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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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국어책을 읽으면서 거기에 나온대로 시와 산문을 재단하고, 밑줄을 그어가며 창작을 배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책은 이런 책이 아닌가 싶다.  스티븐 킹은 이 책에서 결코 어떤 법칙이나 이론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창작은 자유로운 발굴이라는 테제를 가지고 기승전결로 상징되는 플롯이 아닌, 인물에 중점을 둔, 글이 완성되는 과정자체가 하나의 독립적인 유기체인 글쓰기를 설파한다.  읽는 내내, 나의 직업에 어떻게 이를 대입하여 좀더 나은, 읽는 사람 (주로 판사, 변호사, 또는 법무관들)이 더 흥미를 가지고, 나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읽게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종종 펼쳐보면서 '습작'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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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 2011-10-14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글쓰기 교본 (그런게 있을리가 만무하지만^^) 이전에 완벽한 킹의 에세이..저도 '뮤즈'가 그리운 밤에는 이 책 아무데를 펼치고 한 챕터씩 읽습니다. 번역본도 좋지만 원서로 읽으니 더 좋더군요. 킹 특유의 단어 장난이나 위트가 더 실감가서...

transient-guest 2011-10-14 09:09   좋아요 0 | URL
영어제목이 "On Writing"맞나요? 방금 아마존에서 검색해봤는데, 조만간 서점에 가서 구해야겠네요.
 
[eBook] 문재인의 운명
문재인 지음 / 가교(가교출판)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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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지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 서거무렵 그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는 앞으로 시간이 더 흘러야 제대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란 말을 많이들 했었다.  사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고, 그가 한창 활동하던 시절에는 너무 어렸기에, 재임후의 정보와 평가가 내가 아는 것의 다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정보라는 것들이 지금와서 보면 해괴한 정치신문들인 조중동에서 일방적으로 distort하여 내보낸 것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너무도 당연하게 그의 재임기간동안, 내가 그에 대해 가졌던 이미지는 그리 좋았다고 볼 수 없다.  지금와서 보면 '나꼼수'같은 프로그램이 그때에도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론을 조성하는 것, 특정 이슈와 뉴스를 평론하는 것, 모두 언론의 몫이고 자유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특정 언론사의 '색깔'이 나타나는 것 또한 언론자유의 일부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라도 언론은 '거짓'을 말하면 안된다고 나는 배웠다.  그런데 이제와서 보니 이 정치신문사들에게는 '사실'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의 이 책은, 당연히 정치적인 목적으로 쓰여졌고, 일정부분 자기자신의 합리화 내지는 변론이 들어있지만, 내가 몰랐던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 재임기간의 정책, 치적 이런 것들에 대한 '사실'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소중함이 있다.  어쩌면 유시민씨가 정리한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보다도 더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5년간 해괴한 정치신문사들이 얼마나 '사실'을 distort하여 사문난적질을 벌였었는지 알 수 있다.  우리가 아는, 또는 알려진 사실과 실제로 있었던 사실은 얼마나 다른지... 

노무현 대통령이란 사람.  참 원리원칙에 충실했던 것 같다.  잘 나가던 변호사에서 노동/인권 변호사로 탈바꿈하면서 행동과 사는 방식까지 바꿨던 그.  주변인물들 때문에 힘들어졌어도 그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버린 그.  모두 자기 탓으로 돌리고 가버린 그.  강금실 변호사의 성지순례기인 '오래된 영혼'에서 내가 느겼던 강금실의 예수와 노무현의 동일시는 아주 헛다리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의 빈자리가, 아니 그와 같은 사람의 빈 자리가 요즘, 가카 당선 4년만에 60년대로 돌아가버린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노무현 대통령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분명 또 싸우고 있었을 터이니.  문재인의 말처럼 그는 살았어야 했다.   

예전부터 말해왔고, 가카당선이후 나의 정론으로 굳어졌진 정치에 대한 나의 건해는 이렇다.  정치란 더 좋은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덜 나쁜 사람을 뽑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거기서 거기다, 인물이 없다, 그래봐야 뭐 있냐' 같은 말은 멍청한 핑계에 가깝다.  마치 친일파들이 '너라면 뭐 달랐겠냐, 그땐 다 그랬다'라고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를게 없다.  그러니, 서울시장 선거도 그렇고 내년 대선도 그렇고 제발 소신껏, 욕심에 눈멀지 말고, 진짜 생각있는 투표를 하도록 하자.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고 홉스봄이 말하지 않았던가?  제발 욕심에 눈멀지 말고, 히틀러의 공약과도 같은 거짓에 속지 말고 (대중은 큰 거짓말일수록 더 잘 믿었다는 말과 가카의 대선공약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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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시대 - 에릭 홉스봄 자서전
에릭 홉스봄 지음,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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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기에 불의와 싸워야 한다는 그의 말에 감동 받음! 필독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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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시작된 금융가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월가점령을 넘어, 대도시를 중심으로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미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다수의 민주당 지도자들이 이들의 Civil Disobedience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가운데, 여러가지 생각을 해 보았다. 

우리 시대는 분명 그 어느 때보다도 생산력과 기술력이 높은 때이고, 이를 이용하면 지구 전체를 먹이고도 남을 재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아니 이미 그 이상을 해내고 있다고들 한다.  그런데, 왜 우리 절대다수는 계속 가난해지고 있는 것일까?  왜 전 세계적으로 중산층의 폭이 점점 줄어들고,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는 것일까?   

