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부터 나쓰메 소세키를 하나씩 읽어나가기로 하고 벌써 거의 2주가 지나갔다. 다른 책도 읽고 싶기에 소세키는 집에서만 읽기로 했더니 속도가 상당히 느리다. 이제 첫 두 권을 읽었다. 두 권 다 다른 출판사의 판본으로 이미 읽은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느릿느릿 걸어가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처럼 읽었다. 특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무척 천천히 읽을 수 밖에 없었는데, 앞서의 reading과는 달리 그저 유머러스한 satire로만 보이지 않았고, 번역의 차이였는지 무척 소화하기 어렵게 느껴졌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오후에 이어서 쓴다. 저녁운동으로 가볍게 50분 정도를 뛰다 걷다 하면서 4일째의 패턴을 마쳤다. 내일은 하루를 쉰다. 보통 3-4일에 한번 쉬면서 몸을 추스려야 부상위험도 적고, 몸이 회복을 한다고 한다. 뛰는 내내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금수'편 1-2부를 내리 들었다. 2부 마지막 약 30분간 이동진 DJ의 목소리로 '금수'의 주요부분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배경음악과 함께 목소리 좋은 이동진 DJ의 reading으로 듣는 '금수'의 장면, 내가 남긴 부분도 들어 있기에 뭔가 내 취향이 전문가처럼 느껴진다. '빨간 책방'의 묘미는 바로 이 부분이다. 문학평론도 좋고 책 이야기나 작가 인터뷰도 좋지만, 내가 가장 즐기는 시간은 잔잔한 피아노에 맞춰 읽어주는 이동진 DJ의 목소리다.
훨씬 더 꼬장꼬장하게 느껴진 현암사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였다. 읽는 동안 flow가 좋지 못했고, 예전에 나를 웃게했었던 장면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다음이란게 있어 그리 마음이 쓰이지는 않지만, 왜 그런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도련님]
지난 번에 읽었을 때보다 더 재미있게 느꼈다. 지난 4-5년의 세월이 무엇이었기에 그런걸까? 다란 판본으로 읽은 '도련님'은 조금 지루했는데, 현암사의 '도련님'은 훨씬 매 장면이 리얼했다. 위선에 가득찬 인간들 사이에서, 망나니같도, 세상을 사는 요령도 없지만 도련님은 훨씬 더 나은 사람이다. 시스템안에서 그렇게 안주하는 인간들과는 다른 종으로, 아예 그 세계에 들어가고자 하지 않는다. 편입하고자 했더라면 최소한 형과 유산을 놓고 한바탕 난리를 부렸을 것인데, 그냥 되는대로 흘러가면서 어찌어찌해서 시골바닥의 선생으로 잠시 지내다가 다 던져버리고 다시 도쿄로 올라온다. 소세키가 본 시대상이 대저 이러했을 것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묘사된 인간들도 그렇게 볼 수 있지만, 도련님이 부임해간 시골학교는 그야말로 메이지시대의 축소판이 아니었나 싶다.
또 한 주가 무심하게 지나가버렸고, 난 한 주만큼 나이를 먹는다. 나름 한 시절, 뭇 소녀들을 살짝 홀리던 내 목소리도 이젠 투박하거나 막힌 소리가 random하게 나올 뿐이다. 그야말로 '무사태평하게 보이는' 나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나는 것이다. 요즘처럼 시간이 지나가버린 것이, 나이를 먹은 것이, 지금의 내 상태가 허탈한 때가 없었다. 내가 가을남이라면 정말이지 제대로 가을을 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