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를 만든 경종의 그늘 - 정치적 암투 속에 피어난 형제애
이종호 지음 / 글항아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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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진실

-영조를 만든 경종의 그늘-

 

영조와 정조에 대한 이야기는 늘 회자되어오는 이야기 중 하나다. 특히 두 임금 사이를 잇는 사도세자에 대한 이야기는 조선조 역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사실로 기록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역사의 기록과 함께 세간의 흥미를 끄는 것은 역사를 바라보는 시점의 대한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를 들여다보는 관점에는 과연 정답이 있는 것일까. 영조와 얽힌 이야기를 소재로 한 책은 무수히 많다. 그 중에는 영조 집권 이후 일어났던 사도세자의 죽음과 연관하여,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다양한 시각은 드러난다.

어찌생각해보면 책을 읽는 이의 입장과 책을 쓰는 저자의 입장이 다 같을 수는 없는 문제이다. 하나의 명백한 사실을 가지고 흑백을 논하는 차원과는 조금은 그 방향이 다른 것이 바로 역사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미 오랜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에는 분명하다.

역사라는 하나의 사실과 이 사실이 갖는 전통성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결과적으로 이부분을 해석할 때 의견이 갈라지고 나눠질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이 어쩌면 개개인이 갖는 관점에서 기인하는 문제라고 단정할 수 있는 문제일까.

 

사설의 요지는 그러하다는 말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이 책을 논하기 위해서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바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한가를 먼저 따져봐야 할 일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저자 이종호는 세간에 깊이 뿌리내린 하나의 역사적인 관점에 이를테면 대립각을 세운다.

기존에 알고 있었던 이야기들. 딴은 영조와 사도세자 정조라는 큰 틀에 가려졌던 경종의 왕으로서의 위엄을 재평가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 셈이기도 한, 이종호의 책은 시작부터 영조에게 무척 관대하다고 말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이전의 해설들이 영조와 경종사이에서 불편한 진실을 찾아가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고 했을 때, 이번 이종호의 역사해석은 기존의 영조와 경종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그것이 사실은 조금은 생경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가 흔히 이해하고 있는 지식으로는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과 무수리 출신의 최씨가 낳은 연잉군 사이의 불편한 관계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저자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다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 이종호의 생각을 들여다보자.

 

-연잉군 즉 훗날 영조는 경종을 해할 생각이 없었던 인물이었다.

-경종이 소론과 노론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연잉군을 세자로 삼은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던 부분이다. 형으로서 아우를 끝까지 지켰다.

-영조가 경종을 독살했다는 설은 근거가 없는 낭설이다. 두 형제는 우애가 좋은 형제간이었다. 독살설은 모함이며 영조는 그의 재임기간동안 형인 경종에 대한 그리움이 컸다

 

와 같은 해석을 보여주고 있으며,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당시 경종의 재임기간에 있었던 소론과 노론의 힘겨루기와 관련된 일들을 자세하게 풀어놓고 있다.

실질적으로 이번 책에서 새롭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물은 영조가 아닌 경종이다. 병약하여 일찍 타계하면서, 왕의 자리를 이복동생에게 넘겨주었다고만 알려졌던 경종이 아닌 왕으로서의 예민하고 날이 선 인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숙종이 건강상의 문제로 인해 세자 경종에게 대리청정을 맡겼을 때도, 경종은 특유의 관망하는 듯한 자세로 소론과 노론의 정치적 논란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나름대로 완성시켜냈던 인물로 묘사되고 있음도 주목할 만하다.

그렇다면 저자 이종호가 이해하고 있는 경종의 아우인 동시에 권력 경쟁자였던 영조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을까.

책 속에 나오는 연잉군 즉 훗날 영조는 자신의 뒤를 봐주는 노론이라는 세력에서조차 안정감을 느끼지 못한 채, 늘 조심하고 불안하며 함부로 처신할 수 없는 불편한 자리에 앉아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정치적 욕심보다는 자신의 안녕을 지켜내기 위해 반대파와 자신을 지지하는 파 양쪽에서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촉각을 세워 시세의 흐름을 읽어내기에 바쁜 인물이 바로 연잉군의 총체적인 이미지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종과 연잉군의 이미지는 이종호의 새로운 시각, 즉 갈라진 당파성을 극복해내며 지켜내려 했던 우애라는 관점에서 다시 재해석된 이미지이다.

