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엔 사무실을 들락거리면서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쉬면서 책을 봤다.  아무래도 편하게 읽어지는 소설을 위주로 읽었는데, 금년에는 고전문학에 치중하면서, 가끔씩 머리를 식히면서 다른 책을 읽을 생각인데, 맘처럼 될지는 모르겠다.  다음 주에 잠시 늦은 휴가를 가질 생각이라서 여전히 이번 주도 맘이 급하다.  자잘한 업무를 다 끝내고 떠나야 맘이 편할 것이다.


아사다 지로는 거의 무조건 사들여 읽고 보관하는 작가다.  '칼의 노래' 이후로 그의 소설을 구해서 읽었는데, 가벼운 것은 가벼운 대로, 묵직한 책은 그 책 그대로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가라서 좋아한다.  정치적으로는 약간 모호한 부분이 있는데, 딱히 우익성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전형적인 일본인이 아닌가 싶다.  과거에 대한 반성과 향수, 후회와 동경이 적절히 버무려진 그 정도의 의식 같은데, 요즘의 한일정치색을 보면 그 나물에 그 밥이라서 딱히 정치적으로 구분하면 뭐하나 싶기도 하다.

  

평생 일만하다 뇌출혈로 죽은 한 사람,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은 아이, 그리고 청부살해대상 옆에 있다가 총을 맞고 죽은 야쿠자 두목.  이렇게 세 사람은 간단하게 극락왕생하는 대신에 과거를 바로잡기 위한 재심신청의 일환으로 잠깐이지만 다시 인간계로 내려온다.  짧은 기간동안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뒤틀린 부분을 바로잡기 위해 왔지만, 복수를 하거나 정체를 밝히면 규칙위반으로 지옥으로 가야 한다.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할 나이는 아니지만, 가끔씩 언제 떠나도 후회가 없도록, 그리고 깨끗할 수 있도록 늘 주변을 정리하는 습관을 갖고,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너무 갑작스럽지만 않다면, 크게 후회하고 뒤돌아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기 때문에 특별히 공감하는 부분은 없었지만, 잔잔하게 감동을 주기도 하였고, 극화로써 괜찮았다고 본다.


숙부에 의해 정략혼으로 팔아넘겨질 여자, 그 여자와 결혼하려는 늙은 귀족, 그 여자를 사랑하는 낮은 신분의 젊은이, 그의 친구, 귀족의 정부, 그리고 살해된 사람들.  여기에 수도원, 캐드펠 수사를 버무려 꽤 훌륭한 한 편의 소설이 나왔다.  확실히 그리 높은 수준의 추리를 요구하지는 않지만, 12세기 혼란스럽던 영국의 시대상과 그 당시의 도덕과 법적인 배경을 장치로 하여 21세기의 내가 익숙한 것과는 다른 사고를 요구하는데, 아직까지는 살인의 동기를 파악하면 범인을 유추하기 그리 어렵지는 않다.  원래 추리소설을 심각하게 따져가면서 읽기보다는 극화로 즐기는 아마추어 팬이라서 쉬운 사건이라도 재미있게 쓰인 캐드펠 시리즈는 무척 빨리 읽게 된다.  법과 도덕, 신의 질서를 이야기하던 시절이지만, 역설적으로 '할껀' 다 하던, 어쩌면 지금보다도 더 그렇던 시절의 아이러니도 그렇지만, 해가 떨어진 시간, 대낮이라도 깊은 숲속을 돌아다니는 것이 위험한 것은 마치 늦은 밤 인적이 끊어진 골목길을 걸어 다니는 것과 같은 느낌인데, 그렇게 보면 자연에서 도시로 옮겨졌을 뿐,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은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뭔가 두서없고, 뒤죽박죽인 듯한 작품.  굳이 분류하면 미스 마플의 이야기가 되겠지만, 이야기의 거의 반이 더 지나간 시점에 갑자기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것도 정확하지 않고.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모티브가 확실한 인물들로 주의를 돌려놓고, 전혀 다른 곳에서 무십하게 범인을 꺼내는 전형적인 애거서 크리스티의 수법까지.  운동하면서 읽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재미만 놓고 보면 캐드펠과 비교되는건 어쩔 수 없다.  결국 죽음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이나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추적하면 범인이다.


이건 아무래도 예전에 만화책으로 읽은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다.  책은 분명히 이번에 구입한 것인데, 스토리가 너무 익숙하다.  세부적인 내용은 조금 새롭지만, 기초적인 설정은 꽤 눈에 익다.  다나카 요시키가 원래 있었던 이야기들을 적절히 버무리고 패러디하여 설정하는 것을 즐기지만, 이 책은 매우 익숙하여 정말 빨리 읽어버렸다.  그래도 재미있는 19세기 영국의 이야기를 볼 수 있었고, 현대적인 색체가 강하긴 해도 시대적인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낸 점에 좋은 점수을 줄 수 있겠다.


'스토너'와 '마션', 그리고 '책벌레와 메모광'은 따로 정리할 예정.  새해를 맞아 다섯 권의 책을 읽었고, 세 권을 읽고 있다.  한국어와 영어를 적절히 섞어서 읽을 것, 그리고 고전문학의 비중을 늘릴 것.  2016년 독서의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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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6-01-06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의 노래가 아니고 칼에 지다 아닙니까? ㅋㅋ 저도 너무 감명깊게 읽어서 지로의 책 찾아 읽었는데요
본인이 최고의 역작이라고 밝힌 `창공의 묘성`(맞나?)는 좀 실망스럽더라구요

transient-guest 2016-01-07 02:54   좋아요 0 | URL
칼에 지다라고 쓴다고 머리로는 생각했는데, 손은 묘하게 칼의 노래라고 썼네요.ㅎㅎ `창공의 묘성`도 봤어요. 저는 아직은 칼에 지다를 최고로 치고 싶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