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린 산  6  < 티벳 고승 릅상람파 >



요석이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꾸준히 구독하는 독일의 의학 정보지 ‘ 독일 의학 저널 ‘ 은 언제나 몇 달 지나서야  보게 된다. 계간으로 발행되는  이 책은 배편으로 오느라 한 두 달 느려지고 이 지방 영호우체국 사서함에서 또 몇 주  잠자다 어렵사리 요석이 읍내에 나갈 때에야  찾아 읽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소식이 늦다.

그런데 이번 책에서 급  관심가는 기사를 보았다.

중국에는 철저히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은밀한  나환자 집단촌이 있다는 것이다. 대략 추산한다면 약 삼 만명 가량의  환자들이 사회로 부터, 가족과 친지로 부터 완전 격리되어 의료혜택은 커녕,  먹는 것과 거주하는 곳도  인간 이하, 집승이나 다름  없는  매우 비참한 생활을 한다는 르뽀기사이다.

요석은 이 기사를 본 후  그 내용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 하나님, 내가 그들을 필요로 합니다. 그들을 찾아가 그들과 손 잡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이 몸을 헌신하며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다하고 싶습니다. 길을 인도하소서 ‘

영호교회는 요석이 십 년 가까이 시무하는 동안 많이 성장하고 체계도 잡혀 다른 어떤 목사님이 오셔서 사역을 하더라도 요석의 처음처럼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 나는 내 할 일이 있는 그 곳으로 떠난다.’


1980년대 중반  한국은 아직 중국과 수교하지 않아 정식 비자를 받는 건 불가능했다. 그리고 중국은 당시  등소평의 통치하에서 모택동 주도로 개혁된 공산주의 체제로 지배되고 있었다. 국호도 중화인민공화국, 보통 중공이라고 한다.


마르크스의 입장을 계승한 레닌이 ‘ 종교는 자본가들의 착취에 저항하려는 인민들의 의지를 둔화시키기 위해 제국주의자들이 제공하는 아편이라고 선전하는 말이 진리로 통하는 실정이어서 기독교는 엄격하게 통제당하고 억압당하고 있었다.

그런 현실에서 요석의 중국 선교의 소망은 험난한 가시밭 길이다. 그럼에도 어느 날 요석은

한 벌 옷,내복, 양말 몇 켤레, 성경책과 몇 권의 노트만을 챙겨 단촐하게 여행 길에 올라 우선 홍콩으로 향했다.



 그 곳에는  독일서 함께 공부한 중국 친구가 상해 대학 교수로  있어  그에게 초청장을  부탁하려는 것이다.

얼마 후 그 친구의 초청장으로  샹해에  건너간 요석은 그 친구에게 솔직하게 나환자 촌으로 들어가 선교를 하겠다는 목적을 말했다. 그 친구는 깜짝 놀라며  

“ 우리 중국에 나환자촌은 없네 “  딱 잘라 말한다.

“ 자네가 어찌 아나 ?”

“ 주은래 동지께서 우리 사회주의 복지 국가에서는 그런 병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교시를 발표했기 때문에 무조건 없다고 알고 있네. “

“ 자네 진정 몰라서 하는 얘긴가 ? 혹시 나를 자네 대학교에서 강의나 듣는 풋내기 학생으로 아는겐가 ? 나를 기만하지 말게 “ 요석은 목을 젖혀 껄껄 웃는다.

뭔가를 한참  생각하던 친구는

“ 잠간 !  좋은 생각이 있네 오늘 저녁 북경에서 온 동향  동무가 있어 ,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네. 그는 고위 공무원이거든. 뭔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게야. “

공무출장을 나왔다는 그 친구는 퉁퉁한 몸에 혈색 좋은 얼굴이다.  

요석의 교수친구가 요석을 소개한다.

“ 나와 독일에서 동문수학했지, 수재이고 성격 참한 진실한 사람일세. 지금은 한국에 돌아가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네 “

고위공무원이라는 그 친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요석을 찬찬히 살핀다.

“ 근데 무슨 일로 이 먼 중국까지 왔소 ? 목사님이 팔자 좋게 유람 다니실 처지는 아닐텐데.”

