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야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레산드로 바리코 지음, 이세욱 옮김 / 비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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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너무 강해서 감을 잡기가 어려웠어. 유럽 전역을 거쳐 열리는 레이싱 경주의 시작에서 그 무질서 무체계 미개를 너무
자세하고 덤덤하게 표현해. 경기 중에 죽는 레이서들과 죽임을 당하는 시민. 안전 장치도 없고 빨리 도착하는 것 외에 규칙도
없는 경주 중에 `대체 왜 차가 나에게 돌진하는 거지?` 질문을 할 틈도 없이 사람과 젖소가 죽어나가. 특이한게 덤덤한데 인물
하나하나에 주목해. 한페이지에 세명이 죽어도 세명의 모습이 다 그려지는.

그 시대상에서 목장을 운영하던 한 남자가 소 스무마리를 팔고 자동차 정비소를 열어. 자동차를 만져본 적도 없는 시골의 한
가장은 자동차에 매료되어서 언뜻 무모한 사업을 시작하고 이야기는 그 남자의 아들의 이야기야. 아버지가 차에 매료된 사이
여러모로 비범한 이 아이는 `길`에 매료되고 그걸 위해 인생을 바치기로 마음먹어. 오직 자동차 경주를 위한 길 `서킷`. 그리고
그 아이의 일생이야기야.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도 있고 사랑 이야기도 있고. 주인공 울티모의 죽음까지 다 있어. 모든 이야기와
중요 인물의 시작과 끝이 다 담겨있어.

줄거리는 이 정도로 하고 이 책 처음 시작했을 땐 아 요즘 자꾸 김현이랑 안 맞네. 생각했어. 차 이야기 관심도 없는데 내리 차
이야기만 하겠구나 싶어서. 그리 인상깊던 박민규의 야구 이야기를 보고 난 관심 없는 소재가 내리 나오는 책은 앞으로 거들떠
보지도 말자 했었거든. 삼진이고 외야수고 나한텐 다른 세계 언어여서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가 없어.

그래도 친구 추천 책을 끝을 내야하니까 적당히 틈틈히 읽다가 70페이지 정도부터 속도가 갑자기 붙었고 112페이지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고 소식을 접한 어머니의 모습에서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했어. 책을 읽다 우는 건 상실의 시대, 어디선가 날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그리고 세번째인 것 같아. 아 은희경 타인에게 말걸기도 있네 미안 생각해보면 더 있을 것 같아. 암튼 오랜만이었던 건 확실해. 거기다 요즘 감정도 굉장히 항상 평화롭고 즐거운데 내 감정과 별개로 순전히 책을 읽다 눈물이 난거라 왠지 기분이
좋았어. `몰입됐구나` 의식하게 되는 순간이랄까.

내가 꿈꾸는 것을 보러 가게 해줘. 속도를 느끼고 기적을 보고 싶어.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말리지 마. 오늘 밤을 거기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보내게 해줘. 오늘 밤만. 그러고나서 돌아올게.

이제는 인상적인 것들을 이야기하자

이상적인 와이프상 등장. 무엇보다 내가 되고싶은 와이프상이 등장. 플로랑스. 단호하고 신중하지만 누구보다 꿈을 응원하는 단단한.

네가 너를 사랑하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절대로 그의 꿈을 망가뜨리지 말아야 해. 네 아버지의 꿈들 중 가장 위대하고 가장 터무니없는 꿈은 바로 너야.

내 남편을 도로 데려다주기만 하면 돼요. 당신들이 이기든 지든 나하곤 상관없어요.

이 책에 대해 또 특별한 점을 말하자면, 이야기를 꾸려나가기 위해 존재하는 문장치곤 너무 아름다워서 감히 이야기 진행을 이해하기 위해 읽어 넘기기 아쉬운 문장들이 자꾸 넘쳐 나온다는 거였어. 재밌게 읽었던 소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발췌를 보면 아
저런 것도 있었나? 하는게 대부분일텐데 난 6개월도 전에 스윽 읽었던 현이의 리뷰 속의 문장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고 심지어 그
문장들 말고도 더 좋은게 너무 많아서 그 문장들은 현이에게 맡기고 나는 새 것들을 더 담자 싶었어.

이 책을 읽으며 새삼 느낀 건 안 맞는 말이란 없다는 것. 애초에 말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응용되고 혼합되고 섞이고 재창조
되는 거여서 틀린 말이나 말도 안되는 말은 없다는 거. 예로들면 `빈혈에 걸린 젊음˝

갖가지 소리와 냄새가 먼 메아리처럼 아이의 지각 속으로 들어오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나는 그의 혀끝에 걸려 있던 말들이 도로 사라지는 것을 봤어요.

