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석은 다시 북경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한다. 멀고 먼 , 길고 긴 여행길이다. 중국인들은 빽빽하게 탄 객차 안에서 대개 삶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인다. 그들은 요강을 휴대하고 다닌다.생리적인  감이 오면 깡통 요강에 용변을 보고  철로 변에 쏟아  버린다. 시장할 땐, 가방에 비축했던 굳은 빵이나 말린 생선을 꺼내 맛있게 먹거나  역에 닿아 잠시 서면 벌떼처럼 몰려들는 잡상인들에게서 과일이나 요기거리를 산다. 어떤 때는 지루하도록 길게 정차할 때도 있다. 그 때는 기관사들이 가까운 음식점에 들러 식사를 하느라 그런다고 한다. 그리고 졸리우면 밤 낮을 구분하지 않고  잔다. 아기가 칭얼대면 어미는 허옇고 탐스러운 앞가슴을  풀어 젖을 먹이고 , 옆에 있는 이들은 별관심없이 기차의 흔들림에 따라 졸고 있다

 

요석은 독일어 성경을 읽고 있다.  깊이 묵상하며   심취하여  읽느라 차안의 소란이나 갖가지의 이색적인 풍경도 관심 밖이다.

그런데 갑자기 귓전을 때리는 의외의 울림에 깜짝 놀라 주위를 살핀다.

“다스 하인리히쉬리프트 “ 요석이 읽고 있는 독일어판 성경책 겉표지에 찍혀있는 금색 글자 독일어의 독음이다. 이 소란스럽고 무질서한 중국 오지 서민들의 열차에서 이렇게 똑똑하고 세련된 독일어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 요석은 맞은 편에 앉은 한 노인을 바라 본다.

몸집이 자그마하고 얼굴엔 주름이 가득한 볼품없는 노인이지만 입성이 깨끗하고 단정하며  그의 온 모습에서 깊은 지혜와  경륜이 느껴진다. 그 노인이 요석에게 말한다.

“ 그 책을 한 번 만져봐도 되겠소 ? “

“ 그러십시요 “ 요석은 얼른 성경을  노인에게 건넨다.

“ 이 책을 내가 40 년 만에 만져 보는 거요 “ 하며  성경을 두 손으로 감싸고 쓰다듬는 그 노인은  감회가 아주  깊은 듯 눈을 감고   주름진 눈가에는  물기가 어린다.


왕동싱이라고 이름을 밝힌 그 노인은 기나긴 자신의 인생역전을 말한다.

“  1940 년 대 나는 상하이대학 학생이었소. 아직 공산화되기 이전 중국의 사회상은 극도로 혼란했지요. 국민당 정부와 마우쩌뚱 ( 모택동 )이 이끄는 공산당이 치열한 내전을 벌이고 있고 학생들 사이에서도 공산당 확전 운동이 거세었지요. 나도 자우언라이 ( 주은래 ) 선배님의  심복으로 학생연맹의 주도자가 되어서 연일 집회와 시위, 때로는 반대파와의 폭력 싸움으로 공부는 뒷전이었다오.

그 때 한 독일 교수가 나에게 말했어요. “ 나도 한 때는 공산주의였으나 40 년이 지나서야 그것이 위선 투성이라는 걸 깨닫고 전향했다오. “

“ 그럼 뭐가 제일입니까 ?” 내 물음에 그 교수는 내게 성경책을 줍디다. 바로 이 책과 똑갖은 성경책이었어요. 하며 겉 표지에 있는 금박 글자를 손가락으로 더듬는다.

대충 읽어 보았지만 내겐 먹히지 않았어요. 왼쪽 뺨을 치면 오른쪽 뺨도 내 놓아라,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 도대체 그 때 나로선 납득할 수 없는 말이었어요. ‘ 남의 눈에 티끌은 보면서 네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  따위의 말에는 화도 났어요. 그래서 나는 성경책을 도로 그 교수에게 주었어요. 그리고 나는 말했다오.

“ 우리 젊은이들은  중국이  봉건적 지주제 때문에  불평등한  인민들을 위해서   토지개혁을 단행하고  부르조아들의 사기업들을 국유화하여 모두가 차별 없이 잘 사는 사회주의 개혁을 완수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들이 앞장서서  싸워야 합니다. “

내 말을 듣는 그 교수는 크게 실망하여 눈물까지 글썽이며

“ 여보게 , 지도자가 잘 못된 진리를 따라가고, 그 잘 못된 지도자의 사상을 그대로 쫒아가면 그 민족과 사회는 망하게 되어 있네. “

1949 년, 중국은 결국 국민군을 밀어내고 마오쩌뚱 ( 모택동 ) 지도자 아래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워  공산당 천하 통일을 이루었네. 주은래는 부주석이 되고 나는 그의 보좌관으로 활동했지. 공산주의 이론가로 인정도 받아 1960 년 대에는 교육상으로 출세도 했다네. 그러나 그것도 잠깐, 1966 년 일어난 문화대혁명은 모든 것을 뒤집어 놓았네. 모택동이 견제하던  권력층이 무너지고 한창 뜨기 시작하던 덩사오핑 ( 등소평 )도  당직에서  쫒겨나는 수모를 겪었지. 나도 무사하지 못했지. 벙거지로 얼굴을 씌운 채  채 강제노역으로 끌려 가 8 년이나 죽음과 다를 것 없는 고생을 했다네. 다행히 1974 년 등소평이 다시 복귀하여 재집권하며 나도 강제노역에서 풀려났지.  등소평 휘하로 들어오라는 부름도 받았네. 그러나 나는 옛날 독일 교수의 말이 생각났고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껴 더 이상 나가서 섞이고 싶지 않았네.

지금은 내 고향 마을에서 조용히 살고 있다네. 내 나이 이미 칠십을 바라 보고 있으니.”

긴 이야기를 마친 왕동싱 노인은 잠시 숨을 고르고 눈을 반짝이며 요석에게 묻는다.

“ 이제 내가 내릴 곳이 멀지 않습니다, 바쁘지 않다면 나의 집에 함께 가 주지 않겠습니까 ?”

요석에게는 딱히 갈 곳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바쁜 일도 없다. 따라 가도 안 될 건 없겠다.


왕동싱 노인의 집이 있는 곳은 꽤 큰 마을이다. 800 여 호에 이르는 번다한 곳이다. 마을 사람들은 농사를 짓거나 소나 양을 기르는 목축일로 업을 삼아 살고 있다.

며칠 지난 후 어느 날 아침, 노인이 요석의 방에 들어 와 큰 절을 한다.

“ 아니, 왜 이러십니까 ? “ 요석이 당황하여 얼른 일어나 맞절로 허리를 굽힌다.

“ 저에게 글을 가르쳐 주십시요 “

“ 학문이나 경륜이나 어르신이 나보다 한참 위이신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 “

“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도 함께 글을 가르쳐 주십시요. 제가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

얼마나 반가운 제안인가. 노인의 집 넓은 뒷마당에 천막을 치고 자리를 깔아 임시로 교실을 만든다. 수강자를 모집하니 소문이 어덯게 전해졌는지 남녀노소 지원자가 너무 많다.

“ 우선 젊은 청년들이 배워야 합니다. 15 세 이상 30 세 미만의 젊은이들에게 우선권을 줍시다”

왕노인의 말대로 간추려 선발하니 이백 여 명이 된다. 이들이 낮에는 각자 생업에 종사하고 저녁에 모여 성경을 교과서로 하여 폭 넓은 강의를 듣는다. 한 달, 두 달 , 세 달로 접어들며 이 마을에는 신기한 변화가 일어 난다. 대개 일이 끝난 저녁 시간 술을 마시고 끼리끼리 모여 노름을 하던 젊은이들이 성경을 배우게 되니 술을 덜 하고 노름을 끊고 , 그리고 골초이던 그들이 담배를 멀리 한다. 문화혁명 이래 엉망으로 무너졌던 예의범절이 다시 살아나 웃어른에 공손하고 아이들에게 엄격하고, 서로 존대하는 놀라운  마을 분위기가 된다.

이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지역당위원회에도  보고되었다.

언제나 불평불만이 많아  반발하고 투쟁하던 인민들이 스스로 질서를 지키며 면학에 힘 쓴다 하니 믿어지지 않아 당위원들이 직접 시찰을 나왔다.

입구에  < 진리학사 >라는 간판을 보며 안으로 들어선 그들은 이슥한 밤 수많은 젊은이들이 모여 수업에 집중하는 열띤 모습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한다.

“ 참으로 모범적인 교육관이요.  덕택에 이 마을이 근동에서 가장 모범적인 마을이 되었소 “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표창장을 주고,  학교 허가서 까지 정식으로 내 주었다.

기독교를 절대 허용하지 않아 모임이  발각될  경우, 기물 파괴, 구금도 마다치 않는 서슬 퍼런  당국에서 이렇게도 파격적인 우대를 받는다는  것이 사람의 힘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이다.


이 마을에서 인민재판이 열린다고 한다. 큰 범죄는 관에서 끌어다 조사 하고 재판을 하지만  사소한 사건은 촌장을 위시해서 마을 사람 공동의 재판 형식으로 하는 것이다.

“ 선생님도 참석하셔야지요. “ 촌장인 왕노인이 권한다.

“ 저는 그저 구경이나  하겠습니다 “

“ 아닙니다 선생님도 명예촌장으로 참석하셔야 합니다 어서 가시지요 “

요석은 재촉에 따라 나선다. 명예 촌장은 좀 더 높은 직위라며 촌장의 윗 자리로 모신다.

죄인은 여덟 살 먹은 사내아이, 죄목은 이웃 집 계란 두 개를 훔쳐 먹은 절도죄이다. 촌장은 아이에게 사실 여부를 묻고 아이는 순순히 인정한다. 그럼 형량은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우선 고소인에게 묻는다.

“ 저 놈은 늘상 우리 헛간을 넘겨 봅니다. 앞으로는 얼씬도 못하게 요 번에는 뽄대를 보여야 합니다. 볼기짝을   40 대는 쳐야 하겠습죠. “

“ 이봐요, 저 조그만 엉덩이를 40 대나 치면 물구창이 나서 죽을 것이요, 그래야 되겠소 ? “

한 청년이 고소인을 밉살스럽게 째려보며 이의신청을 한다. 한참이나 아이의 형량으로 옥신각신하다 결국 열 대를 치기로 합의가 된다. 형집행을 하기 전 촌장이 요석에게

“ 선생님 혹시 의견이 있으십니까 ?” 하고 묻는다.

“ 제가 한 말씀 들여도 괜찮겠습니까 ?”  요석은 좌중을 보며 묻는다. 이의다는 이는 없다

“ 고맙습니다. 그럼 먼저 저 아이에게 몇 가지만 물어 보겠습니다. “

“ 얘야 , 아침은 먹었느냐 ? “ 아이는 고개를 옆으로 흔든다.

“ 어제 저녁은 ? “ 또 고개를 흔든다. 이틀을 굶고 너무 배가 고파 옆 집 계란 두 개를 훔쳐 먹은 아이의 눈엔 눈물이 넘치고 흘러 까만 때로 얼룩져 있다.

요석은 좌중 늘어선 사람들을 향해 말한다.

“ 법이라는 것은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게  아니라 사람을 살리려고 있는 것입니다.

저 아이가  이틀을 굶고 계란을 훔쳐 먹었다고 하는데 그 원인을 따져 보면 우리 모두의 책임이 됩니다. 어떤 사회에서 문제가 생기면 먼저 그 사회에 최고 고참이 책임을 지고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합니다. 아이를 굶기고 무심코 넘어간 어른들의 잘못으로 명예촌장인  제가 대표로 벌을 받겠습니다. 저를 때려 주십시요 “


하며 요석이 마당 중앙에 설치해 둔 기다란 의자에 엎드러 졌다. 장내는 순간 조용해지고  눈알만 대굴대굴 굴리며 서로 눈치를 본다. 대신 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 그 긴장 속의  정적을 제일 먼저 깨고  큰 소리로 울며 달려 나오는 이는 아이의 어머니,

“ 제 잘못입니다. 제가 일이 바빠서 아들에게 제대로 밥을 주지 못 했습니다. 제가 맞겠습니다  “

다음으로는 후줄그레 깡 마른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나온다.

“ 제 잘 못이 제일 큽니다 노름에 미쳐서 집 안에 쌀까지 털어다 노름판에 몽땅 잃었습니다.”

다음엔 더욱 놀라운 일이 생겼다. 아까까지도 의기양양하여 아이를 혼내 주자는 고소인이 두 손을 싹싹 빌고 나오는 것이다.

