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챙겨보는 편입니다.
<괴물> 이후 몇 년 동안 새 영화 소식이 없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영화 <룩백>과 <상자 속의 양>의 상영정보를 찾다가 드라마를 두 편이나 찍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작년이었나요? 시네큐브에서 개관 25주년 기념으로 고레에다 감독 특별전을 할 때 다녀왔습니다만, 아무래도 바쁠 때는 영화잡지를 챙겨보기가 쉽지 않고 또 고레에다 감독이 인기가 있다고는 하지만 다른 매체에서 드라마를 연출한 소식은 보지 못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아수라처럼>을 보고 있고,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도 보려고 합니다.

<아수라처럼>은 고레에다 감독에게 많은 영향을 준 무코타 쿠니코가 각본을 쓰고 1979년에 방영한 TV드라마를 리메이크 했다고 합니다. 무코타 쿠니코 작가에 대해서는 «키키 키린의 말»에서 보긴 했지만, 작품으로 보는 건 처음입니다.

원작을 보지 못해서 원작과 고레에다 감독의 연출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잘 만든 드라마를 보고 있습니다. 60분 미만의 7편으로 이루어진 드라마에 아주 많은 사람들의 삶이 담겨있고 또 교차합니다. 그리고 선과 악에 대해, 옳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 사람들의 편견과 사람들의 선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배우들도 반갑습니다. 배우 미야자와 리에는 알고 있었지만 연기를 보는 건 처음일 겁니다. 여전히 매력적이고 시선을 끄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배우 아오이 유우의 곰살맞을 정도로 철저하게 융통성 없는 연기를 보면 아오이 유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고, 배우 히로세 스즈는 자유분방하고 승부욕이 강한 캐릭터를 아주 잘 소화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역의 배우 쿠니무라 준의 연기도 좋습니다.

무코타 쿠니코 작가를 따랐던 고레에다 감독이라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같은 방향이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따뜻하고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애쓰며 사는 인물들이 나옵니다. 애를 쓰며 살기에 상대가 더는 어떻게 하기를 바라기보다 받아들이고 그러면서도 바꾸려 하는 인간적인 모습에 공감이 됩니다.

만약 배우 키키 키린이 살아 있었다면, 틀림없이 네 자매의 어머니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분명 공영방송에서, 지상파에서 방영하기에는 다소 적절하지 않은 소재일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해가 됩니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예외인데요, 이십 년 전에 봤을 때는 먹먹하고 어려웠는데 다시 봐야겠습니다.

분명 주거형태나 집안 인테리어 등은 요즘 방송에 등장하는 공간과 많이 다릅니다. 그래도 1979년에 살던 20대에서 60대의 여성의 삶과 70대 남자 노인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고령화가 시작되기 전인데도 80대까지 살 수 있다는 대사도 나옵니다.

아오이 유우 배우가 맡은 셋째 딸은 매력적인데, 다소 정형화된 이미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고집스럽고 승부욕이 강하게 나오는데, 당시의 30세 여성이라면 지금보다 더 어른스러울 것 같고 또 많이 읽을수록 폭넓어지고 자유로워지기도 하는데 말이죠.

가족서사, 자신의 삶에서 선택을 놓지 않는 사람들, 욕망하고 희망하지만 절망과 다른 사람들의 선택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가 더 살기 좋았던 건 아닐까 생각해보지만, 되돌아갈 수 없으니 지금을 제대로 사는데 집중해야겠습니다.

중간중간 웃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삶에도 긴장과 이완, 슬픔과 즐거움 혹은 재미가 섞여있듯, 그런 배분을 잘 그려냈다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은 알기 때문에 말을 아끼고 젊은 사람들의 선택을 지켜보고 지키려고 합니다. 다양한 세대의 등장인물들을 다면적으로 그려낸 무코타 쿠니코 작가와 영상으로 풀어낸 고레에다 감독 덕분에 드라마 한 편을 잘 봤습니다. 마지막 7화를 보는 게 조금은 아깝기도 하지만, 보고 다시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고, 자기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귀하게 생각하고, 웃음을 잃지 않고 사는 삶에 대해 본 게 첫 번째 시청 소감이라면, 다음 시청 후에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 1970년대, 1980년대에는 전 세계적으로 권투가 유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TV에서 세계 타이틀 매치 중계 방송도 꽤 많이 했고, 홍수환 선수, 장정구 선수, 김득구 선수 등 유명한 선수들도 꽤 많았습니다. 일본 만화 «내일의 죠»도 권투 만화입니다.

