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석은 쉬지않고 학문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가끔은  조용한 시간을 틈타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긴다. 얼굴도 모르고  희미한 실루엣만으로  남은  부모님을 찾아 대화를 청한다. 하노라면 옆으로 성령님의 잔잔히 미소짓는 모습도 느껴진다. 요석은 이런 시간을 자주 가질수록  정신영역이 확장되며  시공을 초월하는 감각능력이 더욱 진보됨을 느낀다. 비현실적인 느낌따라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이해와 긍정, 확신. 남들은 쉬이 느낄 수 없는 사유의 공간이다.

요석은 재학 중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하며 유학 준비도 차근차근 해 둔다.

고교 때 부터 제이 외국어로 독일어를 선택하여 기초나  문법체계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위에  실생활에 적응하는 듣기, 말하기, 독해력 어느 한 가지도 소홀하지 않는다 . 더하여  유럽 언어권의 대세인 불어나 이탈리안 서반아어 까지도 열심히 습득해 둔다.

그리고 유학의 목표 코스로는  신학에 관한 한 , 종교개혁의 진원지로  많은 신학자들을 배출한 독일의   본고장으로 가고 싶다.  신학에 관한 더욱 깊고 진지하며 온전한 모든 것을 배우고자 하는 열정으로 고대 히브리어나 또는 헬라어 까지도 해독하려 노력한다.

그리하여  긍극적으로 자신이 나아갈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길을 찾으려고 한다

.

과연 노력과 준비한 보람이 있어 국가에서 치루는 국비 장학생에 선발되었다.

독일로의 유학의 길이 열린 것이다.

독일로 떠나기 며칠 전 요석은 하직 인사로  외삼촌댁에 들렀다.

여전히 반겨주시는 외삼촌 내외, 요석은 고맙고 기쁜 마음으로 꿇어 엎드려 머리를 깊숙이 숙인다. “ 모두 외삼촌과 숙모님의 정성 덕분입니다. 은혜가 큽니다. 고맙습니다 “

“ 아니제, 네가 잘 해 왔지 않은가 ? 하나님의 보살핌이 크신게다. “

예전이나 변함없이 정갈하고 조촐한 집안은 세월의 자국으로 조금은 피폐하고 ,그처럼 외삼촌과 외숙모님도 세월 속 바람을 비켜 갈 수 없드시   주름살 늘어난  모습에 마음이 싸아하니 아프다.

“ 외삼촌 제가 공부 마치고 올 때 까지 건강하게 잘 계세요. 제가 돌아와서 잘 모실께요. “

“ 우린 잘 산다 ,우리 내외 걱정말고 네나 몸 성히 잘 다녀오거라. “

“ 먼 타국나가면 먹는 것도 마땅찮고 의식주 어케 살거나, 이불이랑 챙겨주랴? “ 외숙모님도 걱정이 많다.

“ 숙모님 짐되는 건 안 갖고 갈깁니다. 젊은 놈이 뭐 가릴게 있겠습니까? 그리고 나라에서 장학금으로 생활비까지 넉넉하게 주어서 사는건 문제 없십니다. “

외삼촌은 만족한 얼굴로

“ 그래, 그래 애썼다. 네 부모님도 하늘나라에서 기뻐하실꺼로,

우리 늙은 내외나 너도 하나님께서 잘 지켜 주실께다. 모든걸 주님께 맡기고 각자 맡은 직분들을 열심히 준행하자, 그리고 다만 기도, 늘 기도 ,우리 합심하여  항상 기도하자꾸나 “


튀빙겐 대학, 독일 중부에 작은 도시 튀빙겐에 위치한 이 곳은 거의 천년의 역사를 지닌 유서깊은 대학이다. 신학부가 주축을 이루고 의학부와 법학부도 우수한 실력을 자랑한다.

별다른 큰 건물은 없지만 아기자기 예쁘고 고풍스런 목조건물들이 정연한 도시,여기저기에 대학 건물과 기숙사 등이 산재해 있고 주민들과 여러 곳에서 모여든 젊은 학생들이 공존하여  고요하고 평화스럽게 살아가는 그 도시는  그림처럼 아름답다. 언덕위에 우뚝 선 오래 된 켓슬, 도시 외각을 감싸고 흐르는 맑고 투명한  강 , 젊은이들이 공부에 지친 머리를 식히기에도 좋은 환경은 요석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준다.  ‘ 이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 참으로 고맙습니다’ 요석은 입 속으로 가만히 외친다.