경종의 감추어진 본 모습이 어떠했는지, 혹은 당대 영조의 진솔한 진면목이 어떠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 시대를 살았던 동시대 인물이었다고 하더라도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아마도 사람마다 다르지 않았을까. 역사를 이해하고 바라보는 관점을 구태여 구격화 하고 고정시킬 필요는 없어보인다. 다양한 관점에 의해 쓰인 글을 읽는 것도 또한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긴 한데 잊혀진 역사에 대한 진실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라는 의구심은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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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열린책들 세계문학 9
막심 고리키 지음, 최윤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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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예순 일곱 번째 서평

 

 

어머니 -막심 고리끼

 

사랑해요. 닐로브나

 

-1905년 러시아 혁명은, 작가로서 고리끼의 발전에서 일대 전환점이었다.

혁명의 선두에 프롤레타리아가 나섰다.- p458 역자 최윤락의 해설 중

 

혁명은 뜨거웠다. 그 시작은 작고 여린 물줄기로 시작되었지만, 적어도 이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는 혁명은, 시간이 갈수록 굵은 맥을 이루며 멀리 더 멀리를 지향하며 크고 단단한 응집을 이루며 뻗어나갔다.

혁명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뜨겁게 더운 불을 지폈다. 그리고 그 젊은이들을 사랑하는 그들의 가족에게도 파편처럼 붉은 불씨를 옮겨놓고 있었다.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가 갖는 문학사적 의미는, 러시아 혁명을 기점으로 레닌과 고리끼, 사회주의 문학과, 민중과 노동 문학이라는 측면, 그리고 더 나아가 보편적인 인간애까지 그 영역을 넓혀볼 수 있다고 본다. 소소하게 한 쪽으로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넓은 측면으로 함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비슷한 생각에서 이 작품의 총평을 논할 때 아래에 준비된 역자 최윤학의 견해를 인용하고자 한다. 이는 고리끼의 작품 어머니를 대하는 독자의 시선이, 한편으로 닫힌 시선이 아닌, 좌우 모두 열린 문을 통하여 들여다 볼 수 있는 ‘열린 시선’으로 변화되기를 바라는 모두의 바람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글을 쓰고 있는 개인의 솔직한 견해이기도 하다.

 

-이미 언급했듯이 ‘어머니’ 는 노동 계급, 그리고 향상되어 가는 인간관계에서 노동 계급의 역할에 관한 소설이다. 따라서 이는 이 소설이 노동 계급만이 아닌 전 인류를 위한 것임을 뜻한다.- p461 최윤락의 해설 중

 

자 이제 오래도록 전 인류를 위한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의 역할을 충실히 해 온, 슬프고도 단단하며, 뜨거우면서도 아린 듯한 긴 호흡의 소설 ‘어머니’를 차분하게 들여다보자.

남편에게 학대받던 중년의 여인, 약자 위에 군림하는 폭군의 한 표본을 보는 듯한 남편과 낯설었던 그의 죽음. 그리고 어쩌면 후련하고 속 시원한 이 죽음이 불러온 부재감과 함께 시작된 외아들의 사회주의 운동....

 

이들 모자에게 있어 최초의 억압과 핍박과 착취는 지극히 개인적인 상황. 바로 그들 가족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거부할 수 없는 폭력을 참고 견뎌내던 어머니와 아들. 그들 앞에 무능력함과 위협적인 것으로 똘똘 뭉쳐있던 거추장스러운 걸림돌이 사라진 후 갑자기 시작된 변화들이 있었다. 물론 그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서광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아들이 몸담고 일하게 되는 운동이었다.

