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늘 섞어서 읽는다. 언젠가 시작되었는지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읽는 책이 늘 여러 권이고 장르도 제각각인지도 꽤 된 것 같다. 책을 좋아하는 것도 이유의 하나지만 더 중요한 건, 이런 독서방법을 잘 활용하면 여간해서는 책읽기가 지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뭐 하나에 푹 빠지지 못하는 경향이 나이가 들수록 심해지는 것 같은데, 책읽기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그나마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읽어대는 덕분에 가끔씩 침체기가 있더라도 큰 줄기에서 보면 '독서'라는 걸 계속 취미로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이런 걸 거창하게 '다독술' 어쩌고 하는 책도 몇 권 읽었지만, 그리 대단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자연스럽게 책이 이끄는 방향으로 가면서 터득한 진리(?)가 아닐까 싶다.


무협지나 판타지는 거의 읽지 않는 요즘 머리를 식히는 데에는 추리소설만한 것이 없다고 믿어버린 듯, 쌓아놓은 추리소설들을 어디선가 찾아내서 하나씩 읽어가고 있다. 여러 모로 심란한 요즘이지만 그럴수록 용기를 내기 위해서라도 책을 읽는다. 무엇을 배우기 위함이 아니고 그렇다고 예전에 유행하던 '힐링'을 위한 것도 아닌, 더도 덜도 아닌, 독서 그대로의 독서라고나 할까?  그러더가 맘이 내키면 '고전'이나 '문학'으로 분류되는 명작을 한 권씩 찾아서 읽게 되니까 무척 자연스럽게 책에서 책 사이를 흘러다니게 된다.  나이를 먹은 덕분에 무엇을 읽으라고 억지로 권하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책을 좀 적게 읽으라는 사람은 있을 정도의 내공(?)을 쌓아가면서 터득한 나의 독서방법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묘하게도 예전에 읽은 듯한 작품도 몇 개 섞여 있었던 단편집이 두 권 (대답은 필요 없어; 홀로 남겨져), 그리고 장편 한 권의 미야베 미유키 소설을 읽었다. 모두 spin을 하거나 뛰면서 봤는데, 적절하게 시간을 보내기엔 딱 좋은 것이 추리소설 하고도 미미여사의 책이 아닌가.  짧은 이야기나 다소 호흡이 긴 이야기나 큰 무리가 없이 잘 이끌어 나가는 재주는 역시 대단하다.  작가공부를 따로 했거나 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직장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창작교실을 다니면서 데뷔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남들은 기를 써도 책 한 권을 쓰기 어려운 현실을 보면 원래 타고난 재주가 생활속에서 갈고 닦아진 것이 아닌가 싶다.  히가시노 게이고와 함께 다작의 작가로 생각되는데 둘 다 일정한 수준이상의 재미를 보장하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세계는 히가시노의 그것보다 더 치밀하고 묵직한 울림이 있는 것 같다.  


시마다 소지의 책은 이로써 구할 수 있는 건 모두 읽은 것 같다. 다른 작품들보다는 조금 밀도나 집중도가 떨어지고 추리의 재미도 덜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무래도 좀 반칙 같이 느껴지는 트릭을 사용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잔혹판타지처럼 셋팅을 하고 누가봐도 범인일 것 같은 사람을 내세웠지만 결국 진범은 너무 많이 가려진 탓에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의 clue는 줘야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냥 활극이 되어버린 것 같다.


카잔차키스는 전집을 다 갖추고 나서 조금씩 읽고 있는 작가이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훨씬 더 유명하지만 이야기라는 면에서 볼 때 어쩌면 좀더 흥미진진한 것이 '크노소스 궁전' 같다. 내가 워낙 고대 신화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불핀치의 그리스 신화에서 아무리 길게 다뤘어도 책 한 권이 나올 분량은 아닌 것이 테세우스가 미궁에서 미노타우로스를 제거하고 아리아드네공주와 함께 도망치는 정도의 짧은 이야기이다. 그런 것을 역사적으로 추론과 상황을 곁들이고 흥미진진한 드라마로 빚어낸 것이다. 평범한 작가였다면 이런 것들을 서술로 끌어가려 했겠지만, 이런 극화의 구현은 작중인물들의 인격, 생각, 대화, 행동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한 권을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게 적절한 기승전결로 흘러간다.  도리아인을 등장시킨 건 정말 신의 한 수가 아닌가.  그 짧은 내용에서 크레테-아테네-도리아-그리스로 이어지는 힘과 역사의 흐름을 볼 수 있었다. 역시나 대가의 솜씨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별 것이 아닌 듯 하지만, 중수와 고수의 차이는 종이 한 장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소재의 흥미, 짧지만 다사다난했던 대한민국 닭요리의 역사가 책 한 권에 담겨 있다. 나아가서 IMF이후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4050의 창업 붐과 그 한 가운데 위치한 치킨프랜치아이즈의 현황을 다룬다.  왜 치킨인지, 어떤 형태로 발전해서 지금의 종합산업의 위치에 서게 되었는지, 그 와중에 간간히 등장하는 추억의 이름들이 너무도 반가웠다.  멕시칸치킨이나 페리카나치킨으로 시작되었던 치킨전쟁, 그 이전에 성업했던 림스치킨, 그리고 내 기억으로도 가물가물한 영양센터의 전기구이치킨까지 익숙한 먹거리의 이야기. 그런데 가볍게만 볼 수는 시대의 현실까지 오롯히 연구해낸 결과의 산물이다.  팟캐스트에서 들은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저자가 계획하고 있는 시리즈를 계속 눈여겨 볼 것이다.


서경식선생의 책은 계속 구해서 읽어왔고, 이번의 신간도 비교적 빨리 보았다. 그런데 어인 일인지 이번의 책은 그 울림이 느껴지지도 않고, 치열한 과거의 지적, 현실적, 역사적 고민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문제인지, 다소 편해진 우리의 정치현실이 그 이유인지 모르겠다. 상당히 중구난방, 호흡을 유지하는 것도 많이 어려웠다. 문고판처럼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사이즈가 맘에 들었고, 책장을 처음 넘길 때만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지만, 어떤 것들은 분명이 내 마음상태에 따라 좌우된다.  이번의 사례가 그 증거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한 주가 흘러간다.  이번 주 또한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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