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삶과 작품세계
조주희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학인생 반세기

하루키의 삶과 작품세계

 


무라카미 하루키 평전이다. 한 사람의 삶이 그려내는 여정과 함께 그의 작품이 줄거리 요약 형식으로 실렸다. 개인적으로는 하루키라는 작가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오래전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개인적인 관심사는 주로 외국 소설이 아닌 한국 문단에 속했던 작품들이었다. 그 때문인지 그 시절 역시 하루키라는 작가가 유명세를 타고 있었을텐데, 나는 거의 이 사람 하루키의 소설을 읽어보지 못했던 것같다.

내가 처음 접했던 작가의 작품은 작가가 일본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 소설 ‘상실의 시대’였다. 지금은 상실의 시대가 아닌 노르웨이 숲으로 번역되어 출간되고 있는 작품이다.

 


오래된 시간만큼이나 기억이 성실하지 못해서 잘 기억난다고도 말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아련한 느낌이란 건 아직 남아 있다. 방황하는 청춘.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였을까. 혹자는 하루키의 열렬한 팬이어서 그의 작품들이라면 빠지지 않고 다 읽고 챙겼다는 이야기도 들려오는데, 나는 왠지 기가 죽을 것 같은 소심증이 도진다. 움츠러드는건 소심증에서 발현되는 자격지심인가.

아는 것도 별로 없으면서 그의 평전이 읽고 싶었다. 작품을 먼저 읽고 분석하는 일이 먼저일지, 평전을 먼저 보는 게 먼저일지를 잠시 고민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나는 작품을 먼저 읽어보는 것을 권하는 편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작품을 먼저 읽고 스스로 판단하고 분석해보는 일이 중요하지만 먼저 작가의 평전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생각의 변화를 가져오는 어떤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평전 자체만으로 봤을 때 글이 풍기는 분위기는 무게감이나 건조함 없이 부드럽고 빠르게 잘 읽히는 장점이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 책의 분위기를 떠나 작가에게 초점을 맞춰볼 일이다. 작가는 백 년 전 이백 년 전 작가가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로 존재한다. 뭐랄까. 일종의 개인적인 생각이긴한데, 하루키라는 작가와 개인인 내가 함께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상황이, 자연스러운 연대감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어느 소설가의 ‘여러분과 나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건 여러 가지로 매우 중요한 겁니다’ 고 했던 말이 주는 의미처럼 말이다.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건 꽤나 많은 부분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는 말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개개인마다 생각하고 느끼고 감당해야 하는 경험치의 정도는 서로 다르고 일일이 헤아릴 수 없는 부분도 많지만, 그래도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의미는 여전히 묘한 연대감을 형성한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시작부터 그의 글쓰기는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어쩌면 그만의 ‘독특함과 다름’이 시대를 뛰어넘기도 하고 딴은 다른 세계와 세대를 이어주기도 하는 에너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루키에게 처음 상을 안겨준 작품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당시의 심사위원들의 선평에도 일정부분 작가만의 독특함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에 대한 호감도는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호불호에 대한 정도는, 리얼리즘 문학이 자리를 잡고 있던 일본 문학의 만연한 풍토에 낯선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평전에서는 그 낯선 바람의 인식이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묶인 일종의 꼬리표로 자리하고 있음을 언급하는 듯했다.

 


작가 하루키는 1949 출생했다. 일본의 패망과 한국전쟁 발발하기 전 사이에 태어난 세대다. 그의 출생은 아니 출생시기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전쟁과 그로 인한 피폐해진 인간 존재감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외면할 수 없었던 시기는 아니었을까. 작가 역시 그 점을 외면하기 어려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가에게 있어 전쟁과 인간존재를 떠올리는 순간마다 연상되는 존재는 당연 그의 아버지였는지도 모른다. 평전에서 소개되고 있는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전쟁 일화와 함께 아버지와의 불편한 관계를 보여주는 대목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까닭은, 작가로서 하루키가 풀어내야하는 스스로의 문학적 화두의 한 가지가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인 사견이다)