 

서로를 동지라 부르며, 부당한 현실을 직시해 부조리한 것으로부터 정당성을 밝히고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 무리와, 육체적 연약함과 정신적 피폐함으로 흔들리던 어머니가 어떤 과정으로 통해 하나가 되며 변모해가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 바로 고리끼의 ‘어머니’ 가 아닐까.

 

어머니는 아들의 사회주의 운동을 걱정하는 인물에서 시간이 갈수록 아들을 이해하고, 아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끊임없이 되뇌이며 고뇌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리고 직접 그들이 하는 일에 동조를 하면서 간접적 조력자에서 직접적인 동지로서의 모습으로 변모해가는 현실적인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이는 단순하게 모성애를 넘어서 한명의 동지. 끈끈한 동지애의 발현이라는 것으로 그 수위를 조절할 만한 객관적 근거가 되는 요소들이다.

 

작품 후반부에 갈수록 감옥에 가게 된 아들과 탈옥을 준비하는 주변의 동지들의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자세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와 동시에 도시와 농촌에까지 이어지는 사회주의 인식의 새로운 변화를 큰 맥으로 삼아간다. 그러나 여기서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어쩌면 이는 작품의 시작과 함께 끝에까지 독자가 줄곧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 요소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단 한 가지. 평범한 인물이었던 어머니의 변화되는 모습이다. 평범한 어머니의 자리에서. 아들을 위한 희생의 자리에서 선 어머니로.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에 맞서게 되는, 그들이 우러러 받드는 또 한명의 뜻을 같이 하게 되는 동지로서의 어머니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하기에 작품의 말기를 장식하기에 이르는 넨꼬(어머니를 다정하게 부르는 우크라이나식 표현)가 바로 우리들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소설은 전체적으로 널리 뻗어나가는 사회주의 의식의 구체화와 노동자들의 의식의 변화를 기점으로 하는 동시에, 가장 편안한 보금자리의 보유자였으나 가장 나약하고 가장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어머니라는 인물을 내세워, 약자와 강자의 대립을 큰 틀 안에 배치하고 있다. 이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와의 극명한 대립. 부조리와 인권의 유린. 그 안에서 부득불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회주의 현상에 대한 처연하면서도 솔직한 고백서와 같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가벼운 입놀림으로 논하기에는 가히 어려운 작품이다.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아는 지식이 짧다는 불편한 현실의 한계성에서 속이 쓰려오기도 하는 작품이다. 그러면서도 자식을 위해 뜨거운 불씨를 기꺼이 삼켜내는 작품 속 주인공인 어머니 닐로브나를 보면서 수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작품이기도 했음을 고백한다. 한편으로는 그간에 봐왔던 시인 기씨의 등단작이 생각나기도 하고, 노동자를 노래했던 시인 박씨의 시 몇 편이 머리에서 소용돌이를 불러들이기도 하고 아직도 만연할 수밖에 없는 사회 부조리와 조금의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는 갈등의 대립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씁쓸하면서도 가슴이 따뜻했던 시간들.

내가 원한 굴레이자 족쇄였건만, 벗어나기까지 절대 쉽지 않았던 시간들

정독의 순간을 마무리하고 돌아서는 이 시간

발뒤꿈치가 아리다. 사뭇 아리다.

 

 

 


닐로브나- 작품 속 어머니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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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 방정환 평전 - 문화예술을 사랑한 어린이 인권운동가
민윤식 지음 / 스타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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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예순 여섯 번째 서평

 

잔물결 그리고 깊은 파장

 

누군가의 일생을 들여다보는 일은 설렘과 동시에 약간은 불안하다. 딴은 그 누군가가 이미 역사라는 평가지 위에 단편적으로나마 비교적 구체적인 평가를 받은 인물이라 하더라도 세간에 오르내리는 선입관마저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의 일생을 들여다볼 때 다짐하는 일은, 결코 대중의 시선과 대중의 잣대로서 재평가를 하는 한계에 부딪치지는 말자는 것이었다.

