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린 산 5 < 친구 클라우드 >
K 목사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 번 만나자는 것이다. 그도 물론 세미나에 참석하여 그 소란을 지켜보았고 또 앞장서서 장내를 진정시킨 경륜이 깊은 원로목사님이었다.
“ 교수님은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 “
K 목사는 요석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요석은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 분은 다시 말했다.
“ 당신은 이론적이나 학문적으로는 훌륭한데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없습니다. 이론하고 체험은 다르니까 교수직에 머물러만 있지말고 한 번 체험을 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뭐 어떻게 체험을 해야 하나요 ?” 요석이 곤혹스럽게 더듬대며 묻자 그는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듯 .
“ 남부지방에 제가 아는 작은 교회가 하나 있는데 지금 그 교회에 목사님이 안 계십니다 “
하며 그 교회의 주소를 건네 주었다.
사실 요석이 오랜 세월 연구하고 공부해서 얻은 안정된 교수직을 내놓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결단이다. 그러나 요석 자신도 오랜 동안 맘 속에 갈증으로 남아 있는 하나님과의 < 만남의 확신 >, 마치 사람을 직접 만나 악수하듯이 그렇게 만나고 싶었다.
어느 토요일 요석은 호남 방면으로 가는 직행버스를 탔다. 도로사정이 안 좋아 장시간 털털거리며 전라도 영암군에 도착한 것은 저녁 늦은 시간.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영호마을에 도착한 건 이미 밤 늦은 시간이었고 몇 명 마중나온 신자들의 얼굴은 희미한 불빛으로 자세히 볼 수도 없어 수인사만 하고 숙소에 들었다.
그런데 방 안을 둘러보던 요석은 질색하지 않을 수 없다. 바람이 술술 드나들 것 같은 흙벽에 묵은 도배지는 얼룩과 습기로 젖어있고 심지어는 조그만 벌레들이 기어다니기도 한다. 가구는 커녕 당장 덮고 잘 이부자리도 없는 썰렁하기 이를데 없는 이런 곳에서 살라고 ?
그러나 요석은 하루종일 길 위에서 시달린 몸이 고단한지라 착잡한 마음을 품은 채 입은 옷 그대로 누워 잠 들어 버린다.
다음 날 첫 주일예배 시간이다. 주로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앞으로 부터 대부분이고 뒤 끝 쪽으로 중장년층 몇 명, 모두 한 오십여 명 모였다.
요석은 설교단에 올라 막 입을 떼려는 순간 놀라움으로 숨을 들여 마시곤 목소리가 안 나온다.
강댓상 비로 아래에 나이를 가늠키 어려운 한 사람이 얼굴을 번쩍 쳐들고 그를 보는데 그 얼굴이 그냥 구멍 다섯 개 뿐이다. 자세히 보니 다른 이들도 얼굴이 씰그러지고 뭔가가 많이 부족하고 흉한 모습.
요석은 가까스로 당황한 마음을 추스리 며 대충 대충 설교를 마쳤다. 설교를 하면서도 계속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은 빨리 이 곳을 벗어나 서울로 돌아가겠다는 조급함 뿐이다. 예배를 끝내고 어서 신도들이 돌아가기를 바라며 일부러 느릿느릿 꿈지럭대다 교회 문을 나서려니, 아앗 ! 신도들이 문 밖에 줄을 서서 목사님이 빨리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게 아닌가 ? 아아, 정말 이들과 악수를 해야 하나 ? 맨 앞에 서 계시던 할머니가 손을 내민다. 세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에는 노랗게 화농된 물큰하게 느러진 살갗, 아, 정말 이 손을 잡아야 하나 ? 둘 만 남은 손가락을 잡나, 아니면 손 등에 내 손을 얹어야 하나, 정말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들의 손을 꽉 잡았나 ? 아님 살짜기 얹었던가 , 눈을 꼭 감고 얼른얼른 지나가서 기억도 없다. 근데 아니, 이 할머니는 아까 앞에서 악수했던 분 아닌가 ? 근데 이 할머니 다시 뒤 쪽 줄에서 차례를 기다려 내 손을 꼭 잡자 놓지를 않는다. 아예 요석의 손등을 두 손으로 찬찬히 쓰다듬고 있다.
