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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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익숙할 참 흔한 명작 `위대한 개츠비`을 몇 번 이나 시도했다가 초반부에서 덮곤 했었어. 그래서 `위대한 개츠비`하면 조각처럼 아름다운 여자 둘이 대저택에서 비스듬히 누워 도도 떨고 있는 장면 밖에 떠오르는게 없었어. 그러다가 2년 전인가 영화로 보고 으앙? 했어. 영상도 끔찍히 예쁘고. 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말할 것도 없지. 내가 아는 가장 연기를 잘하는 배우. 이제 소설에서 말하는 개츠비의 그 미소 `모든 걸 이해한다는 찬란한 미소`는 이제 상상해낼 수 없는 것이 되었지. 디카프리오가 보여줬으니.

어쨌든 영화를 보고 나서 더 궁금해졌어. 이렇게 재밌고 어려울 리 없는 소설이, 거기다 두께도 얇은데 왜 안 읽힐까. 심지어 영화 본 후 모든 내용 파악한 후에도 못읽었어. 그러던 중에 김영하 번역본은 술술 읽힌다며 카썸님이 선물해주셔서 사이판 첫 책으로 비행기에서 해변에서 호텔에서 읽고 드.디.어 완독했습니다. 그것도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쉽고 빠르게 읽었습니다. 읽고보니 완독 못한게 이상스럽지만 그래도 어쨌든 오랜 숙제를 해치운 기분. 기분 조옿아.

한 달간의 달콤한 연애 후 파병되어 떨어지게 된 여자를 5년간 마음에 품고 그 여자를 되찾겠다는 목표 하나로 끈덕지게 살고 치밀하게 계획한 사내가 끝내 그 여자를 찾아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야

닉, 개츠비, 데이지, 조던, 톰이 주 등장인물인데 이 중에서 개츠비의 이웃 닉의 시선으로 전체적인 이야기가 진행돼. 그게 되게 영리해. 특별한 캐릭터가 아닌데 되게 군더더기 없어 주관없이 있는 그대로 감정 섞지 않고 전달하는 `심심하지만 믿을만한` 친구한테 듣는 사건들 같거든. 그러면서도 가장 밀착되어 소문을 들을 수 있는 귀와 현장을 볼 수 있는 눈을 갖추고 있는 그대로 옮겨주는 입을 가진 인물.

읽는 내내 데이지 부러워 죽는 줄. 영화 속 캐리 멀리건의 이미지가 계속 떠올라서 더 쉽게 말투와 표정을 상상할 수 있었는데 그냥 화려한 외모에 부족함 없이 자란 철딱서니 공주님이잖아. 비록 바람은 피우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부자 남편 있고 집착의 끝을 달리는 훈남 엑스도 있고. 그녀를 위해선 뭐든 하겠다는 자세의 남자들 사이에서 때로는 투정도 부리고 변덕도 부리며 아이같이 사는 예쁜 여자. 기집애. 부럽네.

개츠비에 대해선. 그냥 불쌍하긴한데 지 업보 같아. 저걸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진 않아. 그냥 개츠비가 정신병자 아닌가. 나는 지난 연인 못잊어서 힘들어 하거나 끝없이 가슴에 품고 끈덕지게 다시 회상하고 추억하는 사람 잘 이해 못하거든. 오래 가슴에서 못지울수록 깊은 사랑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냥 모자른 사람이야. 다음 더 나은 사랑을 할 자신이 없는 사람. 그리고 사랑에 빠진 본인의 모습에 빠진 사람. 잡히지 않는 옛 추억을 허우적대며 잡아보려 애쓰는 무모하고 집착이 강한 오히려 정신적으로 위험한 사람으로 보여. 끝끝내 잡고 말았을 때 손바닥을 펴보면 아마 갈망하던 그 모습이 아닐꺼거든. 허무할거야.

닉이랑 조던이 훨씬 더 좋다. 병풍같은 커플이지만 거침없고 솔직하고 이기적이고 이성적이야. 반면에 톰과 데이지는 깊이없고 감정적이고 어린아이들같아. 끼리끼리.

근데 내가 궁금한 것은, 어느 부분에서 남자의 심리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걸까?