* 역시, 7화에 만화 «내일의 죠»를 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 마지막에 나오는 곡이 - 제목은 모르지만 아마도 반도네온 소리가 아닐까 하는데 - 좋습니다.

* 둘째 사위 역을 맡은 배우, 모토키 마사히로가 키키 키린의 사위이군요.

* 셋째 사위는 어디선가 봤다 했는데, 마츠 다카코가 출연한 <오오마메타 토와코와 3명의 전남편>에 나왔네요.

*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드라마 두 편은 일본을 드러내는 작품이라, 영화와는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도 보려고 합니다만, 기모노와 게이샤, 마이코에 대해 어쩔 수 없이 이해하는 계기가 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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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9일에서 11일까지 있었던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이 벌써 10년 전입니다.

작년에 나온 책, «이세돌, 인생의 수읽기»를 2026년 봄에 읽고 있습니다.

십년 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AI는 이제 일상에 깊숙하게 들어와 녹아들어 있습니다. 생성형 AI를 사용하는 건 표면적인 것이고, 이미 세상의 많은 일들이 AI를 기반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지켜보는 건 레이커즈와일이 ‘특이점’이라고 했던 시점이 언제 올 것인지 이겠지요. 바둑계의 대국의 양상도 많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자면, 기계적으로 연습하며 양을 축적하는 방식으로 변화된 것인지 모릅니다. 모든 걸 수작업으로 하던 방식이 기계를 학습시키고 기계의 역량을 향상시키는 방식, 그리고 양에 휩쓸려 질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도 사라지는 세상이 성큼 온 것 같습니다.

십년 전, 이세돌 9단이 이기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으로 4국을 보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리고 4국에서 이세돌 9단이 버그를 유도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당시에도 바둑을 몰랐고 지금도 모릅니다. 기보에서 숫자를 따라갈 수는 있지만 해석은 불가합니다.

메모하고 싶은 구절이 여럿입니다.
인생이 승부였던 이세돌 9단의 경험과 생각을 천천히 읽어보려고 합니다.

* 승부를 많이 치뤄야 승부에 초탈할 수 있을까요? 승부를 좋아하지 않아 피하고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붙어야 하는 시간이 꼭 오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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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얼굴>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며, 지극히 개인적인 메모입니다.


최규석 만화가의 «지옥»을 연상호 감독이 연출해 영화로 개봉한 적이 있습니다. 김이경 작가의 추천(«마녀의 독서처방»)으로 알게된 최규석 만화가의 만화를 좋아해 대부분 읽었지만 «지옥»은 낯설었고, 영화는 보지 않았습니다. 이후에는 신작을 찾아보지 않고 있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얼굴> 속 박정민 배우의 연기가 좋다고 추천받아서 영화를 보고 있습니다만, 영화가 매우 불편합니다. 지나치게 폭력적입니다.

영화를 보는건 내가 가보지 못한 혹은 가볼 수 없는 세상과 사람들을 만나는 일입니다. 역사의 고증이란 혹은 시대상이란 그때를 잊지 않도록 하는데 역할을 하겠지요. 1970년대에 20대 초반 혹은 10대 말에 집나온 예쁘지 않은 외모와 지적인 능력도 약한 어떤 여성의 죽음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자식의 입장에서 어머니의 과거를 알게되는 방식도 그렇고, 당시의 사람들 간에 보이는 상하관계 뿐 아니라 40년 후 가족들이 보이는 태도, 언론의 자극과 재미를 탐하는 태도 등 모든게 너무 폭력적이어서 영화를 계속 보는게 쉽지 않습니다.

영화를 볼 시간이 20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넉넉하지 않아서, 유사한 영역, 유사한 패턴, 유사한 소재를 다루는 영화를 찾아보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영화들을 덜 찾아보고 잘 챙겨보지 않은지 오래입니다. 마치 어떤 정해진 레시피 같이 도입 부분에 왁자지껄 웃거나 행복한 일화가 나오고, 어떤 트리거로 갈등이 나오고 욕설과 폭력이 폭발하듯 쏟아져 나오고 사람들이 죽어가고 비장하게 마무리됩니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공식으로 욕설과 나르시시스트적인 애정과 의리와 배신 등으로 구성된 영화는 아주 단조롭게 느껴집니다. 간혹 색다른 영화라고 하더라도 크게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영화 <얼굴>이 끝나고 얼마나 주인공들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영화를 본적은 없습니다. <얼굴>은 불편한 영화입니다. 블록버스터급의 예산에 비하면 저예산 영화라는 점과 표현 방식이 더 날 것에 가깝다고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만, 일단 보기 시작했는데도 중간에 끄고 싶어집니다.

