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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 1000명의 죽음을 지켜본 호스피스 전문의가 말하는
오츠 슈이치 지음, 황소연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스물한 번째 서평-오츠 슈이치 지음
죽음을 넘어 삶을 향해
-위의 제목은 에필로그의 제목이기도 하다-
편도선이 부어서 하루종일 고생이다. 물을 넘기는 일조차 통증이 와서 심호흡을 크게 한 후 물을 마시고 침을 삼키는 일 또한 고민과 주저함으로 시간을 끌다가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인다음에 삼키게 된다. 아침부터 목이 잠기고 목소리는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런 하루를 보내면서 안 그래도 윙윙거리는 코와 목 상태를 어쩌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데, 책을 읽는 내내 책상위에는 함부로 풀어놓은 휴지뭉치들이 쌓여만 갔다.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언제 또 있었던가.
길게 써 놓은 글을 삭제한다. 써놓고 보면 언제나 부질없어 보이는 글귀들은 늘 수치심과 부끄러움이라는 꼬리표를 대등하고 나를 따라다닌다. 언젠가 아주 오래전에 일흔이 훨 넘으신 이모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지난 새벽에 써놓은 글을 아침에 보면 차마 다 읽어볼 수 가 없었다고.
아무래도 오늘은 냉정과 이성을 뒤따라가기 보다는 감성에 글을 맡겨야 할까보다. 죽음 앞에 선 우리들의 (어쩌면 나 자신, 또는 가족과 이웃)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아, 진부하고 또 고지식도 하여라, 학자처럼 딱딱한 말투로 모든 생각과 느낌을 헤쳐모여, 또는 좌우 나란히 식으로 끌고 다니고 싶지가 않기 때문이다.
현직 호스피스 전문의로 일하고 있는 의사 오츠 슈이치는 말기 암 환자를 돌보며 이 글을 썼다고 했다. 그는 작가가 아닌 의사다. 의사가 펴낸 죽음을 앞둔 이들의 이야기. 바로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가지’의 이야기이다. 앞뒤의 편집되어 있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기존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단 다양한 책보다 훨씬 강한 이미지를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 느낌은 강철 같은 쇠붙이의 그것과는 달리 부드러우면서도 아련한 그 무엇이지만 그 안에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어떤 것보다도 더 강한 힘과 에너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다.
더불어 책 중간에 삽입된 흑백사진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던 동기로 작용했었다. 흑백사진이다. 이는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자연스레 갖게 되는 지나간 시간을 반추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감정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후회 또는 쓸쓸함, 어쩌면 기쁨과 환희일 수도 있겠지만 컬러풀한 사진이 아닌, 과거를 상기하게 되는 흑백사진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숙연해지는 것을 느낀다.
사람이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면서 후회하는 것이 어디 ‘스물다섯까지’만 될까마는 책을 읽으면서 나 또한 최후의 시간 앞에서 이들과 다르지 않는 후회와 아쉬움으로 어기적거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무언지 모를 두려움이 앞선다.
그러나 이 책이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는 것은 비단 마지막 순간을 앞둔 이들의 서글프고 침울한 분위기만은 아니었기에 마지막까지 편안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도 기억해두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기억에 남는 연애를 했더라면, 죽도록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 결혼을 하고 자식이 있었더라면 .....’
그들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소박한 삶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평범하지만 진지함이 묻어나는 진솔한 소망들이었다. 대기업의 총수를 지내는 사람이나 시골에서 촌부로 농사를 지으며 말년을 보내는 사람이나 그들이 품게 되는 삶의 마지막 순간의 희망은 다 비슷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돌아갈 때는 다 빈손으로 간다는 말이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 순간에는 먹고 싶어도 도무지 입맛이 나지 않아 먹을 수가 없어서 그 또한 고통이기에, 건강할 때 좋은 음식과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두라는 저자 오츠 슈이치의 말이 기억난다. 편도선이 부어서 먹는 일이 힘겨웠던 내가 갑자기 어린 아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 것도 오츠 슈이치의 음식 이야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 아들, 오늘 맛있는 거 먹을까? 뭐가 먹고 싶지?”
갑자기 생기가 넘쳐나는 기분이 드는 까닭은 왜였을까. 어쩌면 그것은 이 책이 독자들에게 주는 힘의 에너지를 내가 양껏 흡수한 까닭은 아니었을까.
누구나 죽음을 맞이함에 있어 슬픔 앞에서 눈물을 짓고 가슴이 저리게 아파한다. 하지만 죽음은 삶의 한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기에 건강하게 살아있는 현재에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건강관리는 물론이고, 정신적 관리 또한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가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지금 당장 주저하지 말고 보따리를 싸라는, 만나고 싶은 이가 있다면 나중을 기약하지 말고 지금 당장 만나라 했던, 현실의 중요성을 외면하지 말라는 저자의 이야기는 시간이 흘러 어느덧 맞이하게 될 마지막 순간을 어떤 모습으로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해 나긋하게 조언하고 있다.
두려워만 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결국은 어디에서 찾아왔든지 간에 우리는 인생의 종결이라는 같은 플랫폼에서 똑같은 열차를 타게 되지 않겠는가. 누구에게나 시간이 공평하지는 않다는 것이 조금은 서글픈 현실이겠지만, 돌아오지 않는 긴 여정을 먼저 출발한 이들의 소박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슴이 설렌다. 느슨하게 풀어진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운동화 끈이라도 다시 조여매고 싶어진다.
바라건대, 그 때 나는 조금이라도 흔들리지 않고 나약해지지 않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