세미나가 열린다고 한다. 초빙교수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신학자  < 칼바트 >.

 신약 성서에 대한 수많은 저술로 1970 년대에 세계적인 명성을 날렸고   특히 로마서를 집중  해설한 그의 로마서 해설집은  모든 신학자들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세미나 안내 팜플렛에 새겨진  그의 사진, ‘ 어, 낮 익은 얼굴 , 이 분이 아직 생존해 계시다니 !  ‘ 요석은 저으기 놀란다. 요석의 머리에 기억되는 생생한 기억 ,    요석이 중학교 시절 어느 일요일,  목사님은 설교를 끝내고 강대상에서 내려오시다가  문득 신문 한 장을 펼쳐 어느 한 컷의 사진을 보이시며,


“  이 사람은 신학자이고 목사지만 반드시 천국이 아닌  지옥으로  갈 사람입니다. “ 하는 것이다. 어린 요섭은 그 사람이 지옥 갈 사람이라면 혹시 머리에 뿔이 났을까 ? 하는 궁금증이 나서 목사님을 따라가 다시 사진을 보여 달라고 했다. 기억에 각인된 그 이름, 칼바트, 어린 요석은  그가 아마  담배를 끊지 못하고 늘상 파이프를 물고 있어서 지옥 갈 사람이라고 했나 ?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가 아직 그것도 이 도시에서  생존해 계시다니. 그리고 그를 실제로 만날 수 있다는게 꿈만 같다.


요석은 그에게 꼭 확인하고 싶었다. 기대했던 세미나가 끝난 후 그를 따라가  짧으나마 기회가 있었다.

“ 선생님, 반갑습니다. 한 가지 여쭙고 싶어서요 , “  

“ 뭔가 말하게 “

“ 제가 열다섯 살 때, 우리 목사님이 신문에 난 선생님 사진을 보이시며 이 사람은 지옥 간다 . 하셨는데 선생님, 지옥 갈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 “ 했다. 독일 말은 참으로 냉혹하고 직선적이다. 에둘러 하는,  보다 부드럽고 은유적인 표현이 부족하다. 해서  참으로 난처한 질문을 그대로 직선적으로 할밖에.

노교수는 순간 표정이 굳어지며 눈을 감는다, 그리고 잠시 후 망설이며  말한다.

“ 내가 지금 바쁘고 피곤하여 길게 얘기할 수 없구만, 다음에  다시 연락하지 “

일주일 후 요석은 다시 그 노학자를 찾았다. 그는 저 번 보다 훨씬  평정을 찾은듯 보였다.


‘ 나는 신약을 평생 연구하고  여러  주석과 해석을 달아 많은 저술을 하였네, 그 때 나는 아직 젊었고 자만으로 가득 찼었다네. 내게 어떤 오류가 있으리라곤 전혀 의심치  않았지.

그러나 내 신학 성경에 대한 해설이 하나님 뜻에 맞지 않았던 점도 있지 않았을까.  내 깊이 생각해 보니 그 자만과 오류를 자네 목사님이 바로 짚으셨는지도 모르겠네  “

그 노학자는 매우 곤혹스러운 얼굴로 그러나 담담하게 말한다.

“ 지금은 그 자만과 치기를 깊이 부끄러워 하고 후회하고 있다네. 판단은 주님께서 할 일, 남은 인생에서 더 이상 죄짓지 않고  다만 회개하며 겸손하게 살려하네. “

요석은 노학자의 진심에 찬 깊은 회한과 겸허의  목소리에 질리고 말았다. 그가 예상한 건 기껒해야

“ 우하하 ! ! 내가 아직 담배를 피고 있어서 자네 목사님이 꽤 눈꼴이 시었나부지 “ 이런 가볍고 유머러스한 반응이었는데 너무 무겁고 진지한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신약학을 강의하는  위르겐 몰트만 교수, 그는 신학부 교수 중에서도 가장 존경받고 인기있는 유명한 교수이다. 그의 강의 시간에는 신학부 학생 뿐 아니라 의학부 법학부 학생 대학원생 , 심지어 목사 시험을  통과한 수많은 학생들이 몰려와 열강한다.

