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6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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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숲속에서

기억의 숲속에서

뜻밖에 나타나서

손을 뻗쳐서

나를 구해주오.

 

 

-프레베르, [이 사랑]중

 

미나토 가나에의 신작 [경우]를 읽다가, 이 작품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되고 있는 '파란 리본'은 프레베르가 말한 '뜻 밖에 나타나서 구원해주는 손'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우주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는 고리말이다. 이 파란 리본은, 어머니가 남겨준 혈육에 대한 징표인 동시에, 두 명의 고아원 출신 여 주인공들 사이를 이어주는 혈육보다 더 질긴 끈을 의미한다. 

[경우]는 결국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이야미스'라는 말이 있다. '싫음(혐오)'라는 말과 '미스터리'라는 말을 합친 조어(造語)인데, 보통 뒷맛이 개운치 않고, 싫은 기분이 되는 미스터리 소설들을 이 괄호 안에 집어 넣는다. 이 '이야미스'의 매력은 인간의 진흙탕같이 어둡고, 부정적인 부분을 철저하게 묘파해 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인간의 묘한 이중 심리랄까. 좋은 사람이 등장해서 따스한 결말에 이르는 훈훈한 이야기를 바라는 독자들이 있는 반면,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인간의 악이나 어두운 그늘을 보고 싶은 독자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참담한 전개와 그로테스크한 심리 상태의 묘사가 이어지는 내용의 책을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붙잡고 있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2011년 3월 대지진이라는 거대한 트라우마를 경험한 일본인들에겐 '해피엔딩'이 어쩐지 거짓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이 늘어서 이러한 이야미스 소설이 히트를 치게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이 '이야미스'라는 장르의 꼭짓점 위에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이 있었다. 이야미스의 주된 독자층이 30대 여성이라고 하지만,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많이 책이 팔린 것을 보아서는 [고백]에는 고정독자 이상을 빨아들이는 무엇인가가 있는 듯 보인다. 나 역시 그녀의 대표작인 [고백]으로 작가를 만났고, 그 후에 출간된 [속죄]를 읽으면서 어째서 그녀를 '이야미스의 여왕'이라 부르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에 국내 출간되는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 속에서 작가의 변모를 감지하게 된다. 가령 비채에서 작년에 공개된 [왕복서간]의 경우 그러한 변화는 두드러진다.  일본 독자들이 이야기하는 '독(毒)이 있는 미나토 가나에'와 '독이 없는 미나토 가나에' 사이에서 작가는 이작품을 통해 후자에 발을 담그게 될 것임을 보여준다. 특히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야기의 결말 부분을 읽어보면, 이러한 작가의 변모를 쉬이 수긍하게 될 것이다.예전에 발표했던 초기 작품들은 그녀가 '악의(惡意)'의 까발림에 전력을 기울였기에 읽은 후에 부대낄 정도의 어두운 뒷맛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작가는 사랑과 화해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작품들과는 확연히 유리된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공개된 [경우] 역시, 검은 미나토 가나에 보다는 하얀 미나토 가나에에 가까운 작품으로 휘몰아치는 갈등 속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끊지 않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일본 뿐 아니라 국내 독자들은 대부분 [고백]에서 독을 뿜어내던 어두운 미나토 가나에의 이미지에 경도되어 있는 듯 보인다. 그래서일까. 밝은 분위기의 가나에 작품은 어딘지 심심하고, 담백하다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작품을 좀더 진하고 걸죽하게 그려내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독자들도 있다. 처음에 독자와 마주했던 이미지가 앞서 말했던 '이야미스'적이라서 그 첫인상의 강렬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독자들이 많이 까닭이다. 가나에의 작품들의 평가 기준점은 언제나 데뷔작 [고백]이다. 자신이 만들어온 스타일의 익숙함에서 벗어나려는 작가에게 이것만큼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녀가 전략적으로 정면 돌파해야할 지점은 바로 이 곳일 것이다. [고백]이 주었던 충격을 담으면서도 그것의 아류나 변주가 아닌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 [경우]는 비록 [고백]을 잠시 잊을 만큼, 전폭적인 갱신을 일궈내지는 못했지만 (번갈아가면서 화자가 바뀌는 방식을 사용한 것은, 가나에의 전형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자신의 작품을 '답습'하지 않으려는 그 노력의 산물임에는 틀림없다.  