혹시 주식시장으로 유입되는 '비생산적'인 재화가 그 이유가 아닐까?  옛날에는 100의 재화가 생산되면 100이 모두 시장에서 돌고 돌았다.  이에 따라 값이 폭등/폭락하던 것을 정부가 적절히 개입하여 안정을 주는 법적 장치를 만들고, 특히 힘으로 시장을 조작할 수 있는 세력에 대한 규제를 하여왔었다.  그래서 100의 재화가 시장에서 풀리고, 시장에서 소비되어 왔었다고 본다.  (매우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그러다가 주식이라는 것이 생기고, 이때부터는 100의 재화가 생산되면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지만), 일부는 시장에서 풀리고, 일부는 주식시장에서 거래되기 시작했다.  초창기만해도, 이런식의 거래가 시장에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이 어짜피 현물에 대한 베팅이었기에 총 생산량에 대한 거래형태만 시장/주식으로 분류되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자본의 국경이 없어지면서, 더 큰 돈을 벌고 싶었던 금융세력은 각종 로비를 벌여 국가의 법/제도적 장치를 deregulate시켜온 결과, '파생상품'이라는 것이 버젓히 거래되기에 이르렀다.  이로인해, 100의 재화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한 것들이 베팅되기 시작했으니, 100의 생산이 1000, 나아가서는 10000의 virtual value를 가지고 거래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재화의 상당량이 실생활로 재투자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가지고 있지 않은, 즉 생산되지 않은 '개념상재화'에 돈이 몰리고 거래가 된 것이다.  이 결과, 소수는 큰 돈을 벌었지만, 절대다수는, 다수에 투자되어야 할, 환원되고, 재거래되어야 할 재화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졌고, 생산되지도 않은, 그런데, 없어진 자리에 마이너스 숫자만 남은 쓰레기들까지 떠맡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파생상품'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그야말로 도박인 것이다.  비슷한 예가 옛날 일제시대의 한국에서 있었는데, 주식시장에서 (쌀거래를 바탕으로 하였기에 '미두'라고 했다) 밀려난 사람들이 주식의 up and down에 베팅을 하였고, 이 거래가 커지자, 본판이 아니라 숫제 돈을 여기에 베팅하여 거래한 때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 up and down에 베팅하는, 즉 주식자체가 아닌, 것이 파생상품의 개념이라 하겠다.   

이런저런 장난질로 돈을 싹 쓸어담은 금융가와 석유-군산복합자본의 횡포가 극에 달한 이 시기를 보면서, 그래도 계속 deregulation을 외치는 가카스런 사람들과 tea party스런 꼼수들이 밉다못해 측은하기까지 하다.  약자는 보호받아야하며, 절대다수는 절대약자이기에 법제적 장치를 통한 일정부분의 통제와 가이드가 필수라는 것은 지난 십년간을 돌아보면 알고도 남는다.   

우리 모두 조금 더 똑똑한 다수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모두 한번 가서 보시길 

http://www.youtube.com/watch?v=VdZeW9vG1xg  트윗에 올라오는 걸 보았는데, 우리 모두가 이런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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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읽기의 즐거움 - 한국고전산책
정약용.박지원.강희맹 지음, 신승운.박소동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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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옛 지식인들 여럿의 글을 현대적으로 풀어서 우화로 모아놓은 책.  단순하지만, 깊은 지혜를 볼 수 있었던 글 모음인데, '문외한들이 우리 고전을 들여다볼 수 있는 조그만 창문의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면서' 편집된 우리의 고전 이야기들이다.  몇 부분에서 밑줄 그은 부분을 발췌하여 알리고자 한다. 

1. '자득의 묘' - 지혜란 배워서 이르는 데는 한계가 있는 법이어서 스스로 터득함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남에게 배운 것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지만 스스로 터득한 것은 그 응용이 무궁한 법이다. 

2. '낚싯바늘에 매달린 도' - 가르쳐줄 수 잇는 것은 법...가르쳐줄 수가 있다면 그것은 묘라고 할 수 없는 것... 

3. '난하의 교훈' - 마음이 깊은 사람은 보고 듣는 것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고, 반대로 보고 듣는 것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은 보고 듣는 것이 분명하면 할수록 그것이 도리어 병통이 되는 것이다. 

4. '병귀와의 논쟁' - 기거를 규칙적으로 하고, 춥고 더운 기온 변화에 알맞게 대처하며, 음식을 절제하여 먹고, 욕심을 줄이며, 생각을 적게 해서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고, 혈기가 왕성하며, 오장이 튼튼하고, 육맥이 고르게 된다면 나 (병)는 허둥지둥 물러가기에도 바쁠 (것) 

5. '영리한 나뭇꾼' - 대개 많은 이익을 얻으면 화의 근원도 깊고 빨리 공을 얻으면 잃는 것도 빠른 법...좋은 나무란 위험이 도사린 높은 곳에 있습니다.  이익에 눈이 멀면 위험한지를 모르게 되며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욱더 위험해지는 법 

이후에도 좋은 글이 많았지만, 일부는 유가에 통용되거나 너무 옛스러워서 눈에 깊이 들어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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