어느 날 그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 , 교단 앞에서 두터운 성경책 을 번쩍 들고 말한다.

“ 여러분 이 안에 가득 적힌 기록과 내용들을 믿으십니까?”  

한 이백여 명이 모인 ,일층과 이층이  툭 트여  넓은 강의실 안은  다만 조용할 뿐이다. 그 정적이 요석에게는 너무도 길고 답답한 시간이다. 중간 쯤 구석에 앉아있던 요석이 손을 번쩍  든다.

“ 그 기록들은 비록 사람 손에  쓰여졌지만 분명 성령으로 쓰여졌다고 선지자들이 증언 했습니다. “

조용하던 모든 학생들의  눈이 그에게 쏠렸다.

위르겐 몰트만 교수도 그를 유심히 바라  본다.

“ 당신은 독일인은 아니고--   아시아에서 왔소 ?

“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

“ 흠, 한국은 아직 샤머니즘과 원시종교에 젖어있어서 이걸 무조건 믿는 모양인데 당신이 여기서 신학을 잘 배워보면 아마 믿을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될거요. “

그리고 그는 대중을 향하여 큰 소리로 말한다.

“ 여러분 이 책에서 믿을 건 앞뒤에 있는 검은 색 가죽장정 뿐 , 내용은 아무 것도 믿을게 없습니다 “

하고 단정해 버린다.

요석은 전혀 이해가 안 되었다. 내가 혹 독일어가 서툴러 잘 못 이해한 것인가 ?

집으로 돌아와 룸메이트 클라우드에게 묻는다

“ 내가 잘 못 이해하고 있는건가 ?”

아니, 너는 잘 이해하고 있어 , 근데 뭐가 문제지 ?

“ 성경을 믿지 않으면서 왜 신학을 하지 ?

클라우드는 요석이 제 정신인가 하는 얼굴로 심각하게 들여다 본다. 요석은 흐트러지지 않은 맑은 눈으로  진정이 가득한 의문을 띄고 있다.요석의 진의를 알자 클라우드는 현실에 몽매한 그를 측은한 듯 바라본다.


“ 신학은 틀림없는  제일 고급 학문이지.  학문은 높은데 성경과 신학을  별개로 생각하는거야. 성경에 기록된 연대적 의미, 과학적인 근거 앞 뒤의 인과관계, 그게 모호하기만 하거든 .그걸 누가 믿겠어 ? 우리 신학생들은 이상은 높게, 가슴은 차갑게. 성경을 대하지. “ 하며 어깨를 으쓱한다.

그럼 왜 굳이 믿지도 않으면서 신학을 하는건가  ?”  요석은 묻는다.

“ 그건 대개 스팩의 문제지.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시험에 합격하여 목사가 되면   공직에 우선권으로 진출하여  대우도 좋고 존경을 받거든, 귀족집 딸과 결혼하여 신분상승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생기고 말야  하 하,“

사실 당시 독일이나 영국 유럽권에서는 교구제로 나누인 교회에  나라에서 선출한  목사들을   지역따라 임명하여 관할 구역 신도들에게 각종 신권 행사를 위임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유아 출생신고  세례의식이나 혼례 진행, 또는 장례의식까지 서민들 생활과 밀접한 신권행사를 총괄하고 있으니 이는 바로 상당한 명예와 권위가 되는 것이다.


요석은 새삼 룸메이트 클라우드 디터 그레스를 찬찬히 살펴 본다. 허우대 당당하고 반짝이는 푸른 눈 , 최신 유행하는 멋스러운 스트라이프 통 좁은 바지가  그에게  잘 어울린다.


힉교 생활에서 더우기  요석을 혼란스럽게 하는  건 그 당시 즉 1960~70 년 대를 휩쓸던 사회주의 신학 또는 막스주의  신학의 거센 물결이었다. 심지어 위르겐 교수는 사회주의 유물론을 주창한 칼 막스를 신약성서의 사도 바울의 대를 잇는  위대한 사도라고 찬양하는데도 그에게 이의를 다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심하게 말해서 당시 분위기 신학은   신은 없다고 여기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다만 성경을 학문적 연구의 대상으로 생각하며 예수는 평화공존의 이상 실현을 위한 철학적이며 개혁적  변론가로 그가 말한 각 구절을 해부학적으로 조직 분석하는 교의적 신학이었다.