그는 일본군으로 참전한 가해자의 모습인 그의 아버지에 대하여, 태평양 전쟁에 대한 본국의 책임을 지지 않는 무책임한 일본의 민낯에 대하여 그의 소설에서, 에세이를 통에서, 강연장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최근까지 노벨 문학상을 운운하며 언제나 무라카미 하루키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는 일본이, 하루키의 반일에 가까운 행보에 반감을 숨기지 않는 모습은 시종 이중적인 인상으로 다가온다.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문학은 문학이 만들어놓은 세계와 틀을 벗어나는 바로 그 순간, 늘 불안하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 한계를 드러내는가 싶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책 앞부분에서는 주로 작가로서 살아온 이야기와 작품을 쓰게 된 동기 내지는 과정에 관련한 비하인드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다. 본국을 벗어나 멀리 이국으로 떠나며 자신의 존재감에 몰입하기를 원했던 그의 행적은, 그의 소설만큼이나 한곳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향한 갈망이 느껴지는 듯했다. 글쎄다. 딴은 모든 작가들이 글을 쓰기 위해서 자신의 자리에서 벗어나 어느길이든 떠나야 한다는 조건은 늘 정답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때때로 떠나야 할 필요성이 있을 때는 주저함 없이 떠나야 하는 것도 좋아보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하루키에게 있어 이국으로 출발했던 일과 다시 본국으로 돌아오게 되는 과정은 작가에게 일종의 성장통과도 같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단단하게 응집되어가는 작가로서의 고뇌가 성장통 안에 녹아들었던 건지도 모른다.

 


많은 부분을 차치하고 작품에 대한 언급은 조심스럽다. 완벽하게 읽고 이해하는 과정이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나면 조금씩 그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 우선 빌려온 그의 단편집부터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아름다운 것들은 왜 늦게 도착하는지 ㅣ 서울셀렉션 시인선 1
류미야 지음 / 서울셀렉션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름다운 것들은 왜 늦게 도착하는지

 

-슬픔. 눈물. 고뇌를 품은 고백서



 

류미아 시인의 시집이다. 오랜만에 시집을 보는 것 같다. 옛날에 어느 누가 그런 말을 했던가. 나이가 들면 시 쓰기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이다. 빗대어 생각했을 때 나이가 들면 시 읽기를 포기해야 한다고 해야 맞는 것이 되는 걸까. 아. 다시 생각해도 뼈아픈 농담이다.

문득 시가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이십대 청춘기에는 가을에 특히 더 그랬지만 지금은 계절과 무관하게, 그냥 내 삶에 대해 질문이 늘어질 때가 그 때인가보다 하고 생각한다. 바람이 분다. 잘라먹을 꼬리도 없이 그렇게 흔적도 없이 장마가 가버리고 간밤에 폭염이 기승이더니, 한낮에 묘하게 바람이 선물처럼 불어오는 중이다.


 

밝은 남색일까. 파란 바탕의 표지에 흰 글씨체가 가녀리게 걸렸다는 인상을 받는다. 몇 개의 글자들이 아래로 모여있는 것 같은 디자인이다.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던 글씨들이 바닥으로 내려앉은 그런 느낌이랄까. 바닥으로 내려온 글씨에서는 어쩐지 평온한 안도감이 느껴진다.

시인은 익숙하지 않다. 내가 언제 마지막으로 시집을 보았더라, 생각해보면 시인이 익숙하지 않은 건 당연하다. 그런데 말이다. 문득 시대가 바뀌고, 흐름이 달라졌을 텐데도 불구하고 시집이 계속 출간되고, 시인들이 새롭게 세상으로 걸어 나오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이 멈춰선 나를 발견한다. 아마도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만 같다는 혼자만의 의심을 품어보는 것이다.


