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 유혹과 저주의 미술사 ㅣ 해시태그 아트북
알릭스 파레 지음, 박아르마 옮김 / 미술문화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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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유혹과 저주의 미술사

-결코 자유롭지 못했던 그녀들. 마녀

 



검은 바탕을 배경으로 한 여인의 옆모습이 강렬하다. 여인의 머리는 붉은 색이며 굵은 웨이브를 표현한 듯 붓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유난히 그 얼굴색이 창백한 도자기 빛처럼 하얗다. 뭐랄까. 깊이 감춘 듯, 실은 감추지 않은 듯 어떤 내면의 것들을 살짝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은 이 여인의 표정이 묘하게 시선을 끌었다. 그러니까 여인의 반쯤 벌어진 입술과 살짝 위로 치켜뜬 눈동자가, 마치 바라보는 대상을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바라보는지를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 같다는 말이다. 표지에 등장하는 이 여인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보편적 아름다움일까. 아니면 감추어진 음흉함일까.

 


책은 마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미술사와 접목해서 바라보는 마녀의 이야기라고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핵심이 되는 중요 모티브는 분명 마녀다.

예술가들은 마녀를 어떻게 작품 안으로 끌어안았을까? 책에는 미술계의 여러 장르를 표현하는 작품들을 싣고 있다. 기본적인 회화를 비롯해, 조각, 모자이크, 석판화처럼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기법으로 완성된 작품과 함께, 작품 안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있는 마녀의 이미지를 설명하고 있다고 이해하면 좋겠다.

더불어서 책은 근현대에 들어와 초현실주의까지 이어지는 미술계의 흐름과 시대적 혹은 정치적 요구에 맞게 새롭게 변해가며 재해석된 마녀의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제일먼저 우리가 만나게 되는 마녀 이야기는 ‘예술에서의 마녀’라는 제목 안에서 찾을 수 있다. 흔히 마녀라고 하면 생각하게 되는 이미지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뾰족한 모자? 검은 망토? 아니면 구불구불한 빗자루, 부리부리하고 못생긴 메부리코에 축 늘어진 윤기없는 피부, 혹은 치켜 올라간 눈과 긴 손톱 같은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봐도 사실 마녀라는 이미지는 이미 만들어진 것에 대한 답습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미 서구에서 만들어놓았던 낡은 이미지를 늘 다시 가져와 떠올리고 연상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책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책은 시기마다 대표적인 마녀사건들과 정치적 시대적 희생의 이미지를 포함, 현대에 이르러 그 이미지의 변화를 가져와 확장된 마녀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 요지다. 또한 각각의 시대와 종교관이 요구해왔던 여성성과 그 기대치에 대한 통념을 통해, 사회가 만들어내는 억압과 죄의식에 대한 모순까지 엿볼 수 있는 순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사실은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 조금 더 많이 몰입했었는지도 모른다. 사회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통념의 덫과 그 덫에 걸린 희생양. 그리고 마녀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마녀는 단순히 전설에 등장하는 사악한 기운, 음탕함, 이교도의 반란? 그리고 죽음과 연결이 많은가보다. 그러나 사실 책을 통해 본 실정은 당대의 정치, 종교에서 비롯된 많은 모순점에서 그 문제들이 출발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심리학적으로 본다면 마녀의 추악한 이미지와 마녀사냥을 통해 드러난 갈등의 요소는, 불안한 심리와 불신임을 타계하기 위한 일종의 위험한 대안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중세에 위세를 떨쳤던 전염병과 전쟁과 같은 불안전한 시대상에 도전하려는 반감을 덜어내기 위해, 위정자들이 마녀사냥에 더 열을 올렸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말이다.

시대와 정치적 요소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던 초기 마녀의 이미지는 후대에 갈수록 일정부분 변화를 가져왔다. 예술가들은 시대의 흐름에 동반하여 작품 안에서 여러 의미를 상징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마녀를 새롭게 탄생시켰다. 분노와 증오,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마녀의 이미지가 에로티시즘을 품은 팜므파탈적인 이미지로 변화해가는 까닭은 더 이상 마녀의 존재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아닌 환상과 쾌락, 유희의 대상으로 존재의미가 달라졌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자. 이제 마무리를 해보자. 유일하게 동양권에 등장하는 마녀를 소개하면서 일본의 ‘마녀 다키야샤’를 소개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일본과 마녀의 개념이 개인적으로는 어딘지 모르게 좀 어색해보이기는 한데 말이다. 그래도 저자의 설명을 읽고 있으니 딴지를 걸고 싶은 삐딱한 속내가 좀 조용해지는 걸 느낀다.

책 안에는 겉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여인의 그림에 대한 설명도 찾아 볼 수 있다. 여인은 배우였으며 그림은 연출된 장면이었다는 점. 따라서 이 그림은 그런 이유로 실제 여인(틸라 뒤리외)의 초상화이기도 하다는 것의 세부적인 정보도 만나게 된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작품은 ‘마녀의 언덕-세일럼 순교자’로 소개되고 있는 그림이다. 그림의 부제는 ‘누명이 벗겨진 마녀’다. 이십대 초반쯤 보이는 여리게만 보이는 한 여인의 얼굴표정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작품은 미국의 마녀사냥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표정이 이런 것일지. 삶도 죽음도 초월한 얼굴 같기도 한 그림 속 여인의 얼굴이, 그 낯빛이 지극히 아름답다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잔인함을 생각하게 하는 것은 개인적인 감흥이다.

다시 개인적이다, 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와 같은 표현 말이다. 사실 나는 작품 중에 백미가 바로 ‘집회에 가는 마녀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관능적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절제된 것 같은 그렇게 묘한 이중적인 느낌을 받게 되는 이 그림은, 밝음과 어두움, 흑과 백, 생과 죽음을 연상하게 하는데 충분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담이다. 마녀 관련된 책을 읽는 며칠동안 자주 가위에 눌렸다고 한다면 우스운 일이다. 그저 우연이다. 그런데 사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들으면서 끄적이는 지금 순간은 살짝 의도된 우연이다. 비가 오려는지 하늘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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