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지만, 불쾌한 경험은 책을 읽다가도 얼마든지 하게 된다.  책의 내용에 따라서, 다루는 주제에 따라서, 그냥 구성이나 목적이 뻔해서 등등, 이루 다 거론할 수 없는 많은 이유에 따라 나 또한 책을 읽다가 화가 나기도 한다.  


'~적'이라는 말이 아무리 마구 쓰이는 일본어에서 온 표현이지만, 적어도 책을 짓고 꾸미는 사람이 '~적'이라는 말을 책의 제목에 쓰는 것은 무리가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제목에 낚여 사들인 책인데, 이렇게 읽은 책은 그 끝이 좋은 경험을 하지 못했다.  일단 이 책의 P.G. 해머튼이라는 사람이 쓴 'Intellectual Life'가 포함된 몇 권의 책을 '지적 생활의 즐거움'이라는 제목으로 묶어 편역한 책이다.  한 권의 책을 충실하게 번역하거나, 평역 또는 편역하는 것과는 다르게 다가오는데 'Intellectual Life'에 '즐거움'이란 말을 더한 이 책은 책이나 지식생활에 대한 내용보다는 무엇인지 모르게 자계서의 느낌을 주고 있다.  나만 그랬을지도 모르겠고, 굳이 다른 이들의 평을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무엇을 하라는 말로 가득찬, 원 저자의 느낌보다는 역시 왠지 모르게 편역자의 말과 생각을 저자의 말에 교묘하게 엮어 왜곡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것은 물론 순전히 나 혼자만의 느낌이고, 편견일 가능성도 있는데, 어쨌든, 읽으면서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특별한 즐거움을 받지는 못했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불쾌한 책 이야기를 하면서 그 시작에 어울리는 책이라고 하겠다.


이런 f**king piece of shit이라는 말이 읽는 내내 절로 나오게 만들어 준 이 책은 단지 학계, SKY-in Seoul-지방대학교를 넘어 한국 사회 전반에 만연한 제도화된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대학원 진학은 하나의 학문분야를 좀더 깊이 파고들기 위함인데, 유독 한국에서는 석사과정은 교수의 따까리 과정에 다름아닌 노동착취와 대충 만들어 받는 학위과정으로 인식될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아!  그들, 교수라는 이름, 은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무위도식도착자들!  그 공감제로의 일화들, 그리고 좋든 싫든 대물림될 같은 종류의 착취까지, 읽는 동안 구역질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 기실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들은 바 있는 일이지만, 이렇게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게 보니 정말 그들만의 리그라는 것이 똥더미를 둘러싼 쉬파리떼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학문과는 무관한 정치행각, 발언, 행사, 착취의 대물림.  교수들이 '돈'만 밝힌다는 말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연구비 횡령, 아주 낮은 수위의 처벌까지, 이보다 더 썩었을 수 있을까?


그 와중에, 저자를 비판하는 댓글을 단 용기(?)있는 개자식은 아마도 자신은 그렇게 착취를 당하지 않을 만큼 배경이 든든하거나, 운이 좋거나, 아니면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를만큼 교수에 대한 충성과 맹목의 성공지향의 무뇌아가 아니었을까?  공감이 사회의 화두인 세상세서 그렇게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인간이 어느 곳에서인가 박사를 받고, 강사를 거쳐 언젠가 학생들을 가르칠 것을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하다.  


아직까지는 현재진행형이지만, 이 책이 출판된 후 저자의 인생은 더 어려워진 것 같다.  학교에서 내몰렸고, 아마 다시 학계로 돌아가는 건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이런 분이 차라리 정치에 뛰어드는 것은 어떨까?  이런 문제는 온몸으로 겪은 사람이라면 좀더 나은 활동을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다음의 책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시 일처리를 해야 한다.  몇 가지 에피소드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싶지는 않은 책이 '사십사'라서, 좀더 생각을 정리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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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05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머튼의 책이 몇 년 전에도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마도 제목이 `지적 생활`이던가, 아무튼 그렇습니다.

일본이 서양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해머튼의 책도 일본에 소개되었을 겁니다. 그래서 일본이 교양문화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transient-guest 2016-03-05 09:39   좋아요 0 | URL
`지적 생활`은 책 한 권을 그대로 번역한 것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책은 짜집기 느낌도 나고, 원 저자의 말이 편역자의 의도에 따라 배치된 것 같기도 했습니다. 일본이 우리보다 확실히 훨씬 빨리 서양의 책을 번역해서 옮긴 건 알고 있습니다만, 교양문화에도 관심이 많았나 보네요.

cyrus 2016-03-05 09:50   좋아요 0 | URL
알라딘 검색창에 `교양`을 검색해보면 일본 저자가 쓴 관련 책 몇 권 나옵니다. 가장 대표적인 저자가 다치바나 다카시입니다. 그가 젊은 시절에 읽은 책들 대부분은 서양고전이나 서양철학 쪽입니다. 그래서 그가 생각하는 교양의 체계를 살펴보면 서양교양의 영향을 받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t-guest님이 지적한 책을 저도 읽어봐야겠습니다. 까면 깔수록 내용이 별로인 책들을 디스하는 게 재미있어요. ^^;;

transient-guest 2016-03-05 10:22   좋아요 0 | URL
다치바나 다카시는 제가 좋아하는 지식인입니다. 그의 자연과학에 대한 편애와 편중이 좀 문제랄까 싶지만, 그도 이전엔 어지간한 고전은 다 읽은 것 같고, 나름대로 한 세계를 구축한 점이 좋습니다. `지적 생활의 즐거움`을 보시면 저하고 다른 평가를 하실 수도 있으니 더욱 기대하고 있겠습니다.ㅎㅎ

cyrus 2016-03-05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guest님. 해머튼의 책을 방금 검색해봤는데 《지적 생활》이 아니라 《지적 즐거움》이었습니다.

transient-guest 2016-03-05 10:23   좋아요 0 | URL
Intellectual Life를 `지적 즐거움`으로 번역했던 것 같네요. 그런데 역자가 많은 것을 보면 역시 평역이나 편역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구요.

yamoo 2016-03-07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방대 시간 강사....저 책과 <흡혈귀가 지배하는 대학>을 같이 보면 우리나라 `대학`의 실상이 그대로 들어날 거 같습니다. 뉴스에 보니 일부 사립대가 등록금을 총장과 이사장의 사적 용도로 사용해서 감사원의 제재를 받았다는데.....재수 없어 걸린 것이지, 대부분의 사립대들이 같은 짓거리를 관행적으로 해 오는 듯합니다. 정말 우리나라 대학의 미래는 암울 그 자체..

transient-guest 2016-03-08 03:15   좋아요 0 | URL
언제나 뉴스가 터지면 ˝일부˝라고 합디다. 그런데 ˝일부˝교회, ˝일부˝학교라고 하는데, 그 ˝일부˝에 포함된 것들은 모두 주류거든요. 위에서 아래로 전부 썪어 있어요. 학생회도 예전부터 회장하면 졸업할 때 집이 한 채라는 말이 있었거든요. 70년대에도. 사회상이 바로 서지 못하니까, 대놓고 해먹는거에요. 진보가 정권을 잡는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지만, 적어도 나쁜 짓을 대놓고는 못하거든요. 지금 한국을 보면 정말 망해가는 국가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