 

시집을 보면서 품었던 처음 생각은 ‘왜 시인은 이토록 슬퍼해야만 할까’, 라는 생각이었다. 슬픔. 상처 그리고 눈물이 사방에서 가득 차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 그런데 문득 나는 원래 그 슬픔과 상처 그리고 눈물 가득한 시를 좋아하지 않았던가. 라는 생각에 머리가 흔들린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 조금씩 비겁해져 뒷걸음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세상을 바라보는 또다른 눈을 갖고 싶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류미아 시집을 통해 시인의 세계에서 위로와 쉼, 희망을 다시 접할 수 있었다고 적고 싶어진다. 대부분의 시집이 그렇듯 이번에도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졌다기보다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시인을 따라가다 보니 공감할 수 있는 곳 어느 지점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기도 하다. 사실 끝 간 데 없이 계속 우울과 눈물 속에서 그녀가 걸어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은 개인적인 기우였나보다. 시인을 포함한 예술가들은 고통과 슬픔, 눈물을 이야기하면서도 늘 어딘가에서 다가올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러니까 굳이 따지자면 내가 좋아하는 시와 소설이 거의 그러했던가 보다. 사실주의 문학을 대변하는 시나, 이미지 중심의 시나 다 종결에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어떤 대상이라든지 혹은 어떤 거대한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 경험하게 되는 여정 안에는, 슬픔과 고뇌에 침잠해야 하는 요소가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고통 없이 불쑥 찾아오는 희망은 찬란하게 빛나지 않는다는 생각은, 그런 까닭에 지금도 변함이 없이 이어지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희망을 위해서, 내일을 위해서, 오늘 감수해야 할 것들 앞에 불편함을 감추고 기여이 마주서야 한다는 조건은 어찌보면 지나치게 잔인하다. 피하고 싶으면 피하고 싶은 것 역시 인간의 심리이기에.

 


여기 류미아 시인의 이야기에서 시인이 어떻게 고통과 눈물을 마주하고 또 어떻게 극복해가는지를 느껴볼 수 있을까.

 


 

-물고기자리

 

나는 눈물이 싫어 물고기가 되었네/폐부를 찌른들 범람할 수 없으니 /

슬픔의 거친 풍랑도 날 삼키지 못하리//

달빛이/은화처럼 잘랑대는 가을밤/몸에 별이 돋아 날아오르는 물고기/

거꾸로 박힌 비늘도 노 되어 젓는//

 

숨이 되는 물방울……/숨어 울기 좋은 방……/

물고기는 눈멀어 물을 본 적이 없네/그래야 흐를 수 있지/그렇게 날 수 있지//

 

생은 고해라든가 마음이 쉬 밀물지는 내가 물고기였던 증거는 넘치지만, 슬픔에 익사 않으려면 자주 울어야 했네-

-물고기자리 전문-p14

 

 


-별

 

어느 밤/동굴처럼 캄캄해져/울고 있는데//

 

터진 눈 반짝이며/그들이 내게 말했다.//

 

여기 봐, 날 좀 보라고, 별거 아냐 부서지는 거.//

-별 전문-p44

 



-냉정과 열정 사이.(부분 인용)

 

온 힘으로 무너지는 꽃들을 한번 보아/

그 어느 잎 하나 슬픔을 생각하겠니/

그래서 꽃 피는 거야/

다음 봄이 오는 거야//

-냉정과 열정 사이-p85

 

 


숨어 울기 좋은 방, 생은 고해와 고뇌로 가득찼는데, 그 순간 슬픔에 익사하지 않으려면, 살아내기 위해서라도 더 자주 울어야 했다는 시인의 고백이 한없이 무겁게 다가온다. 한순간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보지 않은 이가 과연 정상에서의 희열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을까. 부서지고 넘어지고 떨어지는 순간순간의 모든 두려움을 극복할 방법은, 정면으로 대응하고 순응하는 일이다. 넘어지고 떨어지고 깨지고 그렇게 좌절하면서도 스스로 일어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개인의 소견은, 이쯤에서 어쩐지 어색한 비극적 페이소스를 연상하게 하는가도 싶다.


