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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소와 비답 - 신하가 묻고 왕이 답하다
윤재환 지음 / 이가서 / 2015년 11월
평점 :
상소와 비답
-역사 안에서 배우다.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이 가정학습을 하고 있는지라 컴퓨터 앞에 앉기가 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절은 끊임없이 숨을 쉰다. 어제 다시 폭우를 동반한 태풍을 몰고와서 힘들게 올려놓았던 장화를 끌어내렸고 비옷을 다시 챙겼는데, 오늘은 다시 말짱한 해가 동그랗게 떠있다. 부끄러운 듯 바람이 살랑거리는걸 보면 가을인가 싶기도 하다.
가을을 논하기에 시국이 불안하기도 하고, 개인사도 불안하니 통 책 읽기에 몰입하기가 어렵다고 투정을 부리면서도 상소와 비답을 읽는다. 누군가 물었다. 상소와 비답이란 것이 무엇인가요?
상소와 비답은 조선 중기까지 각 시기에 올라왔던 다양한 상소들과 이에 대한 임금의 답을 모아놓은 책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사료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형식과 구성면에서는 각각의 사료마다 상소를 직접 써서 올린 이에 대한 소개, 상소를 정리해서 이번 책으로 낸 저자 윤재환의 평이 실린 평론, 그리고 원문에 대한 번역 글인 역문(한글), 한문으로 된 원문을 싣는 틀을 갖췄다. 마지막으로 임금에 대한 글로 역시 역문(한글)과 한문인 원문으로 구성했다. 모두 37건의 상소를 소개하는데 조선조 초기 태조를 시작으로 해서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상소가 광해군 때까지 이어진다.
책에 실린 상소를 정리하면 태조 때 상소가 2건, 세종 때 6건, 단종 때 1건, 세조 때 3건, 성종 때 8건, 연산 때 1건, 중종 때7건, 인종 때 1건, 명종 때 3건, 선조 때 4건, 광해군 때 1건이다. 책을 읽으면서 불쑥 소심한 호기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어느 시기, 혹은 어떤 임금의 시기에 상소가 증가했었을까. 어떤 내용의 상소들이 빗발쳤을까. 그들이 올렸던 상소들에 대한 해결책은 관연 현실성이 있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 물음에 대한 답에 대해서는 막연하게도 일정부분 사심이 섞인 이야기를 먼저 써야 할 듯하다. 이를테면 어느 시기에 어느 왕이 통치를 하느냐에 따라, 또 어떤 유능한 인재들이 존재해 왕 옆에서 보필했느냐에 따라 정치적 입장, 수많은 쟁점을 포함한 것들을 판단해야 한다는 게 먼저이지 않을까, 라는 사심이 그것이다. 역사란 결국 작게는 개인의 이야기인 동시에 크게는 한 시대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는건 왜인지 모르겠다.
각설하고 그들이 처했던 정치적 이념과 갈등에 따라 이들이 하얀 종이위에 검은 글씨로 써내려갔던 이야기들은 때로는 치열했고 매섭도록 강직했으며 또 이들의 이야기는 그만큼 간곡했다. 임금과 신하의 예의와 법도 정치와 유교적 이념,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포함해 조선을 세우로 그 안에서 살았던 수많은 이들의 삶의 모습이 때로는 애틋함으로 다가오기도 한 이 책은 어쩌면 내가 아끼는 책 한권과 무척이나 닮았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문(이 시대가 묻는다), 김태완 저]
당대의 정치적인 입장에서 써내려간 상소가 가장 많았던 것을 볼 때, 과거를 포함한 현재의 어느 시기에서나 언로 즉 소통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부분임에는 분명하다. 많은 신하들이 임금에게 직언을 하면서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을 것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임금은 이들의 간언을 결코 매몰차게 내치지 않았던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깨닫는다. 그것이 항상 생각하는 부분이지만 그 내력이 바로 조선조 500여년의 역사를 지탱하게 했던 힘이 아니었을까 싶은거다.
기억에 남는 내용을 간략하게 적어보자. 정치적 상소도 많고, 잘잘못을 따지는 것도 많으며 , 친인척의 병폐와 부조리 혹은 개개인의 신분의 차별, 억울함에 대한 변명 등등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마음을 움직였던 내용은 자식의 허물에 대해 대신 용서를 구하는 어느 가련한 아버지가 쓴 상소문이었다. 이 상소문은 유일하게 단종 시기에 단 한건으로 소개하고 있는 상소문인데 계유년 1월 21일 전 경창부 소윤 민대생 이라는 이가 올린 글이다.
‘살기 힘든 아들의 벼슬길을 열어주십시오’ 라는 제목으로 소개하고 있는 이 상소문은 자식의 허물을 알면서도 애끓는 부모의 심정으로 써내려간 81세 노부의 절절한 이야기가 그 중심을 이룬다.
-민효역(아들)의 죄가 비록 크다고는 하나, 그 정은 오히려 용서할 만한 점이 있으니 소가 송아지를 핥아주는 것과 같은 부모의 마음으로 차마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성상의 위엄에 저촉됨을 무릅쓰고 감히 늙은이의 간곡한 정을 말씀드리니, 엎드려 바라건대 자애로운 성상께서는 불쌍히 여기어 주십시오. p91-
한 번 보고 다시 두 번 봐도 감정에 호소하는 상소문이다. 이에 대한 왕의 비담과 전교는 육조에 내려 의논하게 한 후, 이 절망에 빠진 아비의 아들을 임용하라는 것으로 정리하고 있다. 시기가 단종1년 시기에 올라온 상소이기에 비답과 전교를 내린 이가 실제의 단종일까, 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논리적인 식견으로 따지기 좋아하는 이들에게서 인간적인 인성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점 때문에라도 개인적으로 민대생의 상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책 후반에 갈수록 이런 인정을 논하는 상소와 논쟁이 몇몇 더 등장하기도 한다. 인간적인 고뇌와 번민하는 이들의 모습, 효, 인성.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시선은 살짝 그 쪽으로 기울었다. 서슬이 퍼렇게 날카롭기보다는 구부러질 줄 알고 그렇게 조금은 유연해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정해놓은 관점으로 읽은 이번 책은 저자가 의도한 본래의 의도가 잠시 퇴색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시작부터 어떤 의도를 가지고 책을 읽어나간다는 게 다소 위험성을 내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쟁점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것으로 읽고 이해하기를 원했던 사심에서부터 나온 우매한 판단이 더 지배적이었음을 고백한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것들이다. 이 책 역시 어떤 관점을 가지고 볼 것인가, 하는 것과 함께 어떤 관점으로 수용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어느 시기든 문제는 있어왔고, 곪아터지기도 했으며, 그로인해 혁명과 개혁이 뒤따르기도 했던 것이 우리의 역사다. 그리고 우리는 늘 그렇듯 역사의 한 자락을 밟고 서 있는 게 아닌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도 역시 역사의 한 순간이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해 우리는 지나간 역사를 다시 살펴봐야 하고, 더 배우며 깨닫고 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날카로운 인식으로 무장한 채 이 책 상소와 비답을 읽을 수도 있으며, 그저 이 또한 개인의 역사요, 한 시대의 기록이요. 라 생각하고 읽을 수도 있으니 이는 개인의 선택이고 개인의 철학적 관점에 따른 판단이어야 한다.
무지하게도 사설이 길었다. 여러 가지로 힘든 날들이다. 모두들 힘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