시 후 마리는 간절한 눈빛으로 나석을 향해 묻는다.

“ 솔직히 말해 봐요, 나는 당신을 잡지 않았는데 왜 나를 떠나지 않았지요?”

“ 우린 어린 시절에 만나 결혼을 하였소. 난 당신을 끝까지 지켜야 할 책임도 맡은거요. 당신은 아버지의 과잉보호 아래서  나약하게 자랐소, 겉으로는 거센듯 기를 쓰지만 당신은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하오. 차마 나의 발목을 잡은 이유는 그것이요. 그리고 당신의 아이들은 아빠가 필요하다는 것도 또 다른 이유의 하나요.

--- 그런데 이제 나도 지쳐가오.”  나석은 한숨같이 말을 끝낸다.


“ 당신네 부부는 공평하지 않군요, 잘난 아내를 위해 한 번 뿐인  자신의 인생과 뛰어난 능력을 포기한다는건 현명한 처사가 아니라고 생각돼요.

설란의 신랄한 비판에 둘은 말이 없다. 그러나 마리, 질 수 없다. 억지라고 부려야 한다.

“ 설란, 너는 우리보다 한참 어린 것이 선무당 사람 잡듯하네. 네가 뭘 안다고 주절대니?”

뺨이라도 한 대 칠듯 거칠고 세차게 말한다.

“ 나도 결혼을 했었지요. 산골짝 촌에서 도회지 부짓집으로요, 그런데 너무 색다른 환경에서 적응이 안 되는거얘요. 거기에다  나를 위하고 도와주어야 할 신랑이 바람이 났어요. 의지가지 없는 냉냉한 시집살이에서 이건 아니다 생각하고 친정집으로 뛰쳐 나왔어요. 시집간 지 삼 년도 안 되서였어요. 집으로 돌아와 마음을 못 잡고 들로 산으로만 내닫는 나를 내 어머니가 이 곳 외삼촌 댁으로 보내 주시어 이만큼이나마 사람처럼 살고 있어요.

난 나 화백님 같은 남자가 이 세상에 있다는게 믿기지 않아요. 내가 겪은 남자는 아주 고약하고 달랐으니까요”

가만가만 낮은 목소리로 설란이 말하는 동안 시간은 계속 흐르고 여름의 한낮은 서서히 기울고 있다.

나석은 설란의 내력도 처음 듣는 내용이지만 자신의 살아온 세월도 껍질이 홀랑 벗겨져 맨살로 관찰당하는 듯  부끄러움과 모멸감으로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나 절망으로 인해 이미 죽음도 생각했던 것 아닌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자리가 고름을 쥐어짜듯 후련하기도 하다. 세 사람의 주변으로 썰렁한 바람이 휘돌고, 설란의 팔뚝으로 오소소 한기가 돈다.

이들 일에 내가  낑겨서 긴장할 필요는 없어 , 그냥 가 버릴까 하는데,

적의로 자못 도전적이던 마리가 정말 의외로 선선히 말한다.

“ 설란 씨, 내 부탁이 있어요.”

“ 말씀해 보세요, “ 설란도 눌라움에 눈을 깜박이며 말한다.

“ 저이의 아이를 낳아 주세요, 난 이미 가임기가 끝나서 저이의 아이를 낳아주지 못해 언제나 미안했거던요 “

이게 무슨 소린가. 그 복잡하고 의미심장한 일을 이렇게 쉽게 얘기하다니. 설란과 나석은 어이없이 마리를 바라 본다.

“ 좋아요, 엉뚱한 내 말을  나도 알아요.그런데도  나는 당신들이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져요. 그러기 위해  어떤 서포트도 하겠어요, 필요하다면 법적 문제도 포함해서 말이지요.”

“ 뭘 믿고 제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청을 하십니까?” 설란이  정중하게 묻는다.

“ 난 좋은 사람을 알아 볼  줄 알아요. 저이는 참 좋은 사람이얘요, 차라리 나쁜 사람이라면 내 결단도 더욱 쉬웠을 거얘요, 그리고 설란 당신도 참한 사람이란 걸 알았어요. 나는  저이가 마음으로 누군가를  사랑 하고  있다는 걸  벌써 알았어요. 그게 누군가 알려고 이렇게 눈에 불을 켜고 왔지요”  마리는 유쾌하게 웃는다.