 

거대한 물의 흐름을 한 귀퉁이에서 잠시 막는다고 그 힘을 다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온전한 한 권의 시집을 읽고 몇 글자 되지 않는 글로 표현하는 일 또한 온전한 일이 될 수는 없어 보인다. 어리석은 일인 동시에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집을 읽고 여전히 감상에 젖어 끄적이는 나는 또 무슨 염치없는 인간인지 모르겠다.


 

시집을 읽고 느끼고 생각하는 순간조차 나이를 운운하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받아들이고 바라보는 세상이 달라졌듯이 내게 찾아와 말 걸어주는 시상도, 시어도 예전 같지는 않다. 설사 그렇다고 한들 ‘희, 노, 애, 락’을 함께 풀어내고 공유하는 시인의 열정과 애잔함은 외면하기 어려운 일이다. 시인과 독자의 자리에서 함께 감정의 정화를 나눌 수 있다는 즐거움은 변함 없이 이어지는 희열이다. 이것이 시 읽기의 즐거움인가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han22598 2021-07-23 0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를 거의 읽지도 않고 잘 못읽는데요... 월천예진님 글이랑 올려주신 류미야님의 시들 모두 좋네요. ‘별‘ 시 특별히 좋은 것 같아요. ˝별거 아니야..부서지는거˝....
˝고통없이 불쑥 찾아오는 희망은 찬란하지 않는다˝는 말도..요즘 제가 많이 생각하는 것들인데...참 위로가 되기도 하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인 것 같아요. ^^

월천예진 2021-07-23 12:07   좋아요 0 | URL
학생때는 시를 좋아했는데 나이 드니 좀 달라지는거 같아요. 그래도 뭐. 가끔은 옛날로 돌아가 시집도 보고 그러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더운데 어찌 지내시나요.ㅡ.ㅡ 정말 덥네요.

han22598 2021-07-26 13:37   좋아요 0 | URL
제가 있는 곳은 원래 워낙 더운 곳이긴 한데...오늘은 낮에 잠깐 나갔었는데 정말 덥더라고.
한국은 많이 더운 것 같은데....건강 조심하세요!
 
마녀 - 유혹과 저주의 미술사 ㅣ 해시태그 아트북
알릭스 파레 지음, 박아르마 옮김 / 미술문화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녀. 유혹과 저주의 미술사

-결코 자유롭지 못했던 그녀들. 마녀

 



검은 바탕을 배경으로 한 여인의 옆모습이 강렬하다. 여인의 머리는 붉은 색이며 굵은 웨이브를 표현한 듯 붓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유난히 그 얼굴색이 창백한 도자기 빛처럼 하얗다. 뭐랄까. 깊이 감춘 듯, 실은 감추지 않은 듯 어떤 내면의 것들을 살짝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은 이 여인의 표정이 묘하게 시선을 끌었다. 그러니까 여인의 반쯤 벌어진 입술과 살짝 위로 치켜뜬 눈동자가, 마치 바라보는 대상을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바라보는지를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 같다는 말이다. 표지에 등장하는 이 여인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보편적 아름다움일까. 아니면 감추어진 음흉함일까.

 


책은 마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미술사와 접목해서 바라보는 마녀의 이야기라고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핵심이 되는 중요 모티브는 분명 마녀다.

예술가들은 마녀를 어떻게 작품 안으로 끌어안았을까? 책에는 미술계의 여러 장르를 표현하는 작품들을 싣고 있다. 기본적인 회화를 비롯해, 조각, 모자이크, 석판화처럼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기법으로 완성된 작품과 함께, 작품 안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있는 마녀의 이미지를 설명하고 있다고 이해하면 좋겠다.

