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에 대해 글을 쓰다가,
<<초상화 살인>>을 추가했습니다.
아래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에 대한 글이며,
평론가와 관련된 부분에서 <<초상화 살인>>을 떠올렸습니다.

——————————

어느 글을 보다가
이 책을 읽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저를 이 책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준
아무씨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 책도 사회학에 대한 편견이 깨지고
‘사회학이 이럴 수도 있구나‘를 알게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현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듣고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사회학이라면
사회에서 만난 사회학을 공부한 사람들 중에는
만나지만 제대로 듣지 않고
들은 내용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습니다.
편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사람들에게 큰 기대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사회,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텍스트를
어떻게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지에 대해
진심이 전해졌달까요?

학자로서의 사회학자들은
어떻게 연구를 끝맺는 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런 아는 바가 없습니다.
정치학에 대해서도요.

정치적 구도와 입장을 잘 이해하고
본인들의 삶에도 정치적인 행태가 배어있겠지요.
정치를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일 것 같습니다.


최근 선생님과 나눈 대화에서
창작하는, 현장에서 만들어 내는 역량은 부족하지만
무엇이 좋은 것인지, 왜 좋은 것인지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평론가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도 선생님과 이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미처 관심을 갖지 않거나 모르고 지나쳤을
텍스트의 의의, 그것이 우리 삶에 주는 울림에 대해
잘 해석하고 전달해 줄 수 있다면
그것은 공들여 작품을 만든 사람이나
그 작품으로 인해 삶에 어떤 변화가 생길 관객 모두에게
아주 좋은 일일 테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떤 종류의 웃음이란 마음속 가장 깊은 구석에 나 있는 캄캄한 구멍 같다.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는 거기에 숨어 들어가 바깥세상의 돌풍을 넘겨 낸다. 그렇게 우리는 균형을 취하며 겨우 겨우 살아가고 있다.

- <웃음과 자유>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모진 종이책은 그대로 온전히 바깥을 향해 열려 있는 네모난 창이다. 따라서 우리는 책을 읽으면 실제로는 자기 집이나 거리밖에 알지 못하면서도 여기에 없는 어딘가에 ‘바깥‘이 있고, 자유롭게 문을 열고 어디에라도 갈 수 있다는 감각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때가 오면 진정 창과 문을 열어젖히고 자기가 좋아하는 곳으로 풀쩍 뛰어나가는 것이다.

(...)

지금 있는 곳을 떠나 바깥으로 나간다는 것은 강렬한 해방감과 자유의 감각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동시에 고독이나 불안도 동반할 때가 많다. 따라서 우리는 때로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돌아갈 장소가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 <나가는 것과 돌아오는 것>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주 드문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보노보노가 야옹이 형한테 화를 내는 장면이에요.

<어린애라고 하지 말아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제는 <Indignation>입니다.

작가는 삶의 ‘불안‘에 대해,
‘불안‘을 초래하는 혹은 ‘불안‘이 초래하는 것에 대해
쓴 것 같아요.

너무 선명합니다.
못 알아들을 수 없게끔
피해가거나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끔
이야기의 선이 굵고 선명합니다.

1920년 경의 한국소설을 읽는 것처럼
마음이 아픈 책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이에서 느끼는 것은
‘그럴 수도 있겠다‘는 개연성입니다.

오래 산다는 것은
어쩌면 삶에서의 편향을 없애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20대에는 모든 일이 의미가 있을 것 같았고
나에게 일어난 일이 매우 특별하다고 느꼈고
그 의미를 알고 싶어하는 면이 훨씬 컸던 것 같아요.

마지막 장을 넘기고
곧 다시 첫 장을 펼쳤습니다.


‘완전하지 않은 인간들이 각자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선택한 결과들이 합쳐져
최악의 결과를 빚어내는 일이 어디
1950년대에만 있었겠는가.‘
- 옮긴이의 말 중에서

그랬다면 그의 교육받지 못한 아버지가 그동안 그에게 그렇게 열심히 가르치려 했던 것은 나중에 배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매우 평범하고 우연적인, 심지어 희극적인 선택이 끔찍하고 불가해한 경로를 거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