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 방정환 평전 - 문화예술을 사랑한 어린이 인권운동가
민윤식 지음 / 스타북스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백 예순 여섯 번째 서평

 

잔물결 그리고 깊은 파장

 

누군가의 일생을 들여다보는 일은 설렘과 동시에 약간은 불안하다. 딴은 그 누군가가 이미 역사라는 평가지 위에 단편적으로나마 비교적 구체적인 평가를 받은 인물이라 하더라도 세간에 오르내리는 선입관마저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의 일생을 들여다볼 때 다짐하는 일은, 결코 대중의 시선과 대중의 잣대로서 재평가를 하는 한계에 부딪치지는 말자는 것이었다.

그런 사심을 잔뜩 품고 읽기 시작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 누군가의 평전 역시 글을 쓰는 이가 이끌어가는 분위기를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누군가가 누구일까. 그는 어린이날을 선포하고 세상의 모든 어린이의 우상으로 알려진 인물 방정환이다.

몇 개월 전 방정환의 평전이 새로 출간된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줄곧 머릿속에서 책이 떠나지 않았다. 묘한 인연이고 묘한 집착이었다.

도서관에서 세 차례나 연장 대출을 하면서까지 나는 소파 방정환의 평전에 매달렸다.

그의 평전 읽기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단순한 지식정보 차원에서 우리에게 친근했던 인물 방정환이 아닌 새로운 인물 방정환을 대면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순수함으로 영글어진 아동문학과 더불어, 애끓는 민중의 욕구를 분출시키고자 했던 당대의 특별한 문화를 이끌어갔던 대중문학에 이르기까지, 글이라는 매개체로 인해 폭넓은 인식의 흐름을 형성해나가고자 동분서주 고군분투 했던 한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책은 방정환의 일대기와 더불어 그의 문학사적 업적을 소개한다. 세세하게 들어가 보면 일제 치하라는 시대적 암흑기라는 어려운 시기에 민중의 애끓는 의식들을 수면위로 떠오르게 함으로서, 이를 시발점으로 삼아 3.1 운동의 좌절로 인해 좌초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 독립운동의 명맥을 이어가는데 심혈을 기울였던 내용을 싣고 있다고 봐야 한다.

출생과 유년기, 청년기와 결혼을 통해 천도교와의 돈독한 인연을 더욱더 굳건하게 다지는 시기, 일본 유학시절, 색동회 조직과 어린이날 선포 어린이 잡지를 비롯한 다양한 잡지를 발간하는 동시에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작품을 창작하는 시기까지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최후의 마지노선을 훌쩍 뛰어넘은 일복 많았던 사람 방정환. 그는 일 욕심도 많았을 뿐 아니라, 나라의 국운을 염려하고 독립을 염원하였기에 더욱더 어린 새싹이었던 아이들의 존재를 소중히 여길 수밖에 없었던 그런 사람으로 다가온다.

 

‘하얀 거짓말’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순백의 색을 입었다 한들 거짓말의 본심이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듣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히며 토닥여줄 수 있는 건 ‘하얀’이라는, 앞머리를 수식하는 표현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한들 하얀 거짓말 역시 거짓말임에는 분명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라를 위해, 어린이를 위해 일 중독증에 빠진 방정환을 ‘하얀 일 중독증’에 빠진 슬프고도 어리석어 안쓰러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하얀 일이라 하더라도 일 중독증은 일 중독증이다.

그가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어떤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담금질하며 앞으로 달려가기만 하는 맹렬한 전차처럼 일생을 살아가지 않았다면, 역사는 한걸음 뒤쳐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책 속에서 기억나는 부분을 기록으로 남긴다.

어린이날 선전문에 실렸던 문구는 며칠 전에도 개인적으로 남긴 적이 있는데,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과 어린 동무들에게 라는 제목으로 요약된 글 몇 가지를 인용한다.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치어다 보아주시오.

-어린이를 가까이 하시어 자주 이야기하여 주시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보드랍게 하여 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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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책망하실 때에는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 자세히 타일러 주시오.

-대우주의 뇌신경 말초(末梢)는 늙은이에게 있지 아니하고 젊은이에게도 있지 아니하고 오직 어린이들에게만 있는 것을 늘 생각하여 주시오.

 

어린 동무들에게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반드시 보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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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간이나 담벽에 글씨를 쓰고나 그림 같은 것을 그리지 말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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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나 풀을 꺾지 말고 동물을 사랑하기로 합시다.

-전차나 기차에서는 어른에게 자리를 사양하기로 합시다.

-입은 꼭 다물고 몸은 바르게 가지기로 합시다.

 

92-93년 전에 주고받았던 이야기들이다. 그 시절에도 아이들은 장난치기 좋아하고, 낙서하기 좋아하며, 늘 사건 사고를 몰고다니는 사고뭉치 같은 존재들이었던가 보다.

특히나,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반드시 보기를 바란다’는 표현은 시적인 표현인 동시에 어린아이 뿐 아니라, 감성의 건조함을 늘 지적 받는 어른들에게도 기꺼이 다가오는 표현에 하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방정환의 이미지와는 달리 사회주의자, 혹은 민족주의자에 시각에서 새롭게 접근하고 있는 내용이 몇 가지 기술되어 있으나, 당대 시대사회적 특수성을 발현하고자 했던 지식인의 고뇌에서 나온 산물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개인적으로 은파리라는 작품에서 작가가 고발하고자 했던 사회적 부조리와 풍자, 자본가들의 비리는 90여년이 지난 현재에도 현재 진행형으로 하루건너 표출되고 있음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중절모가 참 잘 어울렸던 소파 방정환. 선한 눈매에 작게 다물어진 얇은 입술은 마치 하고 싶은 말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하다. 흑백사진 속에 침묵하는 그의 얼굴에 어딘지 수심이 깃들어 있어 보이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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