“ 할머님, 어디가 불편하세요 ?” 요석은 난처하고 곤란해서 묻는다
“ 아니, 아니, 호호호 “ 할머니, 너무 밝고 천진하게 웃는다.어린 소녀의 해맑은 웃음처럼.
“ 내가 열여덟 살 때, 집 떠난 후로 성한 사람 손을 한 번도 잡아보지 못해서 젊은 목사님 손은 어떤가 만져 보는거요 “
눈거플도 얼마 안 남아 튀어나온 눈알, 뭉그러져 코구멍이 드러난 코, 입술도 일부분 문드러져 흉한 얼굴, 그러나 이 할머니는 다만 장난스럽고 행복하게 웃는다.
“ 할머니 , 할머니는 인생이 고통스럽고 힘들지 않으세요 ?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세요 ?”
“ 아이구 목사님, 하나님이 원망스럽기는 , 절대 아니우. 오히려 감사하고 있다우. “ 하며 그 할머니는 아직 귀가하지 않고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는 다른 노인들을 둘러 본다.
“ 그럼요, 그렇구 말구, “ 모두들 끄덕 끄덕하는 동감의 목소리들.
“ 우리가 이 병 들어 여기 안 왔으면 생전 하나님 만나지 못하고 세상 죄만 잔뜩 짊어졌을텐데 이 병 덕분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 죽어서도 영생 축복 받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우 ?
“ 맞아요, 맞아요. 우린 늘 감사하며 산다우 “
“ 저이는 멀쩡한 형제들도 여럿인데 자기 아버지도 모셔와서 함께 산다우, “ 한 할머니가 아까 보고 충격 받았던 다섯 구멍 얼굴을 보며 말한다.그러자 풍채좋은 한 노인이 썩 나서며
“ 저 아이는 그 잘 생긴 인물이 몹쓸 병에 걸려 저 지경이 됐지만 마음만은 제일 착하고 똑똑했다오 문둥병이라고 집에서 쫒아냈었는데 내가 늙고 외돌토리가 되니 나를 찾아 같이 살자 하고 하나님 잘 믿어 이 어리석은 애비까정도 교회로 인도해 주었다오 “
요석은 신도들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들으며 차츰 자신의 경박하고 조급스런 생각이 심히 부끄러웠다. 그들의 병으로 인해 일그러지고 노동으로 햇빛에 까맣게 그을러 쭈그러진 용모가 예수님이 가까이 사랑했던 그의 백성들이 아닐까. ‘ 병들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라, 그들에게 하는 선행이 곧 내를 대접하는 것이라. 고로 천국에서 큰 상이 있을것이다.’
요석은 비로소 자신이 신과 만나 손을 잡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큰 깨달음을 받은 날 밤 , 요석은 튀빙겐 대학 은사이던 위르겐 볼트만 교수에게 기나긴 편지를 썼다.
< 저는 비로소 신을 만났습니다. 신을 만나 두 손을 잡았습니다.
이제 제가 있을 자리와 할 일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저는 지금 신께 감사하고 신 안에 있어 행복합니다. >
그러나 요석이 머문 나환자 정착촌 영호교회에서의 생활은 지극히 가난하고 궁색했다. 교인들이 모아주는 성미쌀로 가능한 만큼 하루 두 끼, 김치나 나물 등으로 빈약한 식사를 하니, 몸은 날로 여위어 간다. 그러나 여위어 가는 만큼 내적으로는 충만한 주님의 은총을 느낀다. 결코 실망하지 않고 계속 기도로 신과 교류하는 내면은 더욱 풍요롭고 강인함으로 채워진다.
그런 중 갑자기 위르겐 교수가 요석을 찾아 왔다. 일본에 학술회의 차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에 잠간 들른 거라 했다. ‘ 과연 하나님과 손 잡고 산다는 요석의 생활이 궁금하던 까닭이다. 위르만 교수는 요석의 상상 이상으로 가난하고 궁색한 생활에 놀란다.
다음 날 새벽, 이왕 오신 길에 새벽 예배 설교 좀 해 주십사는 부탁에 그는 새벽 예배 강단에 섰다. 그도 역시 요석의 첫날처럼 강한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한 군데도 성한 곳이 없는 나환자들의 신앙과 열정, 놀랍도록 뜨거운 예배 분위기, 행복한 모습, 위르겐 교수는 바쁜 일정으로 당일 , 떠나며 문득 요석의 등 뒤에서 허리를 잡고 힘차게 안는다.