“ 제가 크게 잘 못 생각했어요, 이웃 아이가 굶주리고 있다는 걸 미쳐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잃어버린 계란만 억울하여 이렇게 어른답지 못한 행동을 했구먼요 . 고소 없던 걸로 하세요 “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마을 사람들이 작거나 크거나 간에  그 아이에게 절도죄를 쓰게한 책임이 자신들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숙인다.

이제 촌장이 결론을 내릴 차례이다. 왕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중앙으로 나와서 목청을 높혀 말한다.

“ 선생님의 훌륭하신 혜안으로 우리들의 졸렬하고 어리석은 마음을  크게 깨우쳐 주셨습니다.

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깨달음을 가슴에 간직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 돕고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는 우리 모두 부모 된 심정으로 관심을 갖고 잘 거두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이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식을  방임하여 절도까지 이르게 했다는 데에 대한 벌로 매일 아이에게 계란 한 알 씩  한 달 동안 먹이시요. “ 사람들이 웃으며 좀 웅성대자,

“ 항시 내가 아이에게 가서 확인하겠소. “ 하고 엄격하게 말을 맺는다.


마을 일이 더없이 수월하게 진행되어 알음알음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중에도 요석의 가슴 한 구석에는 무거운 돌을 끌어 안고 있는 양 답답하다.

처음 중국에 오기로 한 목적지가 나환자 촌이고 또 잊을 수 없는 것은 가련한 아리랑 할머니의 기억이다.  그 할머니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도  한 번은 꼭 가야만 한다.


드디어 날을 잡아 요석은 길을 떠났다.

그 곳에 닿으니 먼저 나환자 수용소의  소장이 반가워 한다.

그리고 그 할머니의 소식을  알려 준다. 요석이 오기 열흘 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할머니를 만나 뵐 수 있었을 껄 하는 미안하고 안타까운 요석에게

“ 그런데 참 희안한 일이었습니다. “ 원장이 웃으며 말한다.

“ 선생님과의 만남이 딱 한 번 뿐이었는데도 할머니는 많이 변화되었어요. 이제  병이 깨끗이 나아서 더 이상 자기는 환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항상 행복한 얼굴로 예수 얘기만 했습니다. 매일마다 만나는 친구가 되었다구요. 죽으면서도 자기는 영원한 천국으로 예수님과 함께 살려고 가는 거라나요 ? 죽음에 대한 슬픔이나 공포는 찾아 볼 수 없고 기대에 가득찬 기쁜 얼굴이었어요 “

소장의 말을 들으며  그 할머니가 요석을 통해 예수님을 마음 속에 영접하고 천국으로 갔다는 확신은  적잖은 위안이 된다.

“ 할머니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많은 환자들이 당신을 만나고 싶어해요. 당신을 영험하고 도력 높은 주술사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디다. 들어가 보시겠습니까? “

“ 네 들어가게 해 주십시요. 그들을 꼭 만나고 싶습니다. “

과연 그들이 기거하는 막사에 들어서자 요석이 더 기겁하게 놀라고 말았다.

어둑컴컴한 그 안에서 용케도 요석을 알아 본 사람들이 예수, 예수부르짖으며 그에게 달려 오는게 아닌가. 좀 성한 사람들은 절뚝이며 달려오고, 그 뒤로 기어 오는 사람, 저 뒷 쪽  좀 떨어진 곳에선  배밀이로 굴러 오는 이까지, 오리떼 몰려들 듯 몰려 온다.

요석은 가슴이 벅차 오른다. 두 손을 모은다

‘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들이 구원에 눈 떴습니다. 하늘 나라로 잘 인도하여 주님의 영생을 누릴 때 까지 제 목자로서의 소임을 잘 하도록 지혜와  힘을 주세요. ‘


제일 먼저 요석 앞에 다가온 이가 말한다.

“ 선생님 저도 예수란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요 ? 저도 만나게 해 주세요.”

그 뒤로 수없이 다가온 이들도 ‘예수를 만나게 해 주세요 . 해 주세요 ‘ 간절하게  말한다.

한 사람 씩 부르짖는 소리는 어느 덧 ‘예수, 예수 예수 ‘하는 합창 소리로 어우러 진다.

“ 여러분, 예수님은 밖에서 불러오는 분이 아닙니다. 여러분 마음 속에 계십니다. 마음을 모아 간절하게 그 분을 찾으세요. 그럼 그 분은 당신 곁으로 다가와 친구가 되 주십니다. 그리고 당신들의 아프고 괴로운 마음을 그 분께 얘기하세요. 그게 기도얘요. 기도를 다 하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하세요. 그럼 여러 분이 구하는 것을 찾으실 것입니다. “

요석의 말소리는 어둡고 역겨운 냄새가 가득한 막사 안을 우렁우렁 울린다.

그 소리를 듣는 모든 이들은 그 순간 모든 고통과 시름을 놓은 채 환하고 향기로운 공간에서 눈부신 광채를 우러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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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린 산  6  < 티벳 고승 릅상람파 >



요석이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꾸준히 구독하는 독일의 의학 정보지 ‘ 독일 의학 저널 ‘ 은 언제나 몇 달 지나서야  보게 된다. 계간으로 발행되는  이 책은 배편으로 오느라 한 두 달 느려지고 이 지방 영호우체국 사서함에서 또 몇 주  잠자다 어렵사리 요석이 읍내에 나갈 때에야  찾아 읽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소식이 늦다.

그런데 이번 책에서 급  관심가는 기사를 보았다.

중국에는 철저히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은밀한  나환자 집단촌이 있다는 것이다. 대략 추산한다면 약 삼 만명 가량의  환자들이 사회로 부터, 가족과 친지로 부터 완전 격리되어 의료혜택은 커녕,  먹는 것과 거주하는 곳도  인간 이하, 집승이나 다름  없는  매우 비참한 생활을 한다는 르뽀기사이다.

요석은 이 기사를 본 후  그 내용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 하나님, 내가 그들을 필요로 합니다. 그들을 찾아가 그들과 손 잡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이 몸을 헌신하며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다하고 싶습니다. 길을 인도하소서 ‘

영호교회는 요석이 십 년 가까이 시무하는 동안 많이 성장하고 체계도 잡혀 다른 어떤 목사님이 오셔서 사역을 하더라도 요석의 처음처럼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 나는 내 할 일이 있는 그 곳으로 떠난다.’


1980년대 중반  한국은 아직 중국과 수교하지 않아 정식 비자를 받는 건 불가능했다. 그리고 중국은 당시  등소평의 통치하에서 모택동 주도로 개혁된 공산주의 체제로 지배되고 있었다. 국호도 중화인민공화국, 보통 중공이라고 한다.


마르크스의 입장을 계승한 레닌이 ‘ 종교는 자본가들의 착취에 저항하려는 인민들의 의지를 둔화시키기 위해 제국주의자들이 제공하는 아편이라고 선전하는 말이 진리로 통하는 실정이어서 기독교는 엄격하게 통제당하고 억압당하고 있었다.

그런 현실에서 요석의 중국 선교의 소망은 험난한 가시밭 길이다. 그럼에도 어느 날 요석은

한 벌 옷,내복, 양말 몇 켤레, 성경책과 몇 권의 노트만을 챙겨 단촐하게 여행 길에 올라 우선 홍콩으로 향했다.



 그 곳에는  독일서 함께 공부한 중국 친구가 상해 대학 교수로  있어  그에게 초청장을  부탁하려는 것이다.

얼마 후 그 친구의 초청장으로  샹해에  건너간 요석은 그 친구에게 솔직하게 나환자 촌으로 들어가 선교를 하겠다는 목적을 말했다. 그 친구는 깜짝 놀라며  

“ 우리 중국에 나환자촌은 없네 “  딱 잘라 말한다.

“ 자네가 어찌 아나 ?”

“ 주은래 동지께서 우리 사회주의 복지 국가에서는 그런 병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교시를 발표했기 때문에 무조건 없다고 알고 있네. “

“ 자네 진정 몰라서 하는 얘긴가 ? 혹시 나를 자네 대학교에서 강의나 듣는 풋내기 학생으로 아는겐가 ? 나를 기만하지 말게 “ 요석은 목을 젖혀 껄껄 웃는다.

뭔가를 한참  생각하던 친구는

“ 잠간 !  좋은 생각이 있네 오늘 저녁 북경에서 온 동향  동무가 있어 ,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네. 그는 고위 공무원이거든. 뭔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게야. “

공무출장을 나왔다는 그 친구는 퉁퉁한 몸에 혈색 좋은 얼굴이다.  

요석의 교수친구가 요석을 소개한다.

“ 나와 독일에서 동문수학했지, 수재이고 성격 참한 진실한 사람일세. 지금은 한국에 돌아가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네 “

고위공무원이라는 그 친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요석을 찬찬히 살핀다.

“ 근데 무슨 일로 이 먼 중국까지 왔소 ? 목사님이 팔자 좋게 유람 다니실 처지는 아닐텐데.”

말투는 깐깐하지만 ‘ 푸하하 ‘웃는 얼굴은 호탕하다. 요석이 그의 진의를 파악하려 망서리고 있는 사이, 친구가 먼저 말문을 티어 준다. 둘은 아주 절친한 치구 사이인 듯하다.

“ 사실 이 목사동무는 문둥병 환자들이 수용된 나환자마을을 찾아 왔다네 . 그들을 돕고 싶어 하오. “

공무원 친구는 순간 정색을 하며 자세를 고친다.

“ 여기 문둥병 환자 있는 걸 어떻게 알고 왔습니까?  “ 그리고 좀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그는 당보건부에 소속된 공무원이라고 했다.

“ 그러나 나는 공무상 절대 말해 줄 수 없어요. “ 요석은 일단 그 곳을 알 수 있는 연줄을 잡았다는 생각에 얼마간 마음의  여유를 찾아 그를 보며 유감스럽다는 듯  웃는다.

주문한 요리들이 들어오고 분위기도 한결 부드러워진 후, 느닷없이  그가

“ 이봐요, 목사동무, 목사는 술을 안 한다지요 ?  “ 그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요석을 마주 본다.

“ 글쎄 아직 마셔 본 적은 없소만 “

“ 우리 술 마시기 시합해서  당신이 이긴다면 내가 그 곳을 안내하겠소  “

고위 공무원 실력자라 그런 자신감이 있는건지 참 묘한 타협안을 낸다.

요석은 옛날 바울을 생각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할 수 있다면 날 지옥 보내라고 까지 기도했는데,--- 이 술을 마셔야 저들을 도울 수 있다면 하나님 날 용서하십시요, 마셔야 되겠습니다 아멘. 속으로 기도하며 비장하게 그러자고 했다.

“ 자 그럼 한 잔씩 따르겠습니다. 원샷으로 해야 합니다 “

친구는 둘 사이의 대화를 좋아라 들으며  가장 독한 빽 주를 맥주 잔에 콸콸 따른다.그리고  알콜농도를 시험한다며  술잔에 불을 확 부친다 찰랑거리는 투명 액체 위에 파르스름한 불꽃이 타오르며  꺼지지 않는게 신기하다. 사실 요석은 이런 술자리는  난생 처음이지만  피할 수 없는  모험이다. 그들은 각자 잔을 들어 마신다.

 공무원 친구는 술이라면  어지간히 자신이 있는지  , 느긋하게 두 잔 째. 또 세 잔 째.

요석은 생전 처음 마시는 술인데 ‘ 아, 이게 물 아냐 ? 진짜 술이야 ? 분간할 수 없도록 시원하게 넘어 간다. 마른 논에 물 대듯 온 몸이 기분좋게 이완되고 머리 속은 더욱 명징해 진다.

요석도 거뜬히 세 잔 째를 비운다.

“ 아, 술이 다 떨어졌군요, 더 하시렵니까? “ 요석이 공무원 친구에게 묻는다. 그는 얼굴이 더욱 붉어지고 코 끝도 빨갛다. 뜬듯 감은듯 게슴츠레한 눈이 요석을 야릇하게 바라 본다

“ 그렇게 마시고도 당신 정말 괜찮은 거요 ? 당신 가짜 목사 아니요 ?”

“ 저는 물론 괜찮습니다. 그리고 저는 신학교를 나와 이제껒 목사로 지냈지요”

“ 맞아 맞아, 저 동무 진짜 보수 목사야, 고집 때문에 교수님들 애 좀 먹였지 “

요리를 열심히 먹던 교수친구가 힘찬 소리로 보증을 해 준다.

공무원 친구는 꽤나 호승심이 강한지  계속 네 잔 째를  마시다 결국  무리였는듯 식탁에 엎어 진다. 요석은 네 잔 째를 마져 다 마시고도  잔잔히 앉아 있다.

