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에는 부모님과 함께 보냈는데, 그 저녁때 연말 케잌을 사러 갔다가 Santa Cruz 다운타운에 들려 이곳의 헌책방인 Logos에 잠깐 들렸더랬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만 해도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던, 정확하게는 디지털로 넘어가던 시기여서 그랬는지, 이 작은 타운에 책방이 꽤 많이 성업중이었다.  기억하기로는 다운타운에만 Logos, Literary Guillotine, Santa Cruz Bookshop, 그리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다른 서점까지 최소한 4-5개의 서점이 있었고, 조금 더 외곽으로 나가면 더욱 많은 작은 책방들이 있었다.  관광도시면서도 나름대로 유서 깊은 대학도시의 면모라고나 할까.  책을 구하러 학교와 다운타운의 서점가를 돌아다니면서 커피도 마시고 다리품도 팔고 하던 옛 일은 좋은 추억이다.  넓디 넓은 학교 건물들을 산속의 호젓한 길을 이용해서 돌아다니던 것도 각별히 맑은 공기와 자주 눈에 띄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던 사슴들과 함께 예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러던 것이 차츰 서점의 대형화가 진행되면서 지금은 회사 자체가 없어진 Borders서점이 대형자본과 신축건물, 그리고 서점 내에 멋지게 차린 이층 카페를 앞세워 다운타운 공략에 나섰고, 이 때문에 작은 서점 몇 개는 영업이 어려워졌고, 때마침 몰아친 아마존의 돌풍에 문을 닫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 뒤로도 dot com 붕괴, housing bubble 붕괴 두 차례, 전쟁 등등 수 많은 일을 겪으면서 종국에는 Border서점도 폐업한 다운타운에 거의 유일하게 남은 서점은 Logos였다.  Logos는 단지 헌책판매 뿐만 아니라 신간서적도 함께 팔고, 또 그리 유명하지 않은 지역문인들의 작품도 판매하며, 그 밖에도 달력이나 노트, LP, CD등 다양한 물건, 특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경우가 많은 것들을 같이 팔기 때문에 이곳에 가면 그야말로 시간가는 줄 모르게 되는 one stop shopping이 된다.  주변에 좋은 카페도 여러 곳이 있기 때문에 주차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책을 골라 인근 카페에 가서 앉으면 천국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  게다가 요즘은 구하기 어려운 장정본, 그것도 어쩌면 전 시대, 책을 아끼고 모으는 것이 보편적이고 고급한 취미로 여겨지던 시절에 제본된 멋진 디자인의 책, 아트북, 그리고 어떤 분들은 특히 더 환장할 수도 있는 사진책까지 정말 다양하고 많은 책들이 한 장소에 모여있다.  CD와 LP는 또 어떤가?  맘만 먹으면, 그리고 자주 드나들다 보면 인터넷으로나 찾을 수 있는 명반들이 5-6불이라는 그야말로 헐값에 나와있는 것을 보고 소위 말하는 득템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  챗 베이커, 마일스 데이비스, 컬트레인, 스코필드, 카잘스, 굴드의 CD를 구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정확한 연혁은 모르겠지만, 대충해도 30년은 확실히 넘었고 잘 하면 4-50년은 훌쩍 넘었을 것이다.  비즈니스 하면 대도시라고 생각할 사람이 더 많겠지만, 경쟁이 적고 상대적으로 입지조건이 좋은 중소도시가 더 나은 경우를 종종 본다.  

 

일층에서 내려다 본 지하층의 풍경이다.

 

 

손전화로 찍은 사진인데도 용량이 엄청나서 그런지 이렇게 장황한 페이퍼가 되어 버렸다.  이곳은 복층구조인데, 일층과 지하로 나뉘어 있고, 장르에 따라 잘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책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작년부터인가 서점에 대한 글을 올리겠다고 해놓고서는 꾸준히 방치되던 카테고리에 글이 두 개가 되었다.  사실 Logos는 내가 워낙 즐겨 찾는 곳이라서 가장 먼저 소개할 줄 알았는데, 게으름을 피우다가 이제서야 올리게 되었으니 두 번째가 되었다는 것만해도 다행일 듯. 

 

이곳은 나에게 있어 보물창고나 다름없다.  하루에 한번씩 드나들던 때도 있었는데, 늘 무엇인가를 찾아 나오게 되었던 것을 보면 말이다.  사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게다.  책을 좋아하고 음악감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특별히 찾는 것이 없었어도 사들고 나올만한 물건은 늘 있다.  이것이 낭비가 될 지 아닐지는 나만의 기준으로 판단하련다.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에 따라 책은 주기적으로 정리되어 순환되어야 할 매체일 수도 있고 벽을 가득 메운 장식품이 될 수도 있음이다.  나에게는 순환보다는 보관이 더 맘에 든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비록 이리저리 분산해서 보관하는 통에 일목요연하고 멋진 정리가 어렵지만, 그래도 방 한 가득 꽉 찬 책을 보면 힐링이 되는 것은 나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아름다운 지역의 서점들을 더 돌아다니면서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시기이다.  나의 문제이기도 하고, 서점들이 하나 둘씩 비싼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사라지는 것도 문제이다.  어쩌면 이제는 서점이라는 곳은 patron들이 굳이 발품을 팔고 가서 온라인보다 비싼 값에 책을 사주면서 지켜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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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4-01-08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우와, 읽지 못하는 책인데도 책이 가득한 공간을 보면 왜 눈이 돌아가는 걸까요.. tran님 다시 한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하러 와서 보니, 좋은 글도 있고 사진도 있어 구경했는데, 인사는 지난번에 이미 한것 같은..( '')

이거 여쭤봐도 되나요, tran님은 쭉, 계속, 미국에 사신 거예요? 일단 대학은 거기서 보내셨고. 궁금해져서..

transient-guest 2014-01-08 02:44   좋아요 0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도 했는지 말았는지 가물가물하네요..ㅎ 저는 중학교 졸업하고 미국에 왔답니다. 그 뒤로는 쭉 미국에서 살았지요. 학교도 여기서 다 나오구요.ㅎ