그런 사심을 잔뜩 품고 읽기 시작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 누군가의 평전 역시 글을 쓰는 이가 이끌어가는 분위기를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누군가가 누구일까. 그는 어린이날을 선포하고 세상의 모든 어린이의 우상으로 알려진 인물 방정환이다.

몇 개월 전 방정환의 평전이 새로 출간된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줄곧 머릿속에서 책이 떠나지 않았다. 묘한 인연이고 묘한 집착이었다.

도서관에서 세 차례나 연장 대출을 하면서까지 나는 소파 방정환의 평전에 매달렸다.

그의 평전 읽기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단순한 지식정보 차원에서 우리에게 친근했던 인물 방정환이 아닌 새로운 인물 방정환을 대면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순수함으로 영글어진 아동문학과 더불어, 애끓는 민중의 욕구를 분출시키고자 했던 당대의 특별한 문화를 이끌어갔던 대중문학에 이르기까지, 글이라는 매개체로 인해 폭넓은 인식의 흐름을 형성해나가고자 동분서주 고군분투 했던 한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책은 방정환의 일대기와 더불어 그의 문학사적 업적을 소개한다. 세세하게 들어가 보면 일제 치하라는 시대적 암흑기라는 어려운 시기에 민중의 애끓는 의식들을 수면위로 떠오르게 함으로서, 이를 시발점으로 삼아 3.1 운동의 좌절로 인해 좌초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 독립운동의 명맥을 이어가는데 심혈을 기울였던 내용을 싣고 있다고 봐야 한다.

출생과 유년기, 청년기와 결혼을 통해 천도교와의 돈독한 인연을 더욱더 굳건하게 다지는 시기, 일본 유학시절, 색동회 조직과 어린이날 선포 어린이 잡지를 비롯한 다양한 잡지를 발간하는 동시에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작품을 창작하는 시기까지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최후의 마지노선을 훌쩍 뛰어넘은 일복 많았던 사람 방정환. 그는 일 욕심도 많았을 뿐 아니라, 나라의 국운을 염려하고 독립을 염원하였기에 더욱더 어린 새싹이었던 아이들의 존재를 소중히 여길 수밖에 없었던 그런 사람으로 다가온다.

 

‘하얀 거짓말’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순백의 색을 입었다 한들 거짓말의 본심이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듣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히며 토닥여줄 수 있는 건 ‘하얀’이라는, 앞머리를 수식하는 표현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한들 하얀 거짓말 역시 거짓말임에는 분명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라를 위해, 어린이를 위해 일 중독증에 빠진 방정환을 ‘하얀 일 중독증’에 빠진 슬프고도 어리석어 안쓰러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하얀 일이라 하더라도 일 중독증은 일 중독증이다.

그가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어떤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담금질하며 앞으로 달려가기만 하는 맹렬한 전차처럼 일생을 살아가지 않았다면, 역사는 한걸음 뒤쳐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책 속에서 기억나는 부분을 기록으로 남긴다.

어린이날 선전문에 실렸던 문구는 며칠 전에도 개인적으로 남긴 적이 있는데,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과 어린 동무들에게 라는 제목으로 요약된 글 몇 가지를 인용한다.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치어다 보아주시오.

-어린이를 가까이 하시어 자주 이야기하여 주시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보드랍게 하여 주시오.

-

-

-어린이를 책망하실 때에는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 자세히 타일러 주시오.

-대우주의 뇌신경 말초(末梢)는 늙은이에게 있지 아니하고 젊은이에게도 있지 아니하고 오직 어린이들에게만 있는 것을 늘 생각하여 주시오.

 

어린 동무들에게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반드시 보기로 합시다.

-

-뒷간이나 담벽에 글씨를 쓰고나 그림 같은 것을 그리지 말기로 합시다.

-

-풀이나 풀을 꺾지 말고 동물을 사랑하기로 합시다.

-전차나 기차에서는 어른에게 자리를 사양하기로 합시다.

-입은 꼭 다물고 몸은 바르게 가지기로 합시다.