“ 대단하네 요석동무, 자네는 꼭 뜻을 이룰 것일세. “ 교수 친구는 요석의 어깨를 툭툭 친다.

“ 고맙네 친구, 하나님이 자네에게도 축복을 주실게야.”

다음 날 아침 일찌기 누가 찾아왔다는 연락이 왔다. 로비에 나가 보니 어제의 공무원 친구가 말쑥하게 옷을  차려 입고 요석을 찾아 온 것이다. 그는 진지하고 공손하게 두 손을 가슴께에 모으고  허리  굽혀 절을 한다.

“ 대인님, 편안하게 잘 주무셨습니까? “  요석도 마주 인사하자,

어제는 제가 결례를 많이 했습니다. 약속대로 대인님이 가시고자 하는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하는 것이 아닌가 .


그를 따라 행정구역 라오닝성 까지 따라 왔다.

과연 그는 꽤 높은 공직인듯 사람을 불러 지시를 한다.

다음 날 , 지시받은 이와 함께 몇 시간인가 차를 타고 다다른 곳은 높은 담에  육중한 대문으로  경비가 엄중하다. 대문을 들어서 메마른 황토길을 한참 달리니 < 통제구역 >이라는 경고판이 보이고 굳게 문을 닫은 건물이 보인다. 안내하는 이는 위생복과 마스크를 쓰고 요석에게도 위생복으로 덧 입을 것을 강요한다. 그러나 요석은 어서 그들을 보려는 성급함으로 불쑥 문을 열고 들어선다

세상에나 , 요석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본다. 어둑한 실내에 수많은 팔 다리 없는 사람들이 그냥 딩굴면서 긴 죽통에 얼굴을 쳐박고 핥아먹고 있는것이다. 그들은 팔다리가 없으니 뱀이 기어가듯 배로 기어가며 눈알도 다 빠져  코로 냄새를 맡으며 먹을 걸 찾는다.

요석은 하도 기가 막혀 그 중 한 사람을 끌어안고 앉치려고 하니까 경비병이 와서 요석을 끌어 낸다. 다음으로 가서  본 곳은 그래도 상태가 낫다는 사람들이지만 눈이 없는 사람 팔 다리가 하나씩 없는 사람,  

너무도 참혹한 그 모습에 눈을 돌리던 요석은 어디선가  귀에 익은 아리랑 노래를 듣는다.

이국 땅 이 비참하고 처절한 곳에서 아리랑이라니, 요석은 놀라 소리나는 곳 따라 눈을 돌린다.

두 눈은 장님이고 한 팔, 한 다리가 떨어져 나간 백두난발의 할머니, 그는 목소리만은 낭낭하게 아리랑 노래를 부르고 있다. 요석은 다가가

“ 할머니 한국에서 오셨어요 ?” 하고 묻는다

“ 아니요, 난 조선에서 왔어요.”

“  일제 때 왜놈들 수탈에 못 견뎌 간도로 피난 와 살다가 내 나이 열 네 살에 문둥병에 걸려 이 곳으로 왔다오 그게 사십 년이나 됐어요 ”

할머니의 기억과 말소리는 외모와 달리 정확하고 똑똑하다.

부모님은 어디 계시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그 할머니 어린애가 되어

“ 우리 엄마, 우리 엄마 ! 엄마 찾아 줘요 “ 하고 울부짖는다. 엄마를 부르는 그 목소리는 그녀가 열 네 살 때 내던 아이의 목소리로 바뀌어  얼마나 애처럽고 구슬픈지 요석은 위로할 말이 없어서 다만 그 할머니의 손가락  잘라진 손을 잡는다.  그런데 갑자기 요석의 손등이 불에 데인듯 뜨겁다. 그 할머니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 , 사람의 눈물이 이렇게도 뜨거울 수 있다니. 요석도 그만 눈물이 흘러 그 할머니를 감싸고 함께 울고 말았다. 엉엉울던 할머니가 갑짜기 묻는다.

“선생님은 뭐 하시는 분이요 ?”

“ 아, 나는 예수 말씀 전하는 사람입니다”

“ 예수가 뭡니까? “

“ 예수님은 우리가 병 들지 않고 죽지 않게 하시는 분입니다.” 할머니는 가만히 있더니

“ 선생님 나같은 병신도 그런 분 알 수 있을까요 ?”

“ 아 물론이지요 “

“ 어떻게요 ?”

여기는 교회도 없고 인도할 만한 교역자도 없다.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 할머니, 마음 속으로 하고 싶은 말 다 하세요, 그리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하시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대답하십니다. "

그리고 거기서 돌아나오려는데

“ 선생님 또 오시지요 ? “ 하고 묻는다.

사실 요석은 이 곳의 너무도 더럽고 비참한  모습에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셔 버렸다.그러나

“ 예 언제 기회가 되면 또 오겠습니다 “ 하고 문을 나섰다.




요석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괴상한 스님 친구가 있다. 요석이 영호 교회에 처음 부임하여 옹색하게 살고 있을 때, 느닷없이 찾아와 인사를하며 친구 삼기를 청한 사람이다.

체구가 장대하고 눈이 퉁방울처럼 툭 불거져 디룩디룩하는 양이 절간에서 조용히 수행하는 스님이 아니라 유리걸식하며 시비나 붙는  왈짜패 같은 인상이다. 요석이 방문 밖 인기척에 문을 여니  다짜고짜 떡하니 들어 와 좁은 방이 그득하도록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그리고  도무지 갈 생각은 안 하고 횡성수설 도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

‘ 이 양반이 나를 개종시키려 온 것인가 ?’ 하는 의심마져 들게 혼자서 주절댄다.

“ 색, 색계라는 말이요, 색즉시공이란 말도 있지 않소 ?  그 세상이 참으로 깊고 오묘하더란 말이요. 허 허 “ 하며 그는 요석을 흘긋 바라 본다.

요석은 이상하게 틀어지는 말길을 돌리기 위해 흐르는 물처럼 제법 가락을 넣어서  말한다.

“ <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반야심경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해석하자면 ‘ 사리자여 , 물질이 빈 것과 다르지 않고 빈것이 물질과 다르지 아니하며 물질이 곧 비었고 빈것이 곧 물질이니 감각과 생각과 행함과 의식도 모두 이와 같다 ‘ 라는 뜻이지요 “ 그는 후다닥 놀란다.

“ 당신도 불경을 배웠소 ? “

“ 신학에서는 세계의 모든 종교에 대하여 두루 알아 둡니다. 제가 불교에 관심도 있었고요 “

땡중은 아직 일어설 생각을 안 한다. 해가 비스듬히 기울어 저녁상 들어 올 때가 다 되 어서 가 주었으면 하고 생각했으나 그여이 밥상이 들어 올 때까지 버티고 있다.  밥상에는 여전히 밥 한 그릇, 김치, 나물 한 접시와  물 한 그릇이  있다.

“ 스님 소찬이지만 같이 드실까요 ? “ 인사차 묻는데 그는 얼씨구 반기며 상 앞으로 다가든다. 하는 수 없이 밥을 반으로 딱 갈라 반은 주발 뚜껑에 담아 자신 앞에 놓고   밥그릇은  그 앞으로 밀어 논다. 그는  밥상을 둘레둘레 보며 “ 어찌 남의 살 한 점도 없누 ? “ 묻는다

“ 스님이 고기도 먹습니까 ?” 요석이 묻자

“ 득도성불한 사람은 온갖 세속의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존재라오 , 난 없어서 못 먹어요 으 하 하  곡주도 있다면 두주불사하지요.”

그러나 그는 떠나기 전 정색하고 옷깃을 바로 잡은 후 , 요석에게 큰 절을 한다.

“ 소승의 이름은 겸허라 하오. 오늘의 허풍과 치졸함을 용서하소서.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며 자주 찾아 뵙겠습니다 “ 두 손 합장하고 다시 한 번 머리를 숙인다.

과연 그 후로 가끔 찾아와 격의없는 대화로 둘은 스스럼이 없다.

언젠가 그는 말했다.

“내가 소싯적  인도와 티벳에 갔었소. 내깐에 여래불님께 더 가까이 가서 그 가르침을 배우고자 소망했지요 , 그 때 난 한 현자를 티벳에서 만났어요.  이름이 릅상람파라 하오. “

요석이 중국으로 떠난다고 하니 그는 릅살람파의 주소와 서찰을 하나 써 주며 꼭  찾아 가  자기 안부도 전해 달라고 했다.



중국 나환자 집단 거주지를 찾아 보기는 했지만  너무 비참하고 열악한 환경에 크게 실망하여 되돌아 나온 요석은 마침 겸허스님이 일러 준 티벳 고승 릅상 람파를 생각하고 그를   찾기로 했다.

중국 서북 쪽 티벳 자치 지구로 들어서니 푸른 초원이 펼쳐지고 양이나 라마 떼가 구름처럼 널 려 있다. 그러나 차츰 붉은 황토흙과 바위들이  많이 드러나는 산악지대로 들어선다. 1960 년 대 쯤의 낡은 버스는 허름한 주민들을 빽빽이 태우고 좁다란 산길을 익숙하게 달린다.

요석이 쥐고 있는 주소는 별로 효과가 없다. 스님의 이름 릅상람파라는 스님을 찾으니 수월하게 길이 열린다. 깍아지른 절벽에 까치집 같이 붙어있는 고찰, 그러나 막상 들어가 보니 이천 년 세월의 유래가 과장이 아닌듯 건물이 깊고도 융숭하다. 절벽을 의지해 지은 기다란 건물에는 화랑을 통한 수많은 방과 넓은 강론방. 거기에는 어린 학승들이 주홍색 가사를 걸치고 열심히 불경을 외우거나 베끼고 있다.

요석은 겸허스님의  서찰을 상좌에게 보내 한 번 만나 뵙기를 청했다. 이틀 지난 다음에야 주지 스님 릅살 람파의 부름이 있었다.  릅상람파도 조그마한 간소한 방에 거처하고 있다. 몸도 가냘퍼 어린 소년만 하고 감은듯 뜬 눈은 흰 눈섭 밑에 매섭게 빛을 발한다. 우선 둘은 아무 수인사도 없이 서로 마주 바라보고만 있다. 한 시간 쯤 지나자 비로소 릅상람파 주지스님이 입을 연다.

“ 당신의 영과 나의 영은 다른데 왜 이 먼 곳 까지아무 대화가 없엇  나를 찾아 왔소 ?” 요석은 서슴치 않고 대답한다.

“ 예 저도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마는 당신의 영과 나의 영이 무엇이  옳은  영인지  알고 싶어 찾아 왔습니다.”

“ 아, 그러오 ? “ 잠시 지난 뒤 주지 스님이 말한다. “ 그렇다면 며칠 후 다시 만납시다 “

열흘 쯤 후 그는 다시 요석을 불렀다. 그는 뭔가 혼자 주문을 외우며 요석에게는 아무 말이 없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러 갔다. 거의 다섯 시간 쯤 흐른 후 주지 스님은 종이와 붓 먹물이 담긴 벼루를 앞에 내 주며 둘이 함께 나눈 얘기를 써 보라 한다. 대화 없던 다섯 시간의 대화 내용이라 ?요석은 갸웃 생각하다 한 글자를 써서 그에게 주었다. 그 종이를 물끄럼히 보던 릅살람파 주지 스님은

“ 당신 얘기가 듣고 싶소  얘기하시요 “ 한다.

요석은 준비해 간 성경을 꺼내어 창세기 부터 하나님의 역사를 얘기한다. 당대 최고의 고승 앞에서 성경을 설파하다니, 놀랄만한 상황에서도 요석은 무슨 뱃짱인지 조금도 망설임이나 당황함 없이 차분하다. 한참 얘기를 하던 중 , 릅상람파 스님이 손을 들어 요석의 말을 막는다.

“ 그 성경을 좀 보여 줄 수 없는가 ?”

요석은 성경을 그에게 맡기고 주지스님의 방을 물러 나온다.  그리고 다시 부름이 있기를 기다린다.그러나 릅상람파는 두문불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요석이 묶고 있는 객사에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스므 살 남짓 , 체격이 건장하고 얼굴도 수려하다. 그러나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지 늘 옷을 벗고 장발 머리를 풀어헤친 채, 경내를 휘돌아 다닌다. 사람들을 보면 욕을 하고 흙이나 오물을 던지며 사납게 구는 바람에 모든 이들이 이를 피한다. 하루는 요석이 절 뒷 편 언덕길을 산책하고 있는데 그 청년이 뒤에서 슬금슬금 따라 온다. 역시나 벌거벗은 몸에 신도 신지 않은 맨발로.

