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가족과 헤어진 적이 있습니다.

전날 저녁, 직장을 다니던 오빠와 저도 일찍 집에 돌아와 오랜만에 다같이 저녁을 먹고, 각자 사온 맛있는 디저트를 먹고 즐겁고 편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푹자고 다음 날 아침, 인사드리고 출근했는데, 점심 시간이 채 되지 않아서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병원 응급실에 계시니 와야겠다고 담담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빠에게 연락이 안 되니 같이 오라고 하셨어요.

택시를 타고 오빠 직장에 찾아가, 기다리고 있던 택시에 같이 타고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습니다. 아침에 아버지께 드린 인사가 마지막 인사였습니다.

빈소가 차려진 날이었는지, 그 다음 날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회사에 어떻게 연락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진 않습니다. 다만, 회사 사람들에게 아버지 마지막 가시는 길에 와주었다는 고마운 마음과, 내 슬픔을 드러내보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같이 있었습니다.

그때 회사 사람들이 했던 말이 꽤 오래도록 남아있었습니다. 이제는 별일 아니게 돼서 여기에 쓸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직 경황이 없나보다, 상황을 이렇게 잘 설명하니.’ 두 번째는 ’00씨가 뭐가 힘들어, 어머니가 힘드시지. 어머니 잘 위로해 드리세요.‘ 세 번째는 회사 복귀 후 저녁에 가볍게 호프잡에 갔을 때, ‘울 준비가 다 되서 갔는데, 00씨가 안 울어서 못 울고 왔다.’ 물론 손님들을 맞고 보내는 사이사이, 친한 친구들 앞에서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야기는 꽤 오래도록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십수 년이 지나서야 스스로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는 세 사람의 말을 모두 이해합니다. 아마도 가까운 가족을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적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저도 누군가에게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애도가 아닌 다른 형태의 슬픔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어느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아홉살의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슬퍼하지 않는 아홉살의 누군가에 대해 가졌던 마음이 기억해냈습니다. 그리고, 미안했습니다. 아홉살에 엄마를 떠나보냈을 때의 그이와,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엄마를 떠올렸을 그이의 마음에 위로와 응원을 전합니다.

(...) 그런데 너는 곧바로 지적인 부분으로 들어가 버리니까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거야. 그렇게 곧장 그쪽으로 갈 수 있는 사람은 너무 드무니까 네가 정말 그럴 수 있다고 믿지 못하거든. (...) 너는 애도하고 있는데, 네 슬픔의 형태와 슬픔에 다가가는 방식이 이해되지 않거나 오해되기까지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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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과 형의 이야기입니다. 형이 이렇게 길게 등장하는 건 처음이지 않을까 합니다. 점점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구체적으로 전개되어 장편 만화로 가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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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다가오는 어떤 관문 앞에서 통과할 수도 있고 멈출 수도 있다는 걸 새삼 떠올려봅니다.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것,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지 않을까 하는, 새로울 것 없는 생각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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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던 제품, 브랜드, 마케팅 사례가 나와있어 새롭게 알게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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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메리앤 무어의 말을 믿는다. "가장 깊숙한 감정은 언제나 침묵 속에서 드러난다. / 아니, 침묵이라기 보다 절제 속에서."

* 메리앤 무어의 시 <침묵 Silence>의 한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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