 

92-93년 전에 주고받았던 이야기들이다. 그 시절에도 아이들은 장난치기 좋아하고, 낙서하기 좋아하며, 늘 사건 사고를 몰고다니는 사고뭉치 같은 존재들이었던가 보다.

특히나,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반드시 보기를 바란다’는 표현은 시적인 표현인 동시에 어린아이 뿐 아니라, 감성의 건조함을 늘 지적 받는 어른들에게도 기꺼이 다가오는 표현에 하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방정환의 이미지와는 달리 사회주의자, 혹은 민족주의자에 시각에서 새롭게 접근하고 있는 내용이 몇 가지 기술되어 있으나, 당대 시대사회적 특수성을 발현하고자 했던 지식인의 고뇌에서 나온 산물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개인적으로 은파리라는 작품에서 작가가 고발하고자 했던 사회적 부조리와 풍자, 자본가들의 비리는 90여년이 지난 현재에도 현재 진행형으로 하루건너 표출되고 있음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중절모가 참 잘 어울렸던 소파 방정환. 선한 눈매에 작게 다물어진 얇은 입술은 마치 하고 싶은 말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하다. 흑백사진 속에 침묵하는 그의 얼굴에 어딘지 수심이 깃들어 있어 보이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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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 - 1950년, 받지 못한 편지들
이흥환 엮음 / 삼인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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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받지 못한 편지들 - 조선 인민군 우편함 4640호 

 

 

 

pen은 칼보다 무섭다, 라는 말을 기억한다. 소시적에는 참 멋있는 표현으로만 생각했고, 또 한 시절에는 두려운 마음을 숨기며 속으로 되뇌이던 말이다.

 무언가를 글로 기록하고 남기는 행위가 가져오는 결과물들에 대해 생각한다. 글이 처음 생겨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을 전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흘러 사라지는 말의 흔적을 메우기 위해 대신 기록했던 것이 그 시작이었을까, 라는 다소 멜랑꼴리의 풍미가 담긴 것들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글자의 기록은 수의 기록에서부터 시작되고, 이 수의 기록은 생존을 위한 엄연한 현실 반영의 한 차원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으로 실없는 생각의 끝을 보고야 만다.

 

조선 인민군 우편함 4640호는 애틋하다. 아련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잊고 살았던 오래된 상처마저 쓰라지고 얼얼해지는 걸 느낀다. 전쟁에 대한 이야기며 아군이 아닌 적군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체로  정감이 묻어난다. 왜일까.

그것은 어쩌면 절실하면서도 진실성이 담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절박한 상황에서만이 가까이 느껴볼 수 있는 인간 본연의 심상과 꾸미지 않은 모습들을 숨김없이 고스란이 접할수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한국전쟁중 인민군 주둔지를 미국이 탈환했을 당시 노획했던 것들 중 한가지로 얼마전까지 극비로 비공개되었던 것들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면서, 활자화되고, 사람들의 깊이감 다른 입씨름에도 오르락내리락 했던 것 같다.

 

책 속에는 누렇게 탈색된 오래되고 낡은 편지들이 간간이 실렸다. 많으면 많은 분량이고 적으면 적은 분량이다. 중요한 것은 분량이 아니다. 아들을 사지로 보낸 어머니의 글. 고향땅에 남겨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과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말없이 사지로 떠나온 것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용서를 비는 아들의 모습. 낙심하고 있을 어머니를 위해 친구들에게 어머니를 부탁하는 심성 착한 아들의 편지글과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당신께 커다란 선물이다... 꼭 살아라... 당부하고 또 당부하는 이들의 애잔한 면모가 눈길을 오래도록 붙잡는다.

 

 

꾹꾹 눌러 쓴 글씨들이 바스락 거리며 부서질 것 같은 낡은 종이위에서 오롯하게 살아나는 순간,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편지를 쓰는 이와 편지를 받을 이의 모습을 그려보곤 했다. 

