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들은 왜 늦게 도착하는지 서울셀렉션 시인선 1
류미야 지음 / 서울셀렉션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름다운 것들은 왜 늦게 도착하는지

 

-슬픔. 눈물. 고뇌를 품은 고백서



 

류미아 시인의 시집이다. 오랜만에 시집을 보는 것 같다. 옛날에 어느 누가 그런 말을 했던가. 나이가 들면 시 쓰기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이다. 빗대어 생각했을 때 나이가 들면 시 읽기를 포기해야 한다고 해야 맞는 것이 되는 걸까. . 다시 생각해도 뼈아픈 농담이다.

문득 시가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이십대 청춘기에는 가을에 특히 더 그랬지만 지금은 계절과 무관하게, 그냥 내 삶에 대해 질문이 늘어질 때가 그 때인가보다 하고 생각한다. 바람이 분다. 잘라먹을 꼬리도 없이 그렇게 흔적도 없이 장마가 가버리고 간밤에 폭염이 기승이더니, 한낮에 묘하게 바람이 선물처럼 불어오는 중이다.


 

밝은 남색일까. 파란 바탕의 표지에 흰 글씨체가 가녀리게 걸렸다는 인상을 받는다. 몇 개의 글자들이 아래로 모여있는 것 같은 디자인이다.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던 글씨들이 바닥으로 내려앉은 그런 느낌이랄까. 바닥으로 내려온 글씨에서는 어쩐지 평온한 안도감이 느껴진다.

시인은 익숙하지 않다. 내가 언제 마지막으로 시집을 보았더라, 생각해보면 시인이 익숙하지 않은 건 당연하다. 그런데 말이다. 문득 시대가 바뀌고, 흐름이 달라졌을 텐데도 불구하고 시집이 계속 출간되고, 시인들이 새롭게 세상으로 걸어 나오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이 멈춰선 나를 발견한다. 아마도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만 같다는 혼자만의 의심을 품어보는 것이다.


 

시집을 보면서 품었던 처음 생각은 왜 시인은 이토록 슬퍼해야만 할까’, 라는 생각이었다. 슬픔. 상처 그리고 눈물이 사방에서 가득 차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그런데 문득 나는 원래 그 슬픔과 상처 그리고 눈물 가득한 시를 좋아하지 않았던가. 라는 생각에 머리가 흔들린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 조금씩 비겁해져 뒷걸음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세상을 바라보는 또다른 눈을 갖고 싶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류미아 시집을 통해 시인의 세계에서 위로와 쉼, 희망을 다시 접할 수 있었다고 적고 싶어진다. 대부분의 시집이 그렇듯 이번에도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졌다기보다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시인을 따라가다 보니 공감할 수 있는 곳 어느 지점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기도 하다. 사실 끝 간 데 없이 계속 우울과 눈물 속에서 그녀가 걸어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은 개인적인 기우였나보다. 시인을 포함한 예술가들은 고통과 슬픔, 눈물을 이야기하면서도 늘 어딘가에서 다가올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러니까 굳이 따지자면 내가 좋아하는 시와 소설이 거의 그러했던가 보다. 사실주의 문학을 대변하는 시나, 이미지 중심의 시나 다 종결에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어떤 대상이라든지 혹은 어떤 거대한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 경험하게 되는 여정 안에는, 슬픔과 고뇌에 침잠해야 하는 요소가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고통 없이 불쑥 찾아오는 희망은 찬란하게 빛나지 않는다는 생각은, 그런 까닭에 지금도 변함이 없이 이어지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희망을 위해서, 내일을 위해서, 오늘 감수해야 할 것들 앞에 불편함을 감추고 기여이 마주서야 한다는 조건은 어찌보면 지나치게 잔인하다. 피하고 싶으면 피하고 싶은 것 역시 인간의 심리이기에.

 


여기 류미아 시인의 이야기에서 시인이 어떻게 고통과 눈물을 마주하고 또 어떻게 극복해가는지를 느껴볼 수 있을까.