1) 인기많은 여자에게 욕심을 내는
2) 한 여자를 위해 삶을 송두리 채 바꾸는
3) 다른 남자한테 뺐기는 것 만큼은 못 참는
4) 바람피워도 가정은 지키는

마지막으로 김영하 번역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지금은 많이 시들해지고 실망도 했지만 대학생 때 내리 가장 좋아하는 작가였어. 근데 이 책에서 보여준 번역가로서의 김영하는 글쎄. 김영하 것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문장도 어설프고 되게 많은 부분에서 직독직해한 특유의 느낌이 느껴졌어. 스토리는 술술 빠르고 쉽게 읽을 수 있었지만 괜히 재대로 된 개츠비를 읽진 못했다는 기분이 들어. 시간되면 영문으로 된 것도 살짝 뒤적여보고 싶다. 누가 맞는지.

영혼의 자서전 상.하 두 권 있는데 아마 부족할 듯. 생각보다 훨씬 심심한 곳이어서. 그럼 이북으로 달과 6펜스 읽어야징. 놀고 올게요 안뇽.

발췌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두는 게 좋을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을.˝

`딸이라서 다행이야. 이왕이면 아주 바보가 돼버려라. 이런 세상에선 바보가 되는게 속 편하다. 귀여운 바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 이렇게 번역된게 너무 실망스러웠다. 실제 뭐에 가까울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로선 외모는 아름답지만 머리는 텅텅 빈 멍청이가 가장 속 편하게 살 수 있다는 해석이 더 좋은데.

게다가 다른 많은 남자들이 데이지에게 목을 매고 있다는 사실도 그를 흥분시켰다. 그의 눈에는 그녀가 점점 더 가치 있는 존재로 보였다. 구애자들의 고양된 감정이 그녀의 집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열렬한 마음은 메아리가 되어 울려퍼지는 것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남자 심리일까

은빛으로 빛나는, 힘겹게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과는 무관하게 안전하게 오만한 그녀를
-부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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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 전2권 (한글판 + 영문판)
서머싯 몸 지음, 김민지 옮김 / 더클래식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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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달과 6펜스]

사이판 5일 째 밤. 호텔에 딸려있는 자쿠지에서 보글보글 올라오는 뜨끈한 물 속에서 리뷰 쓴다. 팔자 좋네 강현주. 가져온 책은 단 세 권인데 개츠비를 엄마 있는 동안 읽어버리는 바람에 흐름 끊김 없이 읽어내리고 싶던 영혼의 자서전은 잠깐 뒤로 하고 교보 ebook에서 더클래식 무료 다운로드행사 때 읽게 될는지 반신 반의하며 다운 받아놨던 달과 6펜스를 엄마랑 있는 동안 장소 이동 중에 반, 엄마 한국 가고 호텔에서 반 읽고 끝냈어(문장 겁나 길당). 책은 종이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구겨가며 읽는 게 맛이지! 하던 내가 난생 처음으로 e북으로 책을 읽었고 그것도 휴대폰으로! 이틀만에! 전혀 불편 없이 심지어 즐겁게 편하게 읽었다는 것 만으로 이건 아마 나에게 의미 있는 독서 경험일테지.

서머싯 몸 두 번째 작품이네. 인생의 베일과 달6. 확실히 쉽고 재밌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작품에 대한 감명 감동 떠나서 인상적인 시선과 삶과 인간 심리의 간파가 있고.

무명화가가 사후에 불운의 천재 화가로 불리우게 되고 누군가는 그의 평범하지 않은 삶에 포커스를 두어 화제성을 띄우는가 하면 친아들은 `알고보면 훌륭한 인성의 화가`로 대중에게 그를 소개해. 실제 모습과 비슷한 듯 완벽히 달리 표현된 스트릭랜드의 삶을 꽤 가까이서 지켜본 친구이자 이웃이자 작가인 화자가 다시금 기억해내는 이.제.와.서. 천재라 불리는 그 화가의 이야기.

