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열린책들 세계문학 9
막심 고리키 지음, 최윤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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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예순 일곱 번째 서평

 

 

어머니 -막심 고리끼

 

사랑해요. 닐로브나

 

-1905년 러시아 혁명은, 작가로서 고리끼의 발전에서 일대 전환점이었다.

혁명의 선두에 프롤레타리아가 나섰다.- p458 역자 최윤락의 해설 중

 

혁명은 뜨거웠다. 그 시작은 작고 여린 물줄기로 시작되었지만, 적어도 이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는 혁명은, 시간이 갈수록 굵은 맥을 이루며 멀리 더 멀리를 지향하며 크고 단단한 응집을 이루며 뻗어나갔다.

혁명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뜨겁게 더운 불을 지폈다. 그리고 그 젊은이들을 사랑하는 그들의 가족에게도 파편처럼 붉은 불씨를 옮겨놓고 있었다.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가 갖는 문학사적 의미는, 러시아 혁명을 기점으로 레닌과 고리끼, 사회주의 문학과, 민중과 노동 문학이라는 측면, 그리고 더 나아가 보편적인 인간애까지 그 영역을 넓혀볼 수 있다고 본다. 소소하게 한 쪽으로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넓은 측면으로 함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비슷한 생각에서 이 작품의 총평을 논할 때 아래에 준비된 역자 최윤학의 견해를 인용하고자 한다. 이는 고리끼의 작품 어머니를 대하는 독자의 시선이, 한편으로 닫힌 시선이 아닌, 좌우 모두 열린 문을 통하여 들여다 볼 수 있는 ‘열린 시선’으로 변화되기를 바라는 모두의 바람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글을 쓰고 있는 개인의 솔직한 견해이기도 하다.

 

-이미 언급했듯이 ‘어머니’ 는 노동 계급, 그리고 향상되어 가는 인간관계에서 노동 계급의 역할에 관한 소설이다. 따라서 이는 이 소설이 노동 계급만이 아닌 전 인류를 위한 것임을 뜻한다.- p461 최윤락의 해설 중

 

자 이제 오래도록 전 인류를 위한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의 역할을 충실히 해 온, 슬프고도 단단하며, 뜨거우면서도 아린 듯한 긴 호흡의 소설 ‘어머니’를 차분하게 들여다보자.

남편에게 학대받던 중년의 여인, 약자 위에 군림하는 폭군의 한 표본을 보는 듯한 남편과 낯설었던 그의 죽음. 그리고 어쩌면 후련하고 속 시원한 이 죽음이 불러온 부재감과 함께 시작된 외아들의 사회주의 운동....

 

이들 모자에게 있어 최초의 억압과 핍박과 착취는 지극히 개인적인 상황. 바로 그들 가족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거부할 수 없는 폭력을 참고 견뎌내던 어머니와 아들. 그들 앞에 무능력함과 위협적인 것으로 똘똘 뭉쳐있던 거추장스러운 걸림돌이 사라진 후 갑자기 시작된 변화들이 있었다. 물론 그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서광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아들이 몸담고 일하게 되는 운동이었다.

 

서로를 동지라 부르며, 부당한 현실을 직시해 부조리한 것으로부터 정당성을 밝히고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 무리와, 육체적 연약함과 정신적 피폐함으로 흔들리던 어머니가 어떤 과정으로 통해 하나가 되며 변모해가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 바로 고리끼의 ‘어머니’ 가 아닐까.

 

어머니는 아들의 사회주의 운동을 걱정하는 인물에서 시간이 갈수록 아들을 이해하고, 아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끊임없이 되뇌이며 고뇌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리고 직접 그들이 하는 일에 동조를 하면서 간접적 조력자에서 직접적인 동지로서의 모습으로 변모해가는 현실적인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이는 단순하게 모성애를 넘어서 한명의 동지. 끈끈한 동지애의 발현이라는 것으로 그 수위를 조절할 만한 객관적 근거가 되는 요소들이다.

 

작품 후반부에 갈수록 감옥에 가게 된 아들과 탈옥을 준비하는 주변의 동지들의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자세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와 동시에 도시와 농촌에까지 이어지는 사회주의 인식의 새로운 변화를 큰 맥으로 삼아간다. 그러나 여기서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어쩌면 이는 작품의 시작과 함께 끝에까지 독자가 줄곧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 요소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단 한 가지. 평범한 인물이었던 어머니의 변화되는 모습이다. 평범한 어머니의 자리에서. 아들을 위한 희생의 자리에서 선 어머니로.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에 맞서게 되는, 그들이 우러러 받드는 또 한명의 뜻을 같이 하게 되는 동지로서의 어머니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하기에 작품의 말기를 장식하기에 이르는 넨꼬(어머니를 다정하게 부르는 우크라이나식 표현)가 바로 우리들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소설은 전체적으로 널리 뻗어나가는 사회주의 의식의 구체화와 노동자들의 의식의 변화를 기점으로 하는 동시에, 가장 편안한 보금자리의 보유자였으나 가장 나약하고 가장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어머니라는 인물을 내세워, 약자와 강자의 대립을 큰 틀 안에 배치하고 있다. 이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와의 극명한 대립. 부조리와 인권의 유린. 그 안에서 부득불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회주의 현상에 대한 처연하면서도 솔직한 고백서와 같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가벼운 입놀림으로 논하기에는 가히 어려운 작품이다.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아는 지식이 짧다는 불편한 현실의 한계성에서 속이 쓰려오기도 하는 작품이다. 그러면서도 자식을 위해 뜨거운 불씨를 기꺼이 삼켜내는 작품 속 주인공인 어머니 닐로브나를 보면서 수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작품이기도 했음을 고백한다. 한편으로는 그간에 봐왔던 시인 기씨의 등단작이 생각나기도 하고, 노동자를 노래했던 시인 박씨의 시 몇 편이 머리에서 소용돌이를 불러들이기도 하고 아직도 만연할 수밖에 없는 사회 부조리와 조금의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는 갈등의 대립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씁쓸하면서도 가슴이 따뜻했던 시간들.

내가 원한 굴레이자 족쇄였건만, 벗어나기까지 절대 쉽지 않았던 시간들

정독의 순간을 마무리하고 돌아서는 이 시간

발뒤꿈치가 아리다. 사뭇 아리다.

 

 

 


닐로브나- 작품 속 어머니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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