말투는 깐깐하지만 ‘ 푸하하 ‘웃는 얼굴은 호탕하다. 요석이 그의 진의를 파악하려 망서리고 있는 사이, 친구가 먼저 말문을 티어 준다. 둘은 아주 절친한 치구 사이인 듯하다.

“ 사실 이 목사동무는 문둥병 환자들이 수용된 나환자마을을 찾아 왔다네 . 그들을 돕고 싶어 하오. “

공무원 친구는 순간 정색을 하며 자세를 고친다.

“ 여기 문둥병 환자 있는 걸 어떻게 알고 왔습니까?  “ 그리고 좀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그는 당보건부에 소속된 공무원이라고 했다.

“ 그러나 나는 공무상 절대 말해 줄 수 없어요. “ 요석은 일단 그 곳을 알 수 있는 연줄을 잡았다는 생각에 얼마간 마음의  여유를 찾아 그를 보며 유감스럽다는 듯  웃는다.

주문한 요리들이 들어오고 분위기도 한결 부드러워진 후, 느닷없이  그가

“ 이봐요, 목사동무, 목사는 술을 안 한다지요 ?  “ 그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요석을 마주 본다.

“ 글쎄 아직 마셔 본 적은 없소만 “

“ 우리 술 마시기 시합해서  당신이 이긴다면 내가 그 곳을 안내하겠소  “

고위 공무원 실력자라 그런 자신감이 있는건지 참 묘한 타협안을 낸다.

요석은 옛날 바울을 생각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할 수 있다면 날 지옥 보내라고 까지 기도했는데,--- 이 술을 마셔야 저들을 도울 수 있다면 하나님 날 용서하십시요, 마셔야 되겠습니다 아멘. 속으로 기도하며 비장하게 그러자고 했다.

“ 자 그럼 한 잔씩 따르겠습니다. 원샷으로 해야 합니다 “

친구는 둘 사이의 대화를 좋아라 들으며  가장 독한 빽 주를 맥주 잔에 콸콸 따른다.그리고  알콜농도를 시험한다며  술잔에 불을 확 부친다 찰랑거리는 투명 액체 위에 파르스름한 불꽃이 타오르며  꺼지지 않는게 신기하다. 사실 요석은 이런 술자리는  난생 처음이지만  피할 수 없는  모험이다. 그들은 각자 잔을 들어 마신다.

 공무원 친구는 술이라면  어지간히 자신이 있는지  , 느긋하게 두 잔 째. 또 세 잔 째.

요석은 생전 처음 마시는 술인데 ‘ 아, 이게 물 아냐 ? 진짜 술이야 ? 분간할 수 없도록 시원하게 넘어 간다. 마른 논에 물 대듯 온 몸이 기분좋게 이완되고 머리 속은 더욱 명징해 진다.

요석도 거뜬히 세 잔 째를 비운다.

“ 아, 술이 다 떨어졌군요, 더 하시렵니까? “ 요석이 공무원 친구에게 묻는다. 그는 얼굴이 더욱 붉어지고 코 끝도 빨갛다. 뜬듯 감은듯 게슴츠레한 눈이 요석을 야릇하게 바라 본다

“ 그렇게 마시고도 당신 정말 괜찮은 거요 ? 당신 가짜 목사 아니요 ?”

“ 저는 물론 괜찮습니다. 그리고 저는 신학교를 나와 이제껒 목사로 지냈지요”

“ 맞아 맞아, 저 동무 진짜 보수 목사야, 고집 때문에 교수님들 애 좀 먹였지 “

요리를 열심히 먹던 교수친구가 힘찬 소리로 보증을 해 준다.

공무원 친구는 꽤나 호승심이 강한지  계속 네 잔 째를  마시다 결국  무리였는듯 식탁에 엎어 진다. 요석은 네 잔 째를 마져 다 마시고도  잔잔히 앉아 있다.

“ 대단하네 요석동무, 자네는 꼭 뜻을 이룰 것일세. “ 교수 친구는 요석의 어깨를 툭툭 친다.