더불어서 책은 근현대에 들어와 초현실주의까지 이어지는 미술계의 흐름과 시대적 혹은 정치적 요구에 맞게 새롭게 변해가며 재해석된 마녀의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제일먼저 우리가 만나게 되는 마녀 이야기는 ‘예술에서의 마녀’라는 제목 안에서 찾을 수 있다. 흔히 마녀라고 하면 생각하게 되는 이미지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뾰족한 모자? 검은 망토? 아니면 구불구불한 빗자루, 부리부리하고 못생긴 메부리코에 축 늘어진 윤기없는 피부, 혹은 치켜 올라간 눈과 긴 손톱 같은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봐도 사실 마녀라는 이미지는 이미 만들어진 것에 대한 답습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미 서구에서 만들어놓았던 낡은 이미지를 늘 다시 가져와 떠올리고 연상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책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책은 시기마다 대표적인 마녀사건들과 정치적 시대적 희생의 이미지를 포함, 현대에 이르러 그 이미지의 변화를 가져와 확장된 마녀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 요지다. 또한 각각의 시대와 종교관이 요구해왔던 여성성과 그 기대치에 대한 통념을 통해, 사회가 만들어내는 억압과 죄의식에 대한 모순까지 엿볼 수 있는 순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사실은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 조금 더 많이 몰입했었는지도 모른다. 사회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통념의 덫과 그 덫에 걸린 희생양. 그리고 마녀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마녀는 단순히 전설에 등장하는 사악한 기운, 음탕함, 이교도의 반란? 그리고 죽음과 연결이 많은가보다. 그러나 사실 책을 통해 본 실정은 당대의 정치, 종교에서 비롯된 많은 모순점에서 그 문제들이 출발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심리학적으로 본다면 마녀의 추악한 이미지와 마녀사냥을 통해 드러난 갈등의 요소는, 불안한 심리와 불신임을 타계하기 위한 일종의 위험한 대안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중세에 위세를 떨쳤던 전염병과 전쟁과 같은 불안전한 시대상에 도전하려는 반감을 덜어내기 위해, 위정자들이 마녀사냥에 더 열을 올렸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말이다.

시대와 정치적 요소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던 초기 마녀의 이미지는 후대에 갈수록 일정부분 변화를 가져왔다. 예술가들은 시대의 흐름에 동반하여 작품 안에서 여러 의미를 상징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마녀를 새롭게 탄생시켰다. 분노와 증오,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마녀의 이미지가 에로티시즘을 품은 팜므파탈적인 이미지로 변화해가는 까닭은 더 이상 마녀의 존재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아닌 환상과 쾌락, 유희의 대상으로 존재의미가 달라졌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자. 이제 마무리를 해보자. 유일하게 동양권에 등장하는 마녀를 소개하면서 일본의 ‘마녀 다키야샤’를 소개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일본과 마녀의 개념이 개인적으로는 어딘지 모르게 좀 어색해보이기는 한데 말이다. 그래도 저자의 설명을 읽고 있으니 딴지를 걸고 싶은 삐딱한 속내가 좀 조용해지는 걸 느낀다.

책 안에는 겉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여인의 그림에 대한 설명도 찾아 볼 수 있다. 여인은 배우였으며 그림은 연출된 장면이었다는 점. 따라서 이 그림은 그런 이유로 실제 여인(틸라 뒤리외)의 초상화이기도 하다는 것의 세부적인 정보도 만나게 된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작품은 ‘마녀의 언덕-세일럼 순교자’로 소개되고 있는 그림이다. 그림의 부제는 ‘누명이 벗겨진 마녀’다. 이십대 초반쯤 보이는 여리게만 보이는 한 여인의 얼굴표정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작품은 미국의 마녀사냥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표정이 이런 것일지. 삶도 죽음도 초월한 얼굴 같기도 한 그림 속 여인의 얼굴이, 그 낯빛이 지극히 아름답다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잔인함을 생각하게 하는 것은 개인적인 감흥이다.

다시 개인적이다, 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와 같은 표현 말이다. 사실 나는 작품 중에 백미가 바로 ‘집회에 가는 마녀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관능적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절제된 것 같은 그렇게 묘한 이중적인 느낌을 받게 되는 이 그림은, 밝음과 어두움, 흑과 백, 생과 죽음을 연상하게 하는데 충분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담이다. 마녀 관련된 책을 읽는 며칠동안 자주 가위에 눌렸다고 한다면 우스운 일이다. 그저 우연이다. 그런데 사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들으면서 끄적이는 지금 순간은 살짝 의도된 우연이다. 비가 오려는지 하늘이 무겁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 - 이 사설은 공산당에 대한 사형선고 판결문이다
구평 편집부 지음 / 에포크미디어코리아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

 



오늘 7월 1일자 중국 관련 기사가 눈에 띈다. 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의 시진핑 주석에 대한 기사였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이번 책 역시 중국 공산화에 관련된 책이다.