“ 당신은 내 제자이지만 나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
은사의 감동에 찬 이 말에 요석은 세상 어느 칭찬 보다도 더욱 뿌듯한 보람을 느끼며 감사한다.
얼마 후 독일 유학 초 때에 한 방 룸메이트였던 클라우드의 편지를 받는다. 그는 동기 중에서도 학업 성적도 좋고 언변 , 사회적 인간 관계, 어느 하나 빠지지 않던 뛰어난 인재였다.
‘ 난 졸업 후 가장 크고 잘 나간다는 유명한 교회에 목사로 있었네. 신도 수가 무려 5천 명 정도였지. 그러나 내가 부임한 지 삼 년 째, 날로 신도 수가 줄어져 이젠 겨우 3백 명 정도로 줄어 버렸네. 난 내 자신에 대한 실망과 회의에 빠져, 뭔가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네. 그래서 교수 자리는 어떨가 하고 모교를 찾았지. 거기서 전설처럼 떠도는 자네에 대한 얘기를 들었네. 자네는 하나님의 손을 잡고 목회를 이끈다는 교수님 말씀을 듣고 난 놀라고 믿을 수가 없었네. 그래서 부탁인데 나를 자네 교회에 부목사로 초청해 주지 않겠나 ? 자네 곁에서 함께 살며 배우고 싶네. 허락해 주게. ‘
요석은 그에 대한 답장을 썼다.
“ 여기는 매우 가난하고 외진 곳이라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은 언제나 가득하여 부족함이 없지. 대우로는 수입을 나와 똑같이 나누도록 하지. 거처할 집이나 먹거리도 매우 소박하고 단촐하다네. 그래도 좋다면 와서 함께 지내 보세.”
그는 자신의 몸무게가 150 KG이나 되니 다이어트를 위해서라도 꼭 와야겠다고 했다.
얼마 후 과연 그는 이 외지고 궁벽한 영호마을을 찾아 왔다. 파란 눈과 바랜 밀짚 같은 노란 고수머리, 자주색 쓰리피스 수트로 멋을 낸 거구의 외국인이 이 마을에 나타나니 온 마을 사람들이 잔뜩 호기심과 신기함으로 모여든다. 아이들은 노골적으로 가까이 다가가 양복을 슬쩍 만져 보기도 하고 얼굴을 빤히 올려다 본다.
“ 어서 오게 친구, “ 요석은 반가이 마주 얼싸안고 그의 트렁크를 들어 준다
“ 아니, 웬 짐이 이렇게 많은거야 ?” 대절택시에서 내린 트렁크가 대여섯 개는 된다.
“ 나는 넥타이를 매면 그에 맞추어 양복과 구두 까지도 매치시켜야 하거든 “ 그는 유쾌하게 웃으며 짐을 들고 목사관으로 들어선다.
“ 오 마이, 요렇게 좁은 방에서 어떻게 살지 ? 침대도 없고, 옷장도 없고, 오 지저스, 화장실, 목욕탕은 어디야 ?”
“ 그러니까 여긴 많은 짐이 필요없어. 구두 한 켤레와 양복 한 벌이면 그걸로 족해, 베스룸과 화장실은 바깥에 별도로 있지. “ 요석은 낙천적으로 웃으며 우물과, 별채로 떨어진 허름한 변소를 가리킨다. 클라우드는 쩝! 하고 난처한 듯 눈섭을 꿈틀대다 요석에게 다가와 작은 소리로 묻는다.
“ 근데 이 마을 사람들 왜 모두 음 -- 말하자면 왜 --- 병신들이지 ?” 하고 묻는다.
“ 이 사람아, 독일 속담에 ‘ 병신 눈엔 병신만 보이고 천사 눈엔 천사만 보인다’ 는 말 못 들어 봤어 하 하 “ 클라우드는 자기가 천사가 되기로 맘을 먹은 양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저녁상은 여느 때와 같이 밥 한 그릇과 김치, 그리고 물 한사발이다. 클라우드는 김치는 못 먹겠다고 사양하고 밥만 먹는다.
“ 그럼 왔으니 다음 주일엔 부목사인 자네가 설교를 해 보게.” 그러나 크라우드는
“ 우선 자네 설교부터 들으며 적응하겠네 “ 하며 사양한다.