 

  

 

소녀시절부터 공상을 좋아했던 작가는 결국 그녀의 상상력을 작품으로 치환하여 독자들에게 선사해주었다. 국내에 출간된 7권의 책.

([경우]가 가장 최근에 나온 작품이라 맨 앞으로 빼서 사진을 찍었다. 그외는 순서없음.) 

거짓말 이야기를 좋아하고, 집에 컴퓨터가 있어서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밝히는 미나토 가나에.

자신있는 장르가 없었기에 여러장르를 도전해보자는 마음으로, 우선 청춘소설을 쓰게 되었고, 두번째 도전한 작품이 '고백'의 1장에 해당하는 [성직자]였다. ([성직자]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2주만에 썼다고 한다)

 

 

 

 

미나토 가나에의 국내 출간작을 모두 읽어본 결과, 모든 작품이 균등한 질(質)을 유지하고 있지는 않다고 느꼈다. 사실 그 자체가 거의 불가능 한 일이 아닐까. 초특급 뮤지션이라고 해서 매번 모두의 환영을 받는 음반을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특히 가나에의 경우 일급 데뷔작 [고백]으로 인해, 독자들의 기대치가 하늘을 찌르기 때문에 다른 작품들이 어쩔수 없이 비교되고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작품 면면을 살펴보면, (데뷔작의 임팩트에는 미치지 못할 지라도) 어느 선 이상의 수준을 유지하는 작품들이 다수라는 점을 느꼈다. 그리고 자기 색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글을 쓰려는 노력들이 보인다.([왕복서간]은 서간체 형식, [N을 위하여]는 인터뷰 형식을 차용했다. 이번에 나온 [경우]는 [파란 하늘 리본]이라는 동화와 함께 나와 독특한 맛을 선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나에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독자들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읽게되는 것이다.  

여담인데 미나토 가나에 사인을 할때는 저렇게 쓰다가는 금방 기진맥진해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될정도로 한자 한자 정성들여서 쓸정도로 다정다감하고, 애니메이션 성우 목소리 처럼 귀여운 목소리의 소유자라고 한다. (실제로 인터뷰 목소리를 들어보니, 애띤  목소리!) 작가 개인은  본인이 쓰는 작품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을 선사해서 재미있다. 

 

 

 

 

 

 

 

미나토 가나에의 최신작[경우]는, 초판 한정 특별판으로 소설 본문에 등장하는 [파란 하늘 리본]이라는 동화집이 포함된 [경우 선물세트]가 제작되었다. 스야마 유카가 그린 예쁜 그림들과 미나토 가나에가 직접 쓴 동화가 가나에 팬들의 소장 욕구를 높여준다.

동화책의 일부를 스캔해 보았다.

 

 

 

 

내가 비채 편집부에 감탄했던 것은 바로 이 파란 리본 모양의 책 갈피용 끈!

파란 리본은, 작품 속에서 가족의 혈액을 넘어선 그 이상의 더 깊은 연결의 끈을 상징하는데, 그 부분을 놓지지 않고, 책갈피 끈으로 만든 편집부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경우]를 드라마화 감독은 이 작품의 주제를 '인간은 외로움으로 연결되어 있다'것을 주제로 하고 있다고 보았는데, 두 주인공 모두 버려진 아이들이라, 성장과정에서 외로움을 떼어낼 수 없었다. 그런 그녀들을 묶어 준 것이 바로 '파란 하늘 리본' 인 셈이다.

 

 

 

 

 

 

먼저 [파란 하늘 리본]이라는 귀여운 그림의 동화를 먼저 읽은후, [경우]의 첫 장을 펼쳤는데 (함께 온 동화가 소설과 이어진다는 사전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다음의 문장을 만나고 살짝 놀랐었다.