“ 여보게 청년 , 자네 나와 함께 걷고 싶다면 가서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나를 따르게 “

과연 다음 날 그 청년은 옷을 단정히 입고 신도 신고 요석을 따르는게 아닌가 ? 그 뿐 아니라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나와 보니 방 문 앞에 세수물을  떠다 놓고 요석의 흙 묻은 신도 깨끗이 닦아 마루 아래 두었다. 절 안 모든 스님들이 놀라며 요석에게 말한다.

“ 선생님의 영이 저 젊은이의 영을 바로 살린 모양입니다. 함께 기거하신다면 더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 “ 요석은 그들의 부탁대로 그 청년을 자기 방에 함께 지내게 했다.  

한 삼주 지나니 청년은 아주 멀쩡하게 제 정신이 돌아와 제법 책을 들고 글을 읽는다. 요석은 그에게 저녁마다 성경을 가르쳤다.

“ 자네는 지혜롭고 마음도 선하구먼. 이제 집으로 돌아가 자네의 길을 찾아 가게" 요석은 그에게 부드럽게 권한다.

“ 선생님, 지금 떠나기는 서운합니다. 열흘만 더 있게 해 주십시요 “

열흘 후 절을 떠나며 청년은 간곡하게 말한다.

“ 선생님 돌아가시는 길에 우리 집에 꼭  들러 주십시요, 선생님의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

“ 은혜랄 것 까지야, 허나 지나는 길이 있으면 들러 보겠네 “


두 달이 지난 후 릅상람파 주지스님이 요석을 찾는다. 요석을 보자스님은

“ 이렇게 바른 진리를 왜 이제야 가져왔소 ? 이천 년 넘은 진리를 이제야 알게 되었구려  “ 하며 길게 탄식한다. 요석은 그의 놀라운 말을 들으며 어떤 지혜로운 말로 대답을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 하루가 천 년이요, 천 년이 하루로다 “ 하고 댓구로 화답한다.

스님은 무릎을 탁 치곤  주름진 얼굴에 눈이 푹 파묻치도록 웃으며

“ 바로 그거요 ,” 하며 새삼 두 손을 합장하고  고개를 숙인다.

“ 내 너무 기뻐 당신에게 선물을 하나 하리다 “ 하고 오래 된 상자를 내 놓는다. 뚜껑을 여니 새까맣게 때에 절은 뼈피리가 나온다.

“ 이건 내 스승의 다리뼈로 만든 귀한 피리요, 내가 열 살 때 출가하여 스승님이 입적하실 때까지 모셨어요. 돌아가시며 이 귀한 것을 내게 주셨다오 “

티벳은 그 때에도  전통 장례의식으로 조장을 했다. 사람이 죽으면 높은 산 위로 시체를 모셔가서 옷을 다 벗기고 뼈에서 살을 알뜰하게 발라내  공처럼 뭉쳐서 이 뼈피리를 불며 하늘로 던진다. 피리 소리에   근처에 독수리들이 몰려와   사람의 살을 먹는다. 사람 육신 중 가장 튼실한 다리뼈만 남긴 채 모든걸 잘게 쪼아 독수리에게 먹이로 던진다. 무에서 온 인생 남겨지는  육신마져 자비로운 보시하여 철저한 무로 돌아간다,  다만 남겨둔 다리뼈는 가까운 제자나 친인척에게 선물로 전한다는  것이다.거기에 구멍을 뚫고 피리를 만들어 간직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가장 자랑스럽고 소중한 보물이라는 것이다.



요석은 자신의 전도에 너무 감사하고 흡족한 마음으로 산을 내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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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린 산  5  <  친구 클라우드 >



K 목사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 번 만나자는 것이다. 그도 물론 세미나에 참석하여 그 소란을 지켜보았고 또 앞장서서 장내를 진정시킨 경륜이 깊은 원로목사님이었다.

“ 교수님은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 “

K 목사는 요석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요석은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 분은 다시 말했다.

“ 당신은 이론적이나 학문적으로는 훌륭한데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없습니다. 이론하고 체험은 다르니까 교수직에 머물러만 있지말고  한 번 체험을 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뭐  어떻게 체험을 해야 하나요 ?”  요석이 곤혹스럽게 더듬대며 묻자 그는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듯 .

“ 남부지방에 제가 아는 작은 교회가 하나  있는데  지금 그 교회에 목사님이 안 계십니다 “

하며 그 교회의 주소를 건네 주었다.

사실 요석이 오랜 세월 연구하고 공부해서 얻은 안정된 교수직을 내놓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결단이다. 그러나 요석 자신도 오랜 동안 맘 속에 갈증으로 남아 있는 하나님과의 < 만남의 확신 >,  마치 사람을 직접 만나 악수하듯이 그렇게 만나고 싶었다.


어느 토요일 요석은 호남 방면으로 가는 직행버스를 탔다. 도로사정이 안 좋아 장시간 털털거리며 전라도 영암군에 도착한 것은 저녁 늦은 시간.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영호마을에 도착한 건 이미 밤 늦은 시간이었고 몇 명 마중나온 신자들의 얼굴은 희미한 불빛으로 자세히 볼 수도 없어  수인사만  하고  숙소에 들었다.

그런데 방 안을 둘러보던 요석은 질색하지 않을 수 없다. 바람이 술술 드나들 것 같은 흙벽에 묵은 도배지는 얼룩과  습기로 젖어있고  심지어는 조그만 벌레들이 기어다니기도 한다. 가구는 커녕 당장 덮고 잘 이부자리도 없는 썰렁하기 이를데 없는 이런 곳에서 살라고 ?

그러나 요석은 하루종일 길 위에서 시달린 몸이 고단한지라  착잡한 마음을 품은 채 입은 옷 그대로 누워 잠 들어 버린다.


다음 날 첫 주일예배 시간이다. 주로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앞으로 부터 대부분이고 뒤 끝 쪽으로 중장년층 몇 명, 모두 한 오십여 명 모였다.

요석은 설교단에 올라 막 입을 떼려는 순간 놀라움으로 숨을 들여 마시곤 목소리가 안 나온다.

강댓상 비로 아래에 나이를 가늠키 어려운 한 사람이 얼굴을 번쩍 쳐들고 그를 보는데 그 얼굴이 그냥 구멍 다섯 개 뿐이다.  자세히 보니 다른 이들도 얼굴이 씰그러지고 뭔가가 많이 부족하고 흉한 모습.

요석은 가까스로 당황한 마음을 추스리 며 대충 대충 설교를 마쳤다. 설교를 하면서도 계속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은 빨리  이 곳을 벗어나 서울로  돌아가겠다는  조급함 뿐이다. 예배를 끝내고 어서 신도들이 돌아가기를 바라며 일부러 느릿느릿 꿈지럭대다 교회 문을 나서려니, 아앗 ! 신도들이 문 밖에 줄을 서서 목사님이 빨리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게 아닌가 ? 아아, 정말 이들과 악수를 해야 하나 ?  맨 앞에 서 계시던 할머니가 손을 내민다. 세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에는 노랗게 화농된 물큰하게 느러진 살갗, 아, 정말 이 손을 잡아야 하나 ? 둘 만 남은 손가락을 잡나, 아니면 손 등에 내 손을 얹어야 하나, 정말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들의 손을 꽉 잡았나 ? 아님 살짜기 얹었던가 , 눈을 꼭 감고 얼른얼른 지나가서 기억도 없다. 근데 아니, 이 할머니는  아까 앞에서 악수했던  분 아닌가 ? 근데 이 할머니 다시 뒤 쪽 줄에서 차례를 기다려  내 손을 꼭 잡자  놓지를 않는다. 아예 요석의 손등을 두 손으로 찬찬히 쓰다듬고 있다.

“ 할머님, 어디가 불편하세요 ?” 요석은 난처하고 곤란해서  묻는다

“ 아니, 아니, 호호호  “ 할머니, 너무 밝고 천진하게 웃는다.어린 소녀의 해맑은 웃음처럼.



“ 내가 열여덟 살 때, 집 떠난 후로 성한 사람 손을 한 번도 잡아보지 못해서   젊은 목사님 손은 어떤가  만져 보는거요 “

눈거플도 얼마 안 남아 튀어나온 눈알, 뭉그러져 코구멍이 드러난 코, 입술도 일부분 문드러져 흉한 얼굴, 그러나  이 할머니는 다만 장난스럽고 행복하게 웃는다.

“ 할머니 , 할머니는 인생이 고통스럽고 힘들지 않으세요 ?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세요 ?”

“ 아이구 목사님, 하나님이 원망스럽기는 , 절대 아니우. 오히려 감사하고 있다우. “ 하며 그 할머니는 아직 귀가하지 않고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는 다른 노인들을 둘러 본다.

“ 그럼요, 그렇구 말구, “ 모두들 끄덕 끄덕하는 동감의 목소리들.

“ 우리가 이 병 들어 여기 안 왔으면 생전 하나님 만나지 못하고 세상 죄만 잔뜩 짊어졌을텐데 이 병 덕분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  죽어서도 영생 축복 받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우 ?

“ 맞아요, 맞아요. 우린 늘 감사하며 산다우  “

“ 저이는 멀쩡한 형제들도 여럿인데  자기 아버지도 모셔와서  함께 산다우, “ 한 할머니가 아까 보고 충격 받았던 다섯 구멍 얼굴을 보며 말한다.그러자 풍채좋은 한 노인이 썩 나서며

“ 저 아이는 그 잘 생긴 인물이  몹쓸 병에 걸려  저 지경이 됐지만 마음만은 제일 착하고 똑똑했다오 문둥병이라고 집에서 쫒아냈었는데 내가 늙고 외돌토리가 되니  나를 찾아 같이 살자 하고  하나님 잘 믿어 이 어리석은 애비까정도 교회로 인도해 주었다오 “

요석은 신도들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들으며 차츰 자신의 경박하고 조급스런  생각이 심히 부끄러웠다. 그들의  병으로 인해 일그러지고 노동으로 햇빛에  까맣게 그을러 쭈그러진  용모가 예수님이 가까이 사랑했던 그의 백성들이 아닐까. ‘ 병들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라, 그들에게 하는 선행이 곧 내를 대접하는 것이라. 고로  천국에서 큰 상이 있을것이다.’

요석은 비로소 자신이 신과 만나 손을 잡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큰 깨달음을 받은 날 밤 , 요석은 튀빙겐 대학  은사이던 위르겐 볼트만 교수에게 기나긴 편지를 썼다.

< 저는 비로소 신을 만났습니다. 신을 만나 두 손을 잡았습니다.

이제 제가 있을 자리와 할 일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저는 지금 신께  감사하고 신 안에 있어 행복합니다. >


그러나 요석이 머문  나환자 정착촌 영호교회에서의 생활은 지극히 가난하고 궁색했다. 교인들이 모아주는 성미쌀로 가능한  만큼  하루 두 끼, 김치나 나물 등으로  빈약한 식사를 하니, 몸은 날로 여위어 간다. 그러나  여위어 가는 만큼 내적으로는 충만한 주님의 은총을 느낀다. 결코 실망하지 않고 계속 기도로 신과 교류하는  내면은 더욱 풍요롭고 강인함으로 채워진다.


그런 중 갑자기 위르겐 교수가 요석을 찾아 왔다. 일본에 학술회의 차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에 잠간 들른 거라 했다. ‘ 과연 하나님과 손 잡고 산다는 요석의 생활이 궁금하던 까닭이다. 위르만 교수는 요석의 상상 이상으로 가난하고 궁색한 생활에 놀란다.

다음 날 새벽, 이왕 오신 길에 새벽 예배 설교 좀 해 주십사는 부탁에 그는 새벽 예배 강단에 섰다. 그도  역시 요석의 첫날처럼 강한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한 군데도 성한 곳이 없는 나환자들의  신앙과 열정,  놀랍도록  뜨거운 예배 분위기,  행복한 모습,  위르겐 교수는 바쁜 일정으로 당일  ,  떠나며 문득  요석의 등 뒤에서 허리를 잡고 힘차게 안는다.

“ 당신은  내 제자이지만 나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

은사의 감동에 찬 이 말에 요석은 세상 어느 칭찬  보다도 더욱 뿌듯한 보람을 느끼며 감사한다.


얼마 후 독일 유학 초 때에  한 방 룸메이트였던 클라우드의 편지를 받는다. 그는 동기 중에서도 학업 성적도 좋고   언변 , 사회적 인간 관계, 어느 하나 빠지지 않던 뛰어난 인재였다.