여기에서는 매일 어떤 미지의 힘이 알곡을 거에서 떼어내듯 진실을 거짓에서 분리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인생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볼 수 있는 문장들이 아주 많이 나오는데 이 문장들 때문에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어도 새롭고 더 좋을 것 같아. 이런 문장들은 진짜 싹 다 저장하고 싶었는데 자꾸 핸드폰 사진 저장 용량이 다 찼단다. 거지같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인간은 어떤 사람이 되기 전에 이미 그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죽는 것과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아마도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진지한 일에 속할 것이다.

내가 늘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있다. 부모들에게는 자녀들의 꿈을 보는 눈이 없다는 사실이다. ..나쁜 부모라서가 아니라
그냥 보지 못하는 것이다

진정한 재능을 타고 난 사람은 질문이 아직 존재하지 않을 때도 답을 알고 있는 것이디.

사람들이 역사라고 부르는 것은 몇몇 사람들의 사건들일 뿐이다. 그 사건들을 마치 모두의 사건인 것처럼 팔아 먹고 있는 것이다.
그건 모두의 삶이 아니라 그들의 삶일 뿐이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사는 시간은 그 긴 시간의 작은 부분일 뿐이야. 다시 말해서 자기가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를 알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시기에만 진정으로 살았다고 할 수 있어. 나머지 세월은 기다리거나 추억하는 시간이야.

그가 살아 있다면 그의 아코디언 반주에 맞춰 춤출 사람들, 그의 연주를 듣고 흘릴 눈물, 땅바닥을 두드리며 장단을 맞출 발들이 얼마나 많으랴. 한 사람이 죽으면 얼마나 많은 것이 함께 사라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글의 묘사나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와 방법들을 보면서 작가는 분명 진중하고 순수하고 자신의 말에 확신을 가진 사람일꺼라는 생각이 들었어. 나한테 위대한 작가는 기발한 상상력 속도감 재치넘치는 표현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 사람, 풀, 동네 모든 것에 온 애정을
갖고 그들의 모습과 감정에 귀기울여 그들보다 더 그들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고. 그런 작가를 단 한명 꼽아야
한다면 적어도 지금까지는 당연히 알레산드로 바리코가 되겠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좋았던 문장 하나.

이 순간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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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양장)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대성당도 현이 추천.

난 원래 단편은 진짜 피하려고해. 김영하 아닌 이상은.
아무리 재미있게 읽어도 내용들이 쪼개져서 단편소설집 한권으로 뭉쳐지지가 않아 책을 다 읽었을 때의 쾌감이 없어서. 그리고 끝까지 읽어야한다는 압박감이 없어서 적당히 읽다 마는 경우도 많고. 읽어보고싶어졌고 읽었고 역시 난 단편은 나중나중에 시간 너무 없어서 쪼개서 글 읽어야할 때만 선택하는 걸로.

우선 처음 두세편이 엄청 빨리 읽혔어. 그리고 내용 떠나서 문장 호흡이 굉장히 좋더라고. 짧은 문장. 군더더기 없는. 쉽고 자연히 따라갈 수 있는 작가의 시선. 집중 없이도 장면이 잘 떠올라서 출퇴근 때 읽기 딱 좋은 책이었어 나한텐.

현이한테 좋았던 이유는 뭘까? 실제 사랑 많이 받는 작가이고 작품인데 .. 책 커버엔 ˝의심의 여지 없이 레이먼드 카버는 나의 가장 소중한 문학적 스승이었으며, 가장 위대한 문학적 동잔자였다.˝_무라카미 하루키 라고도 쓰여있고. 뭐 인스타에서 보니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 같더라. 근데 나는 이 책이 묘하게 오싹하더라고. 쳐지고 조금 울적해지기도하고.

현이가 갸우뚱하더라고. 현실적이긴해도 그렇게 우울한 내용은 이니었던 것 같은데? 라고. 근데 나는 더 낭만적인 삶을 살꺼야. 보통의 리얼과는 다른 삶을 살꺼니까 너 역시 다를 바 없을꺼라 말하는 접근이 싫어. 아 누군가에겐 위로가 될 수 있긴 하겠다. 근데 난 괜찮아요. 노땡큐!