확실히 되게 재밌긴 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상황만 되어 준다면 끊김 없이 읽었을거야. 근데 가장 큰 인상은 이건 `만들어진 이야기`란 거였어. 모든 소설이 허구라지만 어느 정도의 간을 한 것과 만들어진 이야기는 그러니까 재생한 것과 창조한 것은 천지 차이잖아. 불운의 화가의 모습을 동경했거나 존경했던 한 보통 인간(아마 서머싯 몸 본인)이 만들어낸 이야기인게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느껴져. 결국 가장 매력적이어아하는 주인공이 실제할 리 없었단 생각에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가 되지 않아. 이야기를 읽는 기분이지 삶을 구경하는 기분은 전혀 아니었거든. 자꾸 관찰하고 있는 `인물`이 워.낙. 종잡을 수 없는 독특한 사람이란 말로 합리화하고 있지만, 그 컨셉을 첫 장부터 끝까지 고수하기엔 허상의 인물 조차 더 깊이 상상해낼 수 없는 작가의 능력 부족으로 느껴져.

읽으면서 계속 고갱 생각이 났는데 혹시 연관이 있나? 평범한 삶에서 큰 교육이나 계기없이 급 화가! 도 그렇고 타히티도 그렇고. 어쨌든 이런저런 세상의 평가가 없어도 또 그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도 대가의 것은 천재의 것은, 특히 예술은, 아무 지식 없이도 머리가 느끼기 전에 가슴팍을 팍 치는 충격이 있기 때문에. 이래 저래 저래해서 그럴싸했다만 읽는 내내 10% 부족한 소설이었습니다.

면도날 읽고 싶다. 하루키가 좋아하던 서머싯 몸의 면도날은 어떤 다른 감흥이 있으려나. 시점의 차이일 수 있겠지만 인생의 베일이 훨씬 좋았다. 대신 이렇게 쉽고 가볍지 않았음 e북으로 읽어낼 수 없었을 거라는 걸 알기에 그건 고맙!

와 뜨겁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은게 그저 몸에 좋을 온도 같다. 땀이 주르르 나네. 엄마는 잘 가고 있겠지. 엄마 공항 데려다주고 호텔 들어와서 같이 보던 풍경을 혼자 보는데 마음 속으로 자꾸 오와 오메 옴마야 세상에....를 외치다가 엄마도 커튼 닫아버리고 혼자 멍 때릴 시간을 줄껄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누면 배가 되고`에서 사색은 전혀 다른 이야기같아. 공감을 바라는 순간 그 감동은 사라져버릴테니. 입 꼭 다물고 각자 보고 각자 느껴야하나봐. 3일이 남았습니다. 기대만큼 평온하고 기대보다 예쁜 곳이네요.

발췌

예술을 마치 예술가들만 이해할 수 있는 기술로만 보는 것은 터무니 없는 착각이다. 예술은 감정의 표현이며, 감정은 모두가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 평가도 무시하지 말아줘....

나는 스트릭랜드가 기골이 장대했기 때문에 맥앤드류 대령이 과연 그를 때려눕힐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격분한 도덕성이 반드시 죄인을 응징할 수 있는 강한 팔 힘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식의 연민 담은 빈정거림에 다섯 번 쯤 피식 거렸다.

사람들의 시선은 여자들의 마음 속 가장 깊은 감정에까지도 위선의 그림자를 드리우곤 한다.

고난이 인격을 성숙하게 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행복이라면 가끔 그런 경우가 있긴 하지만, 고난은 대개 사람을 강퍅하게 하고 앙심만 품게 할 따름이다.

관심도 없는 남자가 자기에게 와서 사랑한다고 매달릴 때 여자가 보여 주는 잔인함만큼 무서운 것도 세상에 없다.
-세상 잔인하게 굴어놓고 막상 나가떨어지면 섭섭한 심리는 몰랐쭁

사람들은 말에 대한 경각심도 없이 아름답다는 말을 함부로 함으로써 그 말이 가지는 힘을 잃게 만든다. 결국 수많은 하찮은 것들과 똑같이 아름답다고 일컬어짐으로써 진정 아름다운 것은 위엄을 잃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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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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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권과 2권 텀이 길어지면서(3주 쯤?)흥미와 집중이 떨어져서 너무 질질 끌어버렸네. 읽고 싶은 책들이 자꾸 쌓여만 가는데 중간에 덮긴 싫고 해서 오늘 무조건 다 읽어버리자 하고 읽으니 밤 열두시 반이 되었군요. 대충 슥슥 읽어나가자 했는데 또 막상 슥슥 하려니 재밌어서 제대로 읽었어. 무슨 소리하냐 강현주. 어쨌든 다음주에 하루키 연극 보러가니까 하루키 맛을 오랜만에 상기시킨 것으로도 의미 있었다.