‘ 난 졸업 후 가장 크고 잘 나간다는  유명한  교회에 목사로 있었네. 신도 수가 무려 5천 명 정도였지. 그러나 내가 부임한 지 삼 년 째,  날로 신도 수가 줄어져 이젠 겨우 3백 명 정도로 줄어 버렸네. 난 내 자신에 대한 실망과  회의에 빠져, 뭔가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네. 그래서  교수 자리는 어떨가 하고 모교를 찾았지. 거기서 전설처럼 떠도는 자네에 대한 얘기를 들었네. 자네는 하나님의 손을 잡고 목회를 이끈다는 교수님 말씀을 듣고 난 놀라고 믿을 수가 없었네. 그래서 부탁인데  나를 자네 교회에 부목사로 초청해 주지 않겠나 ? 자네 곁에서 함께 살며 배우고 싶네. 허락해 주게. ‘


요석은 그에 대한 답장을 썼다.

“ 여기는 매우 가난하고 외진 곳이라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은 언제나 가득하여 부족함이 없지. 대우로는 수입을 나와 똑같이 나누도록  하지.  거처할 집이나 먹거리도 매우 소박하고 단촐하다네. 그래도 좋다면 와서 함께 지내 보세.”

그는 자신의 몸무게가 150 KG이나 되니  다이어트를 위해서라도 꼭 와야겠다고 했다.




얼마 후 과연 그는 이 외지고 궁벽한 영호마을을 찾아 왔다. 파란 눈과 바랜 밀짚 같은 노란 고수머리, 자주색 쓰리피스 수트로 멋을 낸 거구의 외국인이 이 마을에 나타나니 온 마을 사람들이 잔뜩 호기심과 신기함으로   모여든다. 아이들은 노골적으로 가까이 다가가 양복을 슬쩍 만져 보기도 하고 얼굴을 빤히 올려다 본다.

“ 어서 오게 친구, “ 요석은 반가이 마주 얼싸안고 그의 트렁크를 들어 준다

“ 아니, 웬 짐이 이렇게 많은거야 ?” 대절택시에서 내린 트렁크가 대여섯 개는 된다.

“ 나는 넥타이를 매면 그에 맞추어 양복과 구두 까지도 매치시켜야 하거든 “ 그는 유쾌하게 웃으며 짐을 들고 목사관으로 들어선다.

“ 오 마이, 요렇게 좁은 방에서 어떻게 살지 ? 침대도 없고, 옷장도 없고, 오 지저스, 화장실, 목욕탕은 어디야 ?”

“ 그러니까 여긴 많은 짐이 필요없어. 구두 한 켤레와 양복 한 벌이면 그걸로 족해, 베스룸과 화장실은 바깥에 별도로 있지. “ 요석은 낙천적으로 웃으며 우물과, 별채로 떨어진 허름한 변소를 가리킨다. 클라우드는 쩝! 하고 난처한 듯 눈섭을 꿈틀대다 요석에게 다가와 작은 소리로 묻는다.

“ 근데 이 마을 사람들 왜 모두 음 -- 말하자면 왜 --- 병신들이지 ?” 하고 묻는다.

“ 이 사람아, 독일 속담에 ‘ 병신 눈엔 병신만 보이고 천사 눈엔 천사만 보인다’ 는 말 못 들어 봤어 하 하 “ 클라우드는 자기가 천사가 되기로 맘을 먹은 양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저녁상은 여느 때와 같이 밥 한 그릇과 김치, 그리고 물 한사발이다. 클라우드는 김치는 못 먹겠다고 사양하고 밥만 먹는다.

“ 그럼 왔으니 다음 주일엔 부목사인 자네가 설교를 해 보게.” 그러나 크라우드는

“ 우선 자네 설교부터 들으며 적응하겠네 “ 하며 사양한다.

“ 좋아, 그럼 우리 성경공부를 하세  “

클라우드가 가져온 성경은 히브리, 헬라 , 라틴어로 된 세 가지 성경이었다. 그리고 라틴성경을 펼치며 비판부터 한다.

“ 이보게 이건 번역이 잘 못된거 아닌가 ? 헬라어로는 이거 문법이 말이 안 되잖아 ? “

하며 온통 성경 글귀의 타박만 한다. 참다 못해 요석이 묻는다.

“ 여보게 , 그럼 자네는 교회에서 신자들에게 무엇을 설교했나 ? “ 그는 싱긋 웃으며

“ 나는 성경 그대로만 말하니까 믿고 안 믿고는 당신들이 알아서 하시요 , 했다네.”

며칠이 지나자 클라우드는 이 소박하다 못해 너무 열악한 식사에 심각한 허기를 느낀다.

“ 여보게 김목사, 배고파 죽겠어 뭐 좀 먹을 거 없나 ?”

“ 그래 ? 새벽 두 시에 일어나 함께 기도해 보세 , 아마 큰 은혜의 빵이 있을게야. “

클라우드는 좋아라 하고 과연 새벽 두 시도 되기 전  일어나 기다리고 있다. 요석과 그는 함께 기도하고 밖으로 나온다. 하늘에는 여느 때 보다 더욱 별들이 총총하고 대기는 서늘하고 달콤하다.

“ 어디에  빵이 있는가 친구 “  클라우드는 재촉한다.

“ 이 세상이 전부 축복받은 빵이라네. 자네도 입을 크게 벌려 이 빵을 마음껒 먹게”

둘이는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깊게 들여 마신다. 그러나 역시 허기진 클라우드,

“ 자넨 이 공기만 마시고 정말 배가 부른건가 ?” 묻는다.

몇 달 후 어느날 , 주님의 축복인지 넉넉한 성미가 들어왔다. 클라우드가 더욱 기뻐한다.

“ 우리 오랜만에 이 쌀로 밥을 많이 해서 싫컷 먹어 보세. “ 요석은 망서린다. 갑자기 과식하면 좋지 않은데 , 하며 경계하였으나 클라우드는 일단 그 쌀로 몽땅 밥을 한다.

갓 지은 말랑말랑한 밥에 김치를 잔뜩 넣고 - 이 때는 이미 클라우드도 김치니 뭐니 가리지 않게 되었다. - 썩썩 비벼 양껒 먹는다.

그 동안 절식으로 쪼그라든 위장이 갑자기 소나기 밥으로 그득 차 버리니 탈이 날 밖에. 클라우드는 밤새 화장실을 들락이며 고생한다.

새벽 예배를 보려고 요석이 문 밖을 나서는데 클라우드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요석은  잘 못 들은게 아닐까 하며 다시금 귀를 기울이는데 변소에서 들리는 클라우드의 비명,

급히 변소로 달려가 보니 ‘ 아, 가엾은 클라우드, 그가 재래식 변소 발디딤으로 가로지른 널판지에 겨우 팔을 걸치고 아래는 목까지 온통 똥통에 빠져 옴쪽달쏙 못 하고 있는게 아닌가. 그 육중한 몸무게에 견디지 못한 널판지가 부러져 그는 아래 통 속으로 빠져버린 것이다. 요석은 예배에 나가는 길이므로 그를 몸소 건질 수는 없고 우선 긴 장대를 그에게 주며 짚고 올라오라고 했다. 그는 꽁꽁 힘을 쓰며 겨우 올라왔지만 몸은 온통 똥물로 젖어있고 그 안에 있던 구더기들 까지도 ‘ 삼촌 ‘ 하듯이 스멀스멀 그에게 달라 붙었다. 그를 우물가로 데려가 물로 털어내고 닦아냈지만 워낙 털이 많은 그의 몸에 묻은 똥찌꺼기는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요석은 먼저 예배당으로 가서 새벽 예배를 인도하고 있던  중 그가  옷을 갈아 입고 천연덕스럽게  안으로 들어선다. 그러나 그와 함께 몰고 온 고약한 냄새, 비록 팔 다리, 얼굴 등이  신통치 않은 나환자들 까지 얼굴을 찌프리고 고개를 흔든다. 예배 후 요석이 물었다.

“ 클라우드 자네 냄새가 어찌 이리 고약한가 ? “

“ 그렇게 지독했나 ? 향수를 좀 뿌렸는데 “

똥 냄새와 향수, 두 조합은  너무 상극으로 더욱 고약하게 상충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 이 봐, 이 교회 안에서 너 보다 더 고약한 냄새를 피우는 사람이 어디 있나 ? 바로 자네가 제일 더러운 냄새를 피우는  병신이 아닌가 ? “ 요석은 웃으며 말한다.그는 다만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다음 날  한 밤중에 이 친구가 진지하게  요석에게 말한다.

“ 내게 성령의 불이 임하시나 보네. 내 몸이 뜨거워지고 있어  “  요석이 그의 이마를 짚어보니 과연 온 몸이 뜨거운 열기로 예사롭지 않고 옷을 벗겨 맨 몸을 보니 살갗에 뻘긋뻘긋 열꽃이 솟아  있다.. 요석이 알기로는 온 몸이 똥물에 잠겨있는 동안 똥독이 올라 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친구는 요석에게 이마를 짚고 안수 기도를 해 달라고 한다.

평소 교회에서 아이들이 아프다면 알사탕을 하나 입에 물리고 이마를 짚어 기도해 주는 요석의 모습을 보았던 거다. 그럴 때면  이 친구는 병이 들었으면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가야지 무슨 미신적인 태도냐 하며 비방하던 친구였다.

“ 이 사람아, 자네의 병은 자네 스스로의 믿음으로 고치는 것일세, 예수님께서도 ‘ 네 믿음이 너를 구했으니,’하지 않는가 ? “ 클라우드는 또 다시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고생하는 중에 병은 나앗고 이 친구의 태도도 많이 바뀌고 있었다.”  아, 나도 어느 정도 성경 말씀에 믿음이 가네. 하나님도 계시고  예수님도  됐고, -----  

그런데  성령님은 ?  성령의 불꽃이라니 이해가 안 되네 “  하며 썩 납득이 안 되는듯 고개를 가로 흔든다.


어느 날 둘이는 산책을 나간다. 옆으로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올라갈수록 나무가 울창한 아름다운 숲이다. 제법 명소로 알려져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 요석과 클라우드는 운동삼아 산 위 정상까지 오른다. 요석은 비쩍 마른 몸에 강단이 있어 날렵하게 걷지만 클라우드는 중턱부터 헉헉대며 걸음이 느려진다. 걷기가 힘들고 지루하던 참에 갓길에 세워진 오토바이가 눈에 띈다. 일제 야마하 신형으로 산길도 달릴 수 있도록 제작된 육중하고 터프한, 유선형 몸체가 번쩍인다. 스피드광 클라우드가 무심코  지나칠 수 없다. 오트바이 주인을 찾아 언제, 어디서 , 가격은 얼마나 , 성능은 만족한가 하며 꼼꼼이 묻는다. 그리고 침을 꿀꺽 삼키며

“ 한 번 태워 줄  수 없겠나 ?” 하고 묻는다. 젊잖고 기품있어 보이는 이국의 신사에게 오트바이 주인은 쾌히 승낙한다.


‘ 친구, 난 모터사이클 타고  먼저 갈테니 천천히 오게나 “ 클라우드는 신이 나서 목소리가 한 톤 높아지고 눈은 활기로 반짝인다.

“ 이보게, ‘ 정든 님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 ‘는 우리나라 민요가 있네

나와 같이 천천히 걸어 가세나 “

한 시간 쯤 후 , 산 밑 평지로 내려오니 벌써 와 있어야 할 클라우드가 보이지 않는다.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는데 교회에서 낯익은  한 아이가 달려와선

“ 목사님 큰 일 났어요. 코쟁이 목사님이 개울에 빠졌어요 “

아이를 따라 계곡의 다리께로 가 보니 오트바이는 다리 난간에 기대어 있고 오트바이 주인은 이마에 약간 상처가 나서 피가 나 있다. 그런데 클라우드는 안 보인다. 어디에 있지? 그는 오트바이가 살짝 커브를 도는바람에  잘 잡지 않은 몸이  균형을 잃고  날라가 개울물에 빠진 것이다.   요석은 사람들과 함께 힘을 합쳐 물에서 그를 끌어냈다.   다행히  계곡물 있는  곳으로 떨어져 다친 곳은 없으나 흠씬 젖은 몸둥이를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충격이 크다. 요석은 파랗게 질리고 부들부들 떠는 그를 부축하여 숙소로 돌아왔다.

그 날 밤 또다시 클라우드는 열이 펄펄 끓으며 땀을 흘리고 온 몸이 불덩이가 되어 앓고 있다.

육중한 몸이 사오미터를 날라 물 위로 곤두박질을 쳤으니 온 몸이  타박상을 입어  결리고 쑤시고 져려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 다.

