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 전2권 (한글판 + 영문판)
서머싯 몸 지음, 김민지 옮김 / 더클래식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달과 6펜스]

사이판 5일 째 밤. 호텔에 딸려있는 자쿠지에서 보글보글 올라오는 뜨끈한 물 속에서 리뷰 쓴다. 팔자 좋네 강현주. 가져온 책은 단 세 권인데 개츠비를 엄마 있는 동안 읽어버리는 바람에 흐름 끊김 없이 읽어내리고 싶던 영혼의 자서전은 잠깐 뒤로 하고 교보 ebook에서 더클래식 무료 다운로드행사 때 읽게 될는지 반신 반의하며 다운 받아놨던 달과 6펜스를 엄마랑 있는 동안 장소 이동 중에 반, 엄마 한국 가고 호텔에서 반 읽고 끝냈어(문장 겁나 길당). 책은 종이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구겨가며 읽는 게 맛이지! 하던 내가 난생 처음으로 e북으로 책을 읽었고 그것도 휴대폰으로! 이틀만에! 전혀 불편 없이 심지어 즐겁게 편하게 읽었다는 것 만으로 이건 아마 나에게 의미 있는 독서 경험일테지.

서머싯 몸 두 번째 작품이네. 인생의 베일과 달6. 확실히 쉽고 재밌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작품에 대한 감명 감동 떠나서 인상적인 시선과 삶과 인간 심리의 간파가 있고.

무명화가가 사후에 불운의 천재 화가로 불리우게 되고 누군가는 그의 평범하지 않은 삶에 포커스를 두어 화제성을 띄우는가 하면 친아들은 `알고보면 훌륭한 인성의 화가`로 대중에게 그를 소개해. 실제 모습과 비슷한 듯 완벽히 달리 표현된 스트릭랜드의 삶을 꽤 가까이서 지켜본 친구이자 이웃이자 작가인 화자가 다시금 기억해내는 이.제.와.서. 천재라 불리는 그 화가의 이야기.

확실히 되게 재밌긴 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상황만 되어 준다면 끊김 없이 읽었을거야. 근데 가장 큰 인상은 이건 `만들어진 이야기`란 거였어. 모든 소설이 허구라지만 어느 정도의 간을 한 것과 만들어진 이야기는 그러니까 재생한 것과 창조한 것은 천지 차이잖아. 불운의 화가의 모습을 동경했거나 존경했던 한 보통 인간(아마 서머싯 몸 본인)이 만들어낸 이야기인게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느껴져. 결국 가장 매력적이어아하는 주인공이 실제할 리 없었단 생각에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가 되지 않아. 이야기를 읽는 기분이지 삶을 구경하는 기분은 전혀 아니었거든. 자꾸 관찰하고 있는 `인물`이 워.낙. 종잡을 수 없는 독특한 사람이란 말로 합리화하고 있지만, 그 컨셉을 첫 장부터 끝까지 고수하기엔 허상의 인물 조차 더 깊이 상상해낼 수 없는 작가의 능력 부족으로 느껴져.

읽으면서 계속 고갱 생각이 났는데 혹시 연관이 있나? 평범한 삶에서 큰 교육이나 계기없이 급 화가! 도 그렇고 타히티도 그렇고. 어쨌든 이런저런 세상의 평가가 없어도 또 그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도 대가의 것은 천재의 것은, 특히 예술은, 아무 지식 없이도 머리가 느끼기 전에 가슴팍을 팍 치는 충격이 있기 때문에. 이래 저래 저래해서 그럴싸했다만 읽는 내내 10% 부족한 소설이었습니다.

면도날 읽고 싶다. 하루키가 좋아하던 서머싯 몸의 면도날은 어떤 다른 감흥이 있으려나. 시점의 차이일 수 있겠지만 인생의 베일이 훨씬 좋았다. 대신 이렇게 쉽고 가볍지 않았음 e북으로 읽어낼 수 없었을 거라는 걸 알기에 그건 고맙!

와 뜨겁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은게 그저 몸에 좋을 온도 같다. 땀이 주르르 나네. 엄마는 잘 가고 있겠지. 엄마 공항 데려다주고 호텔 들어와서 같이 보던 풍경을 혼자 보는데 마음 속으로 자꾸 오와 오메 옴마야 세상에....를 외치다가 엄마도 커튼 닫아버리고 혼자 멍 때릴 시간을 줄껄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누면 배가 되고`에서 사색은 전혀 다른 이야기같아. 공감을 바라는 순간 그 감동은 사라져버릴테니. 입 꼭 다물고 각자 보고 각자 느껴야하나봐. 3일이 남았습니다. 기대만큼 평온하고 기대보다 예쁜 곳이네요.

발췌

예술을 마치 예술가들만 이해할 수 있는 기술로만 보는 것은 터무니 없는 착각이다. 예술은 감정의 표현이며, 감정은 모두가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 평가도 무시하지 말아줘....

나는 스트릭랜드가 기골이 장대했기 때문에 맥앤드류 대령이 과연 그를 때려눕힐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격분한 도덕성이 반드시 죄인을 응징할 수 있는 강한 팔 힘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식의 연민 담은 빈정거림에 다섯 번 쯤 피식 거렸다.

사람들의 시선은 여자들의 마음 속 가장 깊은 감정에까지도 위선의 그림자를 드리우곤 한다.

고난이 인격을 성숙하게 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행복이라면 가끔 그런 경우가 있긴 하지만, 고난은 대개 사람을 강퍅하게 하고 앙심만 품게 할 따름이다.

관심도 없는 남자가 자기에게 와서 사랑한다고 매달릴 때 여자가 보여 주는 잔인함만큼 무서운 것도 세상에 없다.
-세상 잔인하게 굴어놓고 막상 나가떨어지면 섭섭한 심리는 몰랐쭁

사람들은 말에 대한 경각심도 없이 아름답다는 말을 함부로 함으로써 그 말이 가지는 힘을 잃게 만든다. 결국 수많은 하찮은 것들과 똑같이 아름답다고 일컬어짐으로써 진정 아름다운 것은 위엄을 잃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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