“ 고맙네 친구, 하나님이 자네에게도 축복을 주실게야.”

다음 날 아침 일찌기 누가 찾아왔다는 연락이 왔다. 로비에 나가 보니 어제의 공무원 친구가 말쑥하게 옷을  차려 입고 요석을 찾아 온 것이다. 그는 진지하고 공손하게 두 손을 가슴께에 모으고  허리  굽혀 절을 한다.

“ 대인님, 편안하게 잘 주무셨습니까? “  요석도 마주 인사하자,

어제는 제가 결례를 많이 했습니다. 약속대로 대인님이 가시고자 하는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하는 것이 아닌가 .


그를 따라 행정구역 라오닝성 까지 따라 왔다.

과연 그는 꽤 높은 공직인듯 사람을 불러 지시를 한다.

다음 날 , 지시받은 이와 함께 몇 시간인가 차를 타고 다다른 곳은 높은 담에  육중한 대문으로  경비가 엄중하다. 대문을 들어서 메마른 황토길을 한참 달리니 < 통제구역 >이라는 경고판이 보이고 굳게 문을 닫은 건물이 보인다. 안내하는 이는 위생복과 마스크를 쓰고 요석에게도 위생복으로 덧 입을 것을 강요한다. 그러나 요석은 어서 그들을 보려는 성급함으로 불쑥 문을 열고 들어선다

세상에나 , 요석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본다. 어둑한 실내에 수많은 팔 다리 없는 사람들이 그냥 딩굴면서 긴 죽통에 얼굴을 쳐박고 핥아먹고 있는것이다. 그들은 팔다리가 없으니 뱀이 기어가듯 배로 기어가며 눈알도 다 빠져  코로 냄새를 맡으며 먹을 걸 찾는다.

요석은 하도 기가 막혀 그 중 한 사람을 끌어안고 앉치려고 하니까 경비병이 와서 요석을 끌어 낸다. 다음으로 가서  본 곳은 그래도 상태가 낫다는 사람들이지만 눈이 없는 사람 팔 다리가 하나씩 없는 사람,  

너무도 참혹한 그 모습에 눈을 돌리던 요석은 어디선가  귀에 익은 아리랑 노래를 듣는다.

이국 땅 이 비참하고 처절한 곳에서 아리랑이라니, 요석은 놀라 소리나는 곳 따라 눈을 돌린다.

두 눈은 장님이고 한 팔, 한 다리가 떨어져 나간 백두난발의 할머니, 그는 목소리만은 낭낭하게 아리랑 노래를 부르고 있다. 요석은 다가가

“ 할머니 한국에서 오셨어요 ?” 하고 묻는다

“ 아니요, 난 조선에서 왔어요.”

“  일제 때 왜놈들 수탈에 못 견뎌 간도로 피난 와 살다가 내 나이 열 네 살에 문둥병에 걸려 이 곳으로 왔다오 그게 사십 년이나 됐어요 ”

할머니의 기억과 말소리는 외모와 달리 정확하고 똑똑하다.

부모님은 어디 계시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그 할머니 어린애가 되어

“ 우리 엄마, 우리 엄마 ! 엄마 찾아 줘요 “ 하고 울부짖는다. 엄마를 부르는 그 목소리는 그녀가 열 네 살 때 내던 아이의 목소리로 바뀌어  얼마나 애처럽고 구슬픈지 요석은 위로할 말이 없어서 다만 그 할머니의 손가락  잘라진 손을 잡는다.  그런데 갑자기 요석의 손등이 불에 데인듯 뜨겁다. 그 할머니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 , 사람의 눈물이 이렇게도 뜨거울 수 있다니. 요석도 그만 눈물이 흘러 그 할머니를 감싸고 함께 울고 말았다. 엉엉울던 할머니가 갑짜기 묻는다.

“선생님은 뭐 하시는 분이요 ?”

“ 아, 나는 예수 말씀 전하는 사람입니다”

“ 예수가 뭡니까? “

“ 예수님은 우리가 병 들지 않고 죽지 않게 하시는 분입니다.” 할머니는 가만히 있더니

“ 선생님 나같은 병신도 그런 분 알 수 있을까요 ?”