“ 좋아, 그럼 우리 성경공부를 하세 “
클라우드가 가져온 성경은 히브리, 헬라 , 라틴어로 된 세 가지 성경이었다. 그리고 라틴성경을 펼치며 비판부터 한다.
“ 이보게 이건 번역이 잘 못된거 아닌가 ? 헬라어로는 이거 문법이 말이 안 되잖아 ? “
하며 온통 성경 글귀의 타박만 한다. 참다 못해 요석이 묻는다.
“ 여보게 , 그럼 자네는 교회에서 신자들에게 무엇을 설교했나 ? “ 그는 싱긋 웃으며
“ 나는 성경 그대로만 말하니까 믿고 안 믿고는 당신들이 알아서 하시요 , 했다네.”
며칠이 지나자 클라우드는 이 소박하다 못해 너무 열악한 식사에 심각한 허기를 느낀다.
“ 여보게 김목사, 배고파 죽겠어 뭐 좀 먹을 거 없나 ?”
“ 그래 ? 새벽 두 시에 일어나 함께 기도해 보세 , 아마 큰 은혜의 빵이 있을게야. “
클라우드는 좋아라 하고 과연 새벽 두 시도 되기 전 일어나 기다리고 있다. 요석과 그는 함께 기도하고 밖으로 나온다. 하늘에는 여느 때 보다 더욱 별들이 총총하고 대기는 서늘하고 달콤하다.
“ 어디에 빵이 있는가 친구 “ 클라우드는 재촉한다.
“ 이 세상이 전부 축복받은 빵이라네. 자네도 입을 크게 벌려 이 빵을 마음껒 먹게”
둘이는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깊게 들여 마신다. 그러나 역시 허기진 클라우드,
“ 자넨 이 공기만 마시고 정말 배가 부른건가 ?” 묻는다.
몇 달 후 어느날 , 주님의 축복인지 넉넉한 성미가 들어왔다. 클라우드가 더욱 기뻐한다.
“ 우리 오랜만에 이 쌀로 밥을 많이 해서 싫컷 먹어 보세. “ 요석은 망서린다. 갑자기 과식하면 좋지 않은데 , 하며 경계하였으나 클라우드는 일단 그 쌀로 몽땅 밥을 한다.
갓 지은 말랑말랑한 밥에 김치를 잔뜩 넣고 - 이 때는 이미 클라우드도 김치니 뭐니 가리지 않게 되었다. - 썩썩 비벼 양껒 먹는다.
그 동안 절식으로 쪼그라든 위장이 갑자기 소나기 밥으로 그득 차 버리니 탈이 날 밖에. 클라우드는 밤새 화장실을 들락이며 고생한다.
새벽 예배를 보려고 요석이 문 밖을 나서는데 클라우드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요석은 잘 못 들은게 아닐까 하며 다시금 귀를 기울이는데 변소에서 들리는 클라우드의 비명,
급히 변소로 달려가 보니 ‘ 아, 가엾은 클라우드, 그가 재래식 변소 발디딤으로 가로지른 널판지에 겨우 팔을 걸치고 아래는 목까지 온통 똥통에 빠져 옴쪽달쏙 못 하고 있는게 아닌가. 그 육중한 몸무게에 견디지 못한 널판지가 부러져 그는 아래 통 속으로 빠져버린 것이다. 요석은 예배에 나가는 길이므로 그를 몸소 건질 수는 없고 우선 긴 장대를 그에게 주며 짚고 올라오라고 했다. 그는 꽁꽁 힘을 쓰며 겨우 올라왔지만 몸은 온통 똥물로 젖어있고 그 안에 있던 구더기들 까지도 ‘ 삼촌 ‘ 하듯이 스멀스멀 그에게 달라 붙었다. 그를 우물가로 데려가 물로 털어내고 닦아냈지만 워낙 털이 많은 그의 몸에 묻은 똥찌꺼기는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요석은 먼저 예배당으로 가서 새벽 예배를 인도하고 있던 중 그가 옷을 갈아 입고 천연덕스럽게 안으로 들어선다. 그러나 그와 함께 몰고 온 고약한 냄새, 비록 팔 다리, 얼굴 등이 신통치 않은 나환자들 까지 얼굴을 찌프리고 고개를 흔든다. 예배 후 요석이 물었다.