뇌고 과학이고 원리고 세상 제일 알고 싶지도 않고 이해도 못하는데 이야기 흐름에 크게 중요하지도 않은 원리(실제 과학적으로 말이 되는지 안되는지는 둘째치고)를 읽고 있기가 싫어서 그 부분에서 좀 지친 것 같아. 할아버지 너무 말 많아. 후옷호호.

세상 미련 없어보이던 주인공의 마지막 하루가 특별할 것 없지만 떠나기엔 아쉬운 정도의 것이어서 나의 삶에 어느정도 적용을 해보게 되더라. 별 것 아니라 하지만 사실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닌 하루하루들. 오늘은 김장 재료를 다듬고 손 끝에 파냄새를 묻히곤 치맥을 하고 들어와 책을 읽고 리뷰까지 썼습니다. 내일은 김치속을 버무리고 배추에 속을 채워넣고 보쌈을 먹겠지요. 없어도 될 것 같은 날인데 아마 있어도 괜찮을 하루인가봅니다.

다음 책은 뭘 읽지 ㅠㅠ 읽고 싶은게 너무 많다. 너무.

발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하반신에 신경을 집중시키려는 노력은 어쩐지 발기하지 않는 페니스를 발기시키려고 하는 노력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What a pity..... 이번 생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느낌이구나. 알고 싶다. 다시 태어나서 발기해봐야지.

위스키란 처음에는 그저 바라만보기만 해야 제격인 것이다. 바라보다가 질리면 그제야 마시는 것이다. 아름다운 여자와 똑같다.
-이런 말 하는 하루키는 같잖다. 뭔 말하는거야 진짱.

내 그림자는 문지기가 말한 것처럼 기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의 얼굴은 이전보다 다소 야위었고, 눈과 수염이 보기 흉하게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인간은 태평하게 있으면 제대로 일을 못하게 되는 법이지.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아무래도 상관없다고요?˝
˝대단한 인생도 아니고, 대단한 두뇌도 아니야.˝

인간 행동의 대부분은 자기가 앞으로도 살아간다는 전제에서 비롯되는 것이어서, 그 전제를 없애버리고 나면 뒤에는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이 아주 오랜 옛날에 한 번 일어났던 일 같았다. 벗는 옷과 배경음악과 대사가 조금씩 변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소리 내어 울고 싶었지만 울 수 없었다. 눈물을 흘리기에 나는 너무 나이를 먹었고, 너무나도 많은 일들은 지나치게 많이 경험해왔다. 세상에는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슬픔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고, 설사 설명할 수 있다 해도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일인 것이다.
-이 부분 보고 조금 놀랐어. 하루키의 인간 감정에 통달한 듯한 평소의 시니컬하고 별수롭지 않다는 듯한 태도와 달리 이 부분에선 연민이나 따스함이 느껴져서. 다른 사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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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4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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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마스터의 추천서. 꽤 꼰대로운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두세 달 전에 읽은 소세키의 ˝한눈팔기˝의 분위기와 주인공이 한 소설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비슷해. 그렇지만 `한눈팔기` 주인공은 공감이 갔고 `태풍`의 주인공은 시대착오적이란 생각에 거부감이 드는 건 어디서 온 차이인지...... 좀 생각을 해봐야겠다.

