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일에 뭐에 마음을 빼앗긴 탓에 책읽기도 느렸고 후기를 남기는 건 더 게을리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면 늘 문제는 내용을 많이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책을 읽던 당시의 느낌을 위주로 글을 남기는 나에겐 꽤 치명적이라 할 수 있다. 무엇이든지 꾸준히 해야한다는 인생의 단순한 진리를 또다시 느끼는 순간이다. 12/3-12/4 주간을 지나고서 조금 끼적거리다 만 글로 시작해서 오늘의 느낌으로 남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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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열심히 달린 덕분에 project한개를 거의 마무리했다. 한개를 더 끝냈으면 했는데, 12월의 일정을 볼 때, 하루는 쉬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한주는 내일 잡힌 패널참석에 따라 화요일 하루는 거의 일을 할 수가 없지만, 나머지 4일을 잘 나눠서 쓰면 급한 불은 어느 정도 끌 수 있고, 이번 주를 잘 보내고 나면 어느 정도 여유 비슷한 것도 생길 것이다. 목표는 12/19주간까지 다른 project한개를 더 끝내고, 지금 계속 시간을 쓰고 있는 케이스의 마무리수순을 12/19주간에 진행하는 것이다. 이후 12/26주간에는 몇 가지 연말의 마무리를 하고, 1/3-1/11로 잡혀있는 휴가를 갈 때 들고갈 크고 작은 일거리를 챙길 것이다.
언젠가 RV를 하나 사서 가끔 휴가가 아니라도 사무실을 떠나서 인터넷과 전화연결에 문제가 없는 정도의 휴양림에 들어가서 일하고 쉬고 하면 좋을 것 같다. 사무실에서는 이런 저런 잡무와 산만함으로 5-6시간이 걸려도 끝내기 힘든 일을 휴가를 떠난 관광지에서는 2-3시간이면 완벽하게 마무리하는 경험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다른게 없다. 그저 조금 더 안정적으로 살고 싶고, 평화롭게 하고 싶은걸 하면서 사는 것, 건강 이런 것들을 바랄 뿐이다. 그런데 웃긴 건, 이런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특히 물가와 집값이 비싼 이곳에서는 전쟁처럼 열심히 살고, 달려야 한다는 거다. 이 둘 사이의 괴리는 가끔 날 끝도없는 생각의 나선으로 보내버리는데, 결론는 늘 미정이다.
방금 오전 스케줄을 무난히 진행했고, 운동 후 오후 스케줄을 진행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내일 패널로 참석하는 모임의 reception dinner에 오늘 올 수 있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공짜저녁도 좋고 그렇게 얼굴을 알리는 것도 좋은데, 영 맘이 편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건 일이니까, 시간을 만들어서 나가기로 했다. 왕복 1.5시간 정도, 밥먹는 시간은 1시간 정도, 끝나고 시간을 봐서 커피까지 가면 너무 늦게 집에 올 듯. 내일은 오전에 바로 SF의 컨퍼런스 장소로 나가서 몇 시간 S/B같은데서 일을 하면 딱 좋겠다. 굳이 사무실에 가서 몇 시간 일하다가 다시 뛰어나가는 건 너무 정신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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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영화이면서 소설로 나온 책이라고 하는데, 감독에 대한 흥미도 그렇지만, 깔끔한 표지사진에 마음이 끌려 샀다. 읽고보니 한국에서는 나오기 힘든 이야기, 전형적인 일본의 색깔이 묻어나는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등장인물의 연애도, 단어도, 주변인물의 직업도, 기괴하기 짝이 없는 fixer의 모습까지 모두 한국이나 미국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쓰기 어려웠을 듯한 것들로 가득하다. '종이달'처럼 무엇인가 깊이 생각할 것을 주지는 않지만, 영화로 본다면 괜찮을 장면들을, 나름 흥미있는 이야기의 양념으로 즐길 수 있었다.
