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선생님의 책 중에 읽지 못한 책을 펼쳤습니다.

젊은이들을 향한 다정한 서문과 -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고 그 근거인 젊은이들에게 다가가려는 시도로 잡문들을 묶어 책을 낸다. (...) 이 책이 젊은이들에게 ‘사유하는 인간‘으로서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의 작은 실마리라도 제공한다면 그지없이 기쁜 일이다˝ - 함께 시작합니다.

˝내 생각은?˝이라는 첫 번째 글을 읽고 나니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어릴 때는 위인전을 보면서 ‘전쟁‘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겪은 세계의 전쟁과 책에 나오지 않아 잘 알지 못했던 전쟁에 참여했던 개인의 삶에 대해 알게되면서 전쟁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선생님의 글은 시작부터 생각할게 많아집니다.

* 생업은 아니었던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어떤 의미로는 자신의 생각을 주입시킨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과의 만남이 길지도 않았는데
왜 그렇게 강렬하게 남았을까요?
본인이 사회에서 자리잡고 허세를 부리기 위한
부풀린 말로 다른 사람들에 대해
함부로 평을 했는데 그 말들이 아주 오래도록
사실로 남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신문에서 대상 중 한 분의
쉽게 할 수 없는 사회적 행동을 보면서
생각을 고치고 어디에서 비록된 것인지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을까?
(... )
사람이 생각하는 동물임에도 그 생각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태어났을 때 없던 생각이 지금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는지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더욱이 스피노자가 강조했듯 사람은 이미 형성한 의식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나 또한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을 고집하고 쉽게 버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물어야 한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이 어떻게 내 것이 되었나, 라고.
(...)
기존 생각을 수정하려면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하는 용기가 필요한데, 대부분은 기존의 생각을 고집하는 용기만 갖고 있다. 머리가 나쁜 탓이 아니다. 오히려 머리가 좋은 사람일수록 그 좋은 머리를 기존의 생각을 수정하기보다 기존의 생각을 계속 고집하기 위한 합리화의 도구로 쓴다. 사람이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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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힘겨운 사람들을, 우는 사람들을, 젊은이들을 응원하는 작가입니다.

에세이와 만화로 장르는 다르지만, 세상 사람들을 응원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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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의 그늘 아래>가 좋았습니다.

디아스포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잘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이지만,
이 글의 말미에 있는 문장,
‘주류사회에 진입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어찌 이민자뿐이겠는가?‘,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 <4. 소멸의 아름다움> 장이 특히, 좋았습니다.

** 미루는 방식으로 포기하지 않고,
마음 단단하게 먹고,
읽고 쓰기를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단단한 시간들을 나누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작가님을 응원합니다.

**** 책이 좋지만 글보다 먼저 알게되는
개인 서사가 편치 않아서
모두에게 추천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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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냐고 물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이다. 누군가 울면 가슴부터 미어졌다. 혼자 우는 눈물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가끔 무방비가 되어 버린다. 누구인지, 어디에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왜 우는지가 중요했다. 나도 누군가 왜 우는지 물어봐줬으면 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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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기전>>에는 작가가 살아낸 세월이 글에 담겨있습니다.

정보라 작가의 <<한밤의 시간표>>에서 메모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집안의 모든 문제는 구정물처럼 아래로 아래로 흘러 떨어져서 그 집안 모든 사람에게 가장 만만한 존재 위에 고이고 쌓였다. 대부분의 경우 마지막에 그 구정물을 감당하는 사람은 취약한 위치에 있는 여성이었다. 딸, 며느리, 엄마, 손녀, 맏딸은 살림 밑천이라느니 아들 가진 엄마는 길에서 손수레 끌다 죽는다느니 하는 말의 의미는 모두 같았다. 가장 만만한 구성원의 피와 골수를 빨아먹어야만 가족이라는 형태가 유지된다.˝ - <<한밤의 시간표>> 중에서

˝아들 밑천으로 쓰여야 할 딸이 꿈을 갖는 건 교육의 실패를 의미했다.˝ - <<미오기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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