“ 클라우드 자네 냄새가 어찌 이리 고약한가 ? “
“ 그렇게 지독했나 ? 향수를 좀 뿌렸는데 “
똥 냄새와 향수, 두 조합은 너무 상극으로 더욱 고약하게 상충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 이 봐, 이 교회 안에서 너 보다 더 고약한 냄새를 피우는 사람이 어디 있나 ? 바로 자네가 제일 더러운 냄새를 피우는 병신이 아닌가 ? “ 요석은 웃으며 말한다.그는 다만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다음 날 한 밤중에 이 친구가 진지하게 요석에게 말한다.
“ 내게 성령의 불이 임하시나 보네. 내 몸이 뜨거워지고 있어 “ 요석이 그의 이마를 짚어보니 과연 온 몸이 뜨거운 열기로 예사롭지 않고 옷을 벗겨 맨 몸을 보니 살갗에 뻘긋뻘긋 열꽃이 솟아 있다.. 요석이 알기로는 온 몸이 똥물에 잠겨있는 동안 똥독이 올라 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친구는 요석에게 이마를 짚고 안수 기도를 해 달라고 한다.
평소 교회에서 아이들이 아프다면 알사탕을 하나 입에 물리고 이마를 짚어 기도해 주는 요석의 모습을 보았던 거다. 그럴 때면 이 친구는 병이 들었으면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가야지 무슨 미신적인 태도냐 하며 비방하던 친구였다.
“ 이 사람아, 자네의 병은 자네 스스로의 믿음으로 고치는 것일세, 예수님께서도 ‘ 네 믿음이 너를 구했으니,’하지 않는가 ? “ 클라우드는 또 다시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고생하는 중에 병은 나앗고 이 친구의 태도도 많이 바뀌고 있었다.” 아, 나도 어느 정도 성경 말씀에 믿음이 가네. 하나님도 계시고 예수님도 됐고, -----
그런데 성령님은 ? 성령의 불꽃이라니 이해가 안 되네 “ 하며 썩 납득이 안 되는듯 고개를 가로 흔든다.
어느 날 둘이는 산책을 나간다. 옆으로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올라갈수록 나무가 울창한 아름다운 숲이다. 제법 명소로 알려져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 요석과 클라우드는 운동삼아 산 위 정상까지 오른다. 요석은 비쩍 마른 몸에 강단이 있어 날렵하게 걷지만 클라우드는 중턱부터 헉헉대며 걸음이 느려진다. 걷기가 힘들고 지루하던 참에 갓길에 세워진 오토바이가 눈에 띈다. 일제 야마하 신형으로 산길도 달릴 수 있도록 제작된 육중하고 터프한, 유선형 몸체가 번쩍인다. 스피드광 클라우드가 무심코 지나칠 수 없다. 오트바이 주인을 찾아 언제, 어디서 , 가격은 얼마나 , 성능은 만족한가 하며 꼼꼼이 묻는다. 그리고 침을 꿀꺽 삼키며
“ 한 번 태워 줄 수 없겠나 ?” 하고 묻는다. 젊잖고 기품있어 보이는 이국의 신사에게 오트바이 주인은 쾌히 승낙한다.
‘ 친구, 난 모터사이클 타고 먼저 갈테니 천천히 오게나 “ 클라우드는 신이 나서 목소리가 한 톤 높아지고 눈은 활기로 반짝인다.
“ 이보게, ‘ 정든 님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 ‘는 우리나라 민요가 있네
나와 같이 천천히 걸어 가세나 “
한 시간 쯤 후 , 산 밑 평지로 내려오니 벌써 와 있어야 할 클라우드가 보이지 않는다.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는데 교회에서 낯익은 한 아이가 달려와선
“ 목사님 큰 일 났어요. 코쟁이 목사님이 개울에 빠졌어요 “
아이를 따라 계곡의 다리께로 가 보니 오트바이는 다리 난간에 기대어 있고 오트바이 주인은 이마에 약간 상처가 나서 피가 나 있다. 그런데 클라우드는 안 보인다. 어디에 있지? 그는 오트바이가 살짝 커브를 도는바람에 잘 잡지 않은 몸이 균형을 잃고 날라가 개울물에 빠진 것이다. 요석은 사람들과 함께 힘을 합쳐 물에서 그를 끌어냈다. 다행히 계곡물 있는 곳으로 떨어져 다친 곳은 없으나 흠씬 젖은 몸둥이를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충격이 크다. 요석은 파랗게 질리고 부들부들 떠는 그를 부축하여 숙소로 돌아왔다.
