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서사는 대를 잇기에, 주인공의 후손 뿐 아니라 브모, 조부모, 증조부모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대에 옴짝달싹할 수 없었던 생명들이 이어지며 또 다른 시대를 몸부림치며 살고 있습니다.

시대를 관통해서 살 수 밖에 없겠지요. 외면의 서사는 시대를 거스르기가 매우 어렵고, 내면의 서사는 가족의 내력을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분량이 얇기도 해서 가벼운 소설집이라고 생각했는데, 꽤 묵직합니다. 킴 투이 작가의 «루»와 같은 전쟁이라는 서사는 없지만, 대한민국 사회의 관습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가 개인의 삶에 어떻게 녹아들어있는지 읽을수록 무거워 집니다.

짧은 문장에 묵작한 무게가 느껴져 빠르게 읽기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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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어떤 순간을 낯선 곳에 버려두고 떠나온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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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마다 ‘문어’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넷플릭스에는 «나의 문어 선생님», 디즈니 플러스에는 영화 <아바타>의 감독 제임스 카메룬이 제작한 «문어의 비밀», 웨이브에는 «점쟁이 문어 파울의 비밀», 유플러스 모바일TV에는 «우리 집에 문어가 산다»가 있습니다.

픽사에 나오는 문어는 철저하게 확인한 내용 같았어요. 주변에 따라 몸의 색과 무늬가 변하고 판단력도 뛰어나다는 걸 <도리를 찾아서>에서 봤습니다.

디즈니에서 나온 <인어공주>에서는 세바스찬이 부르는 ‘언더 더 씨’가 기억에 남습니다만, 문어가 오래 사는 마녀로 나왔던 것 같아요. (가물가물합니다.)

문어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책을 찾아서 기록해둡니다.
지난 4월에 타계한 프란스 드 발의 저서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에 사람의 얼굴과 행위를 기억하는 문어에 관한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환상적인 문어»와 «문어의 영혼»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읽어보려고 합니다. 참고로 김동식 작가의 «문어»는 SF 단편소설집입니다.

* 우리는 ‘문어 다리’라고 하는데, 영문으로는 ‘팔 arm‘로
부르는 것 같아요.

** 암컷 문어는 산란 후 알이 부화할 때까지 지키다가
죽는다고 합니다.

*** 이러저러한 이유로 앞으로는 문어를 먹기가
더더욱 쉽지 않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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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작가의 «자연사 박물관»도 김미옥 서평가의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쓰다»에서 알게됐습니다.

끝까지 읽고 싶은 책입니다. 주말이 다 가기전에 마저 읽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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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가장 선선합니다. 집에서 돌아가는 날개의 바람도 제법 시원합니다.

어제 내린 비 덕분이겠죠? 빗 속에서 본 까치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밖에서 비를 피해 통화를 하고 있었어요. 비를 맞으면 금새 옷이 젖을 만큼 내리고 있었죠. 앞은 잘 보였어요. 갑자기 빗 속에서 까치가 보였습니다. 비를 맞으며 교통 표지판 위로 날아와 앉는데, 걱정이 됐어요. 자그마한 몸집에 비를 맞으면 체온을 빼앗길 텐데 어쩌나, 걱정스러웠습니다. 곧 짧은 통화에 집중하느라 고개를 돌렸고, 통화를 마치고 실내로 들어가려는 순간 바닥에 있는 까치가 보였습니다. 비에 젖어 축축해졌을 바닥에 있는 밥인지 빵인지를 먹느라 온 몸이 다 젖은 까치. 꽤 큼직한 덩어리여서 옆을 조금씩 공략해서 먹다가 갑자기 길 건너편으로 날아갔어요. 남은 덩어리가 꽤 있었구요. 걱정없이 실내로 들어왔다가 곧바로 전화가 걸려와서 다시 통화하러 나갔어요. 아까 그 자리를 보니 까치가 돌아왔고, 곧이어 다른 까치가 한 마리 더 날아와서 사이좋게 나눠먹고 있었어요.

어쩜 까치는 어리다기 보다 배가 고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 맞는 것보다 허기를 채우는 게 우선인 새를 본다는 것에 놀랐는지도 모릅니다.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도 밥인지 빵인지를 조금씩 뜯어먹다가... 날아가서 짝을 데리고 온 까치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마도 까치를 오래보긴 했지만 ‘까악까악’ 울고 똑똑하다는 것, 까치가 집을 낮게 지으면 그 해에는 태풍이 심하다는 것 정도, 감나무에 달린 까치밥을 먹는 것을 본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니까 까치의 특성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는 겁니다.

얼마전 마포 한옥 카페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어요. 2층 야외 자리에 참새 한 마리가 용감하게 날아다녔어요. 사람들이 빵을 먹다가 떨어뜨리는 걸 먹다가 익숙해 진 걸까요? 작은 참새가 왔다갔다하니 사람들이 인심 좋게 빵을 떼어서 줍니다. 그래도 경계를 풀지는 못하고 새는 정해놓은 거리 이상 다가 오지는 않았는데, 빵을 물고 날아가서 어딘가에 놓고 또 오곤 했어요. 그냥 다른 참새들에게 전해주고 오나보다 생각했습니다.



도시의 새들도 빵이 주식이 되어가나 봅니다. 캣맘들은 고양이 사료를 주고, 비둘기들은 곡식 대신 사람들이 게워놓은 걸 먹고 고여있는 빗물을 마십니다. 한강에 모여있는 비둘기들은 윤기가 적고 마른 상태일 때가 많습니다. 비둘기가 빵을 먹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아마도 편의점에서 사람들이 먹다가 흘린 부스러기들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먹겠지요?

도시의 새들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지만, 두 종류의 새가 빵을 먹는 걸 보면서, 도시의 새들도 빵이 주식이 되어가나보다 생각했어요. 새들에게 빵은 어떤 맛일까? 그냥 배가 고파서 먹는 것일까 혹은 고를 수 있다면 빵을 먹을 것인지?



아름다운 장면이었어요. 두 새는 어떤 관계였을까? 혼자 고픈 배를 채우기에 넉넉해서 불러온 것일까? 도시에서 먹이를 나누는 새들을 보니, 또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왜 서로를 잡아먹으려고 하는지. 그것이 과연 생존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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