이건 워낙 animation이 예쁘게 그려졌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비오는 날씨가 가득한 장면들이 좋았기에 소설로 나온 것을 보고 바로 구했다. blueray로도 갖고 있는데, 책으로 보는 맛은 또 다른 것 같다. 주말 출장 중, 아침에 숙소에서 일어나서 운동하러 갔다가 시설이 꽝이라 그냥 7층 정원에서 오랫만에 빌딩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아침을 감상하면서 읽었다. 정원이라고 하면 좀 뭐하지만, 북쪽을 바라보는 의자에 앉아서 그리피스 천문대와 할리우드 사인을 보며 자뻑가득한 행복을 느끼면서 엄청 맛있게 음미할 수 있었다. 아직 감성은 소년이라서 이런 이야기를 보면 크게 공감은 못해도, 꽤 설레는 맘을 느낄 수는 있다.
워낙 유명한 저자의 책이라서 읽었는데, 강연집을 엮은 듯한 톤은 역시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좋은 내용과 insight이 가득하지만, 이렇게 대화체로 대중에게 강연하는 느낌으로 엮이면 일단 '~합니다'투가 넘치는 활자낭비부터 피곤해진다. 띄엄띄엄 조금씩 읽은 탓에 내용이 vague하게 기억은 나지만 구성이나 주요포인트를 남길만큼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분명히 괜찮은 포인트가 많이 있었던 것 같은데 도무지 남아있는 것이 없다.
로마는 언제나 재미있는 이야기의 주제가 되어준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 작가는 '스토너'로 소개를 받았는데, '스토너'같이 묵직하게 가슴속의 무엇인가를 때리는 건 없었지만, 제정로마의 원년을 이룬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시작과 끝, 그리고 함께 살아간 주요인물의 이야기를 편지형식으로 재미있게 엮었다. 소설의 재미를 위해 약간의 짜집기와 distortion, 특히 시간대의 조작이 있었지만,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니 훌훌 넘어가더라. 권력의 정점은 역시 외로운 법이다. 그러나 외롭다고 모두 다 굿을 하거나 성형을 하거나 주사를 맞거나 측근에게 다 맡기고 드라마를 보거나 삥을 뜯지는 않는다. 따라서 능력있는 자가 권력의 정점에 오르면 외롭겠지만, 무능한 천치가 권력을 잡으면 그 보다 더 신나게 놀 수 있는 자리는 없을 것이다. 정은이나 근혜나...
월요일에 배달된 따끈따끈하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듯한 책이다. 물론 바로 꺼내먹었다. 짧은 글을 모아놓았는데, 이분은 이공계의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인문학적인 소양이 깊은 것 같다. 한꼭지에 한두 페이지 정도의 글인데, 간결하고 소박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다. 별과 은하, 우리가 걸어온 길, 앞으로 나아갈 우주, 삶, 자연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성찰과 이야기가 버무려져 있는데, 깊은 맛을 내는 잘 우린 전통차를, 때로는 조용하고 정갈한 분위기의 카페에서, 때로는 뒷뜰에 혼자 앉아서 밤에 별을 보면서 마시는 느낌으로 천천히 한줄씩 음미했는데, 의외로 잘 읽히는 글이라서 아주 빨리 읽어냈다. '과학하는 사람들'이라는 팟캐스트에서 종종 강연을 하는데, 입담하면 끝내주는 이정모 관장님과 함께 거의 투톱이라 할 수 있다. 이분의 책을 좀더 구해볼 생각이다.
찜질방에서 낮잠을 자다가 세 권짜리 검궁인 무협지를 읽었는데, 딱 대본소 수준이라서 무난하게 마중물로 썼다. 제목이 생각나지 않기에 달리 후기를 남기지는 못하겠다.
다음엔 한 3-4월 정도에 내려갈 것 같은데, 미리 좀더 준비해서 고전위주로 구해오면 좋겠다. 문학동네, 열린책방, 민음사 이렇게 세 출판사에서 나오고 있는 고전은 참 쓸만한데, 겹치기도 하지만, 각각의 지향점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형편과 기회가 된다면 모두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