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다닐 때, 더 많이 주의를 기울이게 됩니다.
확실히, ‘배려’가 희미해지는 것 같습니다. 안 한다기 보다는 모른다는 느낌입니다. 상대의 진의는 알 수 없으니까요.

장면1:
좁은 인도를 걸을 때 반대편에서 사람이 올 때면 상대가 지나갈 수 있는 폭을 짐작하며 한쪽으로 붙어서 가려고 합니다. 참 희한한 일은 맞은편에서 오는 보행자(여, 20대 중후반 추정)가 충돌이라도 할듯 제 앞으로 걸어옵니다. 스마트폰을 보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장면2:
갈아탈 버스가 신호에 멈춰섰습니다. 얼른 횡단보도를 건너 정류장까지 가서 버스를 타야하니, 가볍게 뛰기 시작합니다. 맞은편에서 오던 보행자(남, 20대 중후반 추청)가 대각선 방향으로 제 방향으로 걸어옵니다. 아! 다행히 부딪치진 않았고, 버스에 무사히 탑승했습니다.

예전엔 스마트폰을 보면서 걷는 보행자라 그러려니 했는데, 왜 그러는 걸까요? 비가 와서 장난이라도 치고 싶어진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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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포핸즈>를 봤습니다. ‘연탄’은 알고있었는데, 피아노 연주자 두 명이 한 대의 피아노를 같이 치는 연탄이 바로 포핸즈라고 합나다.

선생님 블로그에서 보고, 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클래식 연주를 보는 것도 좋았고, 확실히 조성진 피아니스트와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인기도 이런 클래식 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있는 드라마가 나오는 데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 합니가. 여로모로 좋은 일 입니다.

살면서 사람들이 숭고하다고 여기는 가치들이 많이 나옵니다. 다른 드라마와 다른 점입니다. 예술, ‘가까이 다가갔다 싶으면 또 저 멀리 사라지는 예술’, 미혼모와 아들, 나의 자식이 아닌 부인의 자식, 응원과 짝사랑, 온 시간과 마음을 다하며 연습하고 또 연습하며 추구하는 음악, 빚쟁이의 아들이지만 어린 동생을 챙기는 형과 실장, 거장을 존경하고 영재를 발굴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된 이사장 등 한 면으로만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나옵니다. 그러면서도 친구와 예술을 아끼는 사람들의 교감도 다루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응원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소설이나 영화와 마찬가지로, 드라마도 본 사람들의 해석이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우정 혹은 상대에 대한 존중을 ‘BL‘ 코드로 해석한 글들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존재와 어떤 식으로든 특별한 사귐과 친교를 이어가는 것도 디지털 시대에는 희미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 듣고 있는 아름다운 음악을 전해주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지키고자 하는 마음과 응원과 희생. 그런 가치들을 거의 다루지 않았던 TV 드라마. 점점 옅어져가는 사람들 사이의 교류나 교감, 그리고 우정이라는 가치.

어쩜 비오와 정요는 아주 자유로운 영혼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들었던 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외부로도 책임지는 행동을 했던 비오, 어떤 환경에서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음악을 놓지 않은 정요. 그리고 서로를 알아보고 같이 성장하고 키워나가던 동료. 어른들의 개입으로 멈춰버리고 달라진 운명과 나빠진 관계. 그렇지만, 본질을 보고 본질은 놓지 않았던 혹은 놓을 수 없었던 기저에 흐르고 있던 아끼는 마음.

* 끝끝내 자기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지혜. 모든 걸 아버지 탓으로 돌리기만 하는 어린 지혜. 그래도 지혜는 자신에게 온 선물인 아들 비오를 지키려고 합니다. 그 방법이 무엇이든, 비오를 지키는 것만이 자신이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이었을 겁니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에는 많이 불편했지만, 지혜의 모습은 생존과 직결된 어떤 상황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우리 안에 있는 어두음 혹은 불안 혹은 흐느끼는 어린아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들 모자 관계는 어린 아이가 어린 아이를 보호하는 관계일지 모르겠습니다.