“ 아 물론이지요 “

“ 어떻게요 ?”

여기는 교회도 없고 인도할 만한 교역자도 없다.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 할머니, 마음 속으로 하고 싶은 말 다 하세요, 그리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하시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대답하십니다. "

그리고 거기서 돌아나오려는데

“ 선생님 또 오시지요 ? “ 하고 묻는다.

사실 요석은 이 곳의 너무도 더럽고 비참한  모습에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셔 버렸다.그러나

“ 예 언제 기회가 되면 또 오겠습니다 “ 하고 문을 나섰다.




요석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괴상한 스님 친구가 있다. 요석이 영호 교회에 처음 부임하여 옹색하게 살고 있을 때, 느닷없이 찾아와 인사를하며 친구 삼기를 청한 사람이다.

체구가 장대하고 눈이 퉁방울처럼 툭 불거져 디룩디룩하는 양이 절간에서 조용히 수행하는 스님이 아니라 유리걸식하며 시비나 붙는  왈짜패 같은 인상이다. 요석이 방문 밖 인기척에 문을 여니  다짜고짜 떡하니 들어 와 좁은 방이 그득하도록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그리고  도무지 갈 생각은 안 하고 횡성수설 도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

‘ 이 양반이 나를 개종시키려 온 것인가 ?’ 하는 의심마져 들게 혼자서 주절댄다.

“ 색, 색계라는 말이요, 색즉시공이란 말도 있지 않소 ?  그 세상이 참으로 깊고 오묘하더란 말이요. 허 허 “ 하며 그는 요석을 흘긋 바라 본다.

요석은 이상하게 틀어지는 말길을 돌리기 위해 흐르는 물처럼 제법 가락을 넣어서  말한다.

“ <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반야심경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해석하자면 ‘ 사리자여 , 물질이 빈 것과 다르지 않고 빈것이 물질과 다르지 아니하며 물질이 곧 비었고 빈것이 곧 물질이니 감각과 생각과 행함과 의식도 모두 이와 같다 ‘ 라는 뜻이지요 “ 그는 후다닥 놀란다.

“ 당신도 불경을 배웠소 ? “

“ 신학에서는 세계의 모든 종교에 대하여 두루 알아 둡니다. 제가 불교에 관심도 있었고요 “

땡중은 아직 일어설 생각을 안 한다. 해가 비스듬히 기울어 저녁상 들어 올 때가 다 되 어서 가 주었으면 하고 생각했으나 그여이 밥상이 들어 올 때까지 버티고 있다.  밥상에는 여전히 밥 한 그릇, 김치, 나물 한 접시와  물 한 그릇이  있다.

“ 스님 소찬이지만 같이 드실까요 ? “ 인사차 묻는데 그는 얼씨구 반기며 상 앞으로 다가든다. 하는 수 없이 밥을 반으로 딱 갈라 반은 주발 뚜껑에 담아 자신 앞에 놓고   밥그릇은  그 앞으로 밀어 논다. 그는  밥상을 둘레둘레 보며 “ 어찌 남의 살 한 점도 없누 ? “ 묻는다

“ 스님이 고기도 먹습니까 ?” 요석이 묻자

“ 득도성불한 사람은 온갖 세속의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존재라오 , 난 없어서 못 먹어요 으 하 하  곡주도 있다면 두주불사하지요.”

그러나 그는 떠나기 전 정색하고 옷깃을 바로 잡은 후 , 요석에게 큰 절을 한다.

“ 소승의 이름은 겸허라 하오. 오늘의 허풍과 치졸함을 용서하소서.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며 자주 찾아 뵙겠습니다 “ 두 손 합장하고 다시 한 번 머리를 숙인다.

과연 그 후로 가끔 찾아와 격의없는 대화로 둘은 스스럼이 없다.

언젠가 그는 말했다.

