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국내 출간 30주년 기념 특별판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오래전부터 버벅거리던 스피커가 완전히 먹통이 됐다. 아무리 두드려보아도, 선을 다시 꽂아보아도, 먼지를 털어보아도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듣고 싶은 음악을 듣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갑자기 밀려드는 낭패감이라니. 이 낡은 스피커가 이미 오래전부터 고장이 날 조짐이 있어왔던 것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서운해진다. 스피커가 뭐라고. 그러나 나는 잠시의 주저함을 뒤로하고 핸드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는 중이다. 이 또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지 않은가. 후후

 

책은 민음사에서 다시 특별판으로 나온 듯한 분위기다. 빳빳한 양장본의 겉표지를 자랑하며 프랑스어 비슷한 글씨가 그림처럼 그러져있다. 책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보면 분명 대학시절 즈음에 동일한 책을 구입을 했던 기억이 있으며, 읽다가 너무나 빨리 지쳐 외면했더라는 약간은 비굴한? 기억도 가지고 있다. 그 젊은 시절에 왜 그리 빨리 이 책을 외면했던 것일까. 숨이 막힐 것 같은 답답함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십여 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 와서는 그 시절에 나를 도망치게 했던 그 답답함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놀라운 변화인지 자연스러운 이치인지 나는 아직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이번 책은 철학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다양한 이야기와 주제를 담고 있다.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을 정리해내기란 다소 버거워 보인다. 조금 더 천천히 생각해보자. 그리고 작품에 대한 이해와 해석은 개인의 사견임을 미리 밝혀둔다.

우선 비유와 상징 그리고 은유의 방식에 소설의 스토리를 가져와 작업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세상의 절반은 남자이고, 다시 남겨진 절반은 여자라는 말이 생각나다. 책은 남자와 여자. 이들의 가장 근본이 되는 성적인 욕망과 이 욕망을 뛰어넘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감정을 보여준다. 물론 이 사랑이라는 이름의 감정에 대한 가치에 대해서는 인물들이 각자 느끼는 차이가 크게 작용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소련군의 점령으로 공산화가 되어가면서 무너져가는 이들의 조국 프라하. 작품의 배경으로는 전쟁으로 혼란의 시기를 겪어야 했던 시절을 보여준다. 전쟁이란 특수한 상황에서는 개인의 가치 뿐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존재와 가치, 그 사회가 지니는 사상의 가치를 포함해 모든 것들이 뿌리 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근원에서부터 울려오는 이 모든 불안감은, 눈부시게 밝은 빛 뒤에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어둠과 조우하게 된다. 말 그대로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이 빨려 들어가게 되는 수렁과 같은 이 어둠이란(사상의 검증, 도청, 비밀경찰, 정치적 회유와 위협으로부터의 도피), 실상 인물들이 멈추지 않고 극복하며 성장해가야 하는 어떤 당위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작가는 잔인하게도 주인공들을 비열함과 처절함 그 한 복판에 묶어놓았다는 생각을 한다. 인물들은 각자의 본질적인 존재론적 가치에 대한 번뇌와 고통을 끌어 앉은 채, 다시 힘들게 당대의 시대적 사회적 암울하고 힘겨움을 두 배 세 배로 짊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누군가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 했고 그것이 자신이 추구하는 진정한 가치라 판단했으나, 다른 누군가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다시 깊이 파고들어가야만 했다. 이를 두고 생각하기를 필연일까, 가벼운 운명일까, 아니면 진정한 사랑일까. 그도 아니면 그저 너무나도 불안했기에 스스로를 감당하기조차 힘겨워했던, 가벼운 존재들이 서로가 서로를 외면할 수 없었기에 생겨난 아이러니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은 어떤 것일까∼∼. 다시 생각이 많아진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아름답다, 라고 했던 문장이 생각난다. 인간은 감정에 의해 흔들리고, 분노하며,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나약하면서도 강인한 존재다. 때로는 인간이 스스로가 그런 나약하고 완벽하지 못한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고군분투하는 삶을 선택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개인적인 사견이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모르겠다.

 

“인간에 대한 그의 뿌리 깊은 불신(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고 판단할 권리가 있는가에 대한 회의)이 그가 직업을 선택하는 데 이미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P301

 

“보다 합리적이고 보다 은근하게 전략적으로 해야 한다는 거죠. 그들은 서명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서명을 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비난을 받을까 두려워합니다.”P351

 

“보헤미아 역사와 유럽 역사는 인류의 치명적 체험 부재가 그려 낸 두 밑그림이다.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P364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 번뿐이며,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 번만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과연 어떤 것이 조은 결정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결정인지 결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P365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대한 책임과 결과는 신의 의지에 국한 된 것만은 아닌 듯하다. 물론 어느정도의 개입은 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마지막 선택의 주체는 인간 존재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모든 갈등과 고뇌와 기쁨과 희열 속에서 각자 자신의 존재에 희열을 느끼다가도 끝없는 추락의 공포를 동시에 느끼게 되는 이런 그로테스크함의 본능적 감성은, 인간의 삶이 가벼워 보이지만 절대 가벼울 수 없으며 결국 인간이란 존재는 이 모든 갈등의 순간을 극복하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의미로 재차 각인된다. 무엇인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 채 불안함 속에서, 가벼움과 무거움을 함께 들고 버텨야 하는 순간 흔들리는 자아를 발견하게 될 때 아마도 이 문구를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이토록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또 어디에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