요석은 유년시절 부터 마음 깊이 심어지고 성장한 신앙이 여기에선 너무도 다른 시각에서 연구되고 다루어지고 있는 현실이 생소하고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저항을 느낀다.

어느 날 그는 다시 위르겐 교수를 찾아갔다.

“ 아, 자네 삼위일체 성령의 존재를 믿는 보수주의자 젊은이. 그래 자네가 그토록 그를 믿는다면 내게 그 증거를 보여 주게. 그를 본 일이 있는가 ? 그와 손을 잡은 적이 있었나 ? 그와 대화한 적이 있었나 ? 그 증거를 내게 보여준다면 내 자네와 다시 얘기를 하겠네 “


요석은 사실 위르겐 교수가 요구하는 실체를 확신있게 말할만한 근거가 없었다.

막연하게 위로와 격려의 따뜻한 느낌을 받으며 나름 소신을 가졌으나 구체적 시각, 청각, 또는 촉각의 경험은 없다 즉 신에의 느낌은 내부로 부터 느끼는 것이지, 외부로 실증하기는 어렵다.

대답을 하지 못하고  물러난 요석은 그러나 일말의 확신은 일단  마음 속에 깊이 접어  둔다.그리고 시류에 따라 환경에 따라 수많은 신약 해설집과  종교적  고전 성경 기록을 치열하게 파고 들며 세밀하게  조직 분석하고 유대 역사를 통시적 안목으로  연구하며 구약 성서의 연대기와 대조해 가며  조사한다.

 그러며 칠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는   각별한 관심으로 지도해 준 위르겐 교수의 촉망받는 제자로 인정되고 그의 강력한 서포트로  박사 학위를 획득하였다.


그리고 본국 ㅅ 신학대학에 초빙되어 한국으로 귀국한다.  그 곳서 < 조직신학 >과목을 강의하는 교수로 재직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신학대학 분위기는 독일과는 또  다르다. 학생들이지만 이미 교회 부목사를 하는 이도 있고, 여가를 이용하여  개척교회나 , 작은 교회에 전도사로 봉사하는 이들이 많았다.

따라서 이들에게  성경 구절을 낱낱히 이론적으로 해부하고 진위를 논한다는게 도무지 먹혀들지 않고 강의 시간은 냉냉하고 허망하기만 하다.  이들의 뜨거운 열정이 추구하는 바는 하나님과의 믿음과 만남이라는 사실이다 . 이를  알게 된  요석은 자신의 위치에 회의를 느끼며 방황하게 되었다. ‘ 과연 나는 이들의 바램을 충족시키고 있는가 ?

어느 날 한 교단에서 요석을 초빙한 세미나가 있었다 대상은 기존 목사들을이였다.

요석은 나름 정성껒 준비한 주제와 내용으로 진행된 강연이었다. 그러나 , 후에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한 목사의 신랄한 비판이  요석을 엄청나게 당혹시켰다.

“ 김요석 박사님 , 당신은 독일서 배워 왔다는게 진보 사회주의적 해방 신학이요 ?  그건 쓰레기 같은 칼막스의 사회주의 공산당의 이론일 뿐이요. 그걸 우리에게 믿으라는 거요 ? “

장내는 흥분하고 살벌해 졌다. 아마도 단단히 작심하고 요석을 공격하는 듯 하다. 요석은 당황스럽고 참담하다. 독일서는 보수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으며 공부했고 한국에 오니 불순한 공산주의를  바탕한  해방신학이라니, 갑론을박으로 소요하는 장내는 일단 온건한 원로목사들에 의해 더한 망신없이 진정되었으나 요석은 뭔가 확실한 결단이 있어야 한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기도한다.

‘ 주여 , 제가 어디 부터 잘 못 되었나요 ? 이제 까지의 길도 앞으로의 길도 주님이 인도하심을 굳게 믿습니다. 저는 부족하고 용렬합니다. 다만 주께서 저를 인도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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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을 읽고
    from 장작불을 태우며 2015-02-23 04:47 
    안녕하세요 타오르는 불꽃입니다.신학부문은 전혀 모르는 내용이어서 관심있게 읽고 갑니다.다음회가 기다려지네요.
 
 
성에 2015-02-26 0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부족함이 많더라도 꾸준히 찾아 주시고 좋은 가르침도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