“ 여보게, 김목사 나를 위해 기도해 주게. “ 클라우드는 애처럽게 부탁한다.

요석은 그를 걱정하며 궁리하다 좋은 생각이 났다. 마을 어른을 찾아가 비장된 귀한 약을 좀 주십사고 부탁한다.

그 약이란  베보자기 씌운 항아리를 똥통에 깊이 가라앉치고 몇 년 동안 묵힌 다음,항아리에 걸러지고 숙성한  진국 똥물을 깨끗한  됫병에 담아두고 응급시에 사용하는 민간요법이었다. 이것은 넘어져 다친데, 또는 매 맞아 멍들고 골절되거나 내장이 다쳤을 때도 특효약이라고 전해져 웬만한 집에선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 친구, 이 약을 마시게. 아주 효과가 좋을거야. “ 요석은 그것을 한 사발 건넨다.

“ 이게 뭔가 ? 냄새가 고약하군, “ 클라우드는 미심적은 듯 얼굴을 찡그린다.

“ 입에 쓴 약이  몸에 좋은 거야, 어서 먹게 “ 그는 온몸의 통증이 더욱 고통스러운지 그것을 벌컥벌컥 마신다.

“ 아, 너무 이상한 맛이야. 사탕, 사탕 좀 빨리 줘 “

사탕을 입에 물고 그것이 다 녹기도 전에 클라우드는 혼곤한 잠에 빠진다. 숙성된 똥물의 독한 기운이 온 몸에 퍼지자 술에 취한 듯 통증이 잦아들고 깊은  잠에 빠져 드는  것이다.

이튿 날 아침, 클라우드는 거뜬이 일어난다.

“ 아, 상쾌하네,  어제 그 약이 효과가 그만인걸 , 그게 뭔 약인가 ? “

요석은 그의 얼굴을 피해 고개를 돌린다. 그의 입에서 나는 짙은 똥내를 견딜 수가 없어서다.


클라우드는 결국 똥물에 빠져 고생을 하고 그도 모자라  똥물까지 먹어 속을 다 비워내고 난 다음에야   현저한 변화를 보인다. 새로운 눈이 열린 듯 성경을 보고,  이런 구절이 다 있었나 ?

아, 그런 뜻이었군. 난 그걸 몰랐었어. 신기한 듯 성경을 열심히 읽는다. 생활 주변을 보면서도 아, 이런 아름다운 꽃, 새소리,  이런 곳서 사는  복 받은 사람들 ! 하며 감탄한다.

그 약이 성령의 역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해 주신게다.


그러나 아직 그는 설교할 자신이 없다고 한다.

“ 어떻게 해야 자네처럼 파워풀한 설교를 할 수 있나 ? 자네가 설교할 땐 말 끝마다 모두들 아멘, 아멘 하는데  나는 몇 년을 설교해도신자들로 부터  ‘ 아멘 ‘ 소리를 못 들어 보았다네 “

몇 달 전 자만에 가득찬 당당한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는 수줍고 소심하게 묻는다.

“친구,  설교는 입으로 하는게 아니야, 손과 발과 행동으로 전하는 것이네 “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

“직접  행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면 성령의 충만한 역사로 신자들에게서 ‘ 아멘’이 나온다네 “



클라우드는 한 일 년간 나와 함께 지내다 고향으로 돌아갔다.

목사로서의 그의 태도가 백팔십도 달라진 건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그가 돌아가서 시무하는 교회는 날로 부흥되고 신자 수도 크게 두 배나 늘었다고 한다.

이제 그는 맏음과 확신에 찬 훌륭한 목사가 되어 있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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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석은 쉬지않고 학문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가끔은  조용한 시간을 틈타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긴다. 얼굴도 모르고  희미한 실루엣만으로  남은  부모님을 찾아 대화를 청한다. 하노라면 옆으로 성령님의 잔잔히 미소짓는 모습도 느껴진다. 요석은 이런 시간을 자주 가질수록  정신영역이 확장되며  시공을 초월하는 감각능력이 더욱 진보됨을 느낀다. 비현실적인 느낌따라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이해와 긍정, 확신. 남들은 쉬이 느낄 수 없는 사유의 공간이다.

요석은 재학 중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하며 유학 준비도 차근차근 해 둔다.

고교 때 부터 제이 외국어로 독일어를 선택하여 기초나  문법체계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위에  실생활에 적응하는 듣기, 말하기, 독해력 어느 한 가지도 소홀하지 않는다 . 더하여  유럽 언어권의 대세인 불어나 이탈리안 서반아어 까지도 열심히 습득해 둔다.

그리고 유학의 목표 코스로는  신학에 관한 한 , 종교개혁의 진원지로  많은 신학자들을 배출한 독일의   본고장으로 가고 싶다.  신학에 관한 더욱 깊고 진지하며 온전한 모든 것을 배우고자 하는 열정으로 고대 히브리어나 또는 헬라어 까지도 해독하려 노력한다.

그리하여  긍극적으로 자신이 나아갈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길을 찾으려고 한다

.

과연 노력과 준비한 보람이 있어 국가에서 치루는 국비 장학생에 선발되었다.

독일로의 유학의 길이 열린 것이다.

독일로 떠나기 며칠 전 요석은 하직 인사로  외삼촌댁에 들렀다.

여전히 반겨주시는 외삼촌 내외, 요석은 고맙고 기쁜 마음으로 꿇어 엎드려 머리를 깊숙이 숙인다. “ 모두 외삼촌과 숙모님의 정성 덕분입니다. 은혜가 큽니다. 고맙습니다 “

“ 아니제, 네가 잘 해 왔지 않은가 ? 하나님의 보살핌이 크신게다. “

예전이나 변함없이 정갈하고 조촐한 집안은 세월의 자국으로 조금은 피폐하고 ,그처럼 외삼촌과 외숙모님도 세월 속 바람을 비켜 갈 수 없드시   주름살 늘어난  모습에 마음이 싸아하니 아프다.

“ 외삼촌 제가 공부 마치고 올 때 까지 건강하게 잘 계세요. 제가 돌아와서 잘 모실께요. “

“ 우린 잘 산다 ,우리 내외 걱정말고 네나 몸 성히 잘 다녀오거라. “

“ 먼 타국나가면 먹는 것도 마땅찮고 의식주 어케 살거나, 이불이랑 챙겨주랴? “ 외숙모님도 걱정이 많다.

“ 숙모님 짐되는 건 안 갖고 갈깁니다. 젊은 놈이 뭐 가릴게 있겠습니까? 그리고 나라에서 장학금으로 생활비까지 넉넉하게 주어서 사는건 문제 없십니다. “

외삼촌은 만족한 얼굴로

“ 그래, 그래 애썼다. 네 부모님도 하늘나라에서 기뻐하실꺼로,

우리 늙은 내외나 너도 하나님께서 잘 지켜 주실께다. 모든걸 주님께 맡기고 각자 맡은 직분들을 열심히 준행하자, 그리고 다만 기도, 늘 기도 ,우리 합심하여  항상 기도하자꾸나 “


튀빙겐 대학, 독일 중부에 작은 도시 튀빙겐에 위치한 이 곳은 거의 천년의 역사를 지닌 유서깊은 대학이다. 신학부가 주축을 이루고 의학부와 법학부도 우수한 실력을 자랑한다.

별다른 큰 건물은 없지만 아기자기 예쁘고 고풍스런 목조건물들이 정연한 도시,여기저기에 대학 건물과 기숙사 등이 산재해 있고 주민들과 여러 곳에서 모여든 젊은 학생들이 공존하여  고요하고 평화스럽게 살아가는 그 도시는  그림처럼 아름답다. 언덕위에 우뚝 선 오래 된 켓슬, 도시 외각을 감싸고 흐르는 맑고 투명한  강 , 젊은이들이 공부에 지친 머리를 식히기에도 좋은 환경은 요석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준다.  ‘ 이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 참으로 고맙습니다’ 요석은 입 속으로 가만히 외친다.


세미나가 열린다고 한다. 초빙교수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신학자  < 칼바트 >.

 신약 성서에 대한 수많은 저술로 1970 년대에 세계적인 명성을 날렸고   특히 로마서를 집중  해설한 그의 로마서 해설집은  모든 신학자들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세미나 안내 팜플렛에 새겨진  그의 사진, ‘ 어, 낮 익은 얼굴 , 이 분이 아직 생존해 계시다니 !  ‘ 요석은 저으기 놀란다. 요석의 머리에 기억되는 생생한 기억 ,    요석이 중학교 시절 어느 일요일,  목사님은 설교를 끝내고 강대상에서 내려오시다가  문득 신문 한 장을 펼쳐 어느 한 컷의 사진을 보이시며,


“  이 사람은 신학자이고 목사지만 반드시 천국이 아닌  지옥으로  갈 사람입니다. “ 하는 것이다. 어린 요섭은 그 사람이 지옥 갈 사람이라면 혹시 머리에 뿔이 났을까 ? 하는 궁금증이 나서 목사님을 따라가 다시 사진을 보여 달라고 했다. 기억에 각인된 그 이름, 칼바트, 어린 요석은  그가 아마  담배를 끊지 못하고 늘상 파이프를 물고 있어서 지옥 갈 사람이라고 했나 ?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가 아직 그것도 이 도시에서  생존해 계시다니. 그리고 그를 실제로 만날 수 있다는게 꿈만 같다.


요석은 그에게 꼭 확인하고 싶었다. 기대했던 세미나가 끝난 후 그를 따라가  짧으나마 기회가 있었다.

“ 선생님, 반갑습니다. 한 가지 여쭙고 싶어서요 , “  

“ 뭔가 말하게 “

“ 제가 열다섯 살 때, 우리 목사님이 신문에 난 선생님 사진을 보이시며 이 사람은 지옥 간다 . 하셨는데 선생님, 지옥 갈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 “ 했다. 독일 말은 참으로 냉혹하고 직선적이다. 에둘러 하는,  보다 부드럽고 은유적인 표현이 부족하다. 해서  참으로 난처한 질문을 그대로 직선적으로 할밖에.

노교수는 순간 표정이 굳어지며 눈을 감는다, 그리고 잠시 후 망설이며  말한다.

“ 내가 지금 바쁘고 피곤하여 길게 얘기할 수 없구만, 다음에  다시 연락하지 “

일주일 후 요석은 다시 그 노학자를 찾았다. 그는 저 번 보다 훨씬  평정을 찾은듯 보였다.


‘ 나는 신약을 평생 연구하고  여러  주석과 해석을 달아 많은 저술을 하였네, 그 때 나는 아직 젊었고 자만으로 가득 찼었다네. 내게 어떤 오류가 있으리라곤 전혀 의심치  않았지.

그러나 내 신학 성경에 대한 해설이 하나님 뜻에 맞지 않았던 점도 있지 않았을까.  내 깊이 생각해 보니 그 자만과 오류를 자네 목사님이 바로 짚으셨는지도 모르겠네  “

그 노학자는 매우 곤혹스러운 얼굴로 그러나 담담하게 말한다.

“ 지금은 그 자만과 치기를 깊이 부끄러워 하고 후회하고 있다네. 판단은 주님께서 할 일, 남은 인생에서 더 이상 죄짓지 않고  다만 회개하며 겸손하게 살려하네. “

요석은 노학자의 진심에 찬 깊은 회한과 겸허의  목소리에 질리고 말았다. 그가 예상한 건 기껒해야

“ 우하하 ! ! 내가 아직 담배를 피고 있어서 자네 목사님이 꽤 눈꼴이 시었나부지 “ 이런 가볍고 유머러스한 반응이었는데 너무 무겁고 진지한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신약학을 강의하는  위르겐 몰트만 교수, 그는 신학부 교수 중에서도 가장 존경받고 인기있는 유명한 교수이다. 그의 강의 시간에는 신학부 학생 뿐 아니라 의학부 법학부 학생 대학원생 , 심지어 목사 시험을  통과한 수많은 학생들이 몰려와 열강한다.

어느 날 그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 , 교단 앞에서 두터운 성경책 을 번쩍 들고 말한다.

“ 여러분 이 안에 가득 적힌 기록과 내용들을 믿으십니까?”  

한 이백여 명이 모인 ,일층과 이층이  툭 트여  넓은 강의실 안은  다만 조용할 뿐이다. 그 정적이 요석에게는 너무도 길고 답답한 시간이다. 중간 쯤 구석에 앉아있던 요석이 손을 번쩍  든다.

“ 그 기록들은 비록 사람 손에  쓰여졌지만 분명 성령으로 쓰여졌다고 선지자들이 증언 했습니다. “

조용하던 모든 학생들의  눈이 그에게 쏠렸다.