에포크미디어코리아(에포크타임스 소속) 편집부에서 나온 이번 책은 에포크타임스에 실린 사설을 모았다고 했다. 제목 그대로 공산당에 관련한 이야기를 싣고 있다. 평론이라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학문적 접근의 보편적인 평론의 차원보다는 조금 평향된 성향의 강한 인상을 남기는 듯하다.

솔직히 에포크타임스에 대해서 아는 게 전무하다. 책에 소개된 에포크타임스에 대한 내용을 조금 적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에포크타임스>는 인성. 인권. 자유를 지향하는 글로벌 신문그룹으로서 동양의 정통 정신문화를 선양하고 서구 물질문명의 폐해와 반인류적인 인권문제를 개선하고 도덕성을 회복하는 데 힘쓰고 있다. p3 ―


 

에포크타임스에 대한 정보를 더 찾아보면 극우적, 반중 성향의 언론사로 소개되고 있다.

-중국 공산당에 정면으로 맞서는 강한 반공산주의, 명백한 증거를 무시하면서까지 음모론과 비과학적 주장을 신봉하는 반지성주의 성향을 보인다. (출처; 나무위키)-

그들의 신념이라고 할까. 그들이 주지하고 믿는 사상이 어쨌든 현 중국의 공산화 사상과 정 반대되는 사상이라는 것쯤은 이들 단체의 특성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책에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공산화 과정과 그 피해로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물론 대부분의 내용이 후자 즉 공산화 과정에서 생겨난 수많은 피해(정치, 경제, 인명, 문화)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우선 이번 책은 중국(책은 중공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이 공산화 되는 과정에 있어 원인에서부터 시작해서, 공산당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을 해하고 그들이 주장하는 공산당의 개념을 확대 발전시켜나갔는지 그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과정에서 보통의 민간인들이 입은 피해와 공산당이 가한 폭력을 집중적으로 언급한다. 정치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인성과 신념의 집합체인 종교까지 뿌리 채 뒤흔드는 공산당의 폭압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책은 중국의 공산화는 소련의 사회주의 영향을 받은 결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책에서는 중국의 공산화가 크게 봤을 때 소련이 주창하는 사회주의와는 그 성격이 훼손, 부정되었으며 원래의 공산주의의 원리에서 벗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소련이 붕괴된 지금 전체 공산주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지닌 나라가 중국이라는 생각을 할 때, 중국은 자신들에게 맞는 공산화를 재창조했으며 그 결과가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시진핑 중국주석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공산화 100주년 기념식을 자랑하고 있으니 말이다.

 


전체 9가지 이야기를 다 들여다봐도 실은 결론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쩌면 그런 이유로 인해 이번 책이 조금은 아쉽게 다가오는가도 싶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객관적인 시선에서 쓰인 평론을 읽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 책은 뭐랄까. 객관적 시선을 잠식하고 있는 거대한 감정이 너무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런데 말이다. 이쯤에서는 공산주의 내지는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너무 격하게 다가서는 모습은 좋아보이지 않더라는 말을 하고 싶어진다. 물론 이런 건 분명 존재한다. 이를테면 내가 모르는 있는 것을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게 맞고, 무지에서 오는 착오는 정당한 정보의 습득이라는 과정을 통해 올바른 방향으로 재설정 되는 게 맞다는 일종의 개인적인 지론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개인과 집단의 끓어오르는 감정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냉정하고 차분한 글을 읽고 싶었던가 보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다. 책에 대한 느낌은 사람마다 다 다르니 고민이 있을 필요는 없는 일이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공산당에 대한 비판과 비난을 이어가며 공개적으로 중국의 공산화가 갖는 반인륜적인 동시에 반도덕적인 행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번 책은 중국이 공산화되고 확고해지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들은 결국 가해자들의 폭력과 억압, 피해자들의 죽음과 수많은 신체적 정신적 상처로 각인되고 남겨졌다는 것을 포함한 중국 공산주의에 대한 총체적인 고발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번 책을 낸 에포크타임스의 목적이기도 하다