 

제5회 일본 그림책 대상 신인상을 수상한 [파란 하늘 리본]이 전국의 서점에 깔린 것은 지난달 9월 20일. 아무리 신인상 수상을 알리는 띠지를 둘렀다고 해도, 이름 없는 신인작가의 그림책이 이렇게 폭발적으로 팔리는 일은 없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작은 계기가 앞바다까지 밀어주고, 커다란 파도가 다시 대해로 데려가줄 때가 있다. (p.9)

 

 

파란 리본으로 연결되듯, 두 책이 이어져 있었다.

[경우]가 기존 작품들과 다른 점은, 애시당초 영상화(드라마-이 작품은 ABC 아사히 방송 창립 60주년 기념 스페셜 드라마로 영상화 되었다)를 목적으로 두고 글을 썼다는 점일 것이다. 이 전에 시나리오를 썼던 경험이 있고, 드라마는 소설과 영화와는 달리 표현에 제약이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썼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추상적 이미지에서 좀 더 구체적인 이미지들이 작품 속에 펼쳐지기에 필치에 생동감이 느껴진다.  

 

 

(파란색 책갈피 끈을 리본모양으로 묶고, 동화책과의 연결을 강조하여 찍은 사진. 파란색이 두드러지도록 그 부분만 색을 남겨 보았다.)

 

미나토 가나에는 한 인터뷰에서 '지금의 시대는 누구나 사소한 것으로 악인도 선인도 될 수 있고,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었고, 작품 내에도 그런 장면이 등장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사람은 태어난 환경에서 그 인생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은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는 전언을 보내온다. 

 

 

등장인물에 생생함을 넣어주기 위해 고심한다는 미나토 가나에. 디테일한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집필 전에 주요 인물들의 이력서를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처음에 캐릭터 설정을 해 놓지 않으면 이야기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믿고 있는 듯 한데, 그런 버릇은 [고백]부터 [경우]까지도 초지일관한 것처럼 보인다. 그녀의 작품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전반적인 특징은, 후던잇(whodunit)이나 하우던잇(howdunit)과 같은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포팻을 따르지 않는다 점일  것이다. 그것보다는 어떤 사건과 관련된 등장인물들의 내면 심리를 탐색하는 와이던잇(whydunit)에 가깝다.

 

 

열세 살 살인자, 그보다 더 어린 희생자...

허물어진 현대의 상식을 차가운 시선으로 담아낸 서점 대상 수상작!

 

"내 딸을 죽인 사람은 바로 우리 반에 있습니다"라는 엄청난 고백을 던지고 법인인 학생들에게 믿을 수 없는 가혹한 복수를 실행하는 담임선생님! 너무나도 충격적인 내용에 출간 즉시 독자들의 열띤 찬반양론을 불러일으킨 충격의 화제작.  (비채 도서목록 발췌)

 

 

2012년에 읽은 책중 가장 빠르게 읽은 책이다.

책이 두껍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주인공들이 주고 받는 편지를 탁구 구경하듯 오른쪽 왼쪽 오른쪽 왼쪽..., 읽다 보면, 어느새 끝.

몰입도의 게이지를 MAX로 만들어 버리는 책.

게다가 각 작품마다 반전을 숨겨놓아, 끝부분에서 '아아..끄응'하고 신음하게 된다.

이번에 읽은 [경우]도 참 빨리 읽었는데, 가나에 소설의 가독성은 역시 알아 줘야 할 듯 싶다.

 

 

[왕복서간]은 서간체 소설의 매력을 듬뿍 보여준 작품. 잠깐 걸작 [고백]을 잊었을 정도로 개인적으로 맘에 들었던 작품집이었다.

 

 

 

 

체한 듯 걸려 있는 기억, 풍선처럼 부푼 죄책감...

그때 나는 누구를 구해야 했을까요?

