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 브레이크 패드만 갈기 위해 들린 정비소에서 로터까지 다, 그것도 네 바퀴 모두를 갈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고, 예정보다 훨씬 더 긴 시간, 사실상 하루를 꼬박 정비소 근처에 있는 별다방에서 보내게 되었다. 일단 최소한 3-4시간은 걸릴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가져간 일거리는 애저녁에 다 끝냈기 때문에 남은 시간은 전화가 오면 받고, 메일이 오면 답해주면서 케이스 관리를 하게 될 것 같다. 물론 이 또한 예상하고 가져온 책이 있어 적절히 시간을 보낼 수는 있을 것인데, 귀찮은 것은 차가 없어 모든 이동을 걸어서 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이곳은 교외라서 포인트에서 다른 포인트까지의 거리가 짧지 않다는 점이다. 당장 점심을 먹으러 가려면 아주 가까운 곳의 작은 마트를 이용하거나 엄청 걸어서 음식점까지 가야만한다. 그리고 오늘은 캘리포니아의 햇살이 강하게 내리꽂혀서 오전부터 후끈거리는 열기가 예사롭지 않는 날씨를 보이고 있다. 차를 타다보면 이런 저런 이유로 정비에 비용이 들게 마련이라서, 오늘 예상치의 4배 하고도 다시 여기에서 4배가 되는 비용이 발생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는 생각이다.
책을 읽다가 지치면 잠시 인터넷을 하고, 그러다가 다시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지 약 3시간이 지난 시점인데, 차가 최소한 일부라도 정비가 되어 가져갈 수 있으려면 아직 2-3시간은 더 기다려야 한다. 영화라도 볼까하여 fandango.com에서 스케줄을 찾았는데, 그나마 가장 가까운 곳의 상영시간대가 영 별로다. 그리하여 이것은 패쓰!
천상 좀더 책을 보다가 냉방병에 걸리기 전에 일단 한번 자리를 바꾸어서 점심도 먹고 딴짓도 해야지 싶다. 요즘은 하다못해 맥도널드에 가더라도 인터넷이 되는 세상이니까.
어쨌든 시간을 때우다보니 오늘은 포스팅할 생각이 없었던 후기 몇 개를 쓰게 되었다. 읽은 순서대로 하여 다음의 책을 이번 주중에 모두 읽었다.
'집나간 책'의 서민박사는 기생충으로 유명해진 분인데, 오리지널 알라디너들 중 하나로 꼽힌다. 글빨도 좋고, 자신의 외모를 재미있게 포장할 수 있는 허세(?)도 있어 방송에서도 유명세를 꽤 치룬듯 하지만, 내가 그의 책을 읽은건 이번이 처음이다. 기억에는 '다락방'님의 리뷰를 보고서 구하게 된 것 같다. 장정일류로 대표되는 날카로운 비평이나 욕에 가까운 독설도 없고, 마냥 개인적이고 감성적인 독서가 아닌, 그만이 인식하는 그의 위치와 상식에서 나올 수 있는 사회비평을 독서후기라는 형식을 이용하여 재미있는 글을 써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어린시절 이야기, 외모와 공부에 대한 이야기도 좋지만, 마냥 웃으면서 볼 수만은 없는 것이 황우석의 사기사태때의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일종의 내부고발(?) 덕분에 모교와의 연이 끊어졌다는 이야기처럼 가끔씩 행동으로 옮긴 지식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내용 때문이다. 기생충으로 유명세를 탄 좀 재미있는 박사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기백을 보여주다니. 같은 소안인으로써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물론 내 눈이 그의 눈보다는 조금 더 클 것이다) 다음 기회에는 그의 전문저술인 기생충에 대한 책을 사보고 싶다. 만나준다면 다음에 한국에 갈 때 인증샷을 찍고 사인도 받고 싶은데, 이미 저술과 강연/강의/연구로 엄청나게 바쁜 셀럽이신지라 어려울 듯.
'우주의 비밀'이라고 하기에는 좀 거창한 제목이 아닌가 싶은 이 에세이를 읽은 후에 남은 것은 정작 내용이나 교훈보다는 아시모프의 죽음의 원인이다. 내가 전에 읽은 자서전에서는 신장투석 때 생긴 문제가 나중에는 만성질환이 되어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번에 역자의 말을 보니 HIV로 사망했다고 한다. 다만 90년대 초반 당시의 사회적인 정서와 편견을 고려하여 이를 정확하게 발표하지 않았다고. 수술을 하면서 수혈받은 혈액을 매개체로 하여 HIV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매직 존슨이 아직까지 살아있는 것을 보면, 아시모프도 제때에 이를 진단 받아서 약처방을 받았더라면 더 오래 살면서 더 좋은 작품들을 쏟아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용은 그간 읽은 그가 저술한 다른 잡기적인 에세이와 크게 다르지 않고, 비슷한 에피소드를 인용한 구절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하지만, 팬이라면 일단 구매하고 봐야하지 않을까?
'동행'은 폴 오스터의 작품인데, 원제 'Timbuktu'의 팀북투는 위키에 의하면 말리에 위치한 도시로써, 통북투 주에 있는, 상코레 대학과 마드라사스라고 불리는 이슬람 학교 등 15세기와 16세기에 걸쳐 번성했던 아프리카의 이슬람 문화를 대표하는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는 도시이다. 징가레이버, 상코레, 시디 야햐 등의 3대 모스크는 팀북투의 옛 영화를 떠올리게 해 주는 유적들이다. 복구 노력이 계속되고 있으나, 이러한 유적들은 지속적인 파괴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지금은 치안문제와 전쟁 등으로 방문은 커녕 철수권고지역으로 나온다.
본즈라는 개와 주인인 윌리와의 homeless생활과 그가 약물중독으로 망가지기 전, 그를 인정해준 선생님을 찾아가는 여정. 그 이후 잠시 찾아온 본즈의 행복, 그리고 끝.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개의 관점에서 서술했다는 점. 그 외에는 역시 너무 오래 붙잡고 띄엄띄엄 읽은 덕분에 생각나지 않은 모티브의 원형. 외적인 요인들이 우리를 만들고 규정하고, 이를 벗어날 길은 약에 취하는 것이 아니면 죽음이라고 말하고 싶은걸까? 재미있게는 읽었는데, 아직도 팀북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고, '동행'이라는 의역된 제목은 비록 윌리와 본즈의 '동행'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제목이지만, 원제인 '팀북투'와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폴 오스터의 작품은 다 읽어볼 생각인데, 무엇인가 이 사람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테마가 있다면 내 눈에도 발견되어주었으면 좋겠다. 평론가의 관점이 아닌 나의 눈으로 말이다.
그럭저럭 또 한 시간을 보냈다. 10분 정도만 더 앉아서 정리하고 이동할 것이다. 지금 읽고 있는 '발칸의 역사'도 재미있고, 혹시나 하여 들고온 문학수 기자의 '더 클래식 둘'도 있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