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제목이 기억납니다. «손절사회».
읽어야지 했다가, 잊어버렸습니다. 2026년 4월에 출간된 책이고, 작가는 1998년에 태어났고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습니다.
같은 세대가 보는 시각이라고 이해해야 할까요? 저자는 20대 후반입니다. 저자가 보는 세대의 현상에서, 많은 질문과 목적을 가지고 이 책을 쓴 것 같습니다.
‘외로움’이 화두이고 ‘손절’을 하는 세대가 됐다고 합니다. ‘손절’은 금융 투자 용어인 줄만 알았는데, 사람 간의 관계에도 이런 단어가 쓰인다니, 조금은 거부감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회사 관계에서는 ‘손절’이 꽤 잘 어울립니다. 직장 내에서도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관계를 만들어 인생의 친구가 되는 경우를 보기도 했습니다. 미안합니다만 대부분은 본인들의 목적에 따라 상대와 관계를 형성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하는 순간, 모른척하는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많긴 합니다.
어디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인볼루션’, ‘내권’이라는 용어처럼, 더욱 많은 노력을 해야 하지만 실제 삶은 더 나아지지 않는 시대적 환경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할까요? 혹은 아주 많은 선택 속에서, 누군가와 취향을 공유하면서도 전면적인 인간으로서의 관계를 맺는 법이 서툴러졌기 때문일까요? 혹은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경제적으로 어려워졌기 때문에, 관계를 더욱 선별할 수 밖에 없는 걸까요?
그런데요, 생각해보자면, 인터넷이 없던 시대에는 관계가 더욱 귀했습니다. 편지를 쓰거나 전화를 걸 수는 있었지만, 삶에 드는 노동 시간이 꽤 많았습니다. 이동 시간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시대의 관계는 귀하고 또 귀해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데 집중하거나 혹은 만나도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사람을 더욱 그리워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도 경제는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습니다. 그때는 남들이 ‘잘살겠거니’라고 생각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잘사는지 몰랐을 수 있는 시대였다면, 지금은 남들이 어떻게 잘살고 소비하고 경험하는 지에 대해 모를 수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론을 읽고 나니, 뒷부분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지금의 20대가 다른 20대를 바라보면서 정의한 ‘손절사회’라는 말은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그 말로 정리되기까지 어떤 시간들을 겪어왔는지, 일단 들어보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