훨씬 더 처절하고 우울하고 슬픈 것도 볼 수 있으면서 왜 비극까진 나오지 않는 정도의 덤덤한 이야기들 모음인 대성당은 못 읽겠는 지 스스로도 이해가 안돼서 갸우뚱거리다가 약간 알게됐어. 거부반응이 나는 포인트를.

나 홍상수감독 영화 정말 싫어하거든. 여관, 퀴퀴한 냄새, 담배연기. 밥그릇에 붙은 고춧가루(부정적 시선 아니야. 그냥 오늘 내 점심시간 밥그릇처럼). 그게 사실 내 모습일꺼거든? 근데 못보겠어. 그 거울을 굳이 보고싶지 않아. 꾸질꾸질한거 아는데. 너의 이야기고 나의 이야기인 것 아는데. 그냥... 내 삶엔 낭만이 이상이 환상이 있으면 좋겠어.

리얼리즘에 대한 거부반응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은데. 또 현실 부정 혹은 도피라고 생각하진 않아. 난 이상이 있어야 동기부여가 되는 타입같아. 그리고 그게 실제로 날 남과 다르게 살 수 있게 만들어줄꺼라고 믿어. 그리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만족을 쉽게 하는 편이니 실제 홍상수 영화 속 같더라도 난 그걸 아마 눈치채지 못할꺼야. 이미 기억 속에 미화되고 가슴 속에 곱게 포장됐을테니.

문장이 어찌나 간격하고 군더더기가 없는지 이번엔 한문장의 발췌도 없다. 빠르고 쉽고 흥미로운 여운을 남기는 책인 건 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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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사색으로의 길
J.M.보헨스키 지음, 김희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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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설은 미친듯이 재밌지 않으면 읽고 난 후 뭔가 싶은 그런 기분이 드는 요즘이라 아니 작년부터라서 뭔가 똑똑해질 수 있는 공부아닌 취미아닌 그런 책 나 왜 자꾸 이렇게 어정띤 말들만 하냐 머리 굳었냐 어쨌든 아 또 어정띤 말.... 오빠 어머니가 공부하셨던 책을 빌려읽게 됐다. 손수 줄 치신 것부터 노트까지

가장 궁금했던 철학에서 입문서로 추천 받아 읽게됐고. 생각보다 너무 쉬워버려서 약간 허망.

처음 몇 페이지 읽으면선 아 나를 위한 책이다! 했어. 되게 친절한 가이드더라고. 철학 어렵지 않아요. 우리가 평소 생각하던 그것들과 다르지 않아요. 어때요 어렵지 않죠? 할 수 있잖아요. 저도 당신들과 다르지 않아요. 그냥 인간이라면 하는 생각들이랍니다. 아 쓰면서 말투가 짜증나진다 ㅋㅋㅋㅋ

약간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에 내가 좋아했던 그 겸손하고 다정한 말투랑 비슷한데 박웅현은 깊이 있고 수준높은 단어를 구사하는데 반해서 이 책은 굳이 너무너무 쉽게 필요 이상으로 풀어 말하면서 설명하고 이해시켜서 읽다보니 나 무시하냐 싶은 거. 그리고 너무너무 풀다보니 쉬운 건데 더 헷갈리는거 그 느낌 아나 모르나. 거기다 단어들이 생각, 의심, 인식, 이해 이런 ..실체가 없으면서도 평소에 어렵지 않게 느낌으로 이해하던 것들이라. 말로 푸니 더 어려워지는 느낌. 아 내 말이 더 어렵다.

처음 읽으면서 흥미 딱 당겼을 때는 아 내가 중고등학교 혹은 대학교 때 철학 수업을 들었으면 되게 재밌게 읽었겠다 생각했는데 중간 쯤 읽으니까. 아 아니겠다. 지금 다시 공부해도 그때처럼 멍했겠구나. 좀비처럼 실존주의 이꼴 누구 대표 철학자 누구 누구 뭐 이렇게 외우고 시험치고 강의실 나오는 순간 잊었겠구나 싶었어. 더 재밌게 공부할 수 있는 분야이고 훨씬 흥미가 당길 수 있는 분야인데. 내가 문제냐 나를 안내하는 책과 교육 과정의 문제냐는... 아마 내가 문제일꺼야. 나는 집중력고자니깐.

조금 좁은 범위에 깊은 이해를 요하는 책을 읽으면 훨씬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한번 검색해봐야겠다.

의외로 찍어 놓은 부분이 있네. 다시 읽어봤는데 왜 찍어놓은 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 특유의 말투를 알려드리기 위해 옮긴다.