 

편지라서 하게되는 거짓말, 편지라서 허락되는 죄, 편지라서 가능한 고백! 사건의 전말이 봉투 밖으로 흘러나온다. 충격적 결말 그리고 밀려드는 감동! 편지 형식으로만 전개되는 연작 미스터리! 미쓰다 류헤이, 미야자키 아오이 주연 전격 영화화!  (비채 도서 목록 발췌)

 

 

 

고백과 같은 색깔의 어두운 미나토 가나에를 만나고 싶다면, 바로 [속죄]를 권한다. 속도감있게 읽히는 점은 가나에가 갖고 있는 장점!

 

 

 

살인자는 어머니, 희생자는 아버지...그날 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고급 주택들이 즐비한 도쿄의 주택가. 유난히 무더운 여름밤, 이 아름다운 동네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의사 아버지에 우아한 어머니, 의대생 큰아들, 유명 사립학교에 다니는 딸, 잘생긴 막내 아들. 그림같이 완벽한 다카하시 가족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비채 도서 목록 발췌)

 

 

[고백],[야행관람차]나 [소녀]같은 작품들을 보면, 미나토 가나에가 10대 학생들의 심리나 말에 대단히 사실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많은 독자들이 그 이유를 과거에 가나에가 가사 선생님이었던 이력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작가 스스로가 패스트 푸드점에 가서 중학생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 등의 남다른 노력도 그 이유 인듯 보인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을 하는 작가이기에 그의 작품이 나오기만을 고대하게 되는 것 같다.

그녀가 응시하는 어둠의 깊이를 가늠해 보려는 마음에 자꾸 다음 작품을 출간하라고 채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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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꽂아 놓은 책꽂이에서 오랜만에 정호승 시인의 시집들을 ([서울의 예수], [흔들리지 않는 갈대]) 꺼내 읽어 보았습니다.)

 

또 기다리는 편지

 

-정호승

 

지는 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달 빈 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오랜만에 정호승 시인의 시집을 펼쳐서 그의 작품들을 읽었습니다. 그의 시를 읽다보니, 시집들을 사서 몇번이고 읽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지금은 확실히 '꽃'보다 '밥'을 위해 살고 있지만). 꽃을 소중히 생각하며 보냈던 시절입니다. 그때의 제가 가끔 현재의 저에게 때때로 편지를 보내온다고 느끼는 걸 보면, 제가 완전히 변한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정호승시인의 시집들을 꺼내서 읽게 된 것은 최근에 출간된 산문집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를 읽었기 때문입니다.

제목처럼 '인생에 용기가 되어줄 이야기'로 빼곡히 채워져 있는 책입니다.

읽고 나서 강하게 머리 속에 남아있는 글들이 있고,작품이 진심으로 마음에 들어서 제가 찍은 사진들과 함께 포스팅 해봅니다.

책의 일부만 맛보기로 발췌했기때문에, 정호승 시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참된 의미를 이해하시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 포스팅 보다는, 산문집을 꼭 읽어보시라고 권합니다.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이후, 7년만에 정호승 시인이 내놓은... 진정한 힐링을 보여주는 산문집입니다.)

 

 

 

p.249 꽃 한 송이가 밥 한 그릇보다 더 귀할 수 있다.

 

 

‘맞아, 꽃 한 송이가 밥 한 그릇보다 더 소중할 때가 있는 거야.

그러자 제 마음에 힘이 솟았습니다. 그동안 청춘의 산맥을 넘어 장년의 강을 건너 노년의 산기슭을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지금껏 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만 꽃보다 밥을 위해 더 열심히 살아온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은 오랫동안 자성의 시간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저로 하여금 다시 그 청춘의 시절처럼 밥보다 꽃을 더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행여 지금 제가 아름답다면 그래도 청춘 시절에 밥보다 꽃을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행여 지금 제가 아름다움을 잃었다면 꽃보다 밥을 더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꽃이 없으면 제 삶은 아름다워지지 않습니다. 제 삶에 꽃이 피지 않으면 봄도 가을도 오지 않습니다. 제 삶에 꽃이 더 소중해야 비로소 저는 한 사람 아름다운 인간이 됩니다.