위르겐 몰트만 교수도 그를 유심히 바라  본다.

“ 당신은 독일인은 아니고--   아시아에서 왔소 ?

“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

“ 흠, 한국은 아직 샤머니즘과 원시종교에 젖어있어서 이걸 무조건 믿는 모양인데 당신이 여기서 신학을 잘 배워보면 아마 믿을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될거요. “

그리고 그는 대중을 향하여 큰 소리로 말한다.

“ 여러분 이 책에서 믿을 건 앞뒤에 있는 검은 색 가죽장정 뿐 , 내용은 아무 것도 믿을게 없습니다 “

하고 단정해 버린다.

요석은 전혀 이해가 안 되었다. 내가 혹 독일어가 서툴러 잘 못 이해한 것인가 ?

집으로 돌아와 룸메이트 클라우드에게 묻는다

“ 내가 잘 못 이해하고 있는건가 ?”

아니, 너는 잘 이해하고 있어 , 근데 뭐가 문제지 ?

“ 성경을 믿지 않으면서 왜 신학을 하지 ?

클라우드는 요석이 제 정신인가 하는 얼굴로 심각하게 들여다 본다. 요석은 흐트러지지 않은 맑은 눈으로  진정이 가득한 의문을 띄고 있다.요석의 진의를 알자 클라우드는 현실에 몽매한 그를 측은한 듯 바라본다.


“ 신학은 틀림없는  제일 고급 학문이지.  학문은 높은데 성경과 신학을  별개로 생각하는거야. 성경에 기록된 연대적 의미, 과학적인 근거 앞 뒤의 인과관계, 그게 모호하기만 하거든 .그걸 누가 믿겠어 ? 우리 신학생들은 이상은 높게, 가슴은 차갑게. 성경을 대하지. “ 하며 어깨를 으쓱한다.

그럼 왜 굳이 믿지도 않으면서 신학을 하는건가  ?”  요석은 묻는다.

“ 그건 대개 스팩의 문제지.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시험에 합격하여 목사가 되면   공직에 우선권으로 진출하여  대우도 좋고 존경을 받거든, 귀족집 딸과 결혼하여 신분상승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생기고 말야  하 하,“

사실 당시 독일이나 영국 유럽권에서는 교구제로 나누인 교회에  나라에서 선출한  목사들을   지역따라 임명하여 관할 구역 신도들에게 각종 신권 행사를 위임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유아 출생신고  세례의식이나 혼례 진행, 또는 장례의식까지 서민들 생활과 밀접한 신권행사를 총괄하고 있으니 이는 바로 상당한 명예와 권위가 되는 것이다.


요석은 새삼 룸메이트 클라우드 디터 그레스를 찬찬히 살펴 본다. 허우대 당당하고 반짝이는 푸른 눈 , 최신 유행하는 멋스러운 스트라이프 통 좁은 바지가  그에게  잘 어울린다.


힉교 생활에서 더우기  요석을 혼란스럽게 하는  건 그 당시 즉 1960~70 년 대를 휩쓸던 사회주의 신학 또는 막스주의  신학의 거센 물결이었다. 심지어 위르겐 교수는 사회주의 유물론을 주창한 칼 막스를 신약성서의 사도 바울의 대를 잇는  위대한 사도라고 찬양하는데도 그에게 이의를 다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심하게 말해서 당시 분위기 신학은   신은 없다고 여기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다만 성경을 학문적 연구의 대상으로 생각하며 예수는 평화공존의 이상 실현을 위한 철학적이며 개혁적  변론가로 그가 말한 각 구절을 해부학적으로 조직 분석하는 교의적 신학이었다.

요석은 유년시절 부터 마음 깊이 심어지고 성장한 신앙이 여기에선 너무도 다른 시각에서 연구되고 다루어지고 있는 현실이 생소하고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저항을 느낀다.

어느 날 그는 다시 위르겐 교수를 찾아갔다.

“ 아, 자네 삼위일체 성령의 존재를 믿는 보수주의자 젊은이. 그래 자네가 그토록 그를 믿는다면 내게 그 증거를 보여 주게. 그를 본 일이 있는가 ? 그와 손을 잡은 적이 있었나 ? 그와 대화한 적이 있었나 ? 그 증거를 내게 보여준다면 내 자네와 다시 얘기를 하겠네 “


요석은 사실 위르겐 교수가 요구하는 실체를 확신있게 말할만한 근거가 없었다.

막연하게 위로와 격려의 따뜻한 느낌을 받으며 나름 소신을 가졌으나 구체적 시각, 청각, 또는 촉각의 경험은 없다 즉 신에의 느낌은 내부로 부터 느끼는 것이지, 외부로 실증하기는 어렵다.

대답을 하지 못하고  물러난 요석은 그러나 일말의 확신은 일단  마음 속에 깊이 접어  둔다.그리고 시류에 따라 환경에 따라 수많은 신약 해설집과  종교적  고전 성경 기록을 치열하게 파고 들며 세밀하게  조직 분석하고 유대 역사를 통시적 안목으로  연구하며 구약 성서의 연대기와 대조해 가며  조사한다.

 그러며 칠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는   각별한 관심으로 지도해 준 위르겐 교수의 촉망받는 제자로 인정되고 그의 강력한 서포트로  박사 학위를 획득하였다.


그리고 본국 ㅅ 신학대학에 초빙되어 한국으로 귀국한다.  그 곳서 < 조직신학 >과목을 강의하는 교수로 재직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신학대학 분위기는 독일과는 또  다르다. 학생들이지만 이미 교회 부목사를 하는 이도 있고, 여가를 이용하여  개척교회나 , 작은 교회에 전도사로 봉사하는 이들이 많았다.

따라서 이들에게  성경 구절을 낱낱히 이론적으로 해부하고 진위를 논한다는게 도무지 먹혀들지 않고 강의 시간은 냉냉하고 허망하기만 하다.  이들의 뜨거운 열정이 추구하는 바는 하나님과의 믿음과 만남이라는 사실이다 . 이를  알게 된  요석은 자신의 위치에 회의를 느끼며 방황하게 되었다. ‘ 과연 나는 이들의 바램을 충족시키고 있는가 ?

어느 날 한 교단에서 요석을 초빙한 세미나가 있었다 대상은 기존 목사들을이였다.

요석은 나름 정성껒 준비한 주제와 내용으로 진행된 강연이었다. 그러나 , 후에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한 목사의 신랄한 비판이  요석을 엄청나게 당혹시켰다.

“ 김요석 박사님 , 당신은 독일서 배워 왔다는게 진보 사회주의적 해방 신학이요 ?  그건 쓰레기 같은 칼막스의 사회주의 공산당의 이론일 뿐이요. 그걸 우리에게 믿으라는 거요 ? “

장내는 흥분하고 살벌해 졌다. 아마도 단단히 작심하고 요석을 공격하는 듯 하다. 요석은 당황스럽고 참담하다. 독일서는 보수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으며 공부했고 한국에 오니 불순한 공산주의를  바탕한  해방신학이라니, 갑론을박으로 소요하는 장내는 일단 온건한 원로목사들에 의해 더한 망신없이 진정되었으나 요석은 뭔가 확실한 결단이 있어야 한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기도한다.

‘ 주여 , 제가 어디 부터 잘 못 되었나요 ? 이제 까지의 길도 앞으로의 길도 주님이 인도하심을 굳게 믿습니다. 저는 부족하고 용렬합니다. 다만 주께서 저를 인도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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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을 읽고
    from 장작불을 태우며 2015-02-23 04:47 
    안녕하세요 타오르는 불꽃입니다.신학부문은 전혀 모르는 내용이어서 관심있게 읽고 갑니다.다음회가 기다려지네요.
 
 
성에 2015-02-26 0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부족함이 많더라도 꾸준히 찾아 주시고 좋은 가르침도
기대하겠습니다.
 

연신은 가슴이 터지도록 벅찬 감동으로 산기슭을 통통통 뛰어 내려 온다. 세상에 태어나 살아 오면서 오늘같이 자존감을 벅차게  느껴 본 적이 없다.역시 살아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야

‘ 그 꼽꼽스런 요석 오빠가 설마 내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는지를 내 어찌 알았겠나’ 심장이 너무 부풀어 목까지 꽉 차 오른다.

그러나 곧 연신은 한숨을 포옥 내쉰다.  ‘ 하지만 그 오빤 내게 먼 별빛일 뿐이제. 그와 내 시이에 어디 통하는게 있어야제.내 오빠를 그여코 잡으려 한다면 서로 불행이제. 다만 -- 다만 내 살아온 세월이 헛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는거 아이가? 그래도 나는 좋대이.’

마치 무지개 구름 위로 날고 있는 듯 황홀한 기분에 취해있던 연신은 벼락같이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돌비탈길에 우뚝 멈춰 선다.

“ 아이고 간 떨어질 뻔 안 했나? 동연아 네 웬일이고 ? “ 손 아래 이제 열 다섯 살인 남동생이다.

“ 누부야 어데 이리 쏴돌아 댕기노 ? 아부지가 지금 큰일났다.”

“ 왜? 어찌된 긴 데? “ 연신도 화들짝 놀라  동생과 함게 허겁지겁 산을 내려와 집으로 향한다.

집안은 썰물이 빠져나간 듯 휑하고 사립짝 문 밖에 마을 노인 서넛, 혀를 끌끌 차고있을 뿐이다.

“ 우리 어맨 어데 갔는데요? “ 연신이 누구랄 것도 없이 외치자 아직 눈믈자국이 마르지 않은

막내 남동생이 뛰어나오며 “ 어맨 아부지랑 병원으로 갔다. “

“ 엄마가 어째 아부지를 업고 갔나? “

“ 아니, 만석 아재가 차를 가지고 와서 태우고 갔다. “

‘ 만석 아재가?’ 되뇌이는 연신은 가슴이 부르르  떨린다. ‘ 안 되는데. 그 사람한테 신세지면 안 되는데.’하지만 연신은 지금 이런저런 생각할 때가 아니다. 차도 끊긴 도로에서  읍내를 향해

냅다 뛰어간다. 한 삼십 여 분 어두운 거리를 달려온 남매의 얼굴은 땀 범벅이고 등도 땀으로 흥건히  젖은 옷이 등에 착 붙었다.

“ 우리 아배는 어디 있십니까 ? “  숨차게 묻는 연신에게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간호사가

“ 여기선 응급조치만 하고 서울 큰 병원으로 가싰습니다 “ 나른하게 대답한다. 이미 밤이 깊은 것이다. 좁은 읍바닥이라 웬만하면 모두 서로 아는 얼굴들, 영신은 간호사와도 약간의 안면이 있다.  “ 언니, 울 아배가 어떻게 아픈긴데요 ?  어떻게 응급했는지 알려주소 . 내 답답해서 안 그러요?  이제 서울 갈 수도 없고. 서울 큰 병원가면 살 수는 있는거라 요? “

연신은 오도가도 못하는 이 밤, 답답한 심사를 간호사에게 매달린다.

“ 아버님은  간경화가 많이 진행되어 있더랍니더 . 간기능이 거의 정지되어 독소가 온 몸에 퍼지고 소화가 안 되어 위 속에 싸인 음식을 세척해내 고 뱃 속에 쌓인 혈변을 관장해 드렸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고요, 근본적으로 간기능을 다시 살려야 하는데 그 방법이 -- “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간호사의 얼굴엔 안타까움과 연민이 짙게 깔려있다.


차도 인적도 끊어진 어두운 신작로를  터덜터덜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남매는 말이 없다. 그러나 마음은 천근만근  태산에 깔려 있다. 저녁녘에 소동으로 저녁밥도 짓지 못하고 불도 때지 않아 싸늘한  방바닥 구들은 고픈 배를 안고 누운 삼남매의 등허리를 더욱 시리게 한다.

“ 누부야, 아배는 살아 돌아 오것나 ? “ 첫 째가 망설이듯 입을 뗀다

“ 에이씨, 아배는 없는게 낫다. 아배는 우리 집안의 흉물이다. “ 열 두 살 막내는 씹 어뱉듯 말한다.

“ 동연아, 정연아 , 그래도 살아가노라면 아배가 우릴 세상에 낳아준게 얼마나 고마운지 알게 될 때가 있어 . 너무 아배를 원망하지 말아라. 그라고 이 누나가 너들을 잘 길러줄 기다. “

“ 피이. 우리도 다 자랐다 아이가 ? “  하는 동연의 말에

“ 아유 요것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 연신은 동생들의 머리를 한방 씩 콩콩 쥐어박고  셋이는 큭큭  웃으며 각자 잠을 청한다.