다른 학문들이 이런저런 지식을 알아낸다면, 철학은 `알다`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묻습니다. 다른 학문들이 법칙을 세운다면, 철학은 법칙이라는 게 무엇인지 따집니다..... 이런 뜻에서 철학은 근원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 아 써보니 알겠다. 만약 이 책의 독후감을 쓰는 숙제가 있었다면 주제를 이 부분으로 베껴썼을꺼야. 학문이란?에 대한 답

경우는 두 가지로 대별됩니다. 대상이 주어져 있거나, 그렇지 않거나. 대상이 주어진 경우, 우리는 그것을 간단하게 관찰하고 묘사하면 됩니다. 그러나 주어져 있지 않은 경우, 우리가 그 대상을 경험할 가능성은 오로지 하나입니다. 추론뿐이지요. 인식을 하는 데 있어 제3의 길은 없습니다. 물론 어떤 것을 믿을 수는 있겠죠. 그러나 믿음은 앎이 아닙니다. 지식은 오로지 주어진 것을 관찰하거나, 추론을 통해서만 성립합니다.
- 아는 얘기고 말장난이여. 배가 덜 불러서하는.


​똑똑해지고 싶어서 읽은 책. 읽고 난 지금. 확실히 똑똑해지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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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본인과 결혼하고 싶은 여자를 만났고, 친구를 사겼고, 말썽쟁이 친구 때문에 뜬금없이 사건에 휘말리고 더 뜬금없는 사고가 일어나고, 사고의 피의자가 되고,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의 이야기˝를 건조하고 덤덤한 어조로 전해 듣는다.

문장이 굉장히 짧고. 속도가 빠르고. 군더더기가 없고. 필요 이상의 감상이 껴있지 않고. 위트도 있고. 공감도 있다. 어떻게 안 좋아할 수가 있겠어. 우선 스토리 떠나서 저 것들로만도 너무 매력적인데 스토리 적당히 흥미롭고 그보다 세상과
사람을 보는 관점과 감상이 건조하고 개인적이고 논리적이고 무심해서 읽는 내내 주인공 남자에게 호감을 느끼게 돼. 호감이 더 커질 찰나 소설이 끝나버려서 아쉽기까지 하고. 그 남자와 괜히 동일시 되는 알베르 카뮈의 외모에 더 아쉬워지고.

이 세상이 호들갑 속인 건 항상 불만이었지. 필요이상의 관심. 오지랖. 편견. 말도안되는 잣대. 더 말도 안되는 논리적인척 우기기. 거기서 쟤네 왜 저러는거야!! 제발 나 좀 내버려둬 오버 좀 하지마!! 하는 게 아니고 갸우뚱거리며 음..왜죠? 당신들 왜 그러고있죠? 하는 식의. 보이는 것만 전하는그 태도가 훨씬 더 `보통` 사람과 세상을 우습게 만들어. 보는 내내 같이 비웃게되는 재미.

발췌 시작!

나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엄마의 장례식도 이제는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겠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사장이 생활의 변화에 흥미를 느끼지 않느냐고 물었다. 사람이란 결코 생활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쨌든 어떤 생활이든지 다 그게 그거고, 또 이곳에서의 내 생활에 조금도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고 나는 대답했다. 나는 사장의 비위를 거스르고 싶지는 않았으나 나의 생활을 바꿔야 할 하등의 이유도 찾아낼 수 없었다. 곰곰 생각해 봐도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

그토록 악착스럽게 덤벼드는 것이 나에게는 의외였다. 그에게 나는 다정스럽게, 거의 애정을 기울여,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뉘우치는 일이란 한 번도 없었다고 설명해 주고 싶었다. 나는 항상 앞으로 일어날 일, 오늘 일 또는 내일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이다.

p.121 나머지는 내 마음으로써 보충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옥의 티. 내 판단이 맞다면 맞춤법 틀리셨습니다. 근데 애초에 마음으로서든 마음으로써 든 이상한 표현이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서른 살에 죽든지 예순 살에 죽든지 별로 다름이 없다는 것을 나도 모르는 바 아니었다.

˝당신은 그럼 아무 희망도 없이, 죽으면 완전히 없어져 버린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러자 그는 머리를 숙이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를 불쌍히 여긴다고 그는 말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만 그가 귀찮아지기 시작한다는 느낌뿐이었다.

