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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8
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평점 :
집 앞 흙서점에서 4000원에 드윽템. 책꽂이에 시리즈 별로 꽂아두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요즘은 깨끗한 민음사, 열린책들만 보이면 그냥 사고 본다. 북경에서 2016년을 맞이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2016년 첫 책은 이왕이면 명작이고 고전이라 하는 안전빵으로 들고가자 해서 들고갔다가 10페이지도 안봤답니다. 그리고 한국오니 또 대만 친구들이 놀러오는 바람에 회사 점심시간에나 짬 내서 읽다 오늘 점심에 마무리했음. 근데 워낙 문장도 간결하고 내용도 쉽고 속도도 빠른 연애소설이라 읽다 멈추다 읽다를 반복해도 흐름이 계속 이어졌고 집중도 노력없이 바로 돼서 뭐 다른 의미로 시기적절했다 하겠습니다.
영국 딸부잣집 베넷씨의 혼기 찬 둘째 딸 엘리자베스가 주인공이고 그녀와 그녀의 주변을 통해 그 시절 영국의 전반적인 문화와 사상 사람들의 태도를 볼 수있는 소설이야. 주된 내용은 결혼시장에 나온 베넷양들의 이야기고 그 중에서 가장 크게 다뤄지는 커플은 엘리자베스의 언니 제인과 빙리 그리고 엘리자베스 본인과 다아시. 진짜 별 내용 없다. 그냥 젊은이들의 호기심과 사랑 믿음 등이 보수적인 사회에서 싹트고 전달되고 받아들여지는 정말 연애, 사랑이야기.
시작부터 끝까지 작가가 호감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되게 강조돼서 나와. 예로들면 재력으로 남편감을 선택하지 않겠다는 것(호감), 마음에 안드는 이야기라면 실날히 비판하고 조롱하는 것(호감), 훨씬 높은 신분의 사람이라도 실례되는 태도에서 비난을 하는 것(호감), 여자라면 마땅히 해야한다는 통념을 무시하는 것(호감)이 매력적으로 비쳐지게끔 주인공 엘리자베스를 당돌하고 보기 드물게 현명하고 용감한 여성으로 보여줬고 반대로 안락함과 어느 정도의 부가 보장되는 남자에게 사랑없는 결혼을 한 샬롯(비호감), 누구라도 딸과 결혼만 해준다고 하면 동네방네 자랑을 하는 딸 가격 후려치기의 달인 베넷부인(비호감), 남자들이 모인 무도회에 득달같이 달려가 어필을 하는 경박한 리디아와 메리(비호감)와 같이 그 당시 보통 사람의 태도를 조롱한 게 작가가 페미니스트이고 그 사회에 불만이 많았음을 굉장히 노골적으로 느끼게해. 근데 시기가 시기인지라 현대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 눈으로 볼 때는 그 당돌한 엘리자베스 조차 수동적이고 남자에게 의존적이고 또 사랑에 환상을 품는 모습들이 꽤 많이 나와서 그 캐릭터가 당시 사람들이 읽었을 때처럼 매력적으로 와닿지는 않는 것 같아. 나 역시도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그 엘리자베스의 이미지나 캐릭터는 대충 알고 있었거든. 근데 그보다 훨씬 수동적이고 여성스러워서 실망스러웠어.
발췌를 보면 알겠지만 그저 그저 쉬운 재밌는 연애소설이다. 오만과 편견을 읽으면서 1800년대 초 그러니까 오만과 편견이 막 출간됐을 때 이 소설을 읽으며 호들갑떠는 젊고 어린 여성들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어. 자극제가 적었던 시기, 순종이 미덕이던 시기에 꽤 센세이셔널한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은 분명해. 그리고 사랑이야기도 꽤 흥미로워. 다아시 아주 매력적이고. 영화에서 다아시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날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아시 역을 연기하는 건 남자 배우에게 꽤 흥분되는 일일 것 같아. 이성적이고 도도하고 콧대높은데 사랑 앞에서 흐느적거리는 낭만덩어리.
엄청 재밌고 집중해야하는 소설을 읽고 싶다. 뭘 읽을까.
발췌
대부분의 경우 애정이라는 감정에는 감사하는 마음이나 허영심이 상당 부분끼어 들어가기 때문에, 애정이 혼자크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안전하지 못해. (중략) 호감이 전혀 복돋워지지 않는데도 진정한 사랑을 키울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우리 가운데 별로 없을 거야. 열에 아홉은, 여자는 자기가 느끼는 감정 이상을 보여주는 게 나아.
제인이 내일 그분과 결혼해서 행복해질 확률이나 열두 달 동안 그분 성격을 연구한 뒤에 결혼해서 행복해질 확률이나 만찬가지일 거라고생각해. 결혼에서 행복이란 순전히 운에 달려 있어. 서로의 취향을 아주 잘 알거나, 혹은 서로 아주 비슷하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둘의 행복이 더 커지는 건 결코 아니야. 취향이란 건 계속 변하게 마련이라 나중엔 누구든 짜증이 날 만큼 달라지게 마련이야. 평생을 같이 살 사람의 결점은 될수록 적게 아는 것이 더 나아.
-이러고 샬롯은 취집을 했습니다.
겸손한 척하는 것보다 더 기만적인 것도 없죠. 겉보기엔 겸손해 보이는 것도 때론 단지 무성의일 뿐이거나, 혹은 간접적인 자기 과시기도 하니까.
언니의 사랑이 깨졌다지. 축하할 일이구나. 아가씨들이 결혼 다음으로 좋아하는 게 이따금 실연당하는 거니까. 생각할 거리도 생기고 친구들 사이에서 뭔가 특별한 존재가 되기도 하고.
어땠든 어떤 남자가 너를 차든, 네 다정한 어머니가 언제든 그 효과를 극대화 시켜 줄 거라고 생각하니 안심이 되는구나
-베넷씨의 와이프 후려치기 꿀잼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를 잊어버리는 것이야말로 사랑에 빠졌다는 확실한 증거가 아닐까요?
불가피한 건 불가피한 것이니 더 이상 사과를 드린다면 오히려 우습겠지요.
-다아시 이런 태도 좋아. 비굴하지 않아. 난 이렇다. 판단은 네 몫이겠지. 하는 식
큰언니는 곧 노처녀가 될 거 아냐. 스물셋이 다 됐으니 말이야! 오,하느님, 내가 스물셋에도 결혼하지 못하면 얼마나 창피할까!
-뭐라고 이년아?
그분을 단호하게 싫어하는 것으로 남다르게 똑똑하게 굴려고 했던 거야. 아무 근거도 없이 말이야. 그만큼 혐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천재를 발휘할 힘찬 박차를 얻게 되고, 위트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리가 되지. 욕만 바가지로 퍼붓기만 하고 정당한 말은 하나도 못할 수도 있어. 하지만 계속 비웃다 보면 가끔씩은 뭔가 재치 있는 말이 얻어걸릴 때가 있게 마련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