그 날 밤 또다시 클라우드는 열이 펄펄 끓으며 땀을 흘리고 온 몸이 불덩이가 되어 앓고 있다.
육중한 몸이 사오미터를 날라 물 위로 곤두박질을 쳤으니 온 몸이 타박상을 입어 결리고 쑤시고 져려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 다.
“ 여보게, 김목사 나를 위해 기도해 주게. “ 클라우드는 애처럽게 부탁한다.
요석은 그를 걱정하며 궁리하다 좋은 생각이 났다. 마을 어른을 찾아가 비장된 귀한 약을 좀 주십사고 부탁한다.
그 약이란 베보자기 씌운 항아리를 똥통에 깊이 가라앉치고 몇 년 동안 묵힌 다음,항아리에 걸러지고 숙성한 진국 똥물을 깨끗한 됫병에 담아두고 응급시에 사용하는 민간요법이었다. 이것은 넘어져 다친데, 또는 매 맞아 멍들고 골절되거나 내장이 다쳤을 때도 특효약이라고 전해져 웬만한 집에선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 친구, 이 약을 마시게. 아주 효과가 좋을거야. “ 요석은 그것을 한 사발 건넨다.
“ 이게 뭔가 ? 냄새가 고약하군, “ 클라우드는 미심적은 듯 얼굴을 찡그린다.
“ 입에 쓴 약이 몸에 좋은 거야, 어서 먹게 “ 그는 온몸의 통증이 더욱 고통스러운지 그것을 벌컥벌컥 마신다.
“ 아, 너무 이상한 맛이야. 사탕, 사탕 좀 빨리 줘 “
사탕을 입에 물고 그것이 다 녹기도 전에 클라우드는 혼곤한 잠에 빠진다. 숙성된 똥물의 독한 기운이 온 몸에 퍼지자 술에 취한 듯 통증이 잦아들고 깊은 잠에 빠져 드는 것이다.
이튿 날 아침, 클라우드는 거뜬이 일어난다.
“ 아, 상쾌하네, 어제 그 약이 효과가 그만인걸 , 그게 뭔 약인가 ? “
요석은 그의 얼굴을 피해 고개를 돌린다. 그의 입에서 나는 짙은 똥내를 견딜 수가 없어서다.
클라우드는 결국 똥물에 빠져 고생을 하고 그도 모자라 똥물까지 먹어 속을 다 비워내고 난 다음에야 현저한 변화를 보인다. 새로운 눈이 열린 듯 성경을 보고, 이런 구절이 다 있었나 ?
아, 그런 뜻이었군. 난 그걸 몰랐었어. 신기한 듯 성경을 열심히 읽는다. 생활 주변을 보면서도 아, 이런 아름다운 꽃, 새소리, 이런 곳서 사는 복 받은 사람들 ! 하며 감탄한다.
그 약이 성령의 역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해 주신게다.
그러나 아직 그는 설교할 자신이 없다고 한다.
“ 어떻게 해야 자네처럼 파워풀한 설교를 할 수 있나 ? 자네가 설교할 땐 말 끝마다 모두들 아멘, 아멘 하는데 나는 몇 년을 설교해도신자들로 부터 ‘ 아멘 ‘ 소리를 못 들어 보았다네 “
몇 달 전 자만에 가득찬 당당한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는 수줍고 소심하게 묻는다.
“친구, 설교는 입으로 하는게 아니야, 손과 발과 행동으로 전하는 것이네 “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
“직접 행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면 성령의 충만한 역사로 신자들에게서 ‘ 아멘’이 나온다네 “
클라우드는 한 일 년간 나와 함께 지내다 고향으로 돌아갔다.
목사로서의 그의 태도가 백팔십도 달라진 건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그가 돌아가서 시무하는 교회는 날로 부흥되고 신자 수도 크게 두 배나 늘었다고 한다.
이제 그는 맏음과 확신에 찬 훌륭한 목사가 되어 있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