 

 

 

p.106 해가 질 때까지 분을 품지 말라

 

 

분노는 벌레처럼 저를 갉아먹습니다. 어떠한 분노든 제 인생을 쓰러뜨립니다. 분노에서는 제 인생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긍정성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하든 단 하루라도 분노하지 않고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렇지만 그게 마음먹은 대로 잘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분노의 가슴을 지닌 채 하루하루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도 오늘의 제 삶이 그나마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는 까닭은 바로 ‘해가 질 때까지 분을 품지 말라’는 이 말씀 덕분입니다.

이 말씀은 제 분노의 가슴을 부드러운 손길로 씻어주고 재워줍니다. 더러워진 제 몸을 씻어주는 맑고 따뜻한 물과 같습니다. 하루를 다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 저는 이 말씀을 보석처럼 꺼내 생각합니다. 해가 질 때까지 오늘의 분을 다 풀었는지, 아니면 그대로 품고 잠자리에 들었는지 생각합니다. 만일 오늘 하루의 분을 다 풀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다면 지금이라도 분을 풀어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듭니다. 그렇게 하면 그날 하루의 분이 다소 풀립니다. 하루가 모여 1년이 되고, 1년이 모여 인생이 되기 때문에 그때그때 분을 푼다면 제 인생 전체에 쌓일 분노의 양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p.75 새들은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부는 날 집을 짓는다.

 

 

그때 문득 봄이 오면 왜 꽃샘바람이 꼭 불어오는지, 나뭇가지가 왜 바람에 잔잔하게 부러져 거리에 나뒹구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까치와 같은 작은 새들로 하여금 집을 지을때 그런 나뭇가지로 지으라고 그런 것입니다. 만일 꽃샘바람이 불어오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 부러지지 않는다면 새들이 무엇으로 집을 지을 수 있겠습니까, 또 떨어진 나뭇가지가 마냥 크고 굵기만 하다면 새들이 그 연약한 부리로 어떻게 나뭇가지를 옮길 수 있겠습니까.

새들은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부는 날 집을 짓습니다. 강한 바람에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집을 짓기 위해서입니다. 태풍이 불어와도 나뭇가지가 꺾였지 새들의 집이 부서지지 않는 것은 바로 그런 까닭입니다.

 

 

p.91 펜을 바꾼다고 글씨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펜이라는 도구를 바꾸어야 하는게 아니라 제 글씨체를 바꾸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번은 원고가 잘 써지지 않아 노트북을 바꾼 적도 있습니다. 노트북이 너무 구형이라 인터넷 속도가 느린데다 무엇보다도 자판을 쳤을 때 손가락 끝에 전달되는 느낌이 갈수록 거칠고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 노트북으로 글을 쓰다간 쓸 수 있는 글도 제대로 못 쓰겠다 싶어 새것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노트북을 바꾸었다고 해서 원고가 잘 써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서투른 목수가 연장 나무라는 것과 같을 뿐이었습니다.

결국 문제는 본질에 있었습니다. 제 글씨체가 문제이지 펜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속이 변해야 겉이 변할 수 있고, 본질이 변해야 현상이 변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본질의 변화에는 무관심한 채 외양의 변화만을 요구했습니다. 이는 자신은 변하지 않고 남이 변하기만을 바라는, 자신은 탓하지 않고 남만 탓하기를 즐기는 삶의 부정적 태도 입니다.

 

 

p.422 시계는 살 수 있지만 시간은 살 수 없다.

 

제 책상 서랍 속에도 손목시계가 몇 개 있습니다. 기념품이나 선물로 받은 것도 있고 직접 산 것도 있습니다. 예전엔 시계 하나 지니기 어려웠는데 요즘은 사용하지도 않는 시계가 몇 개나 됩니다. 시계가 많다고 해서 시간이 많아지는 게 아닌데도 말입니다.

시계 속에 시간은 들어 있지 않습니다. 시계는 시간이 아닙니다.