줄거리는 이래. 중학교 교사였다가 학생들과 정치에 밝은 동료 교사들의 괴롭힘에 교직을 떠나 가난하게 글을 쓰는 도야선생과 그 당시 도야의 제자였던 다카야나기군이 십 년이 지나 우연히 만나게 돼. 진정한 도(道)를 추구하는 도야선생의 미련할 정도의 우직함과 사명에 충실한 모습과, 대학 졸업 후 돈도 빽도 건강도 없이 언젠가 대작을 써내겠다며 근근히 번역으로 삶을 꾸려가는 다카야나기의 모습이 번갈아가면서 나와. 두 주인공 모두 가난하고 외골수 아웃사이더에 현실감각이 떨어지지만 차이점은 다카야나기는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고 환경 핑계를 대며 삐딱하게 구는 반면에 도야선생은 본인의 `도 쫓기`에만 몰두할 뿐 그 외의 것에 기대도 원망도 하지 않아. 비슷한 듯 다른 둘을 보며 꼭 한사람의 시간에 따른 태도 변화를, 그러니까 다카야나기는 마치 도야의 젊은 시절로, 부정적이면서 열정적인 그가 세상에 몰매를 맞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정말 중요한 `도`에 대한 갈망만 남긴 가난하지만 단단해진 말년을 지켜보는 느낌이었어.

뒤에 도야가 강연을 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그게 곧 소세키의 말이겠구나 싶었어. 그리고 정말 옛날 사람이구나 싶고. 요즘의 지식인과는 다르고 선비같은 느낌. 필요 이상의 편견과 고집과 자존심에 앞만보고 주린배 움켜가며 글을 쓰는. 강연에서 하는 말을 보고 저거 왠지 고민 안하고 쭉쭉 썼을 것 같다 생각했어. 머리에서 거치지 않고 평소에 수십 번 수백 번 했던 생각이 도야의 입을 빌어 외운듯이 다다다다 나왔을 것 같아. 왜냐면 이상하게 그 부분에서만 유독 빠른 호흡이 느껴졌거든. 이게 신기해. 100년 전 죽은 사람의 책에서 그의 호흡을 단서도 없이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는 거.

그나저나 와이프는 참 `한눈팔기`나 `태풍`이나 어쩜 저렇게 한결같냐. 난 부부 대화 나올 때가 제일 웃기더라. 같은 언어로 대화하는 한 동물이라고 볼 수가 없어. 핑퐁은 되는데 둘다 일방적으로 말만할 뿐 듣지는 않아. 존중도 존경도 연민도 감사도 없는 관계. 소세키의 실제 부부생활은 어땠을까? 한 곳을 바라보지 못하는 부부는 고통이야. 사람에게 도를 일깨울 위인을 꿈꾸면서 아내의 배고픔은 돌보지 않는 건 아 너무 싫은데. 더 싫은건 현실에 이뤄낸 것 없는 몽상가가 이걸 읽으며 저 여인이 `투정중이다` 따위로 표현하고 큰 꿈을 가진 남편을 서포트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해버리면. 아 화날거야. 몽상가가 싫다 나는. 현실에 살자 우리. 아내를 두둔한다고 해서 도야를 비난하는 건 절대 아니야. `다른 사람`은 항상 필요하고 언제나 역사는 `다른 사람`에게서 나오지. 다만 내 말은.....니 혼자 다르게 살라고 도야선생아. 사명 존중 열정 존중. 근데 모두 현실의 기본거리는 갖추고 다른 책임도 다 하면서. 열정이나 집념이란 말로 합리화하는 건 우스울 뿐 아니라 무엇보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스스로에게 덫이 될거야.

재밌다. 특히 요즘 나에게 이런저런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이야. 확실히 난 현실적이고 얄짤 없다.

그리고 옮기지 못하는 마지막 장. 어떻게 끝날까 싶던 `태풍`의 마지막 장에서야 `와!` 소리가 나왔어. 마무리가 좋다. 정점의 맛을 아는 사람이야. 나쓰메 소세키. 잘 읽었어! (^ ^)


발췌

돈의 힘으로 살아가면서 돈을 비방하는 것은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욕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자신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돈을 만들어주는 실업가를 경멸하려면 아무것도 먹지 않고 죽는 편이 좋다. 죽을까, 아니면 죽지 않고 항복할까?