 

각설하고 개인적으로는 문화대혁명과 관련한 이야기와 공산화 과정에 대한 언급에 집중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문화혁명은 여전히 잔존하고 있는 상황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이번 책에서 유독 눈에 띄는 부분은 파룬궁 박해에 대한 내용일지도 모른다. 공산당이 왜 유독 파룬궁을 두려워하고 박해를 가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나와있다.

 


마지막으로 AB단에 대한 정보를 이곳에 기록한다. 잘 접해보지 못했던 내용이기도 하고, 많은 정보가 부족한 내게 있어서, 소련이나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에 반하는 세력이 당시에도 있었다는 이야기는 뭐랄까 조금 신선하게 다가오는 부분이기도 하다. 거대한 세력의 확장에 대한 언급이 일반적인 분위기에서, 항거하는 반대 세력의 존재에 대한 언급은 그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AB단(Anti-Bolshevik Corps의 약칭으로 볼세비키에 반대하는 군대를 의미하며 중국 공산당 지도부와 다른 견해를 가진 집단을 지칭) P68-


 

이건 사족이긴 한데 오늘 기사로 나온 중국 공산당 100주년 기사를 두고 에포크타임스가 어떤 내용의 사설을 낼지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더불어 뻗어가는 세력과 견제하려는 세력의 균형에 대해 생각해보는 순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햇살을 향해 헤엄치기
엘리 라킨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사상사 / 2021년 6월
평점 :
절판


햇살을 향해 헤엄치기

-인간은 끊임없이 성장해간다.

 



책을 읽으면서 먼저 기분이 좋았던 것을 이야기해보자. 별건 아니지만 연필 한 자루가 내 기분을 업되게? 했다고 쓰러던 참이다. 현관문 손잡이에 걸린 봉지에는 아이들 학습지 안내의 광고지와 연필 한 자루가 들어있었다. 대부분 함께 오는 연필이 좀 흐리거나 약한 경우가 있어서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연필을 깎고 처음 쓰윽 종이 위에 미끄러지는 그 느낌은 순간 신선했던 것 같다. 책을 보는 동안 정확히 네 번을 다시 깎았다. 생각보다 연필심이 금방 닳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내가 그만큼 연필 쓰는 일이 많아서였을지도 모른다.

 



햇살을 향해 헤엄치기는 마음의 부담을 잠시 내려놓고 읽고 싶은 책이었다. 제목이 여름과 잘 어울린다고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파아란 하늘에 뭉게뭉게 떠 있는 구름이 보이는 책 표지가 이뻤다는 것을 첫 느낌으로 적고 싶어진다. 책은 뭐랄까. 그동안 접해왔던 책들 중에서 앤 타일러의 ‘파란 실타래’ 혹은 오가와 이토의 ‘츠바키 문구점’에서 받았던 느낌과 비슷했던 것도 같다. 그만큼 잔잔하면서도 수채화 같은 맑은 느낌을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결혼에 실패한 여인은 스물일곱이었다. 많은 나이도 아니다,라는 말을 쓰고 싶어서 나이를 먼저 언급하고 있는 중이다. 어쨌든 우리의 주인공은 케이틀린은 두 번의 유산, 남편 에릭과의 이혼으로 인한 현실적인 피폐함을 떠안고, 어려서 성장했던 할머니의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녀의 곁에는 가족 같은 개 바크가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돌아온 그녀에게는 정말 많은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사실 케이티를 힘들게 하는 상처는 가장 잔인한 트라우로 각인된 하나의 기억이다. 그 기억은 그녀가 어렸을 때 경험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것으로 표출된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의 크기는 어느정도일까. 가늠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어린 소녀의 상실감이, 스물일곱의 성인으로 성장한 케이티 곁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소설은 트라우마를 떠안고 살아가는 주인공에게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그녀를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이 어떻게 상처를 극복하고 견디며 성장해가는지를 과하지 않은 시선으로 따라가며 보여준다.

