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두 시까지 올 상담고객이 있는데 시간이 좀 이상하게 꼬일 수도 있겠다.  서머타임의 시행으로 한 시간이 앞당겨진 봄날씨가 완연한 하루다.  따뜻하니 덥지도 않고, 그늘에 있으면 바람이 솔솔 날려 아주 그만인 날씨 덕분에 오전에 온 손님과 중앙정원에서 상담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좀 앉아있었더니 반나절이 다 지나가버렸다.  겨우 행정업무만 처리하고 오후 4시엔 외부미팅이 있어 2시 미팅이 늦어지면 문제가 생긴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뛰려고 했으나 이런 저런 이유로 시간이 미뤄진 탓도 있고, 햇살이 강해서 타버릴까봐 오후나 저녁시간으로 미뤘다.  기계에서 뛰는 건 꽤 많이 좋아졌기에 이젠 본격적으로 바깥에서 뛰는 몸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운동효과도 그렇고 몸을 위해서도 이게 훨씬 더 나은 것 같다.  









'잃어버린 왕국'에서 다룬 이야기에 열광하던 시절이 있었다.  짧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우리가 비록 지금은 작은 땅덩어리에 갖혀 사는 근대사에서의 약소국이지만, 한때 대륙을 호령하던 고조선과 고구려의 후손이었다.  고구려와 백제는 대륙을 지배했지만, 외세를 끌어들인 신라가 통일한 한 탓에 결국 민족의 역사가 대륙지향에서 반도지향으로 변했고, 이게 이어진 끝에 일제의 강제병합을 겪었지만, 만주는 언젠가 우리가 회복할 고토이다.  통일의 그날이 오면 더욱 국력을 키워 조상의 땅을 회복하자.  역사에도 근거가 있듯이 만주와 일본 모두 우리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로 문제가 있는 소리지만, 암울한 80년대와 새로운 희망이 가득하던 90년대 초반만 해도 이런 얘기가 사회 곳곳에서 진지하게 토론거리가 되던 시절이었다.  1997년 경제붕괴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통일은 21세기를 화려하게 여는 축전이 될 것이고, 21세기는 우리의 시대가 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속을 들여다보면 '환'의 영향을 받은 경우도 많았고, 현실적으로 말이 안되는 이야기였지만, 지금까지도 도판에서 이런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걸 보면, 고대사는 그 미스테리에 얽힌 흥미 이상 현대 한국사에서 보면 그리울 수도 있는 과거라는 생각은 한다.


백제와 일본의 관계, 여기서 발생한 일본의 역사조작 - 이건 뭐 얘네들의 전통이라고 한다 - 을 둘러싼 흑막, 한일강제병합을 정당화하려는 고대한국사의 조작까지 최인호 작가다운 재미와 그럴듯함을 보여준다.  기실 백제와 일본의 관계는 아마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까운, 본국-식민지보다 더 가까운, 사실상 한 나라였을 가능성은 무척 높다.  우리가 쓰는 현대 한국어는 신라어에서 변해왔을 것인데, 현대 일본어에는 오히려 고대 고구려나 백제어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연구도 있을 정도니까.  그런데 이게 후대 일제를 거쳐 선우를 따지는 문제가 되어버리고 나니 제대로 된 접근이 어려운 것이다.  


일본과는 감정이 많을 수 밖에 없지만, 그리고 아직도 이어지는 피해자 코스프레와 책임회피는 정말 징글징글하지만, 중국의 발호를 보면 사실 한국과 일본의 협력은 거의 필수가 아닌가 싶다. 대륙근성답지않게 찌질한 중국의 최근 외교행보를 보고 있으면, 분명히 구실도 잘못도 한국정부의 책임이 크지만, 불쾌함을 떨칠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과 일본의 미래는 결국 과거사정립과 책임관계를 인정하는데서 새출발할 수 있다고 본다만, 쉽지 않은 일이다.  


글로 밥을 벌어먹는 직업이 아니라서 이 정도로 많은 책을 사들이고 읽을지는 사실 모르겠다. 그저 흥미가 가는대로, 필요에 따라, 책을 사들여 읽고 있는데, 2012년부터 따져보면 지금까지 연 평균 2-300권 정도의 책을 새로 사들인 것 같다.  읽은 평균과 지불한 비용을 대충 계산한 건데, 20년을 이렇게 해도 더 사게 될 책은 5-6000권 정도니까, 다치바나 선생의 20만권은 근처에도 갈 수 없는 숫자다.  고양이빌딩에 넘쳐나는 책인 어느새 릿교대학 연구실과 산초메라는 곳의 다른 서재에 보관되어 있으니까 정말 대단한 양이다.  딱 2 bed 2 bath 정도의 콘도면 아마 내가 평생 모든 것들을 다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니까, 딱 그 정도만 어떻게 해보고 싶다.  이담에 더 나이를 많이 먹고 일도 조금 덜 하게 되면 그런 공간을 만들어놓고 출근을 하면 좋겠다.  그야말로 나의 man-cave를 만들고 싶다.  김갑수 선생도 그렇고 부럽기 그지없는 사람들이다.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었다.  김훈의 책은 읽지 못한 것들이 더 많아서 모르는 제목을 보고 다른 책들과 함께 집어왔다.  하지만 내용은 거의 '라면을 끓이며'에서 재탕된 것들이라서, 그리고 하필이면 '라면...'을 얼마전에 다시 읽었기에 건성으로 읽다가, 새로 읽는 글만 제대로 보았다.  역시 그다지 새로운 느낌이 없었고, 신선함이 없어서였는지 조금 지겹기도 했다.  같은 문체를 고수하는 작가의 글은 가끔씩 읽어야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장강명'이라는 이름이 화제가 되었던 작년에 나 또한 그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댓글부대'와 함께 꽤 화제가 되었던 작품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려운 이야기나 복잡한 철학이 없이 아주 진솔하고 단순명쾌하게 왜 2030세대가 한국을 떠나는가, 떠나고 싶어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내가 아는 한의 이야기지만, 수단이 있으면 첫 번째는 미국이고 그 다음이 호주나 캐나다, 그 다음으로 유럽과 동남아시아를 목적지로 하게 되는데, 다른 나라들은 잘 모르겠고, 미국이나 호주/캐나다도 한국 사람들이 많은 곳은 정말 잘 모르겠지만, 대체로 한국보다는 훨씬 더 좋은 조건으로 일하고 살 수 있다.  큰 돈을 벌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무엇을 해도, 그저 좀 행복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살고 싶다는 거다.  게다가 호주만 해도 아직은 3D노동으로도 어느 정도 생활이 보장되는 것 같다.  미국은 이미 이런 건 어렵기 때문에 하다못해 장사밑천이라도 들고 와야 하고, 이민도 상당히 까다로운데, 호주는 특히 국가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좀더 길이 나는 등, 꽤 좋은 대체조건이 되지 오래인 것 같다.  


