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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중국 소설을 내 돈주고 사 읽으리란 생각은 안해봤어. 근데 오상진 인스타그램에서 소개된 책 중에서 특히 허삼관 매혈기의 감상이 끌렸고 마침 흙서점에 펼친 자국조차 없는 완전 새 책이 있더라고. 4000원주고 샀어. 아 뿌듯.
자간도 넓고 폰트 사이즈도 크고 빽빽한 감 전혀 없이 설렁 설렁해. 어려운 단어 하나 없고 등장인물 단촐하고 구성도 심플한데 이야기들에 항상 미소짓게 하는 상황이라든지 표현, 따뜻한 시선이 있어서 편안하게 슥슥 넘기며 읽기 좋은 책이야. 미운 놈 하나 없는 신기한 소설이었어. 물론 갈등도 사건도 있지만 작가가 아마... 푸근한 사람인가봐. 모든 캐릭터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게 그냥 느껴져. 그래서 아주 어릴 때 읽던 창비아동문고 시리즈 같은(되게 막연하지만 초등학교 때 이 시리즈를 엄청 좋아하고 읽었던 기억이...) 전래동화도 아닌 것이....아무튼 어릴 때 하던 독서의 느낌.
피를 판 돈으로 아내를 얻고 피를 팔아 자식을 키우고 피를 팔아 자식을 살린 남자의 일생.
읽는 내내 너무 따뜻하고 뭉클했다. 영화화 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야기. 누군들 이 소설을 안 좋아할까. 보통의 아버지 보통의 어머니 보통의 자식 보통의 가족. 가장의 무게. 어머니의 역할. 아 이런 딱딱하고 식상한 말로 하기엔 참 따뜻하고 평범한 이야기인데 어찌 표현할지를 모르겠네.
발췌. 문장이 좋다기 보단 그 따뜻하고 뭉클한 느낌을 나중에도 느끼고 싶은 마음에. 그리고 허삼관 상남자. 가장이라는 자리 너무 무겁다.
그 중에서 한 명을 골라 자기 여자로 만들 생각을 한다면, 눈 내리는 겨울에 이불 속에서 꼭 껴안고 지낼 만한 그런 여자를 고른다면 단연코 임분방이 최고였다.
허삼관이 눈물을 흘릴 때면 삼락이가 다가와 자기도 따라 울었다. 삼락이는 아버지가 왜 우는지 몰랐고, 자기가 왜 우는지도 몰랐다.
˝똑바로들 보시오. 이 피는 내가 칼로 그어서 나온거요. 만약 당신들 중에 또 일락이가 내 아들이 아니라고 말하는 자가 있으면, 이렇게 칼로 베어버릴 테요.˝
˝여보, 당신이 한 번 더 피를 파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당신, 가서 우물물 한 통 떠와. 피 뽑기 전에 물을 마셔야지.˝
˝먼저는 힘을 싹 팔고 그 다음엔 온기를 싹 팔았다더니, 그럼 이제는 목숨만 겨우 남았을 텐데, 또 피를 팔면 그건 목숨을 팔아넘기는 것 아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