아름답다는 것은 그저 피를 덮고 있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디선가 읽었던 ˝모든 것은 대체 가능하다˝

크고 작은 것을 구별하고, 가벼움과 무거움의 차이를 인식한다. 또 좋고 그름을 판별한다. 선과 악의 경계를 이해하고 현명함과 어리석음 ,참과 거짓, 바름과 사악함을 제대로 판별해내는 것이 바로 학문의 목적이다.

˝좋아하냐고요? 좋지 않습니까? 역사에 남을 걸작입니다.˝ 여자의 비평은 직관적이다. 남자의 취미는 반은 전설적이다. 어설프게 미학 같은 걸 들은 적이 있기 때문에 남자는 쉽게 여자의 견해에 동의할 용기를 잃어버렸다. 학문이 자신을 속인다고는 깨닫지 못한듯하다. 스스로 학문에 속으면서, 속지 않은 여자의 판단을 공연히 틀린 것으로만 본다. ˝역사에 남을 걸작입니다.˝
-내가 되게 싫어하는 거. 학습된 취향, 학습되어 본인 것인지 남의 것인지 분간도 안되는 가짜 주관.​

요염한 여성이 눈썹을 찌푸리는 것은 애교에 식초를 뿌리는 것과 같다. 달콤한 사랑의 감정에 너무 취해버린 남자는 때때로 신맛에 입맛을 다신다.
-오 소세키, 이런 말도 할 줄 아냐요.홍홍홍

˝보통 세상 사람들은 노력과 돈의 관계에 관해 커다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걸맞은 학문을 하면 그에 걸맞은 돈을 벌 수 있는 전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논리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학문은 돈에서 멀어지는 기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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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 15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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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야 원하지 않아도 스쳐 들리고 보이는 작가이지만 난 이 책을 `움베르토 에코`의 책인지도 몰랐고 그저 표지와 제목에 홀려서 사게 됐다. 안살 수가 없다. 이미 저 제목에 표지가 이렇게 생겼으면 재밌고 안 재밌고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탈리아 어느 잡지에 움베르토 에코가 몇 년 동안 꾸준히 쓴 칼럼을 모아 출간한 책이야.

목차 봐봐 ㅋㅋㅋㅋ 제목처럼 온갖 것의 방법들인데 그 발상이 너무 기발해서 상황을 먼저 겟한 후 적절하게 재치있는 제목을 붙였을까 제목 먼저 붙이고 그에 맞는 글을 썼을까 순서가 궁금하더라. 아저씨 웃겨. 모든 것을 허투루 보내는 법이 없을 것 같아. 남보기엔 피곤한데 저렇게 살아왔고 저러다 죽을 아저씨같아. 모든 순간을 관찰하고 파고 비틀고 표현하고 소통하는.

꽤 오래간 잡고 있었어. 처음 펼치고 몇 개 칼럼을 보고선 `뭐야 뭐야 혼자 잘났네 혼자 잘났어 아주˝ 했어. 좀 재수없더라고. 세상의 보통 사람을 다 바보로 단정짓고 베실베실 웃으면서 놀리는거야. 몇몇 이야기에서 그만 찔려버린 나(보통사람)는 아저씨가 잘난체 한다며 재수없다고 그 빈정거림에 놀아나기 싫다며 책을 안 읽기로 했지요. 근데 이게 칼럼마다 열 페이지가 안돼서 부담이 없고 그냥 또 관심있는 상황이나 공감가는 주제면 가볍게 읽히면서 웃음이 나더라고. 결국 1/3부터 빠져들더니 오늘 점심시간까지 해서 낄낄대며 다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똑똑한 글쟁이가 작정하고 쓴 소설은 어떨까 궁금해져서 곧 읽어보려 합니다. 처음에 아저씨 욕한거 미안.

