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을 살았다. 그간 실수도 많이 했고, 남들이 흔히 성공이라고 할 만한 것들도 종종 경험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남자라는 건 죽을때까지 철이 들 수 없는 생물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미화하려고 노력해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한국무협이라는 것이 원래 김용-와룡생-양우생-고룡 등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무협소설에 비교할 때 방계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아무리 잘 쓴 소설이라도 일단은 모티브에서, 배경에서, 인물에서, 구도에서, 중국의 어느 한 시절을 갖고오지 않고서는 만들 수가 없고, 기본적인 reality - 무협에서 reality를 운운하는 것이 우습지만 - 면에서도 일단 조선이나 고려를 배경으로 하기엔 우리의 역사가, 적어도 임협적인 면에서는 일천하기 때문이다. 임꺽정이나 장길산은 녹림에 가깝고, 홍길동은 무협이라고 하기엔 너무 도술에 달통하여 역시 무협은 중국을 배경으로 할 수 밖에 없는데, 부작용이라면 언제나 중화인이 주인공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세가의 자손도, 구파일방의 문도도, 모두 중원인이고, 소위 방문좌도, 그러니까 사파나 마문에 속한 인물이라도 모두 그 핏줄은 중화의 것이다.
그런데 시작에서는 분명히 방외방파라도 중원의 후계자가 주인공인 듯 이어가지만, 분영히 이야기의 2/5가 지나갈 무렵 제목에 걸맞게 이야기의 주인공은 '묘'족의 사람이란 걸 알게 된다. 이 묘족의 왕은 우연히 멸문지화를 입은 장모씨의 친구가 되었다가 자신의 부족이 장모씨를 찾는 자들에 의해 혈겁으로 사라지는데서부터 기연이 시작된다. 이로인해 묘족의 한 용사는 독인으로 다시 태어나고, 장모씨는 명문정파의 검협으로 재탄생한다.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검행의 고수가 있으니 조선땅에서 온 박모씨. 그러니까, 애초 이건 중국인이 아니 묘족과 조선인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를 조금 더 읽다가 보면 알게 되는데, 작가는 역시 반골이 아닌가. 주인공이 묘인 하고도 독인, 거기에 출신을 알 수 없는 동쪽의 한 무사, 그를 통해 나타나는 검의 최고경지인 이기어검술. 옥의 티라면 무공을 극대화한 일종의 귀령술인데, 무협이란게 SF만큼이나 한계가 없으니 그렇다해도 정종으로 무협지를 배운 나에네는 조금 그렇다. 적절히 재밌다는 점도 놀랍지만, 더욱 그런건 실컷 읽은 수많은 무협지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처음 만난다는 점. 아! 강호는 넓고도 깊어 도저히 그 전체를 들여다볼 수가 없구나.
저녁의 약속이 취소되어 다시 혼자의 시간을 갖고 있다. 와인 두 병이면 이 나이엔 나쁘지 않은 솜씨. 옛 사람의 이야기를 많이 읽은 덕분에 두주불사의 호인이 좋은건줄 알고 산 나에게 이건 많이 모자라는 수준이지만, 나이도 있고, 조금 똑똑해졌으니까...이걸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