그때, 왜 그랬는지 몰라도, 내 속에서 그 무엇인가가 툭 터져 버리고 말았다. 나는 목이 터지도록 고함치기 시작했고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기도를 하지 말라고 말했다.
→ 사후세계와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이유로 감히 날 불쌍하게 여기고 꼴에 위로까지 하려 든다면. 아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마지막으로, 주인공 뫼르소의 시선과 태도가 좋았던 이유는 나와 닮아서가 아니고 나와 비슷한 논리와 태도를 취하는 와중에 나와는 달리 그 머릿 속에서도 가슴 속에서도 태도와 같은 생각과 주장을 하고 있어서였다. 예로들어 어머니를 직접 모시지 않고 양로원에 보낸 것을 사람들이 비난 할 때에 ˝내가 그 일로 악평받고 있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나에게는 엄마를 돌볼 사람을 둘 만한 돈이 없었으므로 양로원에 넣는 것이 마땅한 처사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라고 해. 난 아마 저 상황에서 똑같이 말했을테지만 뫼르소와 달리 1. 이미 악평 받고 있는 걸 알고 있었을테고 2. 내가 잘못한 것은 없으니 말대꾸를 잘해내야한다며 내 논리를 미리 준비해놨을꺼고 3.상황이 닥쳤을 때 떨리는 가슴 안고 애써 포커페이스 유지하며 논리적이고 건조하게 대답하려 노력했을꺼야. 난 가짜 뫼르소는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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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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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소설을 내 돈주고 사 읽으리란 생각은 안해봤어. 근데 오상진 인스타그램에서 소개된 책 중에서 특히 허삼관 매혈기의 감상이 끌렸고 마침 흙서점에 펼친 자국조차 없는 완전 새 책이 있더라고. 4000원주고 샀어. 아 뿌듯.

자간도 넓고 폰트 사이즈도 크고 빽빽한 감 전혀 없이 설렁 설렁해. 어려운 단어 하나 없고 등장인물 단촐하고 구성도 심플한데 이야기들에 항상 미소짓게 하는 상황이라든지 표현, 따뜻한 시선이 있어서 편안하게 슥슥 넘기며 읽기 좋은 책이야. 미운 놈 하나 없는 신기한 소설이었어. 물론 갈등도 사건도 있지만 작가가 아마... 푸근한 사람인가봐. 모든 캐릭터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게 그냥 느껴져. 그래서 아주 어릴 때 읽던 창비아동문고 시리즈 같은(되게 막연하지만 초등학교 때 이 시리즈를 엄청 좋아하고 읽었던 기억이...) 전래동화도 아닌 것이....아무튼 어릴 때 하던 독서의 느낌.

피를 판 돈으로 아내를 얻고 피를 팔아 자식을 키우고 피를 팔아 자식을 살린 남자의 일생.

읽는 내내 너무 따뜻하고 뭉클했다. 영화화 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야기. 누군들 이 소설을 안 좋아할까. 보통의 아버지 보통의 어머니 보통의 자식 보통의 가족. 가장의 무게. 어머니의 역할. 아 이런 딱딱하고 식상한 말로 하기엔 참 따뜻하고 평범한 이야기인데 어찌 표현할지를 모르겠네.

발췌. 문장이 좋다기 보단 그 따뜻하고 뭉클한 느낌을 나중에도 느끼고 싶은 마음에. 그리고 허삼관 상남자. 가장이라는 자리 너무 무겁다.

그 중에서 한 명을 골라 자기 여자로 만들 생각을 한다면, 눈 내리는 겨울에 이불 속에서 꼭 껴안고 지낼 만한 그런 여자를 고른다면 단연코 임분방이 최고였다.

허삼관이 눈물을 흘릴 때면 삼락이가 다가와 자기도 따라 울었다. 삼락이는 아버지가 왜 우는지 몰랐고, 자기가 왜 우는지도 몰랐다.

˝똑바로들 보시오. 이 피는 내가 칼로 그어서 나온거요. 만약 당신들 중에 또 일락이가 내 아들이 아니라고 말하는 자가 있으면, 이렇게 칼로 베어버릴 테요.˝

˝여보, 당신이 한 번 더 피를 파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당신, 가서 우물물 한 통 떠와. 피 뽑기 전에 물을 마셔야지.˝

˝먼저는 힘을 싹 팔고 그 다음엔 온기를 싹 팔았다더니, 그럼 이제는 목숨만 겨우 남았을 텐데, 또 피를 팔면 그건 목숨을 팔아넘기는 것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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