주인공은 인서울 대학 출신이지만, 금융권을 가장한 2-3금융권에 가까운 회사를 다니다 호주를 꿈꾸게 된다.  주인공이 만나는 사람들은 적어도 한국 기준에서는 그보다 더 못한 경우도 많다.  그런데 호주라는 땅에서는, 최소한 열심히 살고, 올바른 목적으로 계획을 세우면 잘 풀릴 가능성이 한국과 비교하면 무궁무진한 것이다.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이 working holiday를 잘 이용해서 일하면서 여행을 다닌다.  이곳도 백인국가라서 인종차별도 경험하고 어려운 일도 겪겠지만, 적어도 한국에서의 인격적인 모멸감이나 탈출구가 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사는, 그런 단면을 그리면서 작가하는 던지는 메시지를 보게 된다.  아니, 굳이 메시지가 아니라도, 그저 많은 사람들이 애써 외면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던지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어려운 나라가 되었다는 그런 현실 말이다.  일반화의 오류는 어쩔 수 없다 치고, 그냥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린 한국에서 행복한가?  특히 이제 40년은 일해야할 젊은이들과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하지만 아직도 20년은 더 일할 수 있는 5060세대에게 job, 대단하지도 않은 그런 job까지 두고 싸우라고 강요하는 정부와 재벌을 보면, 이젠 한국땅과 별로 관계가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나 역시도 식은땀이 날 정도다.  맘 같아선 나오고 싶은 사람은 다 데리고 나왔으면 하는 생각이다.  


결말은 결국 어느 정도의 해피엔딩이다.  주인공이 꿈을 찾아 호주에서 정착하려는 그런 내용인데, 모든 이들이 그렇게 잘 적응해서 남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가능성만을 놓고 보면 한국보다는 높다.  이건 fact다.  버리고 도망가는게 능사는 아니지만...

 

미팅은 결국 캔슬됐다.  내일로 미뤄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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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15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갑수씨 서재도 부럽습니다. 거긴 LP로 음악 감상이 가능하고,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실 수 있잖아요. ^^

transient-guest 2017-03-15 10:21   좋아요 0 | URL
사실 놀이터라고 보면 김갑수 선생의 줄라이홀이 좀더 맨캐이브에 가깝죠 ㅎㅎㅎ
 
제3인류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드디어 새로운 인류가 나타났다. 가이아의 과거 기억에서처럼 거인이 인간을 창조한 것처럼. 과거는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은 듯한 이야기로 2가 마무리되었다. 작가의 이야기를 보면 매우 그럴 듯 한, 실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기시감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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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라면을 끓이며‘에서 다듬어 다시 나온 글이 거의 전부였던 책.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라면을...‘을 다시 읽은 기분이라서 달리 특별했던 기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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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15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면을...》가 나오기 전에 중고매장에서 《바다의 기별》을 구입했어요. 그래서 《라면》을 도서관에 가서 빌려 읽었어요.

transient-guest 2017-03-15 10:21   좋아요 0 | URL
주요 내용은 거의 겹치더라구요
 
제3인류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그간 베르베르의 작품은 다 거기서 거기 같아서 안 읽었는데, 요즘 읽는 것들에 대한 shake-up을 위해 도서관에서 빌려와 읽게 되었다 오랫만이라서 그런지 아주 재미있게 일고 있다 가이아이론과 작가 특유의 기론을 잘 버무려 작품화하고 있고, 여러 곳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오마주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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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14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5, 6권을 소장하고 있지 않아서 4권까지 읽다가 말았어요.

transient-guest 2017-03-15 04:36   좋아요 0 | URL
도서관에서 4권까지만 봤기에 5-6권이 있는지 몰랐네요. 없으면 다른 곳 찾아봐야죠.ㅎㅎ
 
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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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대가 처한 한국의 현실을 탈출하려는 도구로써의 이민 이상, ‘왜‘ 그런지를 단면으로나마 보게 해주는 작품. 장강명이라는 이름을 확실히 새겼다. 그저 사람답게, 자조하면서 살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이 무너진 지금의 한국이라면 나 같아도 떠나고 싶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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