개인적으로는 글이 갖는 생명력과 힘에 대해 새삼 다시 확인해던 것 같기도 하고 딴은 글이 갖는 지속성에 대한 두려움과 다시 마주보았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때로는 울며, 때로는 안도하며, 때로는 서로를 위로하며 어지러운 세상을 잘 견뎌가자 했던 누군가의 독려조차도 힘없이 잊혀져갔던....

전쟁의 시작은 사람이 먼저라기보다는 사상이 먼저였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개인적인 정치적 성향을 떠나...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너나할 것 없이 인간 존엄성을 생각한다면  그 무렵을 견뎌내야 했던 이들 모두가 피해자라는 결론을 혼자 내려본다.

 

 

먼 시간 속으로 지워졌던 이야기들이 불쑥 튀어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는 책이다.

어머니.. 아버지... 친구들... 오빠와 누이...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

가까이 있지 못한 존재의 안부를 확인하고자 했던 간절함은 결국 어느 누군가에게도 전달될 수 없었다.

속절없이 종이위에 새겨놓은 이들에게.. 과연 누가 위로의 말을 건내 줄 수 있을까.

 

2014. 3년 4개월 만에 재개된 남북 이상가족 상봉. 25일... 종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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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뇌를 키워 주는 입체왕 2 - 상상력 키우기 수학뇌를 키워 주는 입체왕 2
다카하마 마사노부 & 히라스가 노부히로 지음, 최종호 옮김, 강미선 감수 / 진선아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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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백 예순 세 번째 서평

 

수학. 들여다보는 힘에 대하여

 

수학뇌를 키워 주는 입체왕

(2. 상상력키우기)-다카하마 마사노부. 히라스가 노부히로 지음

 

몇 번째 서평을 써야 하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마지막 서평은 언제 쓰고 말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소급이란 말이 있다. 마지막 서평의 기록을 찾아 헤매는 꼴이라니 지금의 나는 소급이란 말이 전하는 위압감에 절절하게 휘감기는 것을 느낀다.

 

김연아 선수가 오늘 4년 만에 우승을 되찾았다고 한다. 그녀의 우승이 반가웠던 까닭은 2년 가까웠던 공백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공백을 뛰어넘는 우승이다.

운동선수가 공식적인 대회에 나가 우승을 하는 것과 평범한 보통 사람이 책을 보고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구태여 정말이지 굳이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어쩐지 먼 길을 에돌아서 되찾은 듯한 우승의 자리라 그런지, 내게 동기부여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컴퓨터의 모니터 화면을 조금 뒤로 밀고, 키보드 아랫단에 눌러놓았던 양쪽 받침을 세운다. 즐겨 듣던 클래식 음악에서 밝고 빠른 비트의 조화가 어우러지는 음악으로 바꾼다.

이제 다시 시작인가. 수술 후 무언가를 주시하고 바라보는 일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다시 초보운전 김여사가 아닌 이여사의 자리로 돌아와 운전대를 잡았고, 약간의 약점이자 눈으로 인한 핸디캡을 감안하면서 운전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책을 읽는다.

 

책을 읽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자연적으로 책과의 거리감은 점점 더 멀어진다.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다음 글을 쓸 수 있는가,라는 의구심이 날로 늘어나는 동시에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칼날은 갈지 않으면 무뎌지고, 운동선수가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그 실력은 퇴보하고 기록은 저조해진다. 그리고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이 길수록 나는 그렇게 변명을 늘어놓는 것이다. 꼭 그렇게 바삐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라고.

각설하고, 아직도 한집에 살고 있는 남자는 내게 컴퓨터와 책을 금지시키고 있다. 근래 책과는 담을 쌓은 생활의 연속임에도 불구하고 목 디스크 증상이 도진 까닭에 이래저래 눈치만 늘어나는데 다행히 그가 집에 없다. 지금...

 

간만에 집어든 책은 일학년으로 입학한 아들을 위해 신청했던 책이었다. <수학뇌를 키워 주는 입체왕. >시리즈의 2번째 상상력키우기라는 책이다.