상처를 보듬어주는 힘은 무엇일까. 따뜻한 위로와 공감, ‘너는 혼자가 아니다!’ 라는 연대감이 느껴진는 메시지. ‘너만 힘든 게 아니다’, 라는 상처의 공유가 주인공 케이티 주변을 에워싸고 천천히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마치 촉촉하고 부드러움이 소복하게 배어든 잔잔한 이야기들의 이어짐 같다. 가족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곁을 지켜주는 든든한 존재 말이다.

 



상실감과 우울감으로 돌아온 케이틀린 (케이티,케이) 곁에는 그녀의 할머니와 할머니의 친구들이 있었다. 빗시와 버니는 동성애 커플로 등장하지만 버니는 이미 사망한 것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녀의 추억과 시간들은 남아있는 모두와 함께 하는 듯 보인다. 그 외 까탈스러운 루스, 엄마처럼 아니 언니처럼 케이티를 이해해주는 알디아. 그리고 할머니의 남자친구 아이작 등이 할머니의 친구들이다. 반면 어렸을 때부터 케이티와 단짝이었던 모가 등장하고 루카라는 이성이 등장한다. 소설에서 현실적인 사건은 할머니들이 준비했던 인어쇼였다. 이 과정에 케이틀린이 함께하면서 이야기는 더 확장된다.

 



이 소설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동성애 문제는 그렇게 큰 비중을 담고 있지 않아 보인다. 사실은 나이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케이티와 모 그리고 루카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70대를 넘은 고령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면 조금은 따분해질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소설을 읽으면서 나이 들어감, 내지는 삶의 마지막 열정의 아름다운 모습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도 서로 사랑하며 아끼고 살아가는 모습은, 모든 인간존재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들? 서로 의지하며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해간다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인어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친구들을 만나는 대목이 등장한다. 낡고 빛바랜 추억이 새로운 삶의 목표가 되고 향기가 될 수도 있다는 설정은, 이 소설이 갖는 또 하나의 긍정의 메시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의 상처를 공유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고통의 무게를 서로 나누어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나누어 짊어질 수 있다는 것은 상처받은 이나, 위로를 해주고 싶은 이에게나 언제나 든든한 일이 되지 않을까. 해피 엔딩으로 끝나서 기분이 좋은 책이 이 책인가 싶다.

마지막으로 사담을 적는다. 우스운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불쑥 오래된 팝송 하나가 생각이 난다. 유쾌한 아바의 음악이.

you can dance, you can jive, having the time of your life -아바의 ‘댄싱 퀸’

 



“응? 뭐가 두려워?”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거요.” 내가 말했다.

 

 


“그들을 덜 사랑하는 게 해결책은 아니란다.” 빗시가 말했다.

“우리들은 대부분을 잃게 될 거야. 결국에는. 너나 나나 그건 어쩔 수가 없어. 그런 법이니까. 하지만 그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게 낫지 않겠니?”

 


 

“아무것도 영원한 건 없는데, 넌 영원한 결정을 하려고 하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세월이 보이기 시작하면 가장 두려운 일은 충분히 열심히 사랑하지 않은 것이란다. 사랑이 잘 되면, 우리는 안녕을 고할 때를 선택하지 않아. 그건 그냥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지. 그러니 네게 가능한 건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어라 사랑하는 것뿐이야.” (p562-563 부분 발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han22598 2021-07-08 0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장 두려운 일은 충분히 열심히 사랑하지 않은 것이란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건 생사가 아니라, 사랑이네요.
이 책...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좋은 리뷰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월천예진 2021-07-08 13:23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