왜 안동환은 어머니에 대한 안좋은 이야기들을 끝까지 들었을까요? 어떻게 이진숙은 아들과 며느리 옆에서 그런 일을 말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정영희씨는 이진숙씨를 위해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요? 사람들의 시선과 감정이 세밀하지 않고 거친 영화들이 불편합니다. 욕구와 욕망과 탐욕은 지구상 모든 사람들이 갖고 태어나지만, 그것을 어떤 영역에서 어떤 방식으로 추구하느냐로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요. 정영희씨는 집을 떠나기 전에 본 어떤 장면을 입 밖으로 내었다는 이유로 겪었던 어려움과 피복공장에서 한 행동은 분명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집에서 한 행동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요? 1970년대에 피복 공장에서 일하지 않았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대목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 영화가 끝났을 때, 폭력적이라는 전반적인 느낌이 어떻게 다르게 남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때에 다시 생각해보겠지만, 역시 연상호 감독의 영화를 보는 건 무리입니다.

* 영화 도입부를 다시 확인해봐야겠습니다만 임영규는 몇 세까지 볼 수 있었을까요? 글씨를 새긴다는 건 글씨의 형태를 이해하고 있어야 하겠지요. 도장은 점자로 파는 건 아닐테니까요.

* 시각장애인은 시각 대신 청각, 후각 등이 일반인보다 뛰어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빌딩에 설치하도록 되어있는 화재경보기에는 일반인은 듣지 못하지만 시각장애인들이 들을 수 있는 신호를 보내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변에 폭력적인 성향을 띤 여럿이 다가오고 있는데 발소리와 인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가 있을까요?

* 영화를 끝까지 봤지만 별로 달라지진 않습니다. 사회적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욕구와 욕망이 말로 표현됩니다. 여전히 얼굴은 여성에게 기대하는 덕목인가 봅니다. 뭔가 비장하게 구성이 되어 있지만, 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인생에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습니다. 편견을 강화시킬 여지가 더 커 보입니다. 마지막에 나오는 사진 한 장이, 이 영화를 이끌고 갈 만한 외모라는데 공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실존했던 엘리펀트맨의 사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 영화의 취향 문제일 수 있겠지요. 사랑 앞에서 두 가지의 다른 선택이 나옵니다. 임영규와 정영희의 선택. 평소에 잘 다루지 않는 소재나 배경이더라도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폭력적이기만 하고 섬세하지 않은 영화는 보고 싶지 않습니다. 영화가 굳이 복잡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못보던 세상을, 잊고 지내던 세상을 만나게 해주면 좋겠다는 바램은 변함이 없습니다.

* 그럼에도, 박정민 배우의 연기는 볼 만 합니다. <휴민트>에서도 봤지만, 앞으로도 좋은 영화에서 좋은 연기로 만나기를 기다립니다.

* 개인의 평은 감독이나 배우, 영화의 만듦새와는 무관합니다. 모든 영화가 명작이기를 바라지도 않고, 영화 한편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와 욕망이 투입되는 것인지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그저 다시 보고 싶은 영화를 좀 더 만나기를 원하고, 만듦새가 좋고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를 만나기를 원합니다. 어떤 관객에겐 밋밋한 영화가 어떤 관객에겐 다시 보고 싶은 영화일 수 있을 테니까요. 영화 감독, 배우, 스탭들의 영화 사랑과 관객들의 시선에는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들인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가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기에 좋아하는 영화, 감독, 배우, 촬영, 음악감독에게 넘을 수 없는 지지를 보내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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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이 문제를 주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지.
(...)
사람은 문제가 ‘자기 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로 ‘이야기를 듣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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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왠지 일본의 다양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대한민국 서울에 사는 사람들 사이엔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넉넉하다고 하긴 어려운 용돈을 잘 활용해 좋아하는 걸 연구하면서 용돈쓰는 생활을 즐기며 지내고 있습니다.

왠지 서울이나 도쿄에서 지내는 생활은 안정적이라기보다 가변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만화에 도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는지 모르겠지만, 서울에서도 그렇게 지내는 사람이 있다면, 얘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용돈을 어떻게 쓰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대략 환산하면 20만원 안팎입니다. 많은 돈이 있다면 좋겠지만, 쪼들리기보다 예산 내에서 궁리하면서 좋아하는 걸 키워가고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 일본에서는 코로나 시기에 나왔는데, 어서 요즘의 이야기가 출간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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