“내가 소싯적  인도와 티벳에 갔었소. 내깐에 여래불님께 더 가까이 가서 그 가르침을 배우고자 소망했지요 , 그 때 난 한 현자를 티벳에서 만났어요.  이름이 릅상람파라 하오. “

요석이 중국으로 떠난다고 하니 그는 릅살람파의 주소와 서찰을 하나 써 주며 꼭  찾아 가  자기 안부도 전해 달라고 했다.



중국 나환자 집단 거주지를 찾아 보기는 했지만  너무 비참하고 열악한 환경에 크게 실망하여 되돌아 나온 요석은 마침 겸허스님이 일러 준 티벳 고승 릅상 람파를 생각하고 그를   찾기로 했다.

중국 서북 쪽 티벳 자치 지구로 들어서니 푸른 초원이 펼쳐지고 양이나 라마 떼가 구름처럼 널 려 있다. 그러나 차츰 붉은 황토흙과 바위들이  많이 드러나는 산악지대로 들어선다. 1960 년 대 쯤의 낡은 버스는 허름한 주민들을 빽빽이 태우고 좁다란 산길을 익숙하게 달린다.

요석이 쥐고 있는 주소는 별로 효과가 없다. 스님의 이름 릅상람파라는 스님을 찾으니 수월하게 길이 열린다. 깍아지른 절벽에 까치집 같이 붙어있는 고찰, 그러나 막상 들어가 보니 이천 년 세월의 유래가 과장이 아닌듯 건물이 깊고도 융숭하다. 절벽을 의지해 지은 기다란 건물에는 화랑을 통한 수많은 방과 넓은 강론방. 거기에는 어린 학승들이 주홍색 가사를 걸치고 열심히 불경을 외우거나 베끼고 있다.

요석은 겸허스님의  서찰을 상좌에게 보내 한 번 만나 뵙기를 청했다. 이틀 지난 다음에야 주지 스님 릅살 람파의 부름이 있었다.  릅상람파도 조그마한 간소한 방에 거처하고 있다. 몸도 가냘퍼 어린 소년만 하고 감은듯 뜬 눈은 흰 눈섭 밑에 매섭게 빛을 발한다. 우선 둘은 아무 수인사도 없이 서로 마주 바라보고만 있다. 한 시간 쯤 지나자 비로소 릅상람파 주지스님이 입을 연다.

“ 당신의 영과 나의 영은 다른데 왜 이 먼 곳 까지아무 대화가 없엇  나를 찾아 왔소 ?” 요석은 서슴치 않고 대답한다.

“ 예 저도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마는 당신의 영과 나의 영이 무엇이  옳은  영인지  알고 싶어 찾아 왔습니다.”

“ 아, 그러오 ? “ 잠시 지난 뒤 주지 스님이 말한다. “ 그렇다면 며칠 후 다시 만납시다 “

열흘 쯤 후 그는 다시 요석을 불렀다. 그는 뭔가 혼자 주문을 외우며 요석에게는 아무 말이 없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러 갔다. 거의 다섯 시간 쯤 흐른 후 주지 스님은 종이와 붓 먹물이 담긴 벼루를 앞에 내 주며 둘이 함께 나눈 얘기를 써 보라 한다. 대화 없던 다섯 시간의 대화 내용이라 ?요석은 갸웃 생각하다 한 글자를 써서 그에게 주었다. 그 종이를 물끄럼히 보던 릅살람파 주지 스님은

“ 당신 얘기가 듣고 싶소  얘기하시요 “ 한다.

요석은 준비해 간 성경을 꺼내어 창세기 부터 하나님의 역사를 얘기한다. 당대 최고의 고승 앞에서 성경을 설파하다니, 놀랄만한 상황에서도 요석은 무슨 뱃짱인지 조금도 망설임이나 당황함 없이 차분하다. 한참 얘기를 하던 중 , 릅상람파 스님이 손을 들어 요석의 말을 막는다.

“ 그 성경을 좀 보여 줄 수 없는가 ?”