“ 아, 요석오빠를 오늘 안 만났더라면 난 지금처럼 씩씩하지도 않고 자신있지도 못하고 징징 울며 투덜거리기만 했겠지. 오빠는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일깨워 주었어. 새로 태어난 나는 씩씩하고 당차고 지혜롭고 햐 ! 뭔 일이 닥쳐도 겁내지 안을꺼야 ‘  

심장에서 따뜻한 체온이 모락모락 온몸으로 퍼지고 몸이 따뜻해지자  연신은 평정을 찾아 고요하게  잠이 든다.


과연 연신의 아버지는 살아 돌아오지도 못하면서 남은 가족들에게 엄청난 빚만 남 겨 주고 떠났다. 읍내 병원에서의 치료비는 새발에 피이고 서울 적십지 병원에 입원하여 열흘 간 치료받은 비용은 이 가족들에게는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거금이었다. 그리고 그 곳서 곧장 홍제동  화장터로 옮겨져,  집으로 돌아온 건 흰  보자기에 싸인 유골상자였다.  물론 장례식도 절차대로 규모있게 치루어야 하겠지만 서울서 이 곳 까지 운구하는 비용이며 또 쌀독에 얼굴이 비칠 정도로 말간 집안 형편에 삼일장이니 묘지매입이니 모든게 감당이 전혀 안 되어 이렇게  약식이 된 것이다.

그래도 고마운 것이 이만석씨가 엄마 곁에서 모든 일을  도맡아   급전을 대주고  화장 아이디어나 절차를 밟아준 덕분이다. 덕분이라고 하기에는너무 야박한 감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아무 것도 모르고 가진 것도 없이 우왕좌왕하며 울고 짜고 할 이 가족을 위해 이만큼 발 벗고 나서 처음부터 끝까지 말끔하게 처리해 준게 감사할 뿐이라 할 밖에.


아버지 곁에서 병수발하랴 , 화장터까지 쫒아다니며 애쓴 어머니는 거의 초죽음이 되어있다. 그래서 하룻 밤을 새우고  다음 날 이른 새벽,  세 남매만이  아버지의 유골함을 가슴에 안고 산길을 오른다. 이 오목한 동네에 살며 가장 높다고 생각되는 산봉우리를 목적지로 하여  올라가는 것이다.산길도 끊어지고 간간히 약초군이나 지날만한 험하고 먼 길을 돌아 올라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바람이 거세게 분다. 세 남매는 유골함을 향하여 엄숙하게 세 번 넙죽 절하고 그래도 맏아들이라고   동연이가 침착하게 함 뚜껑을 연다. 휘리릭 바람이 고운 회색의  가루를 휩쓸며 지나간다. 먼저 연신이가 맨 손에 유골가루를 한 줌 쥐고 바람결 따라 사르르 손을 편다. ‘ 아부지 저 세상에서 행복하게 잘 사시이소  ‘ 목이 꽉 차올라 맘 속으로만 중얼댄다. 동연도 한 줌 쥐어 바람에 날리며 코를 훌쩍인다. “ 아부지 죽어서나마 우리 가족들 좀 지켜주시고 도와주소 “ 퉁명스럽게 외친다.

“ 아부지 하늘나라에서 이젠 술 좀 작작 마시이소 “ 막내 정연이 악을 쓰듯 말한다. 얼굴은 이미 눈물로 가득 젖어있다. 셋은 서로 손을 잡고 주저앉아 마음껒 소리내어 엉엉 울어 버린다.

얼마 후 , 그들은 슬프고 허전한 마음으로 산길을 터덜터덜 내려 온다. 그러나 산을 올라갈 때 보다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일이 어느 정도 일단락되자 이 번엔 어머니의 시름이 깊어간다.

“ 니 아부지 치료비랑 입원비, 기타 경비로 만석아재께 빌린 돈이 십이만 팔천 원 쯤 된데이. 이걸 어찌 갚아야 하것노 ? 물론 만석아재는 재촉은 안 하고 있지만서두, 그 집이 꽤 부자라카지만  그만큼 신세를 지고도 가만 있음 이게 사람짓이라 할꺼로 ? 어째야겠노? “

두 동생들은 벌써 입이 쑥 나오고 눈알을 부라린다. 다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쏟아질 판이다. 그들이 입을 열기 전 얼른 연신이 말한다.

“ 어무이 너무 걱정 마소. 설마 산 입에 거미줄 치것소 . 내 생각이 있으니께니. “

순간 엄마의 눈과 연신의 눈이 날카롭게 마주치며 챙 쇳소리가 들린다.

“ 앙이 된다. 택도 읎는 소리 생각도 마라 “  엄마는 홱 돌아 이불을 쓰고 누워 버린다.

사실, 이 만석씨는  몇 년 전 상처하고 어린 두 남매를 기르고 있는데 ,  작년 갈,  먼 친척 할매를 중간에 넣어  은근히 청혼을 한 일이 있었다. 열 여덟 연신과 거의 나이 두 배, 그리고 키워줘야 하는 어린 아이들, 아무리 그 사람됨이 덕망있고  살림이 윤택하다 하지만 안 될 일이라 하여 어매는  영신의 어린  나이를 핑게삼아 딱 자르고 더 이상 말도 못 꺼내게 하였다.

‘ 그가 우리에게 무한 호의를 보인 것은 빼도박도 못하는 함정이 깔려 있는게 아니것 나 ‘ 연신과 어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고 조바심치게 만든 원인이다.

그러나 연신은 생각한다. ‘ 내가 우리 집 안의 살림밑천이다이 . 꽉 막힌 집안 형편에  열쇠 노릇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게 얼마나 다행인가  ‘


내린 눈이 녹을 새도 없이 첩첩이 쌓이고 매운 바람이 얇은 스레이트 지붕과 흙벽을 핥듯이 유린하던 음울한 겨울이 지나갔다. 양지터에 햇살이 한결 상냥해지고, 앙상한 가지만 세찬 바람에 하느적대던 수양버들도  나날이 연두빛이 짙어가는  봄이다.

연신은 큰 맘 먹고 읍내로 나가 미장원에 들렀 다. 이제까지 손대지 않고 칠칠하게 길렀던 머리를 풀어내어  귀밑 단발로 쌍둥 자른다.

그 다음엔  옷가게에 들러 포기배추 속고갱이같은 노란빛 어린   연두색  불라우스, 그리고 깊은 바다 물색같은  군청색 주름치마를 산다. 아래 위 입어보고 ,  얼마전 아배를 여읜 상제로서의 처신을  벗어난 건 아닌가 곰곰히 들여다 본다. 그러나 앞 이마위로 가지런히 꼽은 조그만 흰빛 리본달린   실핀이 모든걸 한 눈에  정리해 준다.

며칠 후 읍내 한 다방에서 영신은 이 만석씨를 만났다.

“ 연신아 네가 웬 일이고 ? “ 먼저 와서 새초롬히  앉아있는 연신을 눈 부신듯 바라보며 만석씨는 싱글벙글 웃는다.

“ 아자씨 안녕하싯습니까? 바쁘신데 폐가 되는건 아닌지요 ?”

“ 내사 바쁘기는 뭐 --” 하는 이 만석씨는 사실 바쁜 시간에 매달린 사람은 아니다. 읍내 노른자위땅에  기다란 상가 건물은 세입자들에 의해 장사가 잘 되고 두둑한 보증금을 깔고 앉아 그 위에  매달 월세만 챙기면 된다. 그리고 그가 운영하고 있는 마을 금고, 여기도 주사 한 사람에 여직원 둘,  사환 한명으로  척척 잘 돌아가며 만석씨는 금고에 쌓인 돈의 출납과 사장으로서 직함으로 유지들과의 교류, 돈의 흐름을 잘 간파하며 적절하게 손을 쓰는 그런 일들을 시간 제약 없이 느긋하게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으로 논마지기와 밭도 적잖이 소유하고 있으나 모두 소작인의 손에 부쳐 가을 추수만 관장하면 집안의 가용과  식량, 몫돈도  넉넉하게 충당되며 재산이 쌓여간다.

만석씨는 손목 시계를 들어 보이며  “ 아따, 점심시간이 됐네 그려, 어데 가서 식사나 하며 천천히 얘기하제 “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읍내 거리에서 제일 크다는 용궁각 중국요리집으로 앞서 들어간 만석씨는 반겨 맞는 뽀이에게 귓속말을 한다. “ 예이 예 ! 알겠슴다. 이리로 오시소 “ 안내된 방안은 밖의 소음이 완전 차단된 고요하고 말쑥한 방이다. 뽀이는 두툼한 비단 방석을 내놓으며 주문을 받는다.

사실 연신에게는 처음 와보는 무척 생소한 곳이다. 그러나 스스로 촌티내지 말자 , 기 죽을거 없어. 주문처럼 뇌이며 침착하게 방 안을 살핀다. 뽀이가 나가고 잠시 망설이던  연신은

“ 인사가 늦었십니다 ,  제 아배의 일을 잘 돌봐 주세서 고맙습내다. 아저씨 아니었으면 어쨋을까 아찔하구먼요.  정말 감사합니다.” 공손히 머리를 숙인다.그리고 만석씨가 대답도 하기 전에 말을 계속한다.

“ 요즘 어매가 걱정을 많이 하십니다. “  “ 머를 ? “ 만석씨가 눈을 치뜨며 묻는다.

“ 너무 많은 신세를 져서 이를 어찌 갚나 하고 말입니더. “

만석씨는 잔잔한 웃음을 띄우고 연신을 본다. 살집좋은 두툼한 얼굴에 코가 너부죽하여 연신에겐 천만 낯선 얼굴이다. 그러나 약간 아래로 쳐진 두리두리한 눈매는 사납지 않다.

또 연신이 먼저 입을 뗀다. 마치 신중하게 써놓은 원고를 달달 외어 그걸 까먹을까봐 성급하게 써내려가는 논술 시험지 같이.

“그래서  제가 생각했십니다. -- 제가  아제씨 집으로 들어가 살림을 살아주면 안 되겠습니꺼 ? “

마침 노크 소리가 들리고 주문한 요리가 몇 접시 들어 온다.  양파와 고기와 버섯을 넣어  볶은 화려한 색감의 음식, 거창한 기름냄새, 생전 첨 보는  요리며 냄새지만 이에는 전혀 신경 쓸 수  없는 연신.

만석씨도 이제까지 재미있다는듯이 웃음짓던 얼굴이 굳어진다.

“ 그 무슨 뜻이고 ? 네 살림 산다는 말의 의미나 알고 하는 말이가 ? “

연신은 눈 하나 깜짝않고 그를 마주 본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고 칼로 그은듯 붉은 입술이 야무지다.  “ 제가 아아들의 엄마 노릇도 잘 하겠십니다. 제 두 동생들도 제가 키운거나 잔배없어 아아들을 잘 다룹니더. “

만석씨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는다.  연신을 바라보는 눈도 한결 부드러워진다.


‘ 알았다  알았어, 네가 효녀 심청이맹쿠로  인당수로 뛰어드는구나.  “

한심하다는 듯, 비웃는듯 하는 그의 말에

‘ 아임니더, 그건 아이고요 제 하나로 여러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래는 맘 뿐입니다. 지도 행복하면 더 바랄 것두 없겠지만서두 “  

요건 원고지에 없던 말이다. 아직 원고지에 써 놓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불쑥 나온 말이다. 감히 내 행복을 꿈꾸다니. 또 원고지에 없던 돌발상황, 후두둑, 눈물이 떨어진다. 요건 전혀 계획에 없던 순서인데 감정의 통제가 안 된다. 후두둑 눈물 따라 흐느낌마져 따라 온다.

무너져 버렸다. 연신의 계획과 통제가 와락 무너져 버리고 열아홉 철부지 여자애의 여리고 겁나는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다. ‘ 다 망친게 아이가 ‘ 부끄러움과 실망으로 연신은 엉망진창에 빠져 그대로 엎드려 흐느낌에 맡겨버린다

“그라믄  네 행복은 내 책임이 되겠구마  “  의외에 그의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린다. 어깨에 얹은   그의 두툼한 손도  느껴진다.  그가 곁으로 다가와 연신을 가볍게 안은 것이다.

“ 자자, 밥부터 먹자. 다 식는거 아이가 , 어서 먹자 “

그는 연신의 접시에 음식을 몇 가지 덜어준다. 한 번 더 어깨를 토닥이고 난 후 ,그는 몸을 일으켜 그의 자리로 들아가 천연스레 식사를 시작한다. 좋은 먹성이고 침착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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