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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 - 우리 시대 작가 25인의 가상 인터뷰
장영희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스물두 번째 서평
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장영희 외
문학, 삶의 향기
상상력과 소중한 순간순간을 기억하고 싶기에 잊지 않고 있었던 시공간의 기억들이 마주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 는 거창하게 오래된 문학의 역사를 엿봐야하는 수고로움은 따르지 않는다. 케케묵은 시시콜콜한 옛날이야기도 아니다. 그저 이 글을 썼던 이들 각자의 가슴속에 자리하고 있던 문학의 대한 예의와 열정 그리고 그 속에서 꿈꾸며 성장해온 내면으로의 사색이 담긴 이야기의 기록들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있는가, 가장 닮고 싶었던 책 속의 주인공이 있는가, 당신은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어느 것 하나 쉽게 대답하기 곤란한 문제들이다. 하지만 제일 먼저 내가 집중을 하고 관심을 갖고 읽었던 책은 무엇이었던가를 생각해보고,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은 채 기억의 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책과 그 주인공이 있다면 참으로 기쁘게도 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는 자리 한쪽, 구석진 귀퉁이를 비집고 들어서서 내가 사랑하는 책과 누구누구를 불러낼 수 있는 용기가 솟아나지 않을까.
책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다. 동시대에 살아있는 이들의 대화가 아니다. 우리가 익히 들어왔기에 친근한 작가와 주인공을 불러내 대화를 하고, 때로는 영화감독을 불러내기도 하며, 일찍이 타계한 선배문인과 스승님을 현세와 내세의 중간지점이라는 묘한 세상을 설정해서 마주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는 형식을 취한다.
냉정하게 말해서 이 책의 모든 내용과 대화는 글을 쓰는 이의 주관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책 속에서 인터뷰를 하던 저 모비딕 선장 에이헤브나, 허생전의 허생이나, 깐깐한 이성의 완벽주의자 카프카가 실제로 똑같은 말을 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러했을 것 같다든지, 혹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라는 글 쓴 이의 상상이 만들어낸 일종의 허구라는 점이다. 그러나 몇몇은 정말 살아생전에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라는 추측을 불러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그것이 무에 그리 중요한가 말이다.
어쩌면 조금 특별한 상상력과 계획으로 만들어진 책 ‘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 를 통해 다소 어렵다고 생각해왔던 문학작품과 그 작품을 창조해낸 작가들에게, 다른 날보다는 조금 쉬운 발걸음으로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접했다는 데 의미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각각의 상상력의 발휘는 깊이 있는 생각을 불러내는데 그 힘을 받는다. 동시에 인생에 대한 조언과, 문학에 대한 나름의 정의, 글을 쓰는 자세라고 한다면 좀 애매하긴 하지만 각설하고 해당 작품에 대한 평가, 삶과 인생에 대한 진지한 담소, 또는 문학에 대한 어느 한 길에 대한 충고 따위가 들어가 있다고 보면 좋을 듯하다.
‘말하지 못한 나를 고백하다’. ‘20세기가 21세기에 답하다’, ‘예술의 자세, 삶의 자세’ 등 세 가지 큰 테마로 이루어진 책 안에는 각각의 주제와 맞는 내용들이 소개되어 있다.
작가가 자신에 대해 고백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쩌면 발가벗고 거울 앞에 서 있는 느낌일수 있을까. 사실은 대중 앞에 나신으로 서 있는 것보다 아무도 없는 빈 방에서 혼자 서 있는 것이 더 수치스럽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그것은 진정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 자신을 들여다보며 속속들이 세세하게 뜯어보기 위한 시간이기에 내 자신에게 더 엄격한 순간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이다. 자기 검열의 치열성에서 매번 좌절하지 않는 작가가 어디 있으랴마는, ‘내가 갈망한 것은 철저한 고독’이었노라고 토로하는 카프카를 보면서 나는 그의 내면에 있는 작가로서, 작가의 옷을 입고 살아가야 하는 어느 젊은이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천재시인으로 잘 알려진 랭보를 찾아갔던 이 역시 시인 박형준이었다.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형식이기에 상황설정 또한 다양하게 그려지고 있다. 박형준은 직접 랭보를 찾아 기차역으로 가 그를 기다리는 설정을 잡고 있어 한편의 소설 같은 인터뷰를 그려낸다.
이 외에도 서정주 시인과 자리를 함께한 장석주 시인, 김수영 시인과 함께 문학과 현실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주고받은 김명인 시인, 백석 시인을 만났던 두 명의 (오명근, 고형진)저자의 이야기도 주목할 만한 내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백석 시인에 대한 내용은 동일인물과 작품에 대한 다양한 시선과 평가라는 차원에서 문학이란, 보는 시각과 생각에 따라 또 무엇을 중심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방향과 색체로 길게 풀어나갈 수 있다는 의의를 남겨두는 것을 새삼 다시 확인하게 된다.
우리가 교과서에서나, 기존 책에서 많이 보고 들어왔던 이들에 대한 그들 나름대로의 소리(이번 책에서는 다소 주관적인 것을 배재할 수 없지만)에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시간은 값진 의미를 둔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전반적으로 저자들마다 그들의 문학적 성향이 지배적으로 드러나는 양상을 보인 까닭에 순수 지향의 문학과 민족 문학의 색채가 갈리는 경향이 이 한권의 책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는 점일 것이다.
책 속에서 누군가 염려와 걱정을 했더랬다. 전쟁과 자본주의 병폐를 모르고 자라난 젊은 작가들의 문학적 취향은 자못 그 방향성이 분명치 않고 위태하다는 내용이었음을 기억한다.
물론 아직까지도 작가는 감춰지고 드러나지 않는 것들을 찾아 치유해야 할 동기부여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하지만, 그러나 또 아직까지도 나뉘어져 있는 듯한 풍토를 보는 듯해서 마음이 건조해지는 것까지 어찌할까.
그런 뜻에서 나는 황충상 작가가 만난 그의 스승 김동리 선생과 뜻을 같이 하고 싶어진다.
[너희가 문학의 진정한 순수와 참여를 알아. 혼돈의 시간은 잠깐 지나갈 뿐이다...]
책 속에서 옛 스승님 함자를 발견하고 복잡한 생각이 들어 며칠을 울적하게 지내는 꼴이라니... 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려고 앉아있었더니, 부지불식했던 시간들만 그림자처럼 꼬리를 잇는다. 하지만 괜찮다. 누군가 말했듯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칼을 든 군인이 아니라, 책을 들고 있는 독자라고 말이다. 날선 독자가 되어야겠다. 아 그런데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지 않을까도 싶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