​움베르토 에코 작품이 어렵단 이야기를 들었는데 소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전혀 안어려워. 대신에 이태리 문화나 문학이나 유럽 철학자들, 사상 등 고급 상식이라고 해야할까 그런걸 빗대며 농담하는 게 되게 많이 나오는데 알아야 웃지. 그래서 어렵다고 하는건가? 별건가. 내가 더 많이 아는 자였으면 더 재밌었을거야. 그게 아쉽다. 왜지 누군가 ˝움베르토 에코 칼럼을 보면서 배꼽이 빠지게 웃었지 뭐야˝ 하면 ˝나는 세상 돌아가는 사건에 대한 이해와 역사 속 분야 불문 지식이 상당하면서 가시 섞인 유머에도 웃을 수 있는 여유있는 지식인이라네˝ 하는 느낌이야. 화이트칼라가 좋아할 작가라고 느꼈는데 모르지 또.. 내가 너무 무식해서 사실 평균 지식으로도 웃을 수 있는 정도인지는.

해외 출장길 비행기 안에서 와인 마시면서 킬킬 거리면서 한 두개씩 읽음 좋을 것 같다. 허세롭지만 난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집중해서 한 권을 다 읽어내기 보단 스도쿠 하듯 잡지 읽듯 한두 개 정도 씩만 머리 식힐 용으로 읽기 좋아서 난생 처음 전자북이 있음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종이책은 한 번 덮으면 다시 펼치기가 싫어서. 그리고 조금 읽다 말기엔 무게가 귀찮아서.

번역 아저씨 이세욱님의 정성과 재치도 상당하시던데. 이름 기억해놔야겠다. 미국판 번역자 디스가 웃겼음. 발췌에 옮겨야지.

암튼 이러저러 하였습니다. 커버를 벗긴 것도 상당히 예쁘기 때문에 아래 커버 벗긴 속살 사진까지 올리고 발췌와 함께 마무리하겠습니다. 다음 책은 나쓰메 소세키의 태풍입니다. 태풍 리뷰도 기대해 주세요 뿅뿅.

​발췌

바보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위에서 말한 일들을 맡고 있는 바보들의 봉급이 얼마나 될까 하는 것이다.

세계 어느 곳을 가든 택시 운전사를 알아보는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다. 잔돈을 일절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 그게 바로 택시 운전사이다.

[<맞습니다>라는 말로 대답하지 않는 방법] 전체
-겁나 웃긴데다가 세 페이지밖에 안돼서 전문을 블로그에 옮기고 싶지만. 또 시간도 많아서 옮기는 거 별 일도 아니지만 저렇게 할 짓이 없나 한심하게 생각할까봐 그냥 인덱스 붙여놓고 나 혼자 읽기로. 혹시 읽고 싶은 사람은 내가 잘 찍어서 사진 세장으로 보내줄게.

우리 아이들도 내가 일을 해나가는 데 필요한 애정과 에너지와 자신감을 줌으로써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나의 일에 대해서 보여 준 아이들의 철저하고 초연한 무관심에 감사한다.
-자식들한테도 빈정댄다 ㅋㅋㅋㅋ

희극의 실행 여부가 계급을 가르는 새로운 장벽이 되었다. 즉 옛날에는 마음 놓고 노예를 비웃는 데서 주인임이 인정되었지만 오늘날에는 마치 노예들만이 주인을 조롱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 것처럼 보인다.

요즘 세상에는 우리가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것들을 전달하고 싶어서 안달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소통충 뜨끔

˝선생님, 성급한 판단을 내리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선생님께서 혹시 바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 말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런, 자네 벌써 죽을 때가 되어 가는구먼.˝

[<어떻게 지내십니까>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 전체
-위에 말한 지식이 있어야한 웃을 수 있는 부분. 약 100명의 역사 속 인물들의 대답을 상상해서 쓴 유머집st인데 그 중 30% 정도 제대로 알고 웃었나봐. 다 아는 인물들이었으면 이것도 상당한 꿀잼이었을 것으로 예상하며 언젠가 더 똑똑해진다면 다시 읽어보기로.

우선 영어판 번역자의 지나치게 편의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작업 태도 때문에 (우리말을 몰라서 이 글을 읽지 못할 외국의 동료를 이런 식으로 비판하는 것이 페어플레이가 아니라는 느낌은 들지만) ...... 작가의 의도를 해치면서까지 이탈리아 것을 미국 것으로 선뜻선뜻 갈아치운 영어판 번역자의 태도는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한 지나친 믿음에서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했습니다.
-이세​욱님의 ˝옮긴이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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