** 나중에 더 써보려고 합니다. 궁극의 예술을 추구한 음악가 강승운, 자신을 사랑하고 단단한 재인이, 험한 업계에 있지만 누구보다 정요를 아끼는 형 현철이, 속을 알 수 없는 현수 등

*** PD와 작가에 대해 찾아보려고 했지만, 별다른 기사를 찾지 못했습니다. 신문에 숨은 연주자 두 명의 인터뷰는 나왔는데, PD와 작가에 대한 안터뷰도 나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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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기는 지금 땅속에 묻혀있는 씨앗이란다.
그것을 싹 틔우는 것도,
썩히는 것도,
네게 달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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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친구를 사귀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야.
하지만 난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었거든.
그런 탓에
상처 받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도 안 했었어.
...나는
다른 사람한테
지나치게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아.

(외면하는 게 더 편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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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니, 몇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어떤 친구는 오래전부터, 자주 나이 이야기를 합니다. ‘나이 들어서 그래요’, ‘우리가 나이들었나봐요’ 등. 한때는 그런 대화가 매우 불편했습니다. 각자의 운명은 알 수가 없지만, 통계적으로 볼 때 황혼에 접어들기에는 아직도 한참 남은 나이였으니까요. 또, 살아가는 동안 계속 나이가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인데, 왜 자꾸 나이 이야기를 하는지, 왜 나이가 제약인 듯 이야기하는 지 잘 이해가 되진 않았습니다. 나이를 떠나서 내가 더욱 커가는 이야기, 넓고, 깊어진 이야기, 진흙탕에 굴렀던 이야기, 진흙이 묻었지만 결국은 깨끗하게 닦아낸 이야기, 살면서 내가 접한 세상,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더욱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언젠가 ‘자꾸 나이 이야기를 안 했으면 좋겠다’고 직접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다고 그 후의 만남에서 ‘나이’ 이야기가 안 나온 적은 없습니다만, 이제는 크게 상관하지 않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모든 과정이 친구는 자신을 꽤 사랑하고, 자신이 겪는 모든 것에 긍정적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라는 클리셰 같은 표현을 자주 썼지만, 혹은 도입부 감탄사처럼 사용했지만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아주 잘 감지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고, 그들의 모습으로부터 자신을 돌아보는 내용도 들어있습니다. 결국, 누구를 이해한다는 것은, 나를, 나 자신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한 가지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보는 게 달라진다는 생각입니다. 주변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누구라도 ‘내가 다 알아’라는 식의 대화는, 호기심 많은 사람에게는 비호감으로 다가옵니다. ‘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대환영입니다. 누구나 비가역으로 지나는 시간 속에서, 나에게 온 시간, 내가 지나간 시간 속에서 경험한 것들은 나를 키울 수도 있고, 반대로 나를 작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온 작가의 깨달음에 대한 내용은, 지금은 구체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 대부분 읽지 않은 책들입니다 - 그래도, 사람은 누구나 죽을 때까지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80대의 작가가 그동안 읽은 책을 다시 읽고 새로 느낀 점을 나누는 것은 아주 감사할 일이지, 일어날 수 없다거나, 이 작가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 죽을 때까지 더 넓고 깊은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것이 이 지구에 와서 살다가는 인생으로서 해야할 일이 아닐까 합니다.

아직까지는 완고하게 버티기도 하고, 상대에게 탓을 하기도 했지만, 한 발 더 뒤로 물러나서 보자면,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기도 하고, 또 어떤 상황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고 동의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느냐, 안 해야 하느냐는 당위로 가기 전에, 처음 든 생각은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 부디, 작가의 다음 책에 등장하는 텍스트는, 본 텍스트가 조금 더 많기를 바래봅니다.

** 살면서 갖는 바램 중의 하나, 잘 나이드는 것입니다.

*** (잡담) ‘None of your business‘라는 영어 표현이 생각났습니다. 이 책의 원제는 «Unfinished Business : Notes of a Chronic Re-reader»입니다. ‘아직 내가 해야 할 일이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일까요? ‘My Unfinished Business‘가 아니고 혹은 ’The Unfinished Business‘가 아닌 이유는, 이 작업은, 이 일은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이기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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