나석은 당황하고 뜨거워지는 얼굴로 설란을 얼핏 살핀다.

“ 아니, 아니, 지금 당장 결정할 건 없어요, 난 이쯤 내 소견을 밝히고 당신들이 알아서 전진하시든지, 스톱하시든지, 맘대로 하시라구요 ,

알아요 ? 우린 각자 섬처럼 외롭게 떠돌다 서로 소통하는 가교로 이어지는 거얘요.”

마리는 아주 기분이 좋아져서 하이톤으로 외친다.

“ 내가 생각했던 제일 유쾌 한 결론으로 맺는 오늘의 자리는 이 편과 저 편을 이어주는 아름다운 < 무지개 다리 > 로 이름 붙칩시다 “


마리는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까르륵 까르륵 웃음 소리를 남기고 차키를 짤그랑거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주차장 쪽으로 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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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십장생도 >





십장셍도.jpg


<  다시 십장생도  >


설란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초대했다.

와서 그림이 전시될 공간을 보고 계획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해서이다.

나는 흔쾌히 그러마고 했다. 사실이 그렇다. 나는 이 번에야 말로 정말 불세출의 뛰어난 걸작을  만들고 싶다.

설란의 외삼촌이 직접 설계하고 지은 집은 정말 입구부터 남다른 세심한 손길이 느껴진다.

프리이빗 도로에 명자나무 울타리가 가지런히 자라 있고  집 앞에는  작으마한  연못에, 화사한 대리석 분수에서 무지개 빛 물이 뿜어져 나온다. 높다란 대리석 석주가 아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육중한 티크소재 현관문, 어딘가 졸부의 조급한 염원이 애처럽다는  느낌. 아니다, 선입감은 금물. 여하튼 미니어쳐 신전같이 귀엽다.


설란과 그녀의 와삼촌은 매우 반갑게 그를 맞이한다.

설란의 외삼촌은 아마 70에서 중반 쯤   넘었을까? 아직 꼿꼿하게 형형한 눈빛, 그리고 자못 경계하고 감찰하는 날카로운 눈빛이다. 널다란 응접실, 짙은 갈색  가죽 소파에 좌정한 후에도 그는 나를 샅샅히 훑어보고 있다. ‘ 설란 넌 나를 어떻게 소개한 거니’ 속으로 가파른  비명을 지르며 등허리에 진땀이 밴다.

그러나 나는 예의 바르게 준비해 간 작품첩을 보이며 내 소개를 한다.

“ 저는 한국화 화가인 나 석입니다. 창천 선생의 문하에서 21 년을 배웠고 대한민국 미술 공모전에 세 번, 그리고 미국 오기 전 1995 년 개인전을 한 번 했습니다.”

“ 저의 대표작품을 사진으로 담아 놓은 것인데 참고삼아 보십시요 ‘

노인은 작품집을 찬찬이 살핀다.

“ 주로 소나무를 많이  그렸군, 소나무를 좋아하시오?”

“ 네, 저는 소나무 그림을 그리려고  전국의 잘 생긴 소나무를 찾아 산골짝마다 누비고  다녔지요.”

“ 소나무가 맘에 드네, 십장생에서도 소나무가  중앙에 자리잡고 있지. 두툼한 밑둥에 쭉 뻗어 올라간 붉은 소나무가 장수의 기백을 보이지 않던가?”

노인은 꽤나 만족한듯 말한다.


“  설란이가 화백님  얘기를 많이 하더라구. 난 설란을  완전 신용해요. 원, 그애는 꾸밀 줄을 몰라요. 그게 좋기는 하지만 때로  걱정이 되서리.”

노인의 궁시렁거리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좀 의아하며

“ 어르신 암투병 중이시라던데 건강해 보이시니 다행입니다. 잘 치료받고 계시지요?”

