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읽었습니다.
<베르사이유의 장미>와 같은 혁명사라고 하지만,
<베르사이유의 장미>는 <아르미안의 네 딸들>과 같이
묶고 싶습니다.
어떻게 그 시대에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삶을 그렸는지…
작가에 대해 놀랐던 두 작품입니다.
<북해의 별>은 천천히 다시 읽어보려고 합니다.
서문에 나왔듯 작가는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작가와 같은
젊은 20대 초반을 보냈다고 합니다.
고증을 통하지 않고도
선전/선동과 음모를 그려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순정만화라는 이유로 가까이 하지 않았던
날들이 아쉽기도 합니다만,
아마 그 시절에 읽었더라면
끝까지 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실력을 갖추기보다
오래도록 권력을 갖기 위해 대단히 애쓰는 사람들을
식별할 수 있기를, 대처할 수 있기를,
그래서 나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언제든 어디서든
나의 실력을 갖추고 할 일을 하는 모습이
다시 귀한 모습으로 여겨지고 삶의 지향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 예전의 만화는 다 손으로, 펜으로 그렸겠지요?
파도의 자그마한 물결, 한 그루의 나무, 산…
모두에 얼마의 시간이 들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예전의 만화에는 더 많은 생각이 담겨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시간은 동일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