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을 향해 헤엄치기
엘리 라킨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사상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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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을 향해 헤엄치기

-인간은 끊임없이 성장해간다.

 



책을 읽으면서 먼저 기분이 좋았던 것을 이야기해보자. 별건 아니지만 연필 한 자루가 내 기분을 업되게? 했다고 쓰러던 참이다. 현관문 손잡이에 걸린 봉지에는 아이들 학습지 안내의 광고지와 연필 한 자루가 들어있었다. 대부분 함께 오는 연필이 좀 흐리거나 약한 경우가 있어서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연필을 깎고 처음 쓰윽 종이 위에 미끄러지는 그 느낌은 순간 신선했던 것 같다. 책을 보는 동안 정확히 네 번을 다시 깎았다. 생각보다 연필심이 금방 닳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내가 그만큼 연필 쓰는 일이 많아서였을지도 모른다.

 



햇살을 향해 헤엄치기는 마음의 부담을 잠시 내려놓고 읽고 싶은 책이었다. 제목이 여름과 잘 어울린다고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파아란 하늘에 뭉게뭉게 떠 있는 구름이 보이는 책 표지가 이뻤다는 것을 첫 느낌으로 적고 싶어진다. 책은 뭐랄까. 그동안 접해왔던 책들 중에서 앤 타일러의 파란 실타래혹은 오가와 이토의 츠바키 문구점에서 받았던 느낌과 비슷했던 것도 같다. 그만큼 잔잔하면서도 수채화 같은 맑은 느낌을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결혼에 실패한 여인은 스물일곱이었다. 많은 나이도 아니다,라는 말을 쓰고 싶어서 나이를 먼저 언급하고 있는 중이다. 어쨌든 우리의 주인공은 케이틀린은 두 번의 유산, 남편 에릭과의 이혼으로 인한 현실적인 피폐함을 떠안고, 어려서 성장했던 할머니의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녀의 곁에는 가족 같은 개 바크가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돌아온 그녀에게는 정말 많은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사실 케이티를 힘들게 하는 상처는 가장 잔인한 트라우로 각인된 하나의 기억이다. 그 기억은 그녀가 어렸을 때 경험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것으로 표출된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의 크기는 어느정도일까. 가늠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어린 소녀의 상실감이, 스물일곱의 성인으로 성장한 케이티 곁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소설은 트라우마를 떠안고 살아가는 주인공에게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그녀를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이 어떻게 상처를 극복하고 견디며 성장해가는지를 과하지 않은 시선으로 따라가며 보여준다.

상처를 보듬어주는 힘은 무엇일까. 따뜻한 위로와 공감, ‘너는 혼자가 아니다!’ 라는 연대감이 느껴진는 메시지. ‘너만 힘든 게 아니다’, 라는 상처의 공유가 주인공 케이티 주변을 에워싸고 천천히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마치 촉촉하고 부드러움이 소복하게 배어든 잔잔한 이야기들의 이어짐 같다. 가족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곁을 지켜주는 든든한 존재 말이다.

 



상실감과 우울감으로 돌아온 케이틀린 (케이티,케이) 곁에는 그녀의 할머니와 할머니의 친구들이 있었다. 빗시와 버니는 동성애 커플로 등장하지만 버니는 이미 사망한 것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녀의 추억과 시간들은 남아있는 모두와 함께 하는 듯 보인다. 그 외 까탈스러운 루스, 엄마처럼 아니 언니처럼 케이티를 이해해주는 알디아. 그리고 할머니의 남자친구 아이작 등이 할머니의 친구들이다. 반면 어렸을 때부터 케이티와 단짝이었던 모가 등장하고 루카라는 이성이 등장한다. 소설에서 현실적인 사건은 할머니들이 준비했던 인어쇼였다. 이 과정에 케이틀린이 함께하면서 이야기는 더 확장된다.

 



이 소설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동성애 문제는 그렇게 큰 비중을 담고 있지 않아 보인다. 사실은 나이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케이티와 모 그리고 루카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70대를 넘은 고령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면 조금은 따분해질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소설을 읽으면서 나이 들어감, 내지는 삶의 마지막 열정의 아름다운 모습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도 서로 사랑하며 아끼고 살아가는 모습은, 모든 인간존재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들? 서로 의지하며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해간다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인어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친구들을 만나는 대목이 등장한다. 낡고 빛바랜 추억이 새로운 삶의 목표가 되고 향기가 될 수도 있다는 설정은, 이 소설이 갖는 또 하나의 긍정의 메시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의 상처를 공유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고통의 무게를 서로 나누어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나누어 짊어질 수 있다는 것은 상처받은 이나, 위로를 해주고 싶은 이에게나 언제나 든든한 일이 되지 않을까. 해피 엔딩으로 끝나서 기분이 좋은 책이 이 책인가 싶다.

마지막으로 사담을 적는다. 우스운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불쑥 오래된 팝송 하나가 생각이 난다. 유쾌한 아바의 음악이.

you can dance, you can jive, having the time of your life -아바의 댄싱 퀸

 



? 뭐가 두려워?”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거요.” 내가 말했다.

 

 


그들을 덜 사랑하는 게 해결책은 아니란다.” 빗시가 말했다.

우리들은 대부분을 잃게 될 거야. 결국에는. 너나 나나 그건 어쩔 수가 없어. 그런 법이니까. 하지만 그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게 낫지 않겠니?”

 


 

아무것도 영원한 건 없는데, 넌 영원한 결정을 하려고 하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세월이 보이기 시작하면 가장 두려운 일은 충분히 열심히 사랑하지 않은 것이란다. 사랑이 잘 되면, 우리는 안녕을 고할 때를 선택하지 않아. 그건 그냥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지. 그러니 네게 가능한 건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어라 사랑하는 것뿐이야.” (p562-563 부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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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7-08 0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장 두려운 일은 충분히 열심히 사랑하지 않은 것이란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건 생사가 아니라, 사랑이네요.
이 책...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좋은 리뷰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월천예진 2021-07-08 13:23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