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마지막 권까지 읽고,
재수생 시절의 고다이와 일각관 관리인 쿄코는 어떻게 만났었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1권을 펼쳤어요.

그런데, 그림체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연재하는 동안 조금씩 달라져왔나 봅니다. ㅎㅎ 비교해서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1권 그림은 뭔가 조금 더 작고 날카로운 느낌이랄까요?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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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뤽 고다르와 프랑소와 트뤼포는 1990년대의 시네필에게는 매우 유명하지만, KBS3에서 상영하던 <세계의 명화>나 이후 이어진 <일요 시네마>를 통해서나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아니면 시네마테크 성격의 상영회에서 비디오를 몇 번이나 복사한 영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고다르가 2022년에 조력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본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나지만, 고다르의 영화는 영화 자체로는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1963년에 감독한 영화 <경멸>을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복원해 극장에서 상영 중이리고 해서 보고 왔습니다. 20대의 브리지트 바르도가 나옵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역시 프랑스 영화다라고 생가괬던 건, 미묘한 흐름을 포착해 표현한 점입니다. 있는 그대로 부인을 사랑하지만, 사회적인 만남에서는 주눅이 들면서도 아내를 지키지 못하는 남편이 나옵니다. 그리고, 잠잠해질 수도 있었겠지만, 상황을 증폭시켜 극단적으로 끝납니다.

1963년의 영화이므로,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꽤나 재산이 많아보이는 미국의 제작자는 비서이자 애인인 여성에게 허리를 굽히라고 하고 그녀의 등을 책상 삼아 수표에 서명을 합니다. 제작자가 비서를 대하는 행동은 거칩니다.

반면 신혼부부인 카미유(브리지트 바르도 분)와 폴(미셸 피콜리 분)는 연인들 만의 사랑의 언어를 나누고,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랑이 식어버립니다. 그리고, 남성 중심의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카미유는 본인의 선택이 아니라 남편이 자신을 보호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며 경멸하는 마음으로 바뀌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영화 속에서 프리츠 랑 감독이 쓴 책을 읽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내와 아내의 정부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 소용없는 이유가 나오는데, 마치 카미유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은 장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남편 폴이 방조를 한 게 원인이겠지요.

빨강과 브리지트 바르도가 근사하게 잘 어울립니다. 카프리의 하늘도 멋있습니다. 당시 여배우들의 옷차림도 멋있습니다.

2000년 대에도 고다르 감독이 영화를 찍은 줄 몰랐습니다. 국내에서 개봉을 했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지금 OTT에서는 <네 멋대로 해라>만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그나저나, 이 영화도 출연료가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저예산 영화인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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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릴 수 있는 시간이 그립습니다... 혹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시간도 그립습니다...

사회학자는 이럴 때 어떤 사명을 품게 되는가. 에바 일루즈가 최신작 «폭발적 감정들 Explosive Emotions»에서 남긴 문장을 각자의 삶에서 일상의 사회학자로 살아가고픈 독자들을 위한 선물로 건네본다.

"사회학자인 내가 관심을 두는 건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기보다, 사회가 어떻게 그러한 상처를 가하는지 이해하는 일이다."

- 해설 <현대인은 ‘그냥’이라는 생활 영역을 빼앗기고 있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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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전개가 느리고 주변 인물들이 과장됐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너무 전개가 느리다는 의견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읽다보니, 어쩌면 그렇게 빨리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닌지, 어차피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면 괜찮은 것 아닌지, 또 시간 여유가 있기에 이런저런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건 아닌지, 그렇게 흘러간 시간이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한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 드라마 속 재벌들이나 성공한 야심가들은 이상했습니다. 빨리 결정을 내리고, 이익을 쫓는 모습이 낯선 세상이었습니다. 어쩜 시대적으로 안맞는 모습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문득, 우리가 그런 이상한 세상을 향해 빠르게 가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카하시 루미코 작가의 «경계의 린네»를 재밌게 봤습니다. (주인공 이름인 ‘린네’는 ‘윤회’라는 일본어라고 합니다) «메종일각»은 읽다가 멈췄었는데, 어쩜 천천히 읽는게 더 나은가,하는 생각을 합니다. 다른 만화들과 달리 남자 주인공은 재수생에서 시작해 취업준비, 졸업, 그리고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에서 일용직까지 세월이 흐르며 다영한 경험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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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가요? 크게는 아니고 그냥 그럴 것이다 정도의 기대 대비, 아주 얇은 책입니다.

EBS <위대한 수업>에서 에바 일루즈 교수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감정 채굴’이라는 단어가 새롭진 않았습니다. 플랫폼 기업들이 데이터 확보를 위해 하고 있는 일입니다. 아마도 이 분야, 감정 채굴 분야에서는 빅테크 중 구글과 MS가 가장 뒤쳐져있는 것 같습니다. (아, 생각해보니 스마트폰을 통해 온갖 음성을 듣고, 메신저 등에서 누구와 어떻게 소통하는지를 다 알고 있군요. 오히려 B2B를 엄청나게 강화해 MS의 영역까지 확장하고 있다고 보는게 맞겠습니다.) 구글은 MS의 윈도우가 갖지 못한 정보를 클라우드 기반으로 조용히 확장하고 있습니다. 노트북 LM과 구글 DOCS는 MS의 고유 기능이자 영역인 파일 탐색과 오피스 도구를 대신합니다. 그렇게 MS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AI투자, 반도체, 전쟁 등으로 혼란스럽고 관심이 쏠리는 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동안 사부작 사부작, 사람들에 관한 더 많은 데이터들이 빅테크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 책은 천천히 읽어봐야겠습니다.

우리는 ‘그저 존재’하기만 하면 된다.

필자가 지금까지 말하고자 한 핵심은, 우리의 감정의 주체성은 기술 자본주의위 엔진을 돌리는 연료이자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원자재라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의 세 가지 결론으로 정리된다.

경험의 상실
(...)

분주한 고독
(...)

모호해진 현실
(...)
그러나 우리는 경험의 실제성을, 보여주기식 진정성보다는 일상 속 상호 작용에서 발생하는 겉치레를, 소망대로 돌아가주지 않고 환상을 좌절시키는 세상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감정을 비생산적인 것으로 남겨두려는 태도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를 바꾸지 않고 측정하지 않고 개선하지 않는 것에 깃들어 있는 아름다움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자. 우리는 ‘그저 존재’하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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