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수로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 Presidents' Day 휴일인데, 잠깐 사무실에 나와서 몇 가지 행정업무를 마쳤다. 곧 나가서 운동을 하고 집에 갈 생각이다. 시원하게 내리는 비라고 하면 한국의 장마기간에 내리는 장대비를 추억한다. 예전에 여름방학 때 한달 반 정도를 혼자 역삼동의 원룸에서 지낸 적이 있다. 딱 장미와 겹쳐서 심심하면 비가 내리곤 했었는데, 인턴을 나가지 않는 날은 보통 원룸에서 자다 깨다 책보다 숙제하다 하면서 하루를 보냈고, 밤이면 친구나 선배를 만나 술을 마셨고, 약속이 없는 날은 방에 앉아 있다가 배달음식과 맥주를 마시면서 빗소릴 듣고 밤을 꼴딱 새웠었다. 그래도 당시엔 20대라서 그랬는지 그렇게 하면서 별다른 운동을 하지 않고도 무려 살이 빠져 미국으로 돌아갔었는데, 작년 여름엔 딱 한달 정도를 매일 마셨더니, 열심히 운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불더라. 역시 나이가 들면 신진대사율이 떨어지는 거다. 운동은 더 많이 하고, 먹는 건 더 줄여야 하는 나이가 되어버린 것을 완전히 확인하는 40대의 몸은 이래서 슬프다. 지난 10월부터 지금까지 잘 해왔는데, 여기서 다음 단계는 역시 수영을 운동루틴에 더해야할 것 같다. 대충 10kg 정도를 빼면 거의 리즈시절에 가까워진다는 것. 사실 지금 상태에서 15kg를 빼면 진짜 좋던 시절로 가는건데, 건강상 그리 바람직하진 않다고 한다. 일부러 살을 빼려고 열심히 뛰는 건 아닌데, 그저 좀더 나은 모습과 건강한 상태로 살아가길 바라는 것이다.
요리를 꽤 하는 편인데, 라면은 특히 잘 끓인다. 이건 한국의 친구들도 인정한 부분인데, 양의 적고 많음을 떠나서 내가 끓인 라면은 잘 끓인 분식집의 라면, 딱 완벽한 비율의 국물과 면의 탱탱함이 살아있는, 여기에 달걀의 상태로 딱 좋고, 위에 얹은 파도 아주 잘 조화를 이룬다고 한다. 사실 다른 부분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트릭은 냄비에서 그릇으로 옮기는 것이다. 냄비에 그대로 두고 먹으면 아무리 빨리 먹어도 어느 순간에는 면발이 불어나고, 그 맛이 그대로 국물에 퍼지게 된다. 여럿이 먹을 때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부분이지만, 혼자 먹을 라면은 역시 면발이 90% 정도 익었을 때 딱 냉면그릇 사이즈의 탕그릇에 예쁘게 부어 옮기면 먹는 내내 면이 불지 않고 나중에 밥을 말아도 그만인 국물맛이 유지된다. '라면을 끓이며'는 두 번째 읽게 됐는데, 어쩌다 보니 글을 읽으면서 느낀 건 하나도 안 떠오르고, 갑자기 라면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김훈 작가는 워낙 유명해서 좋은 리뷰가 널렸으니까 나 하나 정도는 그냥 이렇게 지나가도 될 것 같다. 참고로 이 책을 살 때 부록으로 양은냄비를 줬다고 하는데, 난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 양은냄비는 쓰면 쓸수록 닳게 되어 결국엔 코팅이 벗겨진 냄비의 알루미늄 성분을 먹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하니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본다. 추억의 멋과 맛이지만서도, 알루미늄섭취는 치매를 유발한다고 하니까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 단촐한 자취생의 살림에 양은냄비가 없으면 서운하겠지만...

비가 오니 집중이 잘 되는 효과는 있다. 보통 이곳의 우기가 시작되는 건 가을이라서 적당히 어두운 하루, 사무실의 불을 끄고 작은 스탠드 하나와 함께 좋은 배경음악을 빗소리와 들으면서 일하는 기분은 혼자라서 느낄 수 있는 여유와 넉넉함이다. 구도행각이 별거있나?
도는 어디에 있을까? 학승으로 평생을 사는 이들은 불경에서 도를 찾을 것이고, 선승으로 평생을 사는 이들은 화두를 잡고 늘어짐으로 부처를 만나고자 한다. 살림을 하는 사판의 승려들은 평생 행정을 보면서 다른 이들의 구도를 돕는 것에서 부처를 찾을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닌 이들은 객승으로 떠돌면서 온갖 기행속에서 도를 찾으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절제와 조화가 되어야하는 것이, 불경에 사로잡히면 눈앞의 부처를 보고도 모를 것이고, 화두만 잡고 있다가는 필경 정신이 이상해질 것이며, 사판에 사로잡히면 오로지 재물만 찾게 된다. 행각승이라고 멀쩡하겠는가. 평생 형이상학적인 이야기와 자기기만으로 주색을 넘나들다가 구도를 망치게 될 것이다. 아무나 개발새발 그림을 그렸다고 칸딘스키나 피카소의 그림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진묵대사를 끌어대는 대다수는 그 행위 뒤에 있는 것의 근처도 가보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도판도 개판인 시절이라서 말도 믿지 못하겠고, 가르침도 별로 같다. 그저 행위로 보여야하는 세상이 아닌가 싶다. 믿음을 행하지 않으면 예수의 제자가 아니다. 또 그 행위를 온통 '헌금'이라는 테제로 통합시켜 그저 열심히 믿고 헌금하면 천국에 갈 것이라고 가르치는 자들이나 그걸 따라가는 자들이나 구렁텅이에 빠지는 건 매한가지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행위를 뒤돌아보고 뉘우치고 개선해나가는 것, 그 와중에 말씀도 있고, 신을 만나게 되고, 믿음도 단단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내 옆에 굶는 사람이 있는데 그걸 외면하고 헌금만 많이 하면 된다는 그릇된 믿음과 가르침은 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다. 고기먹고 술마시고 색도에 정진하는 business땡중들이나 마몬신에게 몸바쳐 호위호식하는 성직자라는 것들이나 다를 바가 없다.
지난 시절, 치열하게 삶과 신앙에 대해 고민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촛불이 밝은 곳에 있으려나?
몇 권의 책을 읽는지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독서에 왕도란 것은 없으니까. 다만 나에겐 그 권수도 조금은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 한창 힘들게 공부하던 한 시기엔 책을 거의 읽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전혀 자각하지도 못하고 그렇게 한 3-4년은 책을 읽지 못했었다. 그때를 기억하면서 다시 이 기쁨을 찾은 2007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권수를 헤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금년도 so far so g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