요석은 성경을 그에게 맡기고 주지스님의 방을 물러 나온다.  그리고 다시 부름이 있기를 기다린다.그러나 릅상람파는 두문불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요석이 묶고 있는 객사에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스므 살 남짓 , 체격이 건장하고 얼굴도 수려하다. 그러나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지 늘 옷을 벗고 장발 머리를 풀어헤친 채, 경내를 휘돌아 다닌다. 사람들을 보면 욕을 하고 흙이나 오물을 던지며 사납게 구는 바람에 모든 이들이 이를 피한다. 하루는 요석이 절 뒷 편 언덕길을 산책하고 있는데 그 청년이 뒤에서 슬금슬금 따라 온다. 역시나 벌거벗은 몸에 신도 신지 않은 맨발로.

“ 여보게 청년 , 자네 나와 함께 걷고 싶다면 가서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나를 따르게 “

과연 다음 날 그 청년은 옷을 단정히 입고 신도 신고 요석을 따르는게 아닌가 ? 그 뿐 아니라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나와 보니 방 문 앞에 세수물을  떠다 놓고 요석의 흙 묻은 신도 깨끗이 닦아 마루 아래 두었다. 절 안 모든 스님들이 놀라며 요석에게 말한다.

“ 선생님의 영이 저 젊은이의 영을 바로 살린 모양입니다. 함께 기거하신다면 더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 “ 요석은 그들의 부탁대로 그 청년을 자기 방에 함께 지내게 했다.  

한 삼주 지나니 청년은 아주 멀쩡하게 제 정신이 돌아와 제법 책을 들고 글을 읽는다. 요석은 그에게 저녁마다 성경을 가르쳤다.

“ 자네는 지혜롭고 마음도 선하구먼. 이제 집으로 돌아가 자네의 길을 찾아 가게" 요석은 그에게 부드럽게 권한다.

“ 선생님, 지금 떠나기는 서운합니다. 열흘만 더 있게 해 주십시요 “

열흘 후 절을 떠나며 청년은 간곡하게 말한다.

“ 선생님 돌아가시는 길에 우리 집에 꼭  들러 주십시요, 선생님의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

“ 은혜랄 것 까지야, 허나 지나는 길이 있으면 들러 보겠네 “


두 달이 지난 후 릅상람파 주지스님이 요석을 찾는다. 요석을 보자스님은

“ 이렇게 바른 진리를 왜 이제야 가져왔소 ? 이천 년 넘은 진리를 이제야 알게 되었구려  “ 하며 길게 탄식한다. 요석은 그의 놀라운 말을 들으며 어떤 지혜로운 말로 대답을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 하루가 천 년이요, 천 년이 하루로다 “ 하고 댓구로 화답한다.

스님은 무릎을 탁 치곤  주름진 얼굴에 눈이 푹 파묻치도록 웃으며

“ 바로 그거요 ,” 하며 새삼 두 손을 합장하고  고개를 숙인다.

“ 내 너무 기뻐 당신에게 선물을 하나 하리다 “ 하고 오래 된 상자를 내 놓는다. 뚜껑을 여니 새까맣게 때에 절은 뼈피리가 나온다.

“ 이건 내 스승의 다리뼈로 만든 귀한 피리요, 내가 열 살 때 출가하여 스승님이 입적하실 때까지 모셨어요. 돌아가시며 이 귀한 것을 내게 주셨다오 “

티벳은 그 때에도  전통 장례의식으로 조장을 했다. 사람이 죽으면 높은 산 위로 시체를 모셔가서 옷을 다 벗기고 뼈에서 살을 알뜰하게 발라내  공처럼 뭉쳐서 이 뼈피리를 불며 하늘로 던진다. 피리 소리에   근처에 독수리들이 몰려와   사람의 살을 먹는다. 사람 육신 중 가장 튼실한 다리뼈만 남긴 채 모든걸 잘게 쪼아 독수리에게 먹이로 던진다. 무에서 온 인생 남겨지는  육신마져 자비로운 보시하여 철저한 무로 돌아간다,  다만 남겨둔 다리뼈는 가까운 제자나 친인척에게 선물로 전한다는  것이다.거기에 구멍을 뚫고 피리를 만들어 간직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가장 자랑스럽고 소중한 보물이라는 것이다.



요석은 자신의 전도에 너무 감사하고 흡족한 마음으로 산을 내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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