시계는 시간의 흐름을 확인하고 인지할 수 있는 물건일 뿐 그 속에 제 인생의 시간은 없습니다. 저는 시간 안에 사는 존재이지 시계 안에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시간은 소멸돼가는 본성을 지녔지만 시계는 하나의 물체 그대로 존재합니다.

 

 

p.298 고통은 그 의미를 찾는 순간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이는 고통의 상황을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변모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고통을 어떻게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해석하느냐, 고통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느냐 하는 점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고통을 고통으로 받아들이면 고통뿐이지만,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유 있는 고통은 있어도 의미 없는 고통은 없다는 것입니다.

 

 

p.217 흰 구름도 짜면 비가 된다.

 

 

하늘이 아름다운 것은 구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구름이 없다면 하늘 자신조차 심심하고 지루할 것입니다. 하늘은 구름을 통하여 자신의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을 한껏 보여줍니다.

구름 중에서 비를 내리는 구름은 먹구름입니다. 그런데 ‘흰 구름도 짜면 비가 된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비록 흰 구름일지라도 빨래 짜듯 힘껏 짜면 비를 오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무슨 일이든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는 가능성이 내포된 말입니다.

저는 하늘에 떠 있는 흰 구름을 보면 이 말이 먼저 떠오릅니다. 언제 어디에서 알게 된 말인지는 모르지만 이 말을 안 지 참 오래되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맞아, 내 인생의 하늘에 떠 있는 흰 구름도 짜면 비가 올 수 있는 거야!’하고 속으로 중얼거립니다.

 

 

 

p.183 꽃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황하지 않는다.

 

 

봄날에 피는 꽃을 한번 보십시오. 꽃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황하지 않습니다. 꽃을 피우려고 애쓰지 않으면서도 꽃을 피우고, 피어난 꽃은 그대로 방황하지 않고 열심히 삽니다. 누가 보든 말든 자기 삶의 의미와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하늘을 향해 피어 있다가 때가 되면 시들어 열매를 맺습니다. 베트남의 틱낫한 스님은 "한 송이 꽃은 남에게 봉사하기 위해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다. 오직 꽃이기만 하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한 사람의 존재 또한 그가 만일 진정한 인간이라면 온 세상을 기쁘게 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 책에 담긴 말씀들은 모두 제 인생에 용기를 준 영혼의 양식들입니다. 저는 지금 그 말씀의 양식을 오병이어(五餠二魚)처럼 나눠 먹고 싶습니다. 바구니에 담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예수에게 건네준 소년의 마음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다.

과연 그 말처럼, 작가가 오랜 성찰 끝에 써낸 글들은 잠언처럼 묵직하게 마음 속으로 파고 듭니다. 각박해 진 삶 속에서 주변에 꼭 권해주고 싶은 구절들이 만재해 있는 이 책은, 인생에 순간 순간마다 펼쳐서 되새기고 싶을 만큼 마음에 와 닿습니다.

 

추천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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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더라도, 이 책은 선물하고, 선물 받으면 정말 괜찮을 듯 싶습니다.

 

부담없는 내용과 공감가는 글, 그리고 책 자체가 너무 예쁘게 나왔기 때문에

 

특히 여성분들의 호응이 매우 클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윗 사진의 컨셉은 '핑크' 입니다.^^ '바다표범의 키스' 글자색과 깔맞춤했다는...ㅎ)

 

 

 

 

이것은 책을 사고 덤으로 받았던 머그컵입니다.

 

하루키를 좋아하고, 이 책을 재밌게 읽은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완소아이템이지요.

 

이제는 초레어템이 되었습니다.(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뿌듯..ㅋㅋ)

 

 

 

 

머그컵의 뒷면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포스트잇도 함께~(곰돌이 부자(혹은 모녀)도 슬쩍 찬조 출연했습니다.^^)

 

 

이 책에 대한 제 자세한 리뷰는 ...아래의 링크를 따라 가시길~~^^

 

 http://blog.aladin.co.kr/722392126/5728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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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까마귀를 싫어하는 것은 그 울음 소리가 불길하고 그 빛이 어두운 공포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이런 불길한 의미는 이 세계가 생성되기 이전의 암흑에 대한 무의식적 공포감과 관계된다고 할 수 있다.

