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읽다 운동하고, 그렇게 한 주를 보내고 있으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TV도 별로 안 보고, 조금 지겹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한 때를 보내는 운치가 그만이다. 공기도 맑고. 곧 다운타운에 있는 헌책방 Logos에 가볼 생각이다. 점심도 먹어야 하고, 무엇보다 어제 붉은돼지님의 글에 댓글을 달면서 소개했던 Easton Press책을 구하고 싶기 때문인데, 사온다면 충동구매다. 생각해보니 이 서점을 통해서 Easton Press나 Franklin Books의 책을 포함하여 요즘엔 좀처럼 보기 힘든 책을 몇 권 구한 바 있다. 특히 책집, 그러니까 책을 넣는 케이스가 같이 나온, 책이 귀하던 시절의 모양새를 하고 있는 녀석들이 있는데, 아주 예쁘다. 그런 재미에 헌책방을 가는 것 같다. 가끔 싸게 책을 사오는 것도 물론 좋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잊어버릴까 싶어 이틀동안 읽은 추리소설 두 권을 정리한다.
산타클라라 카운티 도서관 사라토가 지점에서 발견한 히가시노 게이고. 지금까지 3-4군데의 지점을 다니면서 내가 보유한 책을 포함해서 한번도 그의 같은 작품을 만나지 못한 다작의 작가, 월간 히가시노 게이고. 결말이 뻔한 장르파괴성을 갖고 쓴 소설인데, 언제였는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소설속으로 들어간 작가의 이야기 또는 등장인물들이 자신들이 창조된 가상세계의 일원임을 자각하게 되는 이야기가 유행했던 한 때가 있었다.
다소 덜 팔리는 추리소설 작가는 도서관에 갔다가 알 수 없는 계기로 자신이 옛날에 창조해놓고 방치한 어떤 테마의 세계로 포트하게 된다. 작가답게 얼른 평행우주 비스무레한 개념으로 이를 이해하고 그 세계에서 자신에게 부여한 역할을 맡아 사건을 해결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내면을 찾아가는 이야기. 사회파보다는 본격추리소설에 대한 찬미(?)를 담고 있는듯한 테마, 그러니까, 추리소설작가의 시작이 그러했듯이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야할 고향으로서의 본격추리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빌려 읽기 딱 좋은 한 순간의 재미, 그것도 매우 easy한 reading으로 이를 선사하는 책이다. 나쁘진 않지만, 조금은 아쉬운 뻔한 이야기. 내 멋대로 이야기를 extend하자면, 다시 자신의 세계로 돌아온 작가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되어 본격적인 추리소설을 마구 뽑아내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는 결말이...
살짝 르와르의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이 작품의 탐정은 그다지 멋은 없다. 28살, 삿포로 어딘가, 거리의 한 귀퉁이를 지켜나가는 이 탐정은 말 그대로의 탐정이라기 보다는 해결사 같은 일을 하면서 알 수 없이 부여된 카리스마로 일을 처리하면서 먹고 산다. 히키코모리도 아닌데, 좁은 아파트는 동거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쓰레기 더미로 가득하고, 씻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데, 양복은 입고 다니는 등, 마치 열흘에 한번씩 샤워를 하는 험프리 보가트, 여기서 허무의 입술을 빼버린 듯한 모습이 연상된다.
한 사건을 받아 해결하는데, 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다시 살인사건을 접하고 이렇게 뒤죽박죽으로 된 사건들의 실타레를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이 깔끔하지 못해서 읽는 도중에 갑자기 '이건 또 뭔 소리래?'하는 생각이 절로 나오는 등 아직 다듬을 것이 많은 듯 싶은데, 잘 키우면 꽤 멋진 탐정의 이야기로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동 시리즈는 12편이 있고 두 번째 작품은 영화화되었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번역된 건 세 편인 듯. 어쩌면 나중에 모으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나쁘진 않았지만 처녀작이니만큼 더 많은 발전을 기대할 수 밖에 없다.
소설가 천승세라는 분의 평역으로 나온 소설 십팔사략을 열심히 읽고 있다. 여기서 다뤄진 이야기는 여러 가지 책으로 벌써 다 접했는데, '소설 손자병법', '소설 전국시대', '열국지', '삼국지', '초한지' 등등에서 극적인 요소라는 기름기를 싹 빼버린, 조금은 팍팍하지만 단백질이 풍부하여 몸에 좋은 닭가슴살과도 같이 요점을 잘 잡아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조금은 중역의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박정희놈의 군사반란을 쿠데타로 이야기하는 것만 봐도 나는 이분의 사관이 맘에 든다. 다 읽으면 별도로 정리할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읽는 역사의 흐름이라는 건 또 깊은 맛이 있어 이래저래 독서가 즐거운 요즘이다. 많이 사들이고 빌려서도 읽이서 그런지, 양적으로는 최근 5년 중 가장 좋은 독서의 한 때를 보내고 있다. 다독도 독서의 양적인 면에 치중하는 일종의 강박이 될 수도 있다는데, 난 못 읽어본 책이 너무 많아서 아직은 양적인 면에만 노력을 기울여도 될 것 같다. 깊은 독서를 꿈꾸지만 어쩌면 그건 한 50이나 60대에 이르러서 시작해도 나쁘지 않겠다. 천승세 소설가의 이름으로 이런 저런 책이 몇 권 검색되는데, 보관함에 담았다가 나중에 구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