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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의 사춘기 - 사랑, 일, 결혼, 자신까지 외면하고픈 30대의 마음 심리학
한기연 지음 / 팜파스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열여덟 번째 서평
서른다섯의 사춘기 -한기연
과락(科落)없는 삶을 위하여
---다시 시작이다.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므로.-----
요즘은 심리학 관련 서적이 대세인가보다. 기존에 심리학 관련된 책을 그다지 많이 접해보지 않았던 까닭도 있지만 사실은 심리학이라고 하면,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이론’이 먼저 떠오르고 에릭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 먼저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버린다. 더욱이 연령대 별로 구분해 출판사 여기저기서 속속들이 출간되는 심리학 서적들을 보고 있으면 흥미위주의 책정도로 치부하거나 또는 간지러운 곳 몇 군데를 시원스레 긁어줄만한 책은 되겠지 하는 편견에 빠져버리곤 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기실 나도 별반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는 총괄적인 개념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발상이긴 하지만, 서른다섯이라는 숫자를 논함에 있어 불현듯 이 책에, 책의 제목에, 책을 쓴 저자에게 뒷덜미를 꽉 잡혀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을 한다.
이십대, 삼십대를 위한 심리학에서 한발 더 들어가 삼십대 중반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내 나이 또한 삼십대 중반이라는 고비를 막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두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라는 위치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아이를 키우며 집에서 살림을 하는 주부라고 하면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조금은 느슨해진 삼십대 중반의 긴장감으로 적절한 분위기를 표현할 수 있을까. 시대를 대표하는 정치인이나 경제인도 아니며, 그렇다고 사회의 각 층에서 최선을 다하는 슈퍼우먼의 허상을 등에 지고 새벽부터 일어나 어린이집을 전전긍긍하며 기웃거리는 ‘일하는 여자의 모습’과는 분명 다르다. 사람들은 억척스런 이미지를 만들며 또 그것을 일반화시켜 ‘아줌마는 절대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뿐더러 우악스럽다’는 식의 이미지로 못을 박고 고정화한지 오래인 듯싶다. 곁가지로 가는듯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내 입장에서 서른다섯을 뜯어보니 아줌마라는 말 자체가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넘치고 또 넘쳐대는 것을 어찌하랴. 불현듯 그 우악스럽다는 표현에서 쓴 웃음을 짓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왜 하필이면 이런 시기에 ‘억척 어멈과 그 아이들’이라는 제목이 생각나는 것일까.
이번 기회에 내가 이십대를 위해 출간된 심리학 관련서적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라는 생각을 한다. 사실 연령을 크게 나눌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느 상황에서든지 경험하고 생각하며 또 그런 요소들이 원인이 되어 발생되는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사건 사고 앞에서 갈등과 번민하는 것은 나라의 수장이나, 자아가 생성되어가는 어린아이에게나 다 마찬가지가 아닐까. 단지 우리가 나이를 먼저 걸고 넘어가는 것은 각자의 연령대에 맞게 해결방안을 제시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치’가 작용하기 때문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분명 그것은 내가 가졌던 기대치와도 같다.
삼십대 중반이라는 지점에 서 있는 여자.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직장에서의 일, 많은 관계와 관계 속에서 나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사랑’의 의미, 그리고 사랑의 결과물인 ‘결혼’에 대한 이야기로 전개되어간다. 1부에서 서른다섯이 두렵다, 라는 이야기를 선두로 5부 ‘결혼, 꼭 해야 할까’ 까지 실제 상담케이스를 소개하면서 그들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왜 고민하고 갈등하는지를 문제 속으로 접근해 들어가 숨어있는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소개되고 있는 이야기들은 직장에 다니는, 결혼을 앞둔 미혼여성에게 주 앵글이 잡혀있는 듯하다. 때문에 이미 결혼이라는 인생의 색다른 문을 건너 지나온 입장에서는 지나간 시간을 반추하는 의미의 이미지가 강하다.
심리학이란 학문의 매력은 문제 속에 해결방안이 있다는 데 후한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깊이 있는 내면으로의 사색과 더불어, 용기 있는 자는 솔직한 사람이라는 연결고리를 잘 이어간다면 단단하게 꼬여드는 매듭도 어느정도 느슨해지지 않을까.
다양한 삶의 모습과 그 안에서 서로 다르다고 생각되지만 어쩐지 비슷한 문제로 고민해가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가 담긴 책 한기연 ‘서른다섯의 사춘기’의 핵심은 마지막에 응집되어 있다. 마지막 6부의 제목은 ‘내 인생의 입 맞추기’이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어, 아니 내가 ‘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라고 이해했다면 너무 상투적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살아 존재하는 한 내 속의 진실된 주인으로서 바라보는 나를 둘러싼 세계. 그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과 높낮이를 알려주고, 내 삶의 의미를 지어주며, 가치를 인정하기까지의 서른 살 중반의 여자들의 이야기는 때로는 전형적인 심리분석이론에 입각해서 설명되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저자가 그를 찾아왔던 내담자에게 해주었을 법한 이야기이며, 책을 접하는 많은 여성들에게 전하는 조언으로 이어진다. 편안함과 안도감을 두루두루 펼쳐내며 자리를 잡아주는 인생의 선배처럼 조용하게 그러나 깊이 있는 삶의 안내자로서의 저자 한기연의 이야기는 현실적이면서도 매우 따뜻하다.
저자가 말했듯이, 삶이란 긴 시간을 두고 오래오래 살아볼 만한 가치는 분명 있어 보인다. 나는 이미 결혼을 했고, 아이를 키우는 자리에 선지 오래다. 결혼 전에 직장에서 받았던 스트레스, 결혼을 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었기에 부딪혀야 했던 갈등, 반평생을 타인으로 살아온 남자와 함께 생활해가는 과정에서 오는 불협화음 또한 내가 생각하며 고민했던 문제들이었음에 지그시 웃음이 난다. 사람 사는 모습이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아직까지도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내 발목을 붙들어놓은 현실에서 내가 미처 이루지 못한 그 어떤 것이라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 궁리를 하다가도, 아이들 문제며 남편 문제 그리고 경제적인 문제를 감안하지 않은 그야말로 생각만 많은 서른여섯의 나.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서른 중반쯤 아직 무언가를 해볼만한 시기라는 충언에 무언지 모를 기쁨에 맘이 가벼워진다.
배우자 선택에 있어 ‘과락 없는 배우자’를 논했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삶에 있어 ‘과락이 없는 인생’을 살고 싶은 소박한 욕심을 하나 키워본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던지 흑백의 논리에 빠지지 않으며, 내게 맞는 적당한 회색을 찾아 스스로 몰입하면서 극한으로 치닫는 생각은 잠시 보류해야겠다. 내 자신을 바로 들여다보는 일. 그것이 모든 관계 속에서 시작되는 첫 단초일 것이다.
[서른이 넘어서도, 마흔이 넘어서도 진실한 사랑을 나눌 수 있으며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혹 방향 설정을 하기 위해 멈칫하거나 방황하는 시기가 있을지언정 좌절과 불행은 인생의 끝을 알리는 신호가 아니라, 여기쯤에서 새롭게 시작하라는 신호이다.]
서른다섯의 사춘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