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남은 삶에서 다시는 연애라는 걸 경험할 수 없을 것이란 걸 안다. 하지만, 그 비슷한 감정은 종종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순전히 혼자서의 감정이어야만 하고, 거기서 멈춰야하는 걸 알고 있다면, 나머지는 마음의 작용이기에, 봄에 잠깐 부는 나른하고 따뜻한 바람처럼 지나갈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말의 출장을 마무리했다.
일에 치이기도 했지만, 책읽기가 여러 이유로 속도가 나질 않았다. 여기에 주말에 출장을 다녀온 관계로 한 주가 좀 balance가 깨진 상태로 시작되었고, 마음도 이리 저리 오르내리고 있어 살짝 험난한(?) 일정이 예상된다.
고등학교 때였나, 일본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하면서 구할 수 있는 건 닥치는 대로 가져다 보던 시기에 80년대에 만든 Vampire Hunter D 극장판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은 기억이 난다. 이후 한 십 수년, 처음으로 이 시리즈가 영어로 번역되어 나오던 것이 벌써 24번째 이야기가 끝났다. 오래 계속된 이야기라서 가끔은 지겹게 느끼기도 하지만, 적당한 interval로 신간이 나오기 때문에 잊을만하면 한 권씩 읽어주게 되어 그럭저럭 괜찮다. 이번의 이야기는 게다가 상당히 신선했는데, 아마도 구성이 조금 산만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렇게 느낀 것 같다. 작가후기에 따르면 ebook으로 연재를 했기에 매일 조금씩 이야기를 올렸고 이를 모아서 정리한 것이 24번째 책이 되었다고 한다. 한번에 긴 호흡으로 쓰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매일 조금씩 다르게, 하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를 쓰는 것도 작가로서 좋은 경험일 것 같다. 일도 그렇지만, 한 가지 방식으로만 계속 하면 지겨운 법이고, 달리 일에서의 인간관계가 없는 나는 특히 이런 부분을 많이 고려한 매일의 업무를 진행하는 것으로 지겨움을 달랜다. 익숙한 일을 익수한 방식으로 계속 하면 거의 자동으로 일처리를 하게 되는데, 사실 이때는 실수가 발생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늘 같은 걸 보면 눈과 머리가 trick을 당해서 약간의 오탈자나 잘못 기재된 정보가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기실 이런 점도 내가 조직을 만들어 조금은 더 structure을 갖춘 회사로 키우려는 이유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조금은 밑도 끝도 없는 구성의 이야기지만 난 이 시리즈를 좋아한다. 무한반복의 루프고, 죽여도 죽여도 Noble은 계속 나오지만, 처음의 이야기가 인간/선 vs Noble/악의 구도였다면 지금은 D도 등장하는 Noble도 무척 인간적인 면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결국 작가가 시작한 것을 스토리가 끌어나가는 듯, 이야기의 느낌 자체가 조금씩 바뀌어 온 것이다. 이런 경험은 한 작가가 쓴 긴 시리즈를 계속 읽어나갈 때 특히 많이 하게 되는데, 한 작가의 여러 이야기를 읽는 것과는 또다른 감성이다. 다음 해 2월에 25권이 나온다고 하는데,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이번 주에는 가을의 첫 비가 올 것 같다. 아침과 저녁으로 흐린 날씨도 이어지고 있는, 완연한 가을이다. 괜찮았다. 가을에 맞는 봄바람 비스무레한 것은. 잠깐 스쳐지나더라도, 나이가 들수록 그런 경험은 귀하게 느껴진다.
뭐 그랬다구요. 주말 잘 쉬고 열심히 다시 일하고 짧은 한 주를 보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