그게 생체 순환이 빠른 젊은이들과는  달리 노인네는 천천이 천천이 진행된다더군, 별다른 치료는 무슨, 설란이가 해 주는 자연 밥상이 약이 되니봐. 설란이 곁에 있어 큰 위안이 되네”.

“ 어르신, 언제 미국에 왔으며 가족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 허어! 나는 월남 파견  근로자로 갔다가 월남 패망 1970 년 중반 쯤   미군 철수를  따라 미국 땅을 밟았어요,

그 때만해도 미국에는 건설 현장이 많았다오. 큰 숲을 밀어내고 타운하우스를 짓고

아파트를 짓고, 또 커다란 상가를 짓느라  일거리가 많았다오. 나는 장가갈 생각을 할 새도 없이 현장을 따라다니며 죽도록 일만 했어요.”

외삼춘은 말할 거리가 생긴 것이 기쁜듯, 물 한 모금을 마신  후 먼 눈을 하고 회상에 잠겨 다시 말을 계속한다.

“ 오십이 다 되어서야    건설현장에서 밥을 해  나르던 멕시코 여인과 인연이 되어 동거를 하게 되었소. 멕시코 여인이 이상하게 우리나라 옛 여인네처럼 정겹던거요. 그런데 내가 박복한건지 삼 년을 못 채우고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소.  그 후 나는 마음을 두지 못해 이리저리 떠돌며 정처없이 살았다오. 아마 설란이 내 곁으로 오지 않았다면 이제까지도 나는 집없는 떠돌이로  행려병자가 되었겠지.”


마침 설란이 외삼촌을 부른다.

“ 식사 준비됐어요, 어서들 오셔서  식사하세요 “

가지런히 차려진 밥상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진다. 여기가 한국의 지리산 골짜기인가.

싱싱한 배추김치, 물이 잘박한 열무김치, 어린 상추 겉절이, 나물무침, 명태조림, 알 수 없는 이파리와 뿌리를 삭힌 장아찌,그리고 버섯과 두부를 넣어 자글자글 끓는 된장 뚝배기, 검은 콩이 다문다문 섞인 하얀 찰밥, 곁들인 소고기 사태와 무를 참기름에 볶아 말갛게 끓인 국,

미국에 와서 이십여 년을 살아 오며 이렇게 맛깔스러운 한국의 집밥을 먹은 적이 있었나?

어느 하나의 음식도 간은 슴슴하고 담백하며 느끼하지 않아  똑 떨어지는 일미이다.

“ 이거 다 설란씨가 만든 음식입니까?”  

설란은 다만 쑥스럽게 웃는다. 대신 외삼촌이 설명한다.

“ 설란은 강원도 양구 심심산천에서 태어나 이런 음식만 해요. 그리고 그로서리도 잘 안 가요. 자연 채취로 밥상을 차리지요. “

“ 자연 채취라니요?, 여기서 이런 식재료가 다  나옵니까?”

설란이 까르륵 웃는다.

“ 외삼촌이 작은 채소밭을 가꾸세요. 우리 밥상에 필요한 걸 손수 심으세요. 그리고 나는   뒤안 나무 숲으로 가서  야생 나물들을 찾아요. 한국산과 좀 틀리지만 그래도 난 그걸로 반찬을 만들려고 연구해요”

“ 여기에서 어떤 야생나물을 뜯습니까?”  나는 진심으로 궁금해서 묻는다.

“ 눈 여겨 자세히 살피면 습습한 응달에 고사리가 지천이고 , 민들레, 담배나믈, 취나믈, 산파, 봄 5,6 월은 성찬이지요 또 가을에는 살진 고들빼기로 겨울 김치를 담그기도 해요. “

정말 소박하지만 맛난 점심을 먹고 외삼촌은 십장생도를 걸어 둘 공간으로 안내한다. 리빙룸 널찍한 방에 고귀하고 값지게 보이는 페르시안 카펫, 묵직하고 검은 가죽 카우치 세트가 자리잡고 대리석으로 된 테이불 세트,

그런데 하얀 벽은 텅 비어 있다.

“ 여기 삼면으로 십장생 연작을 그려 주구려. 나야, 공사판에나 쫒아다니던 놈이 뭐 아는게 있나? 화백님의 안목과 식견에 전적으로 맡기겠소.”

