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이라는 작가를 좋아한다. 그의 책인지 모르고 우연히 읽게 된 '방각본 살인사건'이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이후 구할 수 있는 책은 모두 사들여 읽었으며, 절판된 책은 당시 세리토스 도서관의 빈약하기 그지 없었던 한국도서과에서 빌려다 읽은 것으로 기억한다. 이 시절은 지금도 가끔 좋지 못한 꿈을 꾸게 하는 등 무의식 속에 꽤 힘든 시절로 남아 있는데, 2009년 무렵인가 일도 익숙해지고, 그냥 재미도, 보람도 없이 보내던 하루의 위안이 돌아오는 길에 도서관에서 빌린 소설을 읽으며 운동을 하거나 술을 마시는 정도였다. 이때 내 기억으로는 '압록강'을 읽었는데, 이 책은 아직도 다시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안다. '압록강'뿐 아니라 그의 초기작들 중 유명세를 많이 타지 않은 책들은 여전히 절판이고, 영화나 TV 드라마로 유명해진 일부 작품들만 다시 엮어서 나오고 있다.
고작해야 14년 밖에 되지 않은 책이고, 지금은 매우 유명한 작가의 초기 작품들 중 하나인데, 시장의 논리는 냉정하기 그지없게 이 책을 여전히 절판상태로 놔두고 있다. 작품성이나 재미는 확실히 좀 떨어지지만, 그리 유명해지기 전, 김탁환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법이나 이런 것들이 상당히 풋풋하고 재미있다. 다소 촌스럽게도 자신을 작중인물에 대입하는 것이나, 이 과정에서 나오는 자신의 작품들을 이름만 살짝 바꿔 나열한다던가 하는 건 꽤 귀엽다. 단 장옥정-김만중-모독-백난파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좀더 키우고 이야기를 좀더 흥미롭게 이어갔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 책의 테마를 좀더 잘 다듬고 기승전결에 따른 이야기의 당위성을 키워 장편으로 내놔도 상당히 흥미롭겠다고 생각했다. '방각본 살인사건'에서 제대로 터뜨린 '매설가'의 테마의 시작이기도 한데, 최고의 소설을 찾는 유명한 매설가 모독, 이를 이용해서 귀양가 있는 김만중의 소설을 훔쳐 역모사화를 만들어 내려는 장희재와 장옥정, 이들을 이용하여 권력의 균형을 잡고자 하는 숙종, 그리고 이 와중에 완벽한 소설을 찾아 빼돌리기 위해 모독을 떠나 김만중에게 접근한 여자 - 소설속의 이름으로 정체를 바꾸며 실체와 실명을 숨긴 - 그런데, 이들을 잘 엮어서 정리되지 못했기에 풀리지 않은 궁금증이 너무 많다.
공산당이던 아버지가 부임한 프라하에서 학교를 다니고 살았던 요네하라 마리가 회상하는 과거 친했던 친구들의 모습과 일본으로 돌아온 후 한참 동안 소식이 끊어졌다가 이루어진 그들과의 재회에서 그녀가 느낀 많은 이야기들이 꽤 소박하지만, 열심한 문장으로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이미 돌아가신 지도 한참이지만, 가끔 저자의 얼굴을 보고 책을 산다면 요네하라 마리의 책을 사게 되지 않을까 생각할 만큼 그녀는 굉장한 미인이었다. 오랜 친구라도 늘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기회가 날 때마다 만나지 못하다가 어느 날 만나게 되면서 느끼는 당혹감을 주는 때도 있고, 어느 친구는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있기도 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후반부에서 그녀가 옛 친구들을 찾아보면서 느낀 감정에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어제까지 TV 드라마 '잘 먹었습니다'를 재미있게 보다가 던져 버렸다. 요리도 좋고, 시대 또한 내가 흥미를 갖고 있는 일본의 한 시절인데, 중반을 넘었을 때, 관동대지진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혼란을 틈타 정적을 살해하거나 죄없는 조선인들을 관이 주도해서 대량으로 잔인하게 학살한 이야기는 쏙 빠지고, 전 일본으로부터 구호물자와 도움의 손길이 쌓여갔다는 '미담'과 당시의 모습을 자료화면으로 내보내는 부분에서 꼬인 내 심사는, 에피소드 내내 그 잔인했던 짓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이 의무감과 안타까움으로 똘똘 뭉친 등장인물들을 보면서 더욱 배배 꼬여버렸다.
사실 드라마를 시작하면서 보여준 전쟁 직후, 아이들을 거둬먹이면서 무엇인가 희망적인 장면으로 이를 전환하는 부분에서 이미 국뽕의 느낌이 있었기는 했다만.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을 넘어서 일본의 책이나 문화를 접할 때 이 부분은 늘 아쉽고, 주의해서 보아야 하는 부분이다. 요네하라 마리의 책도 조금은 그렇게 조금은 비판적으로 들여다볼 부분이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책은 특별히 그런 맘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으니까, 내가 읽은 첫 번째 요네하라 마리의 책으로는 괜찮았던 셈이다.
츠바이크와 백가흠, 그리고 이젠 너무도 오래 손을 놓은 스토너까지 아직도 세 권이 남아있다. 어떻게 써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