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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4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평점 :
나쓰메 소세키 마스터의 추천서. 꽤 꼰대로운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두세 달 전에 읽은 소세키의 ˝한눈팔기˝의 분위기와 주인공이 한 소설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비슷해. 그렇지만 `한눈팔기` 주인공은 공감이 갔고 `태풍`의 주인공은 시대착오적이란 생각에 거부감이 드는 건 어디서 온 차이인지...... 좀 생각을 해봐야겠다.
줄거리는 이래. 중학교 교사였다가 학생들과 정치에 밝은 동료 교사들의 괴롭힘에 교직을 떠나 가난하게 글을 쓰는 도야선생과 그 당시 도야의 제자였던 다카야나기군이 십 년이 지나 우연히 만나게 돼. 진정한 도(道)를 추구하는 도야선생의 미련할 정도의 우직함과 사명에 충실한 모습과, 대학 졸업 후 돈도 빽도 건강도 없이 언젠가 대작을 써내겠다며 근근히 번역으로 삶을 꾸려가는 다카야나기의 모습이 번갈아가면서 나와. 두 주인공 모두 가난하고 외골수 아웃사이더에 현실감각이 떨어지지만 차이점은 다카야나기는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고 환경 핑계를 대며 삐딱하게 구는 반면에 도야선생은 본인의 `도 쫓기`에만 몰두할 뿐 그 외의 것에 기대도 원망도 하지 않아. 비슷한 듯 다른 둘을 보며 꼭 한사람의 시간에 따른 태도 변화를, 그러니까 다카야나기는 마치 도야의 젊은 시절로, 부정적이면서 열정적인 그가 세상에 몰매를 맞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정말 중요한 `도`에 대한 갈망만 남긴 가난하지만 단단해진 말년을 지켜보는 느낌이었어.
뒤에 도야가 강연을 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그게 곧 소세키의 말이겠구나 싶었어. 그리고 정말 옛날 사람이구나 싶고. 요즘의 지식인과는 다르고 선비같은 느낌. 필요 이상의 편견과 고집과 자존심에 앞만보고 주린배 움켜가며 글을 쓰는. 강연에서 하는 말을 보고 저거 왠지 고민 안하고 쭉쭉 썼을 것 같다 생각했어. 머리에서 거치지 않고 평소에 수십 번 수백 번 했던 생각이 도야의 입을 빌어 외운듯이 다다다다 나왔을 것 같아. 왜냐면 이상하게 그 부분에서만 유독 빠른 호흡이 느껴졌거든. 이게 신기해. 100년 전 죽은 사람의 책에서 그의 호흡을 단서도 없이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는 거.
그나저나 와이프는 참 `한눈팔기`나 `태풍`이나 어쩜 저렇게 한결같냐. 난 부부 대화 나올 때가 제일 웃기더라. 같은 언어로 대화하는 한 동물이라고 볼 수가 없어. 핑퐁은 되는데 둘다 일방적으로 말만할 뿐 듣지는 않아. 존중도 존경도 연민도 감사도 없는 관계. 소세키의 실제 부부생활은 어땠을까? 한 곳을 바라보지 못하는 부부는 고통이야. 사람에게 도를 일깨울 위인을 꿈꾸면서 아내의 배고픔은 돌보지 않는 건 아 너무 싫은데. 더 싫은건 현실에 이뤄낸 것 없는 몽상가가 이걸 읽으며 저 여인이 `투정중이다` 따위로 표현하고 큰 꿈을 가진 남편을 서포트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해버리면. 아 화날거야. 몽상가가 싫다 나는. 현실에 살자 우리. 아내를 두둔한다고 해서 도야를 비난하는 건 절대 아니야. `다른 사람`은 항상 필요하고 언제나 역사는 `다른 사람`에게서 나오지. 다만 내 말은.....니 혼자 다르게 살라고 도야선생아. 사명 존중 열정 존중. 근데 모두 현실의 기본거리는 갖추고 다른 책임도 다 하면서. 열정이나 집념이란 말로 합리화하는 건 우스울 뿐 아니라 무엇보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스스로에게 덫이 될거야.
재밌다. 특히 요즘 나에게 이런저런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이야. 확실히 난 현실적이고 얄짤 없다.
그리고 옮기지 못하는 마지막 장. 어떻게 끝날까 싶던 `태풍`의 마지막 장에서야 `와!` 소리가 나왔어. 마무리가 좋다. 정점의 맛을 아는 사람이야. 나쓰메 소세키. 잘 읽었어! (^ ^)
발췌
돈의 힘으로 살아가면서 돈을 비방하는 것은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욕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자신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돈을 만들어주는 실업가를 경멸하려면 아무것도 먹지 않고 죽는 편이 좋다. 죽을까, 아니면 죽지 않고 항복할까?
아름답다는 것은 그저 피를 덮고 있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디선가 읽었던 ˝모든 것은 대체 가능하다˝
크고 작은 것을 구별하고, 가벼움과 무거움의 차이를 인식한다. 또 좋고 그름을 판별한다. 선과 악의 경계를 이해하고 현명함과 어리석음 ,참과 거짓, 바름과 사악함을 제대로 판별해내는 것이 바로 학문의 목적이다.
˝좋아하냐고요? 좋지 않습니까? 역사에 남을 걸작입니다.˝ 여자의 비평은 직관적이다. 남자의 취미는 반은 전설적이다. 어설프게 미학 같은 걸 들은 적이 있기 때문에 남자는 쉽게 여자의 견해에 동의할 용기를 잃어버렸다. 학문이 자신을 속인다고는 깨닫지 못한듯하다. 스스로 학문에 속으면서, 속지 않은 여자의 판단을 공연히 틀린 것으로만 본다. ˝역사에 남을 걸작입니다.˝
-내가 되게 싫어하는 거. 학습된 취향, 학습되어 본인 것인지 남의 것인지 분간도 안되는 가짜 주관.
요염한 여성이 눈썹을 찌푸리는 것은 애교에 식초를 뿌리는 것과 같다. 달콤한 사랑의 감정에 너무 취해버린 남자는 때때로 신맛에 입맛을 다신다.
-오 소세키, 이런 말도 할 줄 아냐요.홍홍홍
˝보통 세상 사람들은 노력과 돈의 관계에 관해 커다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걸맞은 학문을 하면 그에 걸맞은 돈을 벌 수 있는 전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논리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학문은 돈에서 멀어지는 기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