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에 단무지를 썰다가 이를 붙잡고 있던 왼손 엄지손가락의 손톱과 그 밑의 손가락이 같이 베였다. '서걱' 하면서 손톱이 베어지는 순간, 그리고 피가 나던 순간까지 각각 오늘까지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보통 하던대로 수돗물을 틀고 닦아낸 후 소독을 하려 했으나 생각보다 상처가 깊고 손톱 밑의 살이라서 그랬는지 피가 멈추질 않았다. 덕분에 느긋하게 와인을 마시던 주말저녁에서 갑자기 근처의 응급병원을 찾아가는 신세가 되어버렸지만, 다행히 영업중인 병원을 찾았기에 대형병원 응급실로 뛰어가서 2-3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은 피할 수 있었다. stitching은 필요하지 않았지만 (이것도 매우 다행), 소독을 하기 위해 아이오다인과 소독용알콜을 섞은 그릇에 환부를 담그고 있던 시간은...정말 괴로웠다.
무엇보다 불편한 것은 거즈로 둘둘 만 채 하루의 업무를 보는 것인데, 직업의 특성상 문서작업이 많기 때문에 왼손엄지를 전혀 쓰지 않고 지낼 수는 없기에 약간의 tab은 어쩔 수 없었고, 덕분에 약간이지만 출혈이 있는 듯 하다. 오늘 저녁에는 내가 직접 거즈를 풀러 소독하고 다시 끄러매어야한다. oh...don't I look forward to it...-_-
그래도 순수한 문서작업을 못했을 뿐 오늘 하려던 많은 일처리를 마쳤고, 내일은 오늘 할 수 없었던 일 (내일의 순서에서 가져온 일을 오늘 하였기 때문에 괜찮다)과 내일 예정이던 일을 그대로 진행할 수 있다. 생각해보니 불편함 때문에 딴짓도 딴생각도 못하고 오히려 일을 열심히 하게 된 것인데, 오묘한 하루의 조화가 아닌가 싶다. 좌백의 '하급무사'를 보면 밑바닥의 밑바닥에 위치한 자들이지만 '성공'에 대한 확실한 철학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성실함'이다. 성실하게 일하고 단련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단순한 이야기지만, 세상사에 비춰보면 - 좌백의 소설은 묘하게 현실을 반영한다 - 진리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느낀 바 있어 지난 여름의 나태와 피곤은 뒤로 하고, 하루를 성실하게 보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물론 손가락 덕분에 조금 틀어지긴 했지만, 내일, 아니면 수요일, 혹은 손가락이 치료되는 시점부터라도 본격적으로 오전에 일찍 운동을 마치고 4시간의 집중적인 어려운 업무처리, 이후 이어지는 4시간의 가벼운 업무처리 및 독서로 이어지는 하루를 보낼 생각이다. 이렇게 하면 처음엔 조금 힘들더라도 제 궤도에 오르면 꽤 신나는 매일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사무실을 다시 놀이터로 만드는 것!
장정일이 쓴 책은 독서일기 7권, 빌-산-버 3권, 공부 2권 (revision까지), 그리고 악서총람까지 13권을 봤는데, 정작 그의 작품은 한 권도 읽지 못했다는 것. 워낙 예전에 나온 책이라서도 그렇고 왠지 모르지만 다가가기 어려운 면이 있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기회가 되면 하나씩 구해봐야겠다. '악서총람'은 짧은 글을 모아놓은 것인데, 다뤄진 '악서', 즉 악기, 음악, 예술인에 대한 평전, 소개서, 소설 등의 양이 꽤 된다. 거의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역시 가슴에 다가오지는 못했는데, 역시 아는만큼 보고 느껴지며 재미를 볼 수 있는 것이니까 fair. 솔직히 난 흥미를 가질만한 책을 찾지는 못했는데, 워낙 이쪽의 비사에 관심이 적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재즈나 록, 클래식은 나에겐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장르라서 그럴 것이다. 이쪽으로 해박한 분이나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훌륭한 책 소개서로 읽을 수 있다.
타이핑을 하고나니 역시 다친 곳을 보호하려고 온몸이 이상하게 힘을 쓰는 것이 느껴진다. 어깨도 뭉치고, 손목이나 팔의 힘이 엉뚱한 곳에서 들어온다. 아프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