 


 

-물고기자리

 

나는 눈물이 싫어 물고기가 되었네/폐부를 찌른들 범람할 수 없으니 /

슬픔의 거친 풍랑도 날 삼키지 못하리//

달빛이/은화처럼 잘랑대는 가을밤/몸에 별이 돋아 날아오르는 물고기/

거꾸로 박힌 비늘도 노 되어 젓는//

 

숨이 되는 물방울……/숨어 울기 좋은 방……/

물고기는 눈멀어 물을 본 적이 없네/그래야 흐를 수 있지/그렇게 날 수 있지//

 

생은 고해라든가 마음이 쉬 밀물지는 내가 물고기였던 증거는 넘치지만, 슬픔에 익사 않으려면 자주 울어야 했네-

-물고기자리 전문-p14

 

 


-

 

어느 밤/동굴처럼 캄캄해져/울고 있는데//

 

터진 눈 반짝이며/그들이 내게 말했다.//

 

여기 봐, 날 좀 보라고, 별거 아냐 부서지는 거.//

-별 전문-p44

 



-냉정과 열정 사이.(부분 인용)

 

온 힘으로 무너지는 꽃들을 한번 보아/

그 어느 잎 하나 슬픔을 생각하겠니/

그래서 꽃 피는 거야/

다음 봄이 오는 거야//

-냉정과 열정 사이-p85

 

 


숨어 울기 좋은 방, 생은 고해와 고뇌로 가득찼는데, 그 순간 슬픔에 익사하지 않으려면, 살아내기 위해서라도 더 자주 울어야 했다는 시인의 고백이 한없이 무겁게 다가온다. 한순간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보지 않은 이가 과연 정상에서의 희열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을까. 부서지고 넘어지고 떨어지는 순간순간의 모든 두려움을 극복할 방법은, 정면으로 대응하고 순응하는 일이다. 넘어지고 떨어지고 깨지고 그렇게 좌절하면서도 스스로 일어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개인의 소견은, 이쯤에서 어쩐지 어색한 비극적 페이소스를 연상하게 하는가도 싶다.


 

거대한 물의 흐름을 한 귀퉁이에서 잠시 막는다고 그 힘을 다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온전한 한 권의 시집을 읽고 몇 글자 되지 않는 글로 표현하는 일 또한 온전한 일이 될 수는 없어 보인다. 어리석은 일인 동시에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집을 읽고 여전히 감상에 젖어 끄적이는 나는 또 무슨 염치없는 인간인지 모르겠다.


 

시집을 읽고 느끼고 생각하는 순간조차 나이를 운운하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받아들이고 바라보는 세상이 달라졌듯이 내게 찾아와 말 걸어주는 시상도, 시어도 예전 같지는 않다. 설사 그렇다고 한들 , , , 을 함께 풀어내고 공유하는 시인의 열정과 애잔함은 외면하기 어려운 일이다. 시인과 독자의 자리에서 함께 감정의 정화를 나눌 수 있다는 즐거움은 변함 없이 이어지는 희열이다. 이것이 시 읽기의 즐거움인가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an22598 2021-07-23 0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를 거의 읽지도 않고 잘 못읽는데요... 월천예진님 글이랑 올려주신 류미야님의 시들 모두 좋네요. ‘별‘ 시 특별히 좋은 것 같아요. ˝별거 아니야..부서지는거˝....
˝고통없이 불쑥 찾아오는 희망은 찬란하지 않는다˝는 말도..요즘 제가 많이 생각하는 것들인데...참 위로가 되기도 하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인 것 같아요. ^^

월천예진 2021-07-23 12:07   좋아요 0 | URL
학생때는 시를 좋아했는데 나이 드니 좀 달라지는거 같아요. 그래도 뭐. 가끔은 옛날로 돌아가 시집도 보고 그러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더운데 어찌 지내시나요.ㅡ.ㅡ 정말 덥네요.

han22598 2021-07-26 13:37   좋아요 0 | URL
제가 있는 곳은 원래 워낙 더운 곳이긴 한데...오늘은 낮에 잠깐 나갔었는데 정말 덥더라고.
한국은 많이 더운 것 같은데....건강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