 

 

-[문학 상징사전],이승훈 편저

 

 

그래서일까, '까마귀'는 장르 소설의 표지에서 굉장히 선호하는 존재.

 

잘 알려져 있는 작품들의 표지에 까마귀가 등장합니다.

왼쪽 아래에 있는 밀렌느 파머의 LP커버도 까마귀가 등장해서 같이 한번 찍어봤습니다.

 

 

 

 

까마귀(Raven)하면, 떠오르는 작가는 역시, 에드거 앨런 포.

아시다시피, 그의 대표작 중에 '까마귀(Raven-'갈가마귀'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라는 시가 있죠.

포는 까마귀를 앵무새처럼 말을 할 수 있는 새로 보았고, 죽은자를 애도하고, 영원히 기억하는 것의 상징한다고 밝힌바 있습니다.

 

사진은 에드거 앨런 포의 시가 중요하게 등장하는 마이클 코넬리의 "시인".

문득 포의 여러 작품을 컨셉으로 음악을 만든,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의 1집앨범 "Tales of Mystery and Imagination Edgar Allan Poe"가 생각나서 함께 찰칵!

'The Raven'이란 곡에 카트리지 바늘을 맞춰 놓고 이 글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앨런 포 탄생 200주년 기념으로 마이클 코넬리가 편집한 [에드거 앨런포의 그림자 더 레이븐 (In the Shadow of Master)]라는 책이 국내 출간되었죠. 앨런 포의 작품들과 미국 스릴러의 거장들이 생각하는 앨런 포에 대한 단상들을 엮은 책이라고 하는데, 포의 작품을 격하게 좋아하기도 하고, 워낙 쟁쟁한 거장들이 쓴 글들이 담겨져 있기에 강력 추천입니다.

 

게다가 책이 참 멋지게 나와서..읽는 기쁨 외에 소장하는 또 다른 기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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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3-01-14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마귀는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전설에 따르면 사람이 죽었을 때 저승으로 영혼을 실어다 주는 역활을 한다는군요.

에세르 2013-01-30 09:40   좋아요 0 | URL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까마귀는 영혼과 관련깊은 상징체군요.
까마귀는 (늘 느끼는 것이지만)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예사롭지 않은듯 싶어요.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까마귀라는 이름조차 으스스한 느낌도 있고..
 

 (표지 스타일과 비슷하게 저도 만화 풍으로 사진을  찍은후 보정해 보았습니다. )

  

무척 유쾌한 책입니다.

작가의 통통 튀는 듯한 글이 읽는 내내 미소짓게 만듭니다.

원래 유머와 추리는 잘 어울리지 않는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작품으로 생각을 달리 하게 되었습니다.^^

히가시가와 도쿠야...이 작가..글을 참 감칠맛 나게 쓰네요. 처음에 몇줄 만 읽어야지 하다가, 톡톡 튀는 문체가 맘에 들어 내리 120페이지까지 쉴새 없이 읽고 말았네요.ㅎㅎ

 후반부가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하게 만드는 책이죠.

 

 

 

무서운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이 사진의 뒷배경으로 나온 하늘 처럼 밝은 톤입니다.

캐릭터들이 살아있다는 느낌!!  (솨라있네,솨라있어)

이 전에 나온 [방과 후는 미스터리와 함께]는 아직 읽지 않았지만, 이렇게 유쾌한 풍의 작품이라면, [방과 후는...]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군요.^^ (읽으신 분들 어떠신지요?)

 

 

야구 시합중 발견된 감독의 시체를 둘러싼 코이가쿠보가쿠엔 탐정부 3인방의 활약을 그리고 있습니다. 소재가 야구인지라, 야구물품과 함께 찍어 보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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