그런데 어르신 요즘은 별로 잊혀져가는 십장생에 애착을 느끼시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나는 강한 흥미를 느끼며 묻는다.

“내 어린 시절에 선친의 사랑채에 가면 십장생 병풍이 있었소 운치있게 뻗어 올라간 낙낙장송, 선학, 기이한 사슴의 무리, 영생불사 천도 복숭, 영지, 영특하게 물을 뿜어내는 거북, 뿐이요?

붉은 해, 폭포수 물, 바위, 구름과 청산, 모든게 신비해 보였소, 그 세상은 아마도 생과 사를 뛰어넘는 신선의 세상이 아닌가, 옥황상제와 구름옷 선녀를 상상하며 하염없이 보았었소.

어느 날 문득 나는 늙고 병든 내 자신을 알았을 때, 내 인생이 너무 좁다랗고 답답하게  느꼈지요. 십장생이 어우러진 선경으로 들어가면 내 본향이 거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거요.

아마 이것이 완성되기 까지 나는 소망과 기대로 사는 보람이 있을 거요”

곁에 와 섰던 설란도 한 마디 거든다.

“ 것 보세요, 우리 외삼촌은 정말 십장생의 세상을 원하고 계시다구요.

이제 바깥 정원공사도 얼추 끝나고 이 벽면을 채울 십장생도만 완성되면 우리 외삼촌 더욱 기를 받으시고  행복한  건강 백세 이루실 거얘요 “

“ 백 살 씩이나 뭐, 원, 난 설란 니나 시집 보내면 죽어도 원없겠다 “

“ 아니, 외삼촌 또 그 소리, 제가 시집가서 아들 딸 낳고 걔들 시집 장가 보낼 때까지 오래오래 사시라니까요”

외섬촌 조카의 유쾌한 농담을 들으며 머쓱한 내게 외삼촌은

“ 나는 이제 좀 피곤하구려, 난 올라가 쉬려니 화백 선생은 설란과 뒷뜰에 나가 차라도 한 잔 하시시요”


“ 무슨 차를 내올까요?  나화백님,”

“ 향그러운 꽃차 ? “ 나는 농담으로 말했는데 설란 반색을 한다.

“ 아, 있어요, 있어요. 민들레 꽃차. “

설란은 안으로 들어가 오래지 않아 팔각 목반에 찻잔과 차주전자를 들고 온다.

찻잔에는 마른 민들레 꽃봉오리가 대여섯 담아있고 설란은 거기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미구에 민들레 노란꽃이 펼쳐지며 아련한 꽃향과 풋풋한 풀내가 풍긴다.

“ 내 생전 처음 마시는 꽃차군요 “ 나는 천천이 조금씩 마셔서 혀 안으로 굴린다.

다시 연상으로 당겨지는 눈 속의 설란 -- 설란의  향.


차를 다 마신  후 설란은 평소 자기가 자주 다니며 야생 나물들을 채취하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는  뒤안 숲으로 인도한다.

“ 외삼촌은 이 숲  삼사백 에이커 쯤을 사셨어요.그냥 숲으로 지키시겠대요. 이 근처에는 인가가 없어요. 우리만의 왕국이요.”

“ 식구도 별로 없으시면서 왜 이렇게 큰 규모의 저택을 지었을까요 “

“ 저도 잘 모르지요. 내가 십여 년 전 외삼촌에게 왔을 때 외삼촌은 허술한 아파트에 사셨어요. 금방이라도 이사하는데 지장 없도록 아주 단촐하게요, 근데 내가 와서 외삼촌에게 식사랑 살림 뒷치닥거리랑 하게 되니까, 외삼촌은 삶의 활기를 찾으셨나 봐요. 그래서 살아갈 거리를 찾으시면서 한평생하시던 건축 기술로 당신의 집을 근사하게 짓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을까요?”

설란은 일껒 설명하다 끝마무리는  말의 톤을 살짝 올려 미확인의  의문형으로 맺는다.

나무는 울창하고 좁다란 산길은 그늘이 깊다. 어디선가 조용히 시냇물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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