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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를 만든 경종의 그늘 - 정치적 암투 속에 피어난 형제애
이종호 지음 / 글항아리 / 2009년 3월
평점 :
역사와 진실
-영조를 만든 경종의 그늘-
영조와 정조에 대한 이야기는 늘 회자되어오는 이야기 중 하나다. 특히 두 임금 사이를 잇는 사도세자에 대한 이야기는 조선조 역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사실로 기록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역사의 기록과 함께 세간의 흥미를 끄는 것은 역사를 바라보는 시점의 대한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를 들여다보는 관점에는 과연 정답이 있는 것일까. 영조와 얽힌 이야기를 소재로 한 책은 무수히 많다. 그 중에는 영조 집권 이후 일어났던 사도세자의 죽음과 연관하여,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다양한 시각은 드러난다.
어찌생각해보면 책을 읽는 이의 입장과 책을 쓰는 저자의 입장이 다 같을 수는 없는 문제이다. 하나의 명백한 사실을 가지고 흑백을 논하는 차원과는 조금은 그 방향이 다른 것이 바로 역사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미 오랜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에는 분명하다.
역사라는 하나의 사실과 이 사실이 갖는 전통성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결과적으로 이부분을 해석할 때 의견이 갈라지고 나눠질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이 어쩌면 개개인이 갖는 관점에서 기인하는 문제라고 단정할 수 있는 문제일까.
사설의 요지는 그러하다는 말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이 책을 논하기 위해서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바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한가를 먼저 따져봐야 할 일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저자 이종호는 세간에 깊이 뿌리내린 하나의 역사적인 관점에 이를테면 대립각을 세운다.
기존에 알고 있었던 이야기들. 딴은 영조와 사도세자 정조라는 큰 틀에 가려졌던 경종의 왕으로서의 위엄을 재평가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 셈이기도 한, 이종호의 책은 시작부터 영조에게 무척 관대하다고 말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이전의 해설들이 영조와 경종사이에서 불편한 진실을 찾아가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고 했을 때, 이번 이종호의 역사해석은 기존의 영조와 경종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그것이 사실은 조금은 생경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가 흔히 이해하고 있는 지식으로는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과 무수리 출신의 최씨가 낳은 연잉군 사이의 불편한 관계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저자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다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 이종호의 생각을 들여다보자.
-연잉군 즉 훗날 영조는 경종을 해할 생각이 없었던 인물이었다.
-경종이 소론과 노론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연잉군을 세자로 삼은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던 부분이다. 형으로서 아우를 끝까지 지켰다.
-영조가 경종을 독살했다는 설은 근거가 없는 낭설이다. 두 형제는 우애가 좋은 형제간이었다. 독살설은 모함이며 영조는 그의 재임기간동안 형인 경종에 대한 그리움이 컸다
와 같은 해석을 보여주고 있으며,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당시 경종의 재임기간에 있었던 소론과 노론의 힘겨루기와 관련된 일들을 자세하게 풀어놓고 있다.
실질적으로 이번 책에서 새롭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물은 영조가 아닌 경종이다. 병약하여 일찍 타계하면서, 왕의 자리를 이복동생에게 넘겨주었다고만 알려졌던 경종이 아닌 왕으로서의 예민하고 날이 선 인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숙종이 건강상의 문제로 인해 세자 경종에게 대리청정을 맡겼을 때도, 경종은 특유의 관망하는 듯한 자세로 소론과 노론의 정치적 논란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나름대로 완성시켜냈던 인물로 묘사되고 있음도 주목할 만하다.
그렇다면 저자 이종호가 이해하고 있는 경종의 아우인 동시에 권력 경쟁자였던 영조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을까.
책 속에 나오는 연잉군 즉 훗날 영조는 자신의 뒤를 봐주는 노론이라는 세력에서조차 안정감을 느끼지 못한 채, 늘 조심하고 불안하며 함부로 처신할 수 없는 불편한 자리에 앉아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정치적 욕심보다는 자신의 안녕을 지켜내기 위해 반대파와 자신을 지지하는 파 양쪽에서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촉각을 세워 시세의 흐름을 읽어내기에 바쁜 인물이 바로 연잉군의 총체적인 이미지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종과 연잉군의 이미지는 이종호의 새로운 시각, 즉 갈라진 당파성을 극복해내며 지켜내려 했던 우애라는 관점에서 다시 재해석된 이미지이다.
경종의 감추어진 본 모습이 어떠했는지, 혹은 당대 영조의 진솔한 진면목이 어떠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 시대를 살았던 동시대 인물이었다고 하더라도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아마도 사람마다 다르지 않았을까. 역사를 이해하고 바라보는 관점을 구태여 구격화 하고 고정시킬 필요는 없어보인다. 다양한 관점에 의해 쓰인 글을 읽는 것도 또한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긴 한데 잊혀진 역사에 대한 진실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라는 의구심은 지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