2013년부터 교과서 개정이 있으면서 기존의 수학교과서에도 많은 변화가 있다는 설이 다분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직접 교과서 구경을 해보지 못한 까닭에 객관적 비판은 할 수 없다. 다만 시중에 나와 있는 문제집과 바뀐 교과서를 통한 수학 교수법들을 소개하는 정보들을 접하면서 어느정도 가늠할 뿐이다. 최근에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은 “스토리 텔링 기법으로 보는 수학”일 것이다. 이는 다른 말로 통합교과로 접근하고 있는 수학 쯤으로 해석 가능하다. 사실 이 “통합교과” 라는 표현은 이미 많이 접해본 바 있지 않은가.

통합교과와 스토리텔링 수학의 개념을 옆에 두고 다시 입체왕 시리즈를 살펴본다. 연관성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각각의 개념과 책으로 독립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일까.

수학뇌를 키워주는 입체왕 시리즈물은 총 3권으로 되어 있으며, 아쉽게도 나는 2번째 책을 받았다. 만약 1권부터 접했더라면 어땠을까. 우선 책의 특징을 들여다보자. 책은 비교적 간단한 구성을 갖고 있으며 난이도에 따라 같은 내용과 형식을 반복하고 있다고 보면 될 듯 싶다.

구성의 내용을 들여다보자. 순차적으로 평면 도형에 블록 얹기, 보이는 면의 개수세기, 각 방향의 면 개수 세기, 단면의 모양 그리기, 구멍 속으로 보이는 입체 찾기. 큐브의 마주보는 면 찾기, 큐브와 큐브의 합체 이외 두 가지 요소가 함께 수록되고 있다.

 

직접 아이와 함께 블록을 만들어 평면도형 위에 올려보고, 구멍 속으로 보이는 도형의 모양을 살피고, 단면을 추리해보며 단계를 높여가는 과정에서 아이는 책의 저자가 길게 설명해준 세부적인 요소를 접하면서 긍정적 효과를 집적 체험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는 듯 했다.

이 책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메리트는 입체도형이 갖는 성질과 실질적으로 사고 과정을 통해 문제해결에 활용할 수 있는 힘, 바로 응용력을 키우는 데 있다고 본다. 이리저리 도형을 돌려가면서 각각의 자리에서 눈으로 확인하는 입체의 다양한 모양, 도형을 다루는 이가 원하는 대로 블록을 투영해 ‘보는 힘’을 기르고 이를 분석하는 능력의 향상도 가져올 법하다는 뜻이다.

이것이 이번 책이 강조하는 내용일까? 상상력은 분석의 힘과 투영의 과정을 거쳐 도형을 비롯한 다양한 사물의 구체적인 입체를 형성케 한다.

 

말이 길다. 짧게 요약하자면 입체를 보며 분석하는 힘을 길러줄 수 있는 책인 듯 싶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큐브의 마주보는 면 찾기에서 나는 직접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오려서 아이에게 입체 도형을 만들 것은 권했다. 직접 만들어가면서 마주보는 면이 어떻게 자리하는지를 스스로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문제 중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했다. p29가 그 대표적 오류를 보이고 있다. 문제에서 처음 오류가 있으며, 답안지 역시 오류를 범한다. 아무리 봐도 답이 이상하다고 남편에게 보여주니 수학을 좋아해 공대를 갔다던 그가 대뜸 하는 말이 문제가 틀렸다고 하더라. 그렇군. 문과 출신인 나보다 공대출신인 그가 더 문장을 잘 보았던 것이다. 각설하고 그는 책을 외면했고, 나는 그의 성급한 일반화가 가져오는 압력으로 인해 급격하게 우울해져갔다. 그리고 책에 대한 신뢰감이 반감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아이는 책을 너무 좋아한다. 처음 오류를 지적한 그는 아이에게 오류가 있는 책은 보일 필요가 없다고 했으나, 나는 오류를 발견해가며 문제를 접하고 도형과 친근해지는 것 또한 교육일 거라는 욕심을 부린다.

 

버릴 것은 버리고, 내가 취할 것은 취하면